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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현장에서] 장기투쟁 사업장을 다녀와서

2014.04.16 15:14

진보교육 조회 수:543

[현장에서]3                
장기투쟁 사업장을 다녀와서
신선식  / 순천여중

  장기투쟁 사업장에 관심을 가지다.
  2010년 겨울 사이버 노동대학 3학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였다. 사이버 노동대학을 졸업하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에 대한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책을 통해서, 강의를 통해서 들었던 자본주의의 폐해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장기 투쟁 사업장, 소규모 투쟁 사업장 중심으로 1주일의 세상 공부를 떠났다. 국가를 비롯한 공공기관에 의해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비정규직이 우선적으로 정리해고를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죄를 지은 자들이 법원에 불려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수시로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가는 모습을 보았다. 손배가압류로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았다. 가처분 신청으로 사용자에 대한 집회 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모습을 보았다. 노동자들은 허공에서, 길거리에서, 천막 안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나의 조그만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책 한 권을 더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아파하는 이들에게 ‘몸빵’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매년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세상 공부를 하고,  희망버스 등 ‘몸빵’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몸빵’만 아니라 ‘돈빵’도 필요하다.
몇 번째 세상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바로 투쟁 현장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기투쟁 사업장들의 경우, 현장 조합원이 없거나 소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부는 투쟁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계투쟁’을 나가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쟁을 하려다 보니 심지어 물병을 사는 것도 돈이다. 투쟁사업장들이 재정사업을 하기도 하고 주점을 열기도 하지만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십시일반 모금을 하는 것이었다. 순천중등지회 송년행사에서 22만 여원, 전교조 참실대회에서 71만 여원, 아는 개인들의 성금 320만 여원을 모금하였다. 그 덕분에 콜트콜텍을 비롯한 7군데의 사업장에 연대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성금을 전할 때면 언제나 내 지갑이 좀 더 두툼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맘이 든다.

‘우리는 그림자가 아니다’고 외치는 중앙대 청소노동자들
  배낭을 짊어지고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았다. 학생들의 지지 대자보가 가득 붙어 있었다. 소위 ‘100만원짜리 대자보’ 였다. 점심시간이어서 간단하나 정성이 담긴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순천 학교에 근무하고, 고향이 고흥이라 하니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순천 출신, 고흥 출신 노동자들이었다.
  점심 후 학생들이 중심이 된 화요 중식 집회가 있었다. 학생들이 마련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표창장’ 전달이었다. 모든 노동자들이 표창장을 받았다. 생전 처음 상장을 받았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나이 드신 청소노동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서울을 떠나기 전 다시 중앙대 청소노동자 농성 천막을 방문했다. 나의 느낌을 대자보로 썼다. 중앙대 총장이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이 편안한 맘으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썼다. 중앙대에서 직접 고용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썼다.  ‘순천 연향중 신선식’이라는 실명으로 쓴 대자보를 보고 모든 노동자들이 박수를 쳤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앙대가 100만원의 벌금을 청구하는지 기다려 봐야겠다.

  10년째 이어지는 코오롱 노동자들의 아픔
  과천의 코오롱 본사 건물 뒤에는 코오롱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코오롱 정투위의 농성천막이 있다. 3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촛불 문화제가 진행되는데 지역의 시민들이 끈끈하게 연대를 하고 계셨다. 문화제 뒷풀이에서 설 명절 연휴는 지역의 동지들이 천막을 책임지겠다는 결의를 하셨다. 이런 지역의 연대가 바로 3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농성천막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최일배 동지와 함께 천막에서 잤다. 남쪽에서 왔다고 내가 잘 자리에는 핫팩을 3개나 넣어 주었다. 훈훈한 인간의 내음새가 났다. 추운 겨울 천막에서의 잠자리였지만 따뜻한 집 못지 않았다. 아침에는 코오롱 본사 앞에서 아침 선전전을 하였다. 새벽에 첫차로 와서 선전전에 결합을 하고 출근을 하는 지역동지가 있었다. 대충 흉내나 내고 다니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보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코오롱 정투위에서는 올해도 코오롱 불매 달걀 판매와 휴일 산행 불매운동을 펼친다고 했다. 설령 코오롱 제품이 좋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코오롱 제품을 사지 말았으면 좋겠다.

  ‘먹튀자본’에 맞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서울 둔촌동에는 콜트콜텍 본사가 있다. 콜트콜텍은 세계 기타의 1/3을 생산하는 악기회사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장을 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주해 국내 생산을 멈춘 상태이다. 매주 목요일 12시 콜트콜텍 본사 앞에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목요집회가 열린다. 10여명이 참석한 이날 본사 앞 집회는 침울하였다. 노동자들은 울분에 목이 메었다. 법원이 콜텍 자본의 정리해고가 합법이라고 판결을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가 있어 부당해고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했다. 그런데 법원이 합법이라 판결한 이유가 가관이다. ‘미래에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이 예상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 정리해고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인가? 콜텍 사무장의 절규가 아직 귀에 선하다. 이제 어떤 건실한 대기업도 정리해고를 피해 갈 수는 없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부천에 있는 콜트콜텍 농성장에 갔다. 1년 전 농성장은 허름하지만 공장 안에 있었다. 문화 운동가들이 드나들며 문화공간을 만들겠다던 꿈을 꾸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유소가 버젓이 들어서 있었다. 공장 터마저 없어진, 지역의 연대도 느슨해진 농성장은 침울하였다.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세훈 님의 ‘이건 시가 아니다’의 노랫말 마지막 부분 ‘…… 텅 빈 공장 텅 빈 공장 텅 빈 공장 이야기다’만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사회적 합의를 깨고 야반도주한 기륭전자 사주
  구로디지털단지 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찾아간 곳은 텅 빈 기륭전자 사무실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전기 매트를 깔고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기륭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지난 연말 회사는 야밤에 집기를 빼 내었다고 한다. 뒤늦게 도착한 노동자들에 의해 몇 개의 집기만 남았다고 했다.
  기륭전자는 비정규직 투쟁의 대명사였다. 크레인 농성, 단식 농성 등을 통하여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쟁점화시켰고 국회에서 조인식을 거쳐 정규직 복직을 약속 받았다. 기륭전자 회장은 회사의 어려움을 말하며 18개월의 유예기간을 요구하였다. 유예기간을 수용한 노동자들은 사측에 조속한 생산시설 가동을 요구하였지만 사측은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급기야는 야밤에 회사 집기를 빼내 사라져 버렸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매일 아침 최동열 회장 집 앞에 가서 아침 선전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이 집회신고를 하고 1인 집회를 하였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용역도 일당을 받고 온 노동자일 뿐이라며 안쓰러워하였다.
  회사가 사라지고 회장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지역에서 언제나 끈끈하게 연대해 주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일 저녁 음식을 싸 들고 오는 전교조 조합원 샘도 계신다고 했다. 한 달 뒤 다시 찾은 기륭분회 후원주점은 초만원이었다. 다시 힘을 얻고 힘찬 투쟁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산자’와 ‘죽은 자’가 하나 되는 쌍용차의 희망주점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린 ‘쌍용차 희망주점’에 갔다. 주점을 위해 빌린 식당은 물론이고 초대형 천막이 노동자들의 후끈한 열기로 꽉 차 있었다. 정리해고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산자’와 ‘죽은 자’라는 말이 생겨났다.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는 사람과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었다.
  쌍용차는 2009년 회계 조작을 통하여 2646명을 해고시켰다. 해고와 경찰의 강제진압, 그 후유증으로 24명이 죽어갔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이제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과 공장 밖 해고노동자들이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막걸리 한 잔에 형님, 동생이 오고 갔다. 소주 한 잔에 그동안 밀린 서운함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노동자는 하나다’는 말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하루 빨리 국정조사가 이루어지고 공장으로 되돌아가는 날이 오기를 …….

  경부고속국도 옆 광고탑 위에서 민주 노조 사수를 외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경부고속국도 옥천 IC 근처 대형 광고탑 위에 2명의 노동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성기업 아산지회의 홍종인 지회장과 영동지회 이정훈 지회장이었다. 사람이 새도 아닌데 왜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있을까?
  유성기업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비정규직이 없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주노조였다. 금속노조 유성지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 심야노동 철폐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2010년 사측과 심야노동 철폐를 내용으로 하는 단협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2011년 5월 18일, 직장을 폐쇄하고 용역 깡패를 동원해 노조원들을 공장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용역들의 폭력에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다. 사측은 단협을 무시하고 사측 징계위원만으로 징계위를 열어 노조원들을 해고하였다.
  홍종인 지회장이 아산 굴다리에서 151일 간 쪽잠을 자며 항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사측과 창조컨설팅, 현대 자본의 노조 파괴 공작이 드러났다. 사측은 지난 가을, 사회적 여론에 밀려 해고자들을 복직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노조의 활동가들을 해고하였다. 또 다시 홍종인 지회장과 이정훈 지회장은 사측의 노조 탄압 중단과 폭력사주의 처벌을 요구하며 광고탑에 올랐다. 차디 찬 겨울바람을 민주노조 사수라는 신념 하나로 이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유성기업의 폭력에 대한 기소를 미루다 최근 용역 회사에 대해서만 폭력 혐의로 기소를 하였다. 폭력을 사주한 근거가 명확한 사장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하였다. 찬 겨울바람 보다 더 시린 검찰의 ‘칼바람’이었다.
  광고탑 밑의 농성 천막에는 지역의 연대하는 동지들과 학생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갔던 날도 서울에서 학생들이 연대 투쟁을 왔다. 학생들과 광고탑 위의 지회장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였다. 충남에서, 충북에서도 많은 분들이 연대를 오셔서 천막에서 밤을 새며 걱정을 함께 하였다. 이런 것이 저 2명의 노동자가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닐까?  2월 봄방학에 다시 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충남 동지들과 함께 밀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3월 15일 유성희망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ㅜㅜ)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다’고 외치는 밀양의 할매와 할배들
  설 명절을 앞두고 전국에서 밀양 희망버스가 출발하였다. 밀양의 할매와 할배들은 ‘사람보다 돈이 최고냐?’며 생존권의 보장을 요구하였다. 송전탑 건립 예정지에 구덩이를 파고 죽음을 무릎 쓴 저항을 하였다. 그 힘든 과정에서 할매와 할배들은 쌍용차로, 한진으로, 현대차로, 유성으로 연대투쟁도 가셨다.
  이치우 할아버지 분신 이후, 최근 또 한 분의 어르신이 송전탑을 반대하며 목숨을 끊으셨다. 고 유한숙 어르신이다. 영남루 앞에 고인의 분향소가 있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하얀 꽃을 영남루 앞 다리에 묶어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밀양역에서 열린 문화제에서 밀양 할매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개사하여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하였다. 진짜로 ‘빡세게’ 투쟁을 하는 분들은 밀양의 할매와 할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밀양을 왔지만 주고 가는 것보다는 나 자신 스스로 반성하고 힘을 얻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밀양을 방문한 모든 사람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송전탑은 비단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전국 곳곳에 송전탑이 거미줄처럼 지나가고 있다. 밀양처럼 투쟁이 본격화되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 지역 순천과 여수 사이도 3겹의 고압 송전탑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다. 율촌면 봉두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30여명의 젊은이들이 원인 모를 질병으로 죽어갔다. 동물들은 기형아를 출산했다고 한다. 봉두마을 주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와서 호소를 했던 내용들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밀양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까이 있는 문제를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사람의 생명과 생존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의 행태를 어떻게 막아야 하나?

  인간에 대한 착취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일주일 간의 세상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금 느껴지는 것은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당장 힘들어 지쳐가는 투쟁하는 노동자와 민중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이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런 고민을 함께 하고, 조그만 차이를 떠나 큰 틀에서 하나가 되어야겠다. 인간에 대한 착취가 없는 세상! 아직은 멀고 힘들지만 함께 하면 그날은 꼭 오리라 믿는다. 희망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세훈 님의 노랫말 ‘이건 시가 아니다’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콜트콜텍을 노래한 노랫말이 너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노랫말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다시 밤일을 나가기 위해 퇴근길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마신다 / 말짱한 대낮에 말짱한 정신으로 오지 않는 낮잠을 청하며 / 온 식구 맘 편히 외식 한 번 못하는 품삯을 받았다고 내미는 봉투에 / 직업병 들어 삭신이 쑤시는 스멀스멀 삭신 쑤시는 / 이것도 노동판이라고 먹여 살릴 노동판이라고 / 싸구려 인건비 싸구려 노동자 기름 짜 듯  꽉꽉 짜내다 / 더 값싼 인건비 찾아서 일방적으로 문을 닫아버리는 / 이것은 시가 아니다 노래가 아니다 / 텅 빈 공장 텅 빈 공장 텅 빈 공장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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