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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 문화> 미숙한 아이들의 <인간 수업>



미숙한 아이들의 <인간수업>

 

타라 (문화연구분과)

 

2020년 봄은 코로나19와 함께 왔다. 일상이었던 등교 수업은 원격 수업, 온라인 수업, 쌍방향 화상 수업이라는 비대면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정국에서 임시방편으로 등장한 온라인 수업이 미래교육의 전형인 양 선포되기에 이른다. 온갖 교육 예산들이 온라인 수업을 위한 장비 구축에 쏟아 부어지고, 현장 교사들은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수업에 쓸 꺼리를 찾고 편집하고 아예 수업을 통으로 찍어 대면서 인터넷에 올릴 수업을 만들어내느라 힘겨워하고 있다. 눈이 아프고 허리와 어깨의 통증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모두가 힘든 때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냐는 재난사회 담론이 이 모든 현실을 쓸어 담아 버린다.

집 안에 스스로를 유배하는 생활이 길어지던 어느 날 시작한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 몰아보기는 어느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여가가 되었다. 1~4월 넷플릭스 누적 시청 시간이 1억 시간이 넘고, 신규 가입자가 1600만명이 넘었다니 넷플은 그야말로 코로나 시기의 홈 시네마가 된 것이다. <인간수업>429일 방영된 이후 제법 긴 기간 넷플릭스 탑10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포주라는 설정과 성착취 동영상 사건(n번방 사건)이라는 끔찍한 현실과 결합되면서 논란이 분분하기도 했다. <인간수업>을 향한 반응은 엇갈린다. 10대 범죄를 미화하고 청소년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한다는 비판과 한국 드라마의 금기를 깨고 현실을 직시한다는 호평이 부딪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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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의 최고 가치

계왕고 2학년생인 오지수는 찐아싸(진짜 아웃사이더). 학교에선 전교과 1등급의 품행이 단정한 모범생이지만 조건만남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포주 역할을 하며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고 학원도 다닌다. 아버지의 도박으로 파탄 나버린 가정,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떠나버린 중학교 3학년 말 이후 그는 혼자다.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책상 위에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는 그는 교실에서 존재감이 없다. 소심하고 찌질한 모습의 그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도 그의 가정사와 이중생활을 알지 못한다. “꿈은 비싸다. 부모 없는 애한테는 더 비싸진다고 되뇌는 지수에겐 돈이 유일한 최상의 가치이다.

<돈을 갖고 튀어라>(1995)부터 <돈의 맛>(2012),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동물들>(2020)까지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뒤엉킨 욕망과 삶의 뒤틀림은 오랜 영화 소재이기도 하거니와 돈이 최고 가치가 된 한국 사회의 반영이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어른들의 세상에 한 발 걸치고 선 아이들은 돈이 된다면 넌 어디까지 할 수 있냐고 이죽거린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했던가? 지수가 모은 돈다발은 똬리처럼 둥글게 말려 낡은 자개장 속 종이상자에 칸칸이 담겨 있다. 흡사 넥타이나 속옷을 말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돈뭉치는 민달팽이 모양새다. 그는 남은 고등학교 생활과 대학 진학, 그리고 대학을 마칠 때까지 평범한 삶을 위해 필요한 돈 9000만원을 목표로 은밀하게 움직인다.

여주인공 배규리 역시 돈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그에게 돈은 억압적인 부모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그녀는 지수 사업에 동업을 요구하며 경제적 자립을 통한 독립적인 삶을 꿈꾼다. 규리는 유명 연예기획사 사장인 부모의 높은 요구 수준에 맞춰 자기를 억누르며 살고 있다. 그러나 질식해버릴 것 같은 상황에 처할 때면 무의식중에 손톱의 거스러미를 피가 날 때까지 잡아 뜯는가 하면 남성용 시계로 가려진 손목에는 자해와 자살 시도의 흔적이 있다. 겉으론 소탈하고 멀쩡해 보이는 데다 핵인싸(그룹 내에서 인기있는 핵심 인물)인 규리는 도벽의 습성이 있다. 죄책감 하나 없이 게임하듯 훔친 물건을 중고사이트를 통해 팔아 버리곤 한다.

지수보다 한수 위로 과감하게 사업 수완을 발휘하는 규리에게는 자본가적 욕망이 보인다. 그녀에게 유도부 학생들과 연예 기획사 소속 연습생은 성매매 사업에 쓸 예비 공급원일 뿐이다. 고액 알바 문자를 전송하고 걸려들 대상을 찾는 그녀의 눈빛은 탐욕스레 번득인다. 사람들을 제 의도대로 조정하고 짜놓은 각본대로 요리하는 규리의 거침없는 행동은 부모에게 조련되는 과정에서 체득된 것일까? 그녀의 욕망이 커질수록 지수와의 동업은 꼬여가고, 둘 모두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파국 상황에 처한다. 그 와중에도 규리는 돈이 되는 이 사업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탈출을 위한 티켓에 모든 걸 걸고 더 집착한다. 드라마 말미에 빨간색 츄리닝을 입고 앉아 아이돌 연습생의 성매매 증거를 부모 앞에 내밀며 거액을 받아내는 장면은 압권이다.

2학년 짱인 곽기태와 사귀며 그에게 줄 돈과 선물을 위해 조건만남에 나서는 민희는 부모가 없다. 고모에게 얹혀살고 있는 민희 역시 돈이 필요하다. 남친이 제 곁에 붙어 있는 까닭이 돈 때문이란 걸 알면서도 민희는 이 관계를 놓을 수 없다. 그녀에게 돈은 우정을 혹은 사랑을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녀가 조건만남의 폭력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공황장애라는 난관에 봉착한다. 심리적 상처를 허세로 가리며 쌍욕을 내뱉던 민희는 충격적인 경험 후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 갈구해봐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마음으로 의지할만한 듬직한 어른(이실장)과의 인간적 소통이 그녀를 성숙하게 한다. 일종의 거간꾼으로 돈을 버는 지수나 규리와 달리 민희의 손에 주어진 돈은 육화된 실물로서의 돈이다. 이처럼 세 아이들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고 파국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중심에는 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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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비즈니스 - 과학기술과 윤리

<인간수업>에서 스마트폰과 앱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지수가 사용하는 두 개의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규리가 훔친 지수의 스마트폰을 통해 비밀스런 사업이 까발려지는 것으로 이어지고, 그 스마트폰을 돌려주면서 시작되는 동업은 극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흥미로운 것은 인물들 간의 위기와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스마트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실장이 낡은 스마트폰 수리를 맡긴 날 민희에게 벌어진 위기 상황, 피 묻은 민희의 스마트폰과 기태와 지수의 몸싸움 등 스마트폰은 소유자의 분신으로 그의 현 상태를 짐작케 하는 상징물이다.

지수가 조건만남 주선에 쓰는 것은 강아지가 그려진 채팅 앱 Deng Deng이다. 극 속에서는 그가 독거생활이 시작된 후 유튜브로 코딩하는 법을 배우고 직접 앱을 만든 것으로 설정된다. 그는 앱으로 요청이 들어오면 상대를 매칭해주고, 위치 추적 기능을 활용해 경호 서비스를 제공한다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이것은 콘텐츠만 다를 뿐 전형적인 플랫폼 비즈니스다. 온라인 상거래인 오픈마켓에서 시작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플랫폼 사업자가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거래가 성사될 경우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Airbnb)도 이런 플랫폼 서비스의 일종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대면접촉이 필요 없다. 비대면 형태인 이 모델은 닉네임 뒤에 숨은 채 거래를 성사시켜 주고 수수료를 챙기기에 맞춤한 방식이다. 익히 알다시피 인터넷의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라 악행을 교묘하게 숨기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과학기술과 윤리의 문제가 대두된다. 과학기술 시대의 윤리학이라고 할까? 현대 기술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생존에 깊이 간여하는 힘이다. 한스 요나스에 따르면, 이러한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윤리학은 책임의 윤리학이다. 여기서 책임은 이미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 묻는 책임이 아니라 행해져야 할 것을 미리 결정해야 할 실질적인 책임이다. 이러한 책임은 순전히 자기에 관계된 의미에서의 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안녕을 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 책임감에는 주체의 의지가 따른다. 고등 감정인 이 책임감은 책임감이라는 일반 개념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혹은 타인의 요구와 권리에서 비롯된다.

지수와 규리는 이 행위가 범죄임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둘 모두 사회문제 연구반 동아리 소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규리는 성매매를 줄곧 사업이라 부르고, 지수는 경호업이라 칭한다. 일종의 비즈니스이자 위급한 상황에서 타인의 신변까지 보호해주는 경호업무이므로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무방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담임교사에게서 고지능 저감성으로 평가받는 두 아이 모두 죄책감은 없다. 파국으로 치닫는 후반부로 갈수록 범죄 행각이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지만 죄책감은 찾기 어렵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앱을 활용하여 자유로운 권력을 행사할 뿐이다. ‘고객님이라는 깍듯한 경어체와 공식적인 말투, 기계음 변조, 그리고 삼촌이라는 닉네임은 지수가 고등학생임을 철저하게 가린다. 스마트폰 채팅 창 너머에 사람이 존재하고, 그는 나와 같이 살아있는 사람이며 나의 행위가 그에게 끼칠 해악을 따져 물을 수 있는 책임의 윤리학이 요청된다.

 

일상 - 부재하는 어른

아이들의 일상에 온전한 어른은 없다. 지수의 부모는 모두 가출했고, 민희는 고아이며, 규리의 부모는 아이를 연예기획사 사업가로 기획하고 조련하려 든다. 아이를 아이로 대하기보다는 성인으로 처신할 것을 요구하며 부속품으로 삼아 계획된 일과를 살게 한다. 규리는 그런 부모와 마주한 식탁에서 그들의 머리를 총알로 관통시키는 상상을 한다. 규리 부모의 최대 관심은 사업 파트너와의 미팅 자리에 후계자 딸을 그럴듯하게 꾸며 내놓는 것이다. 규리는 사업 투자금 확보의 수단이기도 하다. 지수의 도박꾼 아버지는 자식의 돈을 훔쳐 달아날 정도로 몰염치하다. 지수에게 아버지는 돈이 떨어지면 찾아와 엄마의 소재를 캐내려 빌붙는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이다.

담임교사인 진우샘과 이들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사회문제 연구반이라는 동아리를 만들고 규리와 지수에게 동아리 가입을 권유할 정도로 꽤 괜찮은 편이다.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급식체를 구사하며 아이들과 친근해지려는 진우샘은 학생 인권 등에서 진보적인 면을 보이는 사회과 교사다. 그러나 진우샘과 규리, 그리고 진우샘과 지수의 만남은 결코 학교 담장을 넘지 않는다. 학교 상담실(동아리실)에서의 대화와 교실에서의 수업 장면이 이들의 공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의 사생활을 기웃거리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진우샘은 지수가 보호자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담임교사인 그는 지수와 규리에게서 명석한 머리에 반해 공감 부족과 억눌린 내면을 포착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진단에서 멈춘다.

딱 한 장면, 극적인 전환이 일어났을 법했던 장면이 있긴 하다. 동아리실에서 미주친 지수에게 무언가를 감지한 듯 진우샘은 내가 수습해주랴. 내 앞에서 한 번 터져 볼래.” 라고 말한다. 혼자서 끌어안고 버티기만 하다가 터졌던 자기 경험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자기의 일이 더 큰 범죄 집단과 얽히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지수는 찰나의 순간 잠시 멈칫거리지만 수업 종소리에 끄집어내려던 말을 삼킨다. 그가 보기에 담임교사는 이 사태를 감당할만한 혹은 수습해줄만한 깜냥의 어른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극은 파국 상황의 폭력적인 종결자로 학교 전담 경찰관 해경이 아니라 이실장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쓰고 있다.

이실장이라 불리는 이왕철은 지수가 벌이는 성착취 사업의 유일한 직원이다. 성착취 여성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도움을 요청할 경우, 출동해서 상황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월급을 받는다. 베트남 참전 퇴직 군인이자 노숙자였던 이왕철이 경호라는 명분으로 행하는 폭력은 거칠고 파괴적이다. 적을 가차 없이 응징하는 그만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모양새다. 일수 수첩에 손수 아이들의 이름과 수입을 기록해가며 수금액을 바치는 이실장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기능인의 형상이다. 그런데 이왕철은 음지에서 일하는 사회 부적응자이다. 아이들을 선도하기 보다는 범죄를 묵인하고 오히려 편승하는 그에게 세상이란 약육강식의 정글이자 싸움판이다. 나쁜 아이들의 편에서 더 나쁜 악당을 무찌르는 또 하나의 빌런인 것이다. 민희가 그를 실장님에서 영감님으로 그리고 아저씨로 부름에 따라 둘 사이에는 인간적인 유대가 쌓여가지만 이실장의 죽음으로 관계는 불발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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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Extracurricular이다. 방과 후 일상의 시공간에서 아이들은 지들끼리 무리지어 다닌다. 생존에 급급한 부모와 어른들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 아이들을 돌아볼 틈이 없다. 한마디로 기댈만한 어른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 상실의 빈 곳을 또래들과의 관계로 혹은 일탈로 메운다. 욕설과 담배와 과자는 이들 관계의 매개체다. 아이들이 토하듯 뱉어내는 욕설, 늘상 물고 있는 담배, 지수가 소중히 모으는 규리가 접은 과자봉지 딱지는 이러한 아이들 일상의 부스러기이자 흔적이다. 이 속에서 아이들은 게임하듯 범죄를 도모하고 거침없이 이를 실행하기도 한다.

 

학교 - 접촉의 장 혹은 은닉처

<학교> 시리즈 등 모든 학원물에서 학교는 당대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동시에 학교에 대한 대중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또래들 간의 폭력과 따돌림이 난무하는가 하면 마음으로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교사와 찬구들이 있는 곳, 성적에 따른 위계가 분명하고 금수저와 흙수저가 엄연한 곳인가 하면 그 까짓 거 다 뭉개버리는 아이들이 있는 곳, 학교 재단의 비리가 잔존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정의로운 아이들이 결탁하여 비리를 세상에 까발릴 수 있는 곳, 혹은 그런 히어로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교육이란 걸 하는 선생이 있는 곳이 학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수업>에서 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을까?

<인간수업>은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사회 문제 탓으로 두루뭉술하게 돌려버리는 대신 아이들 각자의 선택과 결단에 따른 결과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여기서 학교는 단지 교화와 계도의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혐오와 폭력이 곳곳에 출몰하고, 아이들을 인싸와 아싸로 구별짓고, 권력자 앞에선 납작 엎드리고 약자는 함부로 대하는 신종 일진들이 있는 교육 현장의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른들이 모르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또래포주라는 부캐(부차적인 캐릭터)로 살면서도 학교에선 범생이로 처신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앱을 통한 범죄 행위는 등하교길 일상의 시공간에서 항시 이루어진다. 요컨대 학교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범죄의 먹이사슬이 은폐된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학교가 은닉처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규리는 바나나 노래클럽의 류대열 일당에게서 사업 선수금이자 지수의 몸값으로 건네받은 거금을 학교의 동아리실 쇼파에 숨겨둔다. 그곳은 그녀가 훔친 물건, 즉 장물을 감춰두던 비밀스런 장소이기도 하다. 사회문제 연구반과 상담실을 겸하고 있는 이 공간의 공식적인 명패가 오히려 안전한 은닉처를 보장해준다. <학교 2017>에서 아이들은 학교에 몰래 아지트를 틀고 학교의 부조리함을 추적한다. 그러나 <인간수업>에서 아지트는 아이가 홀로 사는 집으로 옮겨 간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은신처라기보다는 은닉처다. 그나마 무언가를 숨겨둘 수 있는 곳, 잔혹한 세상의 손길이 덜 미치는 곳으로 학교가 선택되는 것이다. 학교는 범죄가 은폐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국에 처한 아이가 남루한 희망 한 쪼가리를 숨겨두는 곳이기도 하다.

 

2020년 한국사회에서 학교는 아이들에게 사회적 접촉의 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또래들과 과자와 빵과 수다를 나눌 수 있는 학교에서 관계를 통해 성숙해간다. 아이들은 꼰대들 속에서 친구 같은 선생을 찾고, 품어 줄 어른을 기다리고, 가르침의 스승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학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른 세상의 시간을 잠시 벗어나 느린 시간 속에 머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서 미성숙한 아이들과 성숙중인 아이들은 몸과 섹슈얼리티, 성평등, 인권 등에 관한 포괄적인 성교육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성에 관해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낙인, 수치, 무지를 낳고 오히려 아이들이 유해한 성적 행동과 성착취에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지면 <인간수업>은 또래포주와 청소년 성착취 라는 민감한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청소년의 성을 공론장으로 끌고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어른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의 연령과 발달에 적합한 섹슈얼리티와 관계에 대한 교육을 구상하고 실천할 일이다. 모호하게 처리된 드라마의 열린 결말에서 지수의 분신인 소라게에게 물을 주는 손은 우리의 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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