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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권두언] 진짜배기 '영웅'들이 일어서 다오

2013.10.10 20:04

진보교육 조회 수:581

[권두언]                  

진짜배기 ‘영웅’들이 일어서 다오


  얼마 전에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과 관련해 한동안 매스컴이 시끄러웠다. ‘내연녀’의 집에서 한때 가정부로 일했다는 여인이 ‘그를 안다’고 TV조선에 나와 떠벌였는가 하면, ‘내연녀’가 머무르는 집 앞에는 취재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진을 쳤더랬다. ‘내연녀’는 어느 신문사 기자에게 “언론이 저를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놨어요.”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국가폭력기구가 주류 지배세력을 편들어 대통령선거를 좌지우지한 데 따른 정치 쟁점이 어느 틈엔가 ‘미워도 다시 한번’류의 치정극[癡情劇]에 대한 관음증[觀淫症]으로 둔갑하는 장면을 멀거니 구경했다. 집권정당과 조선일보의 술수가 설령 나중에 드러난다 해도, 이미 그들은 정치 갈등을 김빼기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으니 본전을 다 뽑은 셈이다. 불행한 군사파쇼의 학살극은 민간 파쇼의 씁쓸한 소극[笑劇]으로 반복된다....

  까마득한 옛날, 우리는 한때 꽃피는 봄을 살았다. 밤늦게 교사모임을 꾸리고, 잠이 모자라 다음날 힘들게 교단에 섰어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직원회의에서 싸움을 벌일 일이 까마득해 ‘청심환’을 먹고 학교 문을 들어서는 한이 있어도, 떠맡아야 할 싸움에서 고개 돌리지 않았다. 누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본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교육을 외쳤다. 하지만 우리는 추위에 떠느라 이미 우리 사회에 꽃이 핀 것을 꿰뚫어 알지는 못했다. 추위가 곧 봄이었던 것을.  
  ‘실정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교조를 세웠을 때, 우리 가운데는 해맑은 영웅[英雄]들이 참 많았다. 교단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쇠고랑을 차는 것도 오히려 영광으로 알았던 담대한 동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해직교사로 치열하게 살다가 이슬을 떨군 분은 또 몇이었던가.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서 ‘영웅’ 칭호를 거둬들인다. 그들은 좀 야박하게 말하자면, 해방정국에 숱하게 스러져간 사령[死靈]과 광주항쟁을 무릅쓴 숱한 민초[民草]의 넋과 전태일 열사의 불꽃 같은 삶에 깨우침을 받아, ‘뒤늦게 뒤따라 나선’ 주체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쇼독재 권력과 한판 대차게 붙는 싸움은 갸륵한 일이긴 해도, 평생을 바칠 일도 목숨을 걸 일도 아니었다. ‘시대 흐름’과 함께 가는 일은 고된 일이기는 해도 고독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자신의 노고[勞苦]에 대해 톡톡히 보상을 받은 사람도 적지않이 있지 않은가.

  ‘영웅’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때는 오히려 지금이다. 숱한 사람이 알아주고 갈채를 보내는 영웅이 아니라, 아무도 그가 ‘대단한 싸움에 앞장섰구나’ 알아주지 않는, 이름 모를 영웅들이 나서야 할 때는!  
  ‘저들의 권력을 어떻게 꺾고, 우리의 권력을 얼마나 움켜쥘까’ 궁리하는 일은 신명나는 일이었다. 1980년대의 대학생 자취방 골방에서 벌어진 콩팔칠팔했던 주먹구구 사회구성체 논쟁을 보라. 그 결과도 금세 얻는다. 하지만 밤톨만큼 얻어낸 권력과 공간일망정 그것을 갖고서 새로운 삶의 실질[實質]을 만들어내는 일은 금세 빛을 볼 일이 아니다. 보수 권력을 깎아내리고 주저앉히는 일에 견주어,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공장과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가는 일은 사하라 사막을 걷듯 장구한 세월과 고난을 견디는 일이다. 진짜배기 영웅은 혁명 시기가 아니라 혁명-이후 시기에 더 간절한 법이거늘, 하물며 혁명 비스무레한 것도 돌파해내지 못한 채 ‘민주화 세력’이 어느새 조로[早老]하여 지리멸렬해진 지금에랴!
  전교조가 수구보수 지배세력의 ‘법외 노조’ 우격다짐에 맞닥뜨려 자기 행보를 결단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그들의 종주먹을 두려워하지 않고 줏대를 지킬 때라야 그나마 주체들을 추스릴 근거를 마련한다. 우리는 동무들의 의기[義氣]를 믿지만, 설령 뜨악한 비틀거림이 나온다 한들 또 어떠랴. 진짜배기 영웅은 맨주먹 알몸 신세에 기 꺾이지 않고, 뙤약볕 아래 낙타가 되어 쉼없이 걷는 사람이거늘.

「진보교육」이 어느덧 50호를 맞았다.
이번호는 원래 50호를 기념하는 특집을 구성하는 기획을 했었다. 그러던 중 전교조 설립 취소를 예고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특집1」을 ‘유신회귀 전교조 법외노조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싣게 되었다. 「특집1」의 ‘1. 2013년 9월 전교조 설립취소 공세의 성격과 본질’에서는 2월과 9월의 공세의 차이를 분석하며 현정세의 성격을 ‘유신회귀’ 정책으로 규정하고 “전교조 죽이기 공작은 유신회귀의 민주주의 압살, 복지후퇴 그를 위한 공안통치, 공작정치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신회귀 세력의 공안 칼부림은 썩은 나무칼”을 휘두르는 것에 불과하며 오히려 이번 위기는 “우리가 ‘승리의 패’를 쥔 것”임을 역설한다. 즉 법률적으로나 대중적, 역사적 정당성으로나 우리가 우위에 있는 상황 속에서 “압도적 거부 결의로 주체적 승리를” 해내야 함을 역설한다.

「특집2」 ‘「진보교육」 50호를 기념하며’에서는 회보「진보교육」이 99년 창간호가 나온 이래 14년이 흘러 드디어 50호가 탄생한 것을 계기로, 그간의 「진보교육」이 진보적 교육 담론을 선도해 왔다는 것을 내용적으로 밝혀 보았다. 즉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에 대한 대항 담론, 교육과정 논의와 평가 담론의 확산, 교육공공성 담론과 공교육 개편안,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 그리고 최근 몇 년 간 비고츠키교육학 연구를 통한 진보적 교육패러다임을 확산 시키는 등 한국사회 교육운동의 이론적 담론 형성과 실천적 문제제기를 해 온 성과들을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교육운동과 함께 해 온 「진보교육」의 포토스토리를 실었다. 그간 「진보교육」은 1년에 4번 발행하는 계간지 형태로 선도적 담론 형성과 교육운동의 내용적 풍부함과 다양성을 담아가고자 노력하며 교육운동의 핵심적인 이론기지로 계속 성장해 왔다. “비판을 넘어 맞짱뜨기로”를 내건 「진보교육」은 앞으로도 교육운동의 역동적 담론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물론 문제의식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적 상황을 개척해 나가는 근거를 지속적으로 제출할 것이다.

이번 회보는 50호를 기념하며 내용이 풍부한 기획을 하였지만 긴박한 상황의 발생으로 여러 꼭지가 부득이 펑크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점 양해를 드린다. 교육운동의 중심인 전교조의 위기 상황을 집중적으로 타개해 나가는 절박함에 「진보교육」도 같이해야 한다는 상황 탓이기도 하다. 번듯한 기념호를 내지 못해 아쉽지만 앞으로 「진보교육」이 100호를 맞이할 수 있도록 후원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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