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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해야만 하는 너의 분열

 

김용호(서울 녹번초)

비고츠키 한국어판 선집 9권 『분열과 사랑』(살림터)이 출간되었다. 선집 6권에서 8권이 헤르첸 교육대학교에서 비고츠키가 가르친 아동학 강의록이었다면, 이번 책은 청소년 아동학 강의록 시리즈 중 첫 번째이다.

비고츠키의 아동학 강의는 인간의 발달과정이 동물과 구분되는 지점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는 여타 동물보다 무력하게 태어난다. 생존과 직접 관련된 본능의 강력한 발현을 포기한 대신 인간은 더 깊은 사회화의 기회를 선택하였다. 이미 젖을 떼었음에도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아동기는 놀이와 문화화를 위한 발달의 시기를 확보해 준다.

비고츠키 발달이론의 미덕은 관념론과 속류 유물론의 덫을 피해, 이 문화적 발달의 과정에서 새로운 심리적 형성물(신형성)이 나타나는 기제를 제시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발달의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은 ‘위기’이다.

비고츠키 아동학이 그려나가는 아동 발달의 역사는, 언어를 통해 획득된 체계적 지각이 자주성의 욕구를 확장시켜 인간만의 놀이 발달을 추동하는 모습과, 놀이를 통해 형성된 체계적 경험이 내적-외적 체험에 대한 인지적 층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 모든 발달의 과정은 아동과 환경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그러나 이 상호작용은 부드러운 ‘협력’, 갈등 없는 평화로운 이행을 통해 나타나지 않는다. 한 연령기에서 다음 연령기로의 이행은 환경적 영향에 대한 어린이의 반란과 거부, 그리고 이 갈등 상황에 대한 어린이 고유의 문제 해결책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이처럼 다음 발달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 이전의 평화로웠던 세계와 작별하는 때를 비고츠키는 위기라고 칭한다.

예컨대 ‘원시적 우리’를 형성한 1세의 아기에게는 타인과 자신의 구분이 없다. 이처럼 최대한의 사회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에게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없다. 아기는 자신만의 말(자율적 말)을 창조함으로써 이러한 갈등상황을 타계하려 한다. 물론 자율적 말은 의사소통을 위한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획득된 중요한 언어의 요소(억양, 강세, 분절적 조음의 편린)와 기능(모상적, 지시적 기능)들은 진정한 언어를 습득하는 필수적 토대가 된다. 3세의 어린이는 언어를 통해 획득한 체계적 지각으로 주변 환경에 대한 지각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획득된 심리적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존재로 취급받는다. 이 어린이는 ‘원시적 의지(부정성)’를 발달시킴으로서 기존에 형성된 환경과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물론 이러한 반항성 그 자체는 목적 획득의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지만, 이어지는 전학령기에서 어린이가 놀이의 규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해 주는 필수적인 자산이 된다.

출생에서 학령기를 아우르는 발달 시기동안 어린이는 원숭이보다 자연적응력과 문제해결력이 떨어지던 무력한 존재에서 기억과 지각, 주의를 통제하고, 내관과 반성능력을 갖춘 학령기 어린이로 자라난다. 그러나 위기중의 위기, 가장 중요한 발달의 이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어떻게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고유한 인격은 어떻게 획득되는가?

 

청소년 아동학은 어린이가 성인이 되는 이행적 단계에 대한 논의이다. 과연 이 이행적 단계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뭉뚱그려진 기나긴 청소년기 전체를 포함하는 것일까?

비고츠키는 청소년기 또한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연령기임을 지적한다. 동물들은 성적으로 성숙하면 짝짓기를 시작하고 하나의 성체로서 활동한다. 2차 성징이 나타나면 결혼을 하고 생산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비단 가까운 과거의 관습이 아니라 현대에도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요컨대 청소년기는 본질적으로 성인과 다름없는, 다만 고도로 문화화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함양을 위해 연장된 아동기이자 억제된 성인기인 것이다. 따라서 아동에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진정한 위기는 13세에 나타나는 갈등과 위기의 시기, 중2병의 시기이다.

13세의 위기는 모든 문화권과 발달 이론에서 부정적으로만 그려졌으며, 피아제에게 자기중심적 말이나 아동기 전체가 그러했듯, 사라지고 대체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비고츠키에게 있어 위기적 연령기의 산물은 다음 연령기로 이행하기 위한 필수적 디딤돌이다. 과연 중증 중2병 학생에게서 발견되는 긍정적 심리적 형성물은 무엇일까?

비고츠키는 그것을 ‘의식의 분열’이라고 제안한다. 정신분열인 것이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행동의 논리가 지배하는 학령기의 의식이 성인의 체계적이고 개념화된 의식으로 재구조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의식이 산산이 깨어져 부서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사회적 관계 속 ‘나’를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부모도 자신의 부모와 자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로 인해 비로소 부모라는 관계를 획득했음을,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도 부모 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역할 속에서 상대적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 없이는 구성이 불가능한 거대한 ‘나’의 네트워크 속 나의 위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기존에 구체적 경험으로 맺어진 관계의 해체가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경험이 개인 내에서 안정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식 내 경험들 사이의 관계가 분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프로이트가 ‘컴플렉스’라고 칭한 것과 유사한 현상을 낳는다. 개인 내 각 의식이 다른 의식과 의사소통하지 못하여 특정 의식이 맥락없는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는 다중인격장애와 유사한 현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S. 홀이 청소년기의 행동을 모순되는 12가지 행동 쌍으로 나열하고도 이 모순의 목록이 완성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분열된 다양한 의식의 층위는 청소년기에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어, 안정된 인격의 특성인 일관된 반응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비고츠키가 제공하는 사례는 자폐성이다. 체계화된 의식에서 우리는 특정 경험을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특정 경험은 선택, 소환할 수 있다. 더 이른 시기에는 말 못할 것이 없다고 비고츠키는 말한다.

 

이처럼 분열되어 재구조화된 사회적 관계와 의식이 낳게 되는 청소년기의 신형성 중 하나는 사랑이다. 사랑의 토대에는 당연히 성적 성숙이 놓여 있지만 이 생물학적 재료가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재구조화되는 것은, 의식의 체계화와 더불어 진개념이 생성되는 청소년기에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랑의 발달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청소년 아동학 강의 2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이 책은 비고츠키 사망 1년 전의 강의(0장)와 그로부터 4년 전에 이루어진 강의(1~4장)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개 글에서는 3장과 4장의 내용을 먼저 소개한 후 0장의 13세의 위기에 대한 논의를 요약하였다. 1장과 2장은 아동학이 채택하는, 발달에 대한 관점과 연구방법론에 대한 개요로서 기존 비고츠키 아동학 강의를 읽은 독자에게는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처음 비고츠키 발달 이론을 접하는 독자에게 다른 장의 논의를 이해하는 최소한의 사전지식이 제공되는 장이다. 3,4장은 발달상 청소년기의 위치를 이해하고 과거의 이론들이 청소년기를 통합적 이론으로 묶지 못한 까닭을 설명해 준다. 이는 생물적 혹은 관념적인 이원론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0장은 비고츠키가 제안하는 통합적(아동과 환경을 모두 포함하는), 변증법적(두 요인 사이의 갈등으로 추동되는 새로운 발달에 대해) 아동발달 이론의 틀을 13세의 위기에 적용해 그린 스케치이다.

이 책을 읽는 한 방법은 1장에서 4장을 먼저 읽고 0장을 읽은 후 역자서문을 읽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해부가 유인원 해부의 열쇠하고 지적한다. 더 발달된 대상의 분석을 통해서만 그 이전 발달 단계에 대한 진정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비유컨대 0장은 인간이고 1~4장은 유인원이다. 이 책은 가장 발달한 것을 가장 선두에 배치하였으나 0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4장을 알고 있어야 하고 0장을 이해함으로써 1~4장의 과거의 비고츠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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