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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와 플로리다 프로젝트

 

코난(진보교육연구소 회원)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월트디즈니컴퍼니(공룡그룹).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00pixel, 세로 407pixel

 

어렸을 때 디즈니를 좋아했습니다. 근데 그 때 좋아했던 것이 디즈니 애니메이션(그 때는 만화영화라고 불렀던)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의 만화영화는 지금의 화려한 3D가 아닌 사람이 직접 그리는 2D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왠지 서양식 문화 코드라 저에게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 만화체에 익숙해서 인지, 디즈니 애니는 그림체도 익숙하지 않고 별로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릴 때 인기있던 만화영화는 대부분 일본 애니였습니다. 마징가Z, 요술공주 밍키, 사이보그 009, 은하철도 999 등이 언뜻 떠오릅니다. ! 제가 정말 좋아했던 미래소년 코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명작동화 시리즈였던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플란다스의 개 등도 있었네요. 그 때는 뭐 당연히 우리나라 TV에서 우리나라 말로 더빙된 만화들이었으니, 그 많은 것들이 다 우리나라 작품인 줄 알았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Z”로 시작되는 마징가Z 노래를 일본과의 어떤 경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응원가로 부르는 것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V”로 시작하는 국산 애니 로보트 태권V 노래를 불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멋모르고 참 좋아하고 열심히 보았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마징가Z와 태권V.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343pixel, 세로 515pixel

 

그런데 서양(대부분 미국)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물들은 서양 사람들을 그린 것이기에 이질적이었습니다. 머리색은 검은색이 아니라 금발이고, 코도 동양인보다 크고 높고, 백인의 피부색은 애니메이션으로는 별로 티가 나지 않았지만, 흑인들의 피부색과 곱슬곱슬한 머리 모양은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노동집약적인 2D 애니메이션 제작의 특성상, 제작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프레임을 줄여서 제작한 일본 만화영화에 익숙해서 인지, 프레임 수를 늘려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구현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의 우아한 장면은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많은 작품이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주로 담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일본 만화영화보다 덜 자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서양 애니메이션이라고 다 덜 자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즐겨보았던 톰과 제리같은 애니메이션은 지금 생각해 보면 대놓고(맞고 때리고 떨어지고 태우고 등등)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3501d7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19pixel, 세로 158pixel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350000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40pixel, 세로 406pixel

 

지금도 그렇지만 디즈니는 그 당시에도 애니메이션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TV에서 종종 틀어주던 외화 중에 아동용 디즈니 드라마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디즈니랜드에서나 볼 수 있는 여러 개의 끝이 뾰족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성의 모습과 그 성을 빙그르르 돌고 마법의 지팡이로 마법의 주문을 쏘던 끝이 뾰족한 모자 쓴 요정(팅커벨)의 모습 말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영화가 아니라 1시간 정도 분량의 TV 드라마 같은 것이었는데, 그 잔잔하고 가족이고 따뜻한 디즈니 외화들을 참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단란한 가정에 위기가 생기는 데, 가족이 함께 혹은 가족을 위해 위기를 극복하고 항상 가족 간의 포옹이나 연인의 키스와 함께 해피엔딩으로 끝나던 그 천편일률적인 드라마를 말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세상에 눈을 뜬 후 디즈니의 작품들은 예전의 순수한(?) 마음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 화려하고 수려한 영상과 환상적인 음악에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무난한 스토리는 분명 재미는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 불편했습니다. 그 불편함의 실체가 궁금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지금은 그 당시의 디즈니를 이렇게들 평가하고 있더군요.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과 보수적인 가부장적(가족)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문화 제국주의적 작품의 선두 주자가 디즈니의 작품들이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푹 빠져 있던 셈입니다. 물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으며 한층 교묘해졌을 뿐이라는 평가도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 변화에 따른 디즈니의 변신도 있어서인지 지금의 디즈니는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를 추구하며 이것이 신좌파 때문이라는 혼란스런 비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평가들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은 한층 더 커다란 공룡이 된 디즈니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변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인수합병.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66pixel, 세로 606pixel

 

어느 때부터인가 디즈니가 변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특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 주인공들의 등장하는 작품이 많아졌고 흥행에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푼젤, 겨울왕국의 엘사, 실사판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 주토피아의 주디, 실사판 미녀와 야수의 벨, 뮬란, 새로운 스타워즈의 레이 등등. 이 중에 저는 미녀와 야수만 빼고 다 보았는데 스타워즈 빼고는 다 무척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특히 알라딘 실사판은 아주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노래도 좋고 제목이자 주인공인 삐질한 알라딘 보다 자스민 공주가 훨씬 더 멋지고 주인공 같았습니다. 또한 그 여성 주인공들은 더 이상 수동적이기 보다는 능동적이며 자기 주장이 강한 주체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요즘 디즈니 변화의 주요 측면으로 보이는데 남자 주인공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토이스토리4’에서 우디가 사랑에 빠져 섬기던 주인을 떠난다는 스토리는 우디가 자신의 삶을 찾는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 자유를 쟁취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뭐 대놓고 내버려 두라고 외치는 엘사의 ‘Let it go’나 침묵하지 않겠다고 외치는 자스민 공주의 ‘Speechless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특히 디즈니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던 또 다른 유명한 애니메이션 작품 인어 공주의 실사판 제작이 가시화되면서 인어공주로 캐스팅된 배우가 할리 베일리라는 흑인 여성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동안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디즈니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꿈과 희망을 선사한다는 거짓 포장을 뒤집어쓰고, 이윤을 위해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저작권 괴물로 통하는 거대 공룡 미디어 그룹 디즈니가 갑자기 천사로 둔갑할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올바름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존재하며 그 한계도 분명해 보입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판권황제디즈니(두얼굴미키).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18pixel, 세로 412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2년 01월 18일 오후 8:24

 

과거 디즈니의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가 이성간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가정을 표준으로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가정(한부모 가정, 동성애 가족, 입양 가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은연중에 심어 주고, 아무리 폭력적 가부장이라도 가족의 이름으로 참고 견딜 것을 종용했듯이, 정치적 올바름으로 새롭게 무장한 디즈니는 젠더나 인종 차별을 넘어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를 강조하면서, 스스로의 힘과 당당함으로 세상에 떨쳐 일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어 한층 진일보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만연한 실업 속에서 엄청난 경쟁에 도태되어 직업을 얻지 못하고 그나마 어렵게 얻은 일자리에서도 생존을 위협받고 죽음을 당하기까지 하는 현실의 많은 사람들을 주체성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학교에서 진로교육, 자유학기제, 고교학점제 등의 정책으로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강조되고 있는 진로 찾기, 꿈 찾기, 좋아하는 것 찾기, 주체성 찾기는 변변한 복지 혜택이나 부모의 지원이 없어 홀로 설 수 있는 경로를 다 차단당한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강요일 뿐입니다. 어디 세상에 진취적이고 능동적이고 자기 앞길을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과 조건을 지닌 학생들만 있습니까? 수동적이고 조용하고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자꾸 어딘가로 몰아가지 말고 아이들을, 더 나아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리고 여기 우연히 만난 영화가 있습니다. 즐겨보던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어떤 영화배우가 소개한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영화입니다(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여기서 읽기를 중단하고 영화를 먼저 보세요). 포스터의 색감이 너무 이뻐서 보게 되었다는 소개와 달리 그 영화는 그다지 이쁜 내용의 아름다운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포스터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연상시키는 야자나무와 자주색이 감도는 분홍색으로 칠해진 예쁜 건물 앞을 천진난만하게 지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포스터 중앙에 써있는 “201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이라는 말은 여기 나오는 사람들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없습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플로리다프로젝트(포스터).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00pixel, 세로 1432pixel

 

이 아이들은 천진난만하지만 고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건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침 뱉는 놀이를 즐기며, 관광객들에게 돈을 뜯어내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근처에 버려진 빈 건물(퓨처 랜드, 미래의 땅)에 들어가 불까지 지르며 놉니다. 휴양지로 유명한 영화의 배경인 미국의 플로리다에는 물론 야자나무가 있겠지만, 이 건물(매직 캐슬, 마법의 성)은 아기자기 하고 아름다운 거주지가 아닙니다. 이쁜 색깔의 페인트로 칠해진 이 건물은 원래 집으로 설계된 건물이 아니라, 근처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대여할 목적으로 지어진 모텔입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플로리다주에 테마파크를 세웠던 디즈니의 프로젝트명, 다른 하나는 미국 플로리다의 홈리스 지원정책이다. 1965년 디즈니는 디즈니월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플로리다주 올랜도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했고 자연스레 주변에는 모텔들이 들어섰다. 이른바 플로리다 프로젝트다. 디즈니랜드 인근 숙박업소가 밀집한 이 동네는 디즈니랜드에 맞춰 화사한 색깔의 성이나 궁전 모양으로 관광객을 맞이해왔다. 한때는 분명 그랬을 터였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함께 상황이 변했다. 관광객이 줄어든 지역의 모텔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그나마 남은 관광객들도 주변의 고급 콘도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남겨진 모텔은 의외의 방문객들로 메워졌다. 바로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이후 직장과 집을 잃은 사람들이다. 플로리다 올랜도 인근 모텔에는 정부에 체크되지 않은 숨은 홈리스들이 넘쳐난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한주 단위로 방세를 지불하며 모텔 방을 전전한다. 이곳은 어느새 사람 사는 동네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주거지라고 부를 수는 없다.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떠날 자들, 혹은 떠밀려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쉼터. 정부에도 체크되지 않는 홈리스들은 그렇게 시스템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나간다. [씨네21,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현실과 동화 사이에 숨은 것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참고,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아이가 위기에 처해 친구를 찾아 갑니다. 하염없이 우는 친구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던 친구는 뭔가를 결심한 듯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둘이 근처의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랜드로 뛰어 들어가며 영화가 끝납니다. 전 사실 이 대목에서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둔해서인지 별 사전 지식 없이 보다가 이 불행한 사람들의 거주지가 디즈니랜드와 인근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디즈니 같은 권선징악도 해피엔딩도 아니고 그 이쁜 색감 때문만도 아닌 그 출구없는 슬픔 때문에 아름다운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영상 작품을 매해 만들어내는,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까지 팔아먹는, 전체 관람가 시장의 맹주 디즈니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디즈니의 작품을 좋아할까요? 그런 작품은 우리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디즈니 작품은 다 나쁘니까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까요? 아니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재밌게 즐기면 될까요?

 

주변 선생들께 물어보고 들은 이야기들로 대답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가부장제나 왕자가 구해주는 공주만 보여주던 디즈니가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는 사람들의 인식의 진전 때문이다. 상업 자본도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화 상품은 거꾸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는 없다. 난 다큐멘터리 형태의 영화가 불편하다. 영화 택시 운전사‘1987’은 주류를 옹호하고 현실의 문제는 외면한다. 디즈니 또한 안전한 PC까지만 다룬다. 잘 살펴보면 주인공이 유색 인종 여성이라도 조력자는 백인이거나 남성인 경우가 많다. 결코 그 세계를 해치지 않을 정도까지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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