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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책이야기] 다시, 나무처럼

2020.08.17 02:24

진보교육 조회 수:78

[책이야기]  다시, 나무처럼



다시, 나무처럼

산은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1.

도시에서 삶은 디지털화 되어 있다. 디지털화된 삶은 숫자에 구속된다. 디지털 문화는 계량화된 숫자, 이를 헤아리기 위한 손가락에 기반을 둔다. SNS에서 친구는 교감하지 않는다. ‘좋아요의 숫자로만 누적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모든 행동은 효율을 측정할 수 있도록 있도록 숫자로 환산한다. 모든 것은 비교가능하다. 차이는 숫자로 표기된다. 음식의 질과 맛은 칼로리로 환원된다. 인간의 다양한 감각은 시각화되어 음식마저 맛을 잃고 시각적 자극으로만 남아 있다. 이윽고는 물질성마저 잃는다. 디지털 세상은 인간을 육체를 가진 총체가 아니라 손가락과 시각으로만 남겨 놓는다.

COVID19의 학교에는 만남이 없다. 교육활동은 원격/온라인 학습으로 대체되었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은 소통하지 않는다. 만남으로서의 감각과 시선의 교차와 피부의 접촉은 사라졌다. 육체로서의 인간, 만남의 물질성이 제거된 채 언어와 시각만 존재한다. 대상과 교유하지 않고, 반응을 고려하지 않으며, 일방적인 전달만 남았다. 이것은 육체를 가진 존재들의 삶의 양태가 아니다.

도시에서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시계에 표시된 숫자의 깜박임과 함께. 공존하거나 접히지 않는다. 공간조차 시간의 전개에 따라 펼쳐져 있다. 운동장 가의 몇 그루 나무는 푸름으로 학생들이 없는 빈 운동장에 그늘을 드리운다. 요 며칠 비와 함께 현란해진 구름은 푸름을 더한다. 푸른색은 여기가 아니라 먼 곳의 색이다. 그리움보다는 바람의 색이다.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거기까지다. 디지털 도시에서는 그 나무에서 단지 얼마 전의 황량함을 기억하기 어렵다. 심지어 다가올 겨울의 빈 시간조차 보이지 않는다. 관계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저 나무는 지나가는 풍경인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있어야 할 매점 앞의 공간에는 둥치가 굵은 목련이 우뚝하다. 목련은 이미 많이 늙었다. 4층 정도의 높이가 되었으니 뿌리에서 올리는 펌프의 힘도 다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여름을 견디고 있으며, 올 겨울 또한 버텨 낼 것이다. 매미들보다 아이들을 더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 젖는 나무를 보면 / 눈부신 햇빛과 개인 하늘을 / 나는 잊었소 /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 기다리지도 않소. (……)

 

한 번도 내 나이가 되어 보지도 못한 김광석의 노래를 아직도 가끔 듣는다. 그의 노래에는 지나간 젊음, 적당한 치기와 만용에 가득했던. 그리고 일정한 우울과 퇴폐가 담겨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그의 나무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었다. 그의 노래에는 나무처럼 시간이 흘러가 버리지 않고 쌓여 있다. 화자가 나무인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오라는 가사가 생각을 더한다.

 

나무나 풀, 그리고 정원이나 숲에 관한 책은 많다. 나무를 기르는 실용적인 책으로부터 사색적인 글까지. 이번에 고른 책은 그 많은 책에서 옥석을 가린 것은 아니다. 그저 최근에 읽었을 뿐이다. 어느 나무가 더하고 덜하지 않듯이 이 책들 또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필부들이다. 토니 모리슨의 글은 그것 아니면 안 되는 치열함이 있다. 매천 황현이나 브라이언 그린의 사유는 도저함의 깊이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나 나무에 관한 글은 그저 읽으면서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면 된다. 빗물이 운동장에 만드는 섬과 그 섬들 저쪽에 언제나처럼 자리한 나무를 발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2.

 

다시, 나무를 보다 -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894000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743pixel

 

다시, 나무를 보다 -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라는 제목이 거창하다. 게다가 책을 소개하기 위해 출판사가 제공한 광고의 카피는 너무 장황하여 부담스럽다. 갑과 을만 난무하는 시대, 뿌리를 잃고 흔들리는 우리에게 인류의 오랜 지혜자 나무가 보여주는 길. 당최 속기 십상이다. 그런 것은 없다. 나무가 처절할지언정 지혜로운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30여 년간 나무 연구자로 살아온 국립수목원장의 경험과 사색의 기록이다. '1부 나무의 인생학'에서는 새의 날갯짓이나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무가 산불이라는 매우 위협적인 외부요소를 생존전략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통해 인생을 살아갈 방도를 모색했다. 그밖에도 성찰하면 성장한다’ ‘위험을 감수하면 살아남는다’ ‘작은 것이 소중하다’ ‘완전한 것을 바라는 것이 병이다’ ‘제대로 알면 원망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 관해 모르는 것이 그에게는 상처다등 나무가 전하는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2부 나무의 사회학'에서는 물을 길어 올리고 탄수화물을 내려 보내는 등 나무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소통들과 나무가 다른 존재들과 맺고 있는 촘촘한 관계망을 통해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존중과 겸손을 조명한다.

'3부 나무의 생명학'은 청각, 시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신체감각과 산림치유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소개하는 한편, 암을 비롯해 우리 몸에 발생하는 각종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다뤘다.

글쓴이는 나무는 흔들리지 않아서 강한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서 강하다.”는 경구를 남기고 있다. 대개는 나무가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생태학자들도 나무를 독립영양자라고 말한다. 나무는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고 토양에서 수분과 무기물을 흡수하면서 단독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한다는 뜻이지 혼자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글쓴이가 이야기한 소재는 균근(菌根) 곰팡이다. 식물의 어린 뿌리와 흙 속의 곰팡이가 공생하여 만들어진 뿌리 곰팡이다. 균근 곰팡이는 식물에게 무기 양분을 대신 흡수해주고, 식물은 균근 곰팡이에게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보내줌으로써 서로 의지한다.

이 글은 나무와 숲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을 지적한다. 곰팡이처럼 나쁜 것으로 알고 있던 존재가 뿌리와 연결되면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 나무 심기 사업이 어떤 사막 지대에서는 소금사막화를 야기한다고 한다. 나무와 숲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사고를 흩트려 놓는다. 나무와 숲은 강한 것, 좋은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큰 것 작은 것, 센 것 약한 것, 가는 것 굵은 것의 모든 다양성이 공존해야 숲도, 우리 사회도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무는 햇살 한 가닥만 있어도 새잎을 내고 이슬 한 방울만 있어도 뿌리를 뻗는다. 한순간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런 나무도 크게 자라고 나면 스스로 넘어지든가 아니면 잘라내야 한다. 큰 나무가 잘리고 나면 빈 하늘이 남아 큰 나무 때문에 햇빛을 받지 못하고 있던 작은 나무들을 살린다. 그리고 작은 나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자연림은 늘 그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숲에 틈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나무가 다시 자라며 건강하게 유지된다. 살아가기 위해 해볼 것은 다 해보는 수밖에 없는, 그것이 생명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측을 벗어나는 자연의 세계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3.

 

맥스 애덤스, 나무의 모험 The Wisdom Of Trees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8945adb.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749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9년 07월 02일 오후 9:43

프로그램 이름 : GIMP 2.8.18

EXIF 버전 : 0210

 

맥스 애덤스 Max Adams는 영국의 고고학자이다. 그는 영국 더럼주에 위치한 약 16만 제곱미터 면적의 삼림지에서 꿈꿔온 숲속에서의 삶을 실현한다. 3년 동안 이어온 숲 관리와 목공 작업은 점차 인간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스승인 나무의 내력을 파고드는 여정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물인 나무의 모험은 수년간 그가 숲의 사람으로 살면서 보고 느끼고 겪은 것을 생생하게 담은 수기이자, 고고학자의 눈으로 밝혀낸 인간과 나무가 함께 쓴 발전과 진보의 기록이다.

고고학자는 인간의 삶을 복원하는 사람이기에, 이 책은 나무와 인간의 삶을 함께 돌아 본다. 나무를 알고, 재료로 다룰 줄 알게 된 것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갖춘 최초의 지식이었다. 태초의 인간들은 나무 열매로 허기를 달랬고, 나무로 서까래를 친 집에서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막대를 비벼대다 불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이끌어냈고, 숯을 활용해 쇠를 제련하고 화약을 만들면서 농경과 전쟁을 했다. 그러다 수명을 다하면 나무로 만든 관에 눕혀져 자연으로 돌아갔다.

각 장의 끝에 더해진 나무 이야기에서는 나무들의 생태학적인 특징을 비롯해 각종 문헌과 전설로 내려오는 풍습과 금기가 소개된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12종의 나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수종인 데다 세밀화가 곁들여져 아름답다.

나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만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만들어내고, 이를 뿌리에서 잎사귀까지 자유자재로 이동시킨다. 꽃가루의 구조는 짝짓기에 최적화되어 있고, 곤충이나 동물을 동원해 씨앗의 발아 확률을 높인다. 가시를 돋우고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천적에 대항하기도 한다.

나무의 모험은 나무 세계를 관통하는 생물학적 · 공학적 기법을 활용해 어떻게 인간이 기술 혁신을 일궜는지 밝힌다. 압력을 가해 물질을 아래에서 끌어 올리는 펌프부터, 용수철 원리에 바탕을 둔 투석기, 배의 균형을 맞추는 돛대와 밸러스트, 그리고 무거운 짐을 옮기기 위한 회전축과 바퀴까지. 겉으로는 원시적인 장비로 보일지 몰라도, 현대 첨단 기계의 작동 원리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숲과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톱에 잘려나간 나무토막을 보고 감상에 젖어 안타까워하기보다, 그 자원을 어떻게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이다. 종이나 성냥, 가구처럼 나무를 가공해 만든 물품들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쓸모가 사라지는 순간, 숲을 가꾸고 관리하는 인간의 노력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나는 종이를 더 많이 소비하라고 권하고 싶다. 숲은 유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종이와 성냥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숲에는 베어지는 나무보다 더 많은 나무가 새로 심어진다. 나무가 가진 경제적 가치를 보지 못하고 감상적으로만 나무를 대하고 숲을 갈아엎어 특용 작물을 기르거나 초원으로 바꾸는 순간, 숲의 운명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보며 펄프가 된 나무를 위해 눈물 흘리지 말자. 책 한 권을 더 사는 것이 숲을 구하는 길이다.

 

 

4.

 

내 나이쯤에 이른 분들의 프로필 사진은 대개 꽃이거나, 아니면 손주들의 귀여운 모습이다. 지금의 자기와는 가장 닮지 않은 또는 먼 것이리라. 완전히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나무 등걸이나 가지에서 봄이면 새로운 싹이 비집고 나온다. 죽은 등걸에서 싱싱한 초록이 솟아나 다시 새로워진다. 이런 경이가 인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꽃들을 저장하고 손주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지나간 시간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낡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봄은 온다. 시간의 저편, 끝내 올 거라고 믿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 지난 가을의 눈이 싹으로 실현된다. 안타깝게도 봄은 저절로 오기도 하지만 기다리는 자에게는 더디게 오기 일쑤다.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 하 연둣빛 새 이파리 / 네가 바로 강철이다 /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 제 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 오 눈부신 강철 새잎.

 

박노해의 강철 새잎이다. 이 시를 바탕으로 꽃다지가 만든 노래는 투쟁의 현장에서 낯선 감동을 주기도 했다. 강철의 날카로움과 여린 잎의 은유란. 손대면 그리도 보드라운 연두들이 굵은 껍질을 뚫고 일어서는 모습을 발견한 시인의 눈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잎들이 나오는 건 봄볕 아래지만 이미 지난 가을, 잎들을 떨구던 그 순간부터 봄의 새 잎들이 나올 자리를 눈으로 맺어 겨울을 견뎌냈다. 그것이 나무의 가르침이다.

나무는 자기의 시간을 산다. 그것은 디지털화된 시간이 아니다. 이 나무와 저 나무들의 시간은 겹쳐져 있지만 같지는 않다. 디지털화된 인간의 시간은 동일하다. 양으로 측정될 뿐이다. 그래서 늘 부족하다. 쫓기는 삶을 살아간다. 나무는 몸으로 산다. 개체로서만이 아니라 집단으로서도 그러하다. 나무는 나무와 어울려 부대끼며 숲을 이룬다. 나무의 물질성. 육체를 가진 삶. 어울려 살아가는 힘을 다시 찾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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