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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합법화 원년의 단체교섭을 겪으며

2001.02.08 15:37

이성대 조회 수:1105 추천:3

합법화 원년의 단체 교섭을 겪으며

합법화 원년의 단체 교섭을 겪으며

                        이 성 대 (신림여중, 전교조 관악동작지회장)

 전교조의 단체 교섭이 교육부의 교섭 회피로 진전을 보지 못하여 답답하기만 하던 10월 17일 서울대의 한 건물에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는 재능 교육 노조의 파업 결정을 위한 대의원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날 모임 조합원은 전 조합원 600여명 가운데 400여명이었고, 대의원은 50몇 명이었다.

 위원장은 30대 중반의 외유내강한 인상의 손미승 씨였다. 전국 지부에서 조합원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진행된 식전행사는 신규 노조답게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하였다. 자체 율동패가 꾸려지지 못하여 의료보험노조의 율동패가 초청되어 분위기를 잡았다. 손위원장은 짤막하게 노조 설립 직후 850여명이 조합에 가입하였으나 회사측의 끈질긴 노조 와해 공작, 강압과 회유로 250여명이 떠나고 600여명이 남게 된 그간의 상황을 내게 설명해 주었다.

 드디어 대의원 대회가 시작되었다. 위원장은 파업은 중대한 사안이므로 찬반 토론을 하자고 제의하였으나 한 대의원이 그 동안 각 지부별로 토론은 충분히 거쳤으니 바로 투표하자고 발언하여 이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의원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아진 투표함을 개표하면서 대회장은 작은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얼마가지 않아 파업 결정이 대세를 이루었고 86.7%의 찬성률로 파업은 가결되었다. 개표가 끝난 순간 모든 조합원들의 기립 박수와 함성이 대회장을 메웠고 곧 이어 위원장과 수석 부위원장의 삭발식이 진행되었다. '철의 노동자'를 힘차게 부르는 것으로 대회는 마무리되었다. 대회장을 빠져나가는 재능 교육 노조원들을 보면서 나는 잠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대회장 출구에서 노조원들과 힘찬 악수를 나누고 있는 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하다가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껴안고 말았다.

 어두워진 발길을 걸어 나오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약자인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계급적 처지를 분명히 자각하고 단결할 줄 아는 것의 아름다움을 다시 곱씹었다. 그리고 노조 설립 신고 이틀만에 해고당한 손위원장의 결연한 의지에 존경과 동지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교조는 4월의 선거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2배 이상이나 되는 신규 조합원을 맞아들이느라 상반기를 겨를 없이 보냈다.  그리고 여름 방학 때는 지부, 본부, 지회 차원의 간부 연수로 바쁘게 돌아갔었다. 2학기 개학과 함께 마침내 9월 8일 첫 단체 교섭은 시작되었다. 방학 동안 진행된 각급 단위 연수는 주로 단체 교섭 안의 내용에 대한 토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반면에 단체 교섭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투쟁 방안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우리 모두는 전투에 돌입하면서 전략과 전술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나선 셈이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전교조가 제시한 교섭 안에 대하여 노조의 단체 교섭 사안이 될 수 없는 교육 정책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면서 의제에 대하여 먼저 합의를 본 후에 교섭을 시작하자고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교섭 소위원회가 몇 차례 내용 없는 입씨름으로 넘어가자 훌쩍 9,10월 달이 흘러갔다. 그리고 이제 11월, 각 급 학교는 한창 바쁘게 돌아가고 2∼3주 후면 겨울 방학을 의식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730여 조합원들의 앞에 나서서 일을 하는 지회장으로서  나름대로 바쁘게 보냈고 조직의 확대와 결정된 사업의 수행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요즈음은 단체 교섭 설명회 하러 분회를 찾아다니면서 할말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단체 교섭 승리를 위한 투쟁은 몇 차례의 교육부 규탄집회가 있었지만 전혀 언론매체를 타지 못하였고 조합원들이나 교사 대중에 파급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오는 11월 8일에 중앙 집행위원들이 농성에 돌입하고 19일에는 시·군·구 지회 단위의 집회가 잡혀 있지만 이러한 답답한 국면에 얼마나한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지 자신을 못하겠다.

  지금까지 전개된 이러한 단체교섭의 진행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진단하고 무엇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단체교섭에 임하면서 주객관적인 상황 인식에 좀 더 투철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국민의 정부'는 노동자편도, 사측편도 아닌 중립의 관리자 입장에 서 있는가? 한마디로 아니었다. 현 정부는 전교조에 대하여 보통의 사용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교육부가 지금까지 단체교섭에 임하는 자세는 전혀 '모범적인 사용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교육부는 어디까지나 저비용 고효율, 임금절약에 관심을 가지고 교원들을 대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 재정은 올해 GNP 4.3%에서 내년에는 4.1%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경제의 구조 조정에 소요되는 엄청난 재정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지 모르나,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정부의 모습이고 그러한 논리야말로 전형적인 '총자본의 논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노총이 주도한 5월 임투가 뒷심 약하게 마무리되었던 점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싶다. 5월 투쟁이 흐지부지 되면서 노동운동 진영은 정부에게 '종이 호랑이' 정도로 인식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최근 정부가 노사정위의 재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전교조에 대하여도 상식 이하의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오랜 숙제였던 전교조 합법화에 현 정부가 결단을 내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으로 노동 진영과 정부의 힘의 균형 관계에서 산출된 결과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전교조는 국민의 정부에 대하여 노동 진영의 관점을 분명히 하면서 전략과 전술을 수립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이해찬 장관 퇴진 서명 운동 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인식에 한계를 드러내 보였었다. 마치 정부와의 결별을 꺼리는 듯한 미적거림이 분명히 있었다. 이제라도 전교조 지도부는 객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다 냉정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면, 단체 교섭이 시작되는 전후에 교육계의 제반 문제들을 적극 이슈화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 상대방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파악하고 운용하는 측면에 어떤 문제는 없었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번 교섭기간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단체행동의 방안에 무엇이 포함될 수 있었는지를 고민하지 않았던 활동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어떤 묘안을 제출하지 못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투쟁은 상부에서 앞장설 때만> 힘 있게 전개될 수 있고 대중 투쟁은 가장 초보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상승시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파업 투쟁에 결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재능 교육 노조의 지도부에게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노조 지도부는 결코 <운동 관록에 대한 보답>으로 주어지는 어떤 자리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투쟁의 선봉일 뿐이라는 것을, 자본주의 사회의 약자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되찾기 위하여, 투쟁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가 노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중 투쟁의 수위를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는 것과 함께 고려했겠지만 중앙집행위원회의 농성결정은 20일 정도는 빨랐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중의 투쟁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쟁점을 받들어 내는 데에 실패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대중 투쟁의 동력이 약화된 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신규 조합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가 어떻게 했어야 대중들을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제는 영등포고 분회 모임에 단체 교섭 설명회를 하려고 갔었는데 주요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몇 사람에게서 나왔다. 국민을 향하여, 교사 대중을 향하여 우리의 단체 교섭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교육개혁에 대한 높은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전혀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는 전교조의 단체교섭! 교육부의 의도는 분명하다. 전교조의 위상을 약화시켜라! 전교조에 물을 먹여 더 이상 크지 못하게 막아라!  이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단호해야 한다. 상대가 칼을 뽑으면 우리도 창을 들고 달려나가야 한다.

 합법화 원년의 단체 교섭이 여러 가지 주객관적 제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기본관점을 보다 분명히 한다면 최소한의 성과라도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은 지나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