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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현장에서]2. 세월호의 1번 어뢰

2015.01.12 16:06

진보교육 조회 수:455

[현장에서] 2.

세월호의 1번 어뢰


권혁이 (광명 운산고등학교)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얼마 전 학교 메신저 대화명을 한동안 사용하던 ‘수사권, 기소권 보장, 특별법을 제정하라!’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로 바꾸었다. 세월호 참사 이 후 가장 많이 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다. 잊지 않겠다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잊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규명되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은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단순히 애도의 대상으로서 잊지않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난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2010년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을 물론 우리는 잊지 않았다. 그러나 잊지 않는 것이 전부인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좀 하자’는 말이 나오곤 했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잊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에서 관공서들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교육 연수의 일환으로 천안함을 적극 활용까지 하고 있다. 바로 ‘안보’ 교육 말이다. 즉,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1번 어뢰에 의하여 격침되었으니, 북의 침입에 대비해서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1번 어뢰’. 수많은 장병들, 아니 시민들의 희생의 댓가로 얻은 그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의미는 뭘까. 우리는 왜 그런 참혹한 결과를 받아야 했을까. 1번어뢰가 천안함침몰의 공식 결론이 되어버린 지금 천안함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세월호의 1번어뢰

  세월호의 진실은 침몰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의 진실마저 침몰한다면 나는 앞으로 적어도 수십 년 간 한국 사회에 희망을 품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세월호참사 만큼은 천안함의 전철을, 그 수레바퀴 자국을 밟을 수 없다. 그러려면 세월호의 진실을 가리고 덮어버리려는 세력, 그리고 ‘세월호의 1번 어뢰’와의 용기 있는 싸움이 불가피하다. 세월호의 1번 어뢰는 어떤 것들인가? 세월호의 1번 어뢰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덮으려는 모든 주장과 논거들이다.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나태한 123함정과 진도관제센터의 오판, 유병언과 청해진해운의 비리, 해경과 해운업계와의 뿌리 깊은 유착관계, 각종 안전과 규제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와 비정규직의 문제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을 해왔던 꽉 막힌 교육문화와 제도의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그리하여 언론과 전문가들, 학자들 심지어 정부까지 나서서 ‘적폐’ 운운하며 우리 사회의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과 보도, 그리고 논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세월호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일까.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혹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월호참사 초기에 정부에서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라고 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난 것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침몰 직후 민간 잠수사들이 해경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돌아가라는 말도 들었으며, 침몰한 배에서 생존자로 보이는 인기척을 들었다는 잠수사들이 있다고 인터뷰한 홍가혜씨를 정부당국은 서둘러 쇠고랑을 채웠다. 그러나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민간잠수사들이 아닌 언딘사에 거의 전적으로 구조(사실상 구난으로 드러남) 작업을 맡긴 것과 유가족들의 주장을 들어봤을 때 홍가혜씨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 사법당국의 판단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참사를 둘러싼 의혹들을 살펴보자.

선장과 관제센터, 그리고 123함정의 이상한 행동들

  세월호 사고가 난 후 세월호 선장은 16번 비상채널도 사용하지 않고 23km정도 떨어진 해경 관할 진도관제센터가 아닌 90km정도 떨어져 있어서 교신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 제주관제센터에 교신을 시도한다. 진도관제센터는 사고 이전에는 세월호와 교신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세월호 선장은 진도관할구역에 들어오면서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선장들의 말에 따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보고하지 않으면 2백만 원의 벌금 떨어지는데 누가 보고 안하나. 그냥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혹시 보고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보고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선박이 먼저 보고하지 않으면 잠시 후 관제센터에서 해당 선박에 교신을 시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데, 진도관제센터는 그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월호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500명 가까운 민간인들이 탑승하고 있어 관제센터의 집중 관리 대상인 대형 여객선인데도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교신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세월호가 급변침 후 좁은 섬 사이를 전속력으로 위험하게 항해하는 상황에서도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라고 하는 관제센터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난 신고를 받고 출동한 123함정은 쉽게 구조가 가능한 선미가 아닌 선수 쪽으로 향한다. 다른 민간 어선과 지도선들이 선미로 가서 73명의 학생과 승객들을 구조한 것과 달리 선수에 배를 대고 선장과 선원들만을 구조한다. 123함정장은 선수에 배를 대고도 ‘사복을 입어 민간인 인줄 알았다’고 말한다. 해경의 함정장이 선수와 선미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정말 몰랐단 말인가. 함정이 세월호로 가는 동안 통화를 전혀 시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민간인 승객들이 학생들과 다른 탑승객들을 열심히 구조하는 동안 해경은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는 증언들이 있었다. 배가 반 이상 넘어가서 선장과 선원들을 탈출시키는 상황에서 수백명의 탑승객들이 배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탈출 방송을 비롯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을 단순히 무능으로 보아야 할까. 이 분야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세월호는 미스테리 스릴러물?

  한창 구조의 골든타임인 시각에 각종 미디어 매체들이 ‘세월호 침몰, 승객 전원구조’를 외치고 있었다. 또 해경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청 헬기들과 승객들을 구조하려는 민간 선박의 투입을 막았고, 민간 잠수사들의 투입 또한 통제하였다. 군이 자랑하는 해군 해난구조대 SSU도 투입되지 않았으며, 해상 재난사고에 특화된 최첨단 구조함인 통영함 역시 해군참모총장의 투입명령 조차 좌절되었다. 당일 12시 경 해군과 방위사업청, 그리고 대우조선해양이 3자 각서까지 작성하고 내린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의 두 차례의 명령을 누가 좌절시킬 수 있었다는 것인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배의 완전침몰을 막기 위한 크레인 작업이나 삼호중공업이 지원하기로 한 플로팅도크도 투입되지 않았으며, 군함을 이용한 방법들도 전혀 시도되지 않았다. TV에서는 계속해서 조류가 얼마나 강한지를 떠들어대며 정부당국이 구조할 수 없는 이유만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TV에 나온 세월호와 진도관제센터와의 교신기록은 여러 군데 편집 및 삭제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사고 당일 새벽 군산 앞바다를 지날 때에도 충돌로 배가 15도 정도 기울었다는 증언이 있고, 아침 7시30분 경에도 물건들이 다 쓰러질 정도의 충돌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데, 그렇다면 진도관제센터 이전에 거쳐 간 대산관제센터와 군산관제센터와의 교신기록이 궁금한데, 당국은 이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세월호의 AIS(선박의 위치, 침로, 속력 등 항해 정보를 실시간 으로 제공하는 첨단 장치)는 사고 당일 새벽부터 몇 초에서 몇 분 씩 꺼졌다고 하며, AIS기록을 저장하는 대전의 서버가 하필 세월호 침몰 당시 6시간동안 먹통이 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안의 CCTV는 사고가 나기 전 8시 30분 59초에 전부 꺼졌다. 그러나 이는 침몰 사고로 인한 정전이 아님이 밝혀진바 있다. 해경은 피의자 신분이던 이준석선장을 해경아파트에 재웠는데 해경아파트 CCTV 기록도 2시간동안 삭제되었다. 사고 이후 희생자가족이나 생존자 가족, 혹은 이들과 통화한 제3자의 휴대폰 통화목록이 광범위하게 삭제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바 있다.

  유병언 관련 보도들은 차라리 개그프로에서 나와야 할 것들이었다. 경찰에서 발표한 유병언의 사체와 실제 유병언의 신장과 절단된 손가락의 모습이 다른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유병언의 사체 주변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사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정상이라는 잡초전문가의 주장과 실제 현장은 왜 다른 것인가. 사체가 현장에 안치 된 시각은 이틀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잡초전문가의 주장에 왜 과학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가. 유병언은 정말 죽은 것인가. 세월호 업무용 노트북에서 나온 국정원 관련 문건에 대한 의혹 추궁이 있었지만 국정원은 해당 문건을 작성한 세월호 직원이 이번 참사 때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국정원 주장대로라면 세월호에는 국정원 직원이 최소한 한 명 이상 탑승했다는 얘기인데, 이미 공표된 세월호희생자 외에도 사망자가 있다는 말인가. 자료수집 능력도 없고 치밀하지도 못한 내가 언론에 보도된 것들 중 일부만 정리한 것이 이 정도이다. 이쯤되면 세월호는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인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데 우리의 비극이 있다.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

  사실 정부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의 의지만 있다면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할 것까지도 없다. 모든 정보력과 권력을 가진 정부가 관련 기록을 모두 공개하고 시시비비를 가린 후 책임자를 처벌하면 된다. 정부당국이 참사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요구에 묵묵부답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공범이거나 주범이기 때문이 아닐까.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정부당국과 언론에서는 과적이니, 무리한 급변침이니, 비정규직이니 신자유주의니 유병언과 청해진항운, 그리고 해경의 비리들이 세월호참사의 원인인양 떠들어댔지만, 정작 유가족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도 신자유주의니 비정규직이니 적폐니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이니 이런 말을 섣불리 되뇌지 말자. 이런 주장들이 어쩌면 세월호참사의 1번 어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대하여 뜬구름 잡는 말들을 하면 좋아할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물론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면 우리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제도와 문화에 대해 점검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과 신자유주의, 유착비리 문제,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을 덮어두자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이야기해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천안함의 교훈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1번 어뢰에 질 수밖에 없던 이유는 너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사람들이 SNS등 온라인상에서 개인적으로나 이야기했지 정부당국에 조직적으로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저 용기있는 지식인이 ‘정부당국의 발표를 영점 몇 프로도 믿지 못하겠다‘고 대는는 말에 수동적으로 박수나 치는 게 고작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문제제기나 주장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호는 다르다. 금이야, 옥이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여읜 부모들이 목숨을 걸고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다. 또 그들을 지지하고 엄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애도의 촛불만 치켜들 일이 아니라 진상을 다시 차근차근 캐고 그리하여 세월호의 수많은 의혹들을 소리 높여 말하자. 널리 알리자. 그것이 별이 된 아이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