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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송재혁

 

기생충

 

하늘은 온통 검붉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그곳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을씨년스럽다. 곧 폭풍우가 몰아칠 듯 어둑어둑한 늦저녁의 광화문 세월호 광장, 낡은 나무 의자들이 들어서고 그늘진 표정의 해고자들이 하나둘 나타나 자리 잡는다. 기다란 하얀색 펼침막에는 ‘참수 투쟁’이라는 글씨가 붉게 박혀있다. 기자회견 자료를 손에 든 나는 임박한 시간에도 기자들이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속이 타들어 간다. 곧 망나니들이 해고자들의 목을 칠 것이고 피의 의식으로 사회에 뭔가 호소할 터다. 누구는 빠지겠다, 누구나 끼워달라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코앞에 둔 자는 묘한 느낌에 전율하고 있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났다.

 

보통 꿈을 바로 잊어버린다. 그런데 얼마 전 ‘한여름 밤의 꿈’은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남아 오래도록 기억될 기세다. 발바닥에 난 종기로 인한 통증 때문에 처방받았던 진통제 때문일까?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며칠간 자기 정신분석을 해보았다. 기생충! 아마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영화 ‘기생충’이 남긴 상흔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워드 진의 저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설국열차’를 본 후에도 영원히 달리는 열차에 실려 가는 갑갑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설국열차’가 보여주는 단단한 계급의 벽은 ‘기생충’에서도 뚫리지 않았다. 지배계급에 저항한 대가로 영원히 지하에 갇힐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달리 스스로 지배계급이 될 꿈에 젖어 성실한 노력을 다짐하는 아들의 모습은 현실을 잔인하도록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이분법이다. 이러한 갑갑함은 전교조의 내부의 날선 논란에서도 감지된다. 될 때까지 농성 지속이냐, “딥체인지”를 위한 농성 중단이냐, 원직복직까지 곧바로 가느냐, 특별채용을 딛고 가느냐……. 해고자를 소총의 총알 정도로 취급하거나 해고자 1명의 생계비가 조직 재정에 미치는 부담을 숫자로 제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해고자 당사자에게 고통이다. 4년 내내 ‘전교조 죽이기’에 맞서 싸우다 하루아침에 노조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해고자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기생충!

▲ 그림 1 : 영화 '기생충'

 

이몽치몽

 

악몽을 길몽으로 떨쳐보자. ‘이몽치몽(以夢治夢) 테라피’라고나 할까.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은 비극과 희극이 결합된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여름밤을 환상으로 이끌만한 아름다운 곡이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작게 틀어 두어도 좋을 것 같다. 결혼식 마치고 신부, 신랑이 행진할 때 흔히 연주되는 ‘결혼 행진곡’이 이 곡에 포함되어 있다.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의 1960년 연주(EMI, WARNER)가 특히 좋게 들린다. 지휘자 클렘페러는 ‘지휘대의 불사조’라고 불렸다 한다. 독일에서 여러 오페라 극장을 떠돌다 나치의 탄압에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뇌수술에 따른 신체 마비로 고생을 해야 했다. 유럽으로 돌아온 후에도 실족 사고, 화재로 인한 화상, 고혈압 등으로 수난을 겪었지만 쓰러졌다 우뚝 서기를 반복하며 평생 지휘를 했으니, ‘7전 8기’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클렘페러가 살아있어서 전교조를 지켜본다면, 그의 습관대로 보면대를 탁탁 내려치면서 ‘나처럼 강인하게!’라고 쏘아붙일지 모르겠다. 그는 모노 녹음 시대를 넘어 스테레오 녹음 시대까지 살았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상태 좋은 녹음으로 남아 있다. 클렘페러는 보통 골격이 매우 큰 구도에 강인한 음을 그려 넣는 스타일이지만,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신비로움과 서정성도 듬뿍 담아냈다.

 

 

▲ 그림 2 : 멘델스존 작곡, 한여름 밤의 꿈 - 오토 클렘페러 지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1960, EMI, WARNER)

 

‘표절’ 고백

 

돌이켜 보니 사회적 맥락으로 음악을 읽어 사람들과 나누어 보려는 나름의 노력이 지난 1년 반 동안 중단되어 있었다. 2017년 말에 ‘1917년을 떠나보내며’라는 글을 쓴 후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이제 시간적 여유를 되찾고 나서 지난 4년의 파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작년 4월 3일 발표한 4.3 70주년 전교조 성명서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후회스러운 글들이지만 이것은 좀 마음이 든다. “섬 전체에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이라는 굴레를 씌워 황금알을 낳은 거위의 배를 가르듯 ‘개발’이라는 이름의 ‘침공’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청정 제주는 오염의 땅이 되어가고 있으며, 생태와 환경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치외법권적인 지역 특성은 우리 교육법의 일관된 적용을 교란시켜 제주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특별한 교육’은 ‘돈벌이 교육’의 전국적인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제주를 ‘특별한 섬’으로 남겨두지 않고 대한민국의 보편성이 관철되는 ‘보통의 땅’으로 회복시키는 것 역시 4.3 70주년이 우리에게 주문하는 과제다.” 4월 3일이 되기 전에 제주를 방문하여 70주년 집회에 참석하였기에 오늘날 제주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이처럼 정리해낼 수 있었다.

 

성명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오늘 도처에서 4.3을 위해 울리는 진혼곡들은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함과 동시에 산 자의 양심을 일깨우고 있다. 이제 침묵하는 ‘백비’의 한쪽에 ‘학살’을, 반대쪽에 ‘항쟁’을 굵게 새겨넣어 번쩍 일으켜 세우자. 이름 찾아 우뚝 선 ‘비’를 우리 모두가 통과하는 ‘문’으로 삼아 어둠의 현실에서 광명의 미래로 성큼 나아가자.” 고백하건대, 이 부분은 한 연주회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보고 착안한 것으로, 표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비 내리는 세월호 광장에서 참사 2주기 합창 공연을 이끌었고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2번 ‘1917년’을 연주했던 지휘자 구자범은 작년 4.3 70주년도 잊지 않았다. 70주년 추념일 당일,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베르디의 ‘레퀴엠(진혼곡)’을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올렸다. 이런 연주회가 기획되자 연주회 포스터의 그림으로 강요배의 ‘젖먹이’를 추천했다. 제주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봤던 그림이어서 파일을 수소문해 구하여 추천했지만 선택되지는 않았다. 대신 채택된 그림은 좀 더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다. 연주회 포스터의 아랫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백비, 즉 하얀 비석. 제주 4.3 기념관에는 아직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희생자의 비석이 누워있다. 그 비석을 세워서 미래를 향한 문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머릿속에서는 연주회 포스터의 이미지와 글귀가 제주 집회에서 백비를 일으켜 세우던 장면과 합쳐지면서 성명서의 마지막 문단이 구성되었다.

▲ 그림 3 : 강요배 作 젖먹이 (4.3 관련)

 

▲ 그림 4 : 4.3 70주년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 포스터-구자범 지휘, 참 필하모니 (2018.4.3.)

 

섬의 아픔을 뭍이 기억하다

 

4.3 70주년 추념 음악회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크지만 음악적인 의미에서도 소중해 보였다. 연주를 맡은 ‘참 필하모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기성 관현악단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관현악단이었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시민들이 오디션을 통해 단원으로 선발되었다. 과연 이들이 베르디의 레퀴엠과 같은 대작을 제대로 연주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첫 곡 입당송의 도입부를 듣는 순간부터 사라져버렸다. 두 번째 곡 ‘분노의 날(Dies irae)’에서는 4.3 비극의 분노가 폭발하였는데, 그 괴력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이날 연주에서 시종일관 성난 표정으로 대범한 표현을 아끼지 않은 팀파니스트에게 각별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성 관현악단도 아니고 시민들로 이루어진 악단으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수준의 연주를 만들어내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우리 교육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유하고 성적 높은 학생들만 가려 모아 성과를 내려는 자사고와 같은 곳은 학교로 보기 어렵다. 평범한 학생들로부터 각자의 재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참교육이다. 이런 의미에서 악단의 이름, ‘참 필하모니’는 참교육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자범 지휘자의 연주회 프로그램북은 늘 풍부한 읽을거리가 넘친다. 이날 연주회의 프로그램북 역시 4.3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서 그 자체로 역사 학습서라 할 만했다. MBC에서 해직되어 복직하지 못하고 있는 이채훈 PD의 글도 담겨 있다. 그는 1999년 9월 12일 방송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첫 회분에서 4.3을 다루었다. 연주회 다음 날인 2018년 4월 4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희경 음악학자의 글, ‘문화와 삶. 4월의 진혼곡’과 한겨레신문에 실린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글, ‘음악인들 모여 산자·망자 위로한 씻김굿’도 다시 챙겨 읽으면 좋다. 이 소중한 공연의 일부는 지금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녹음 상 좌우 밸런스의 문제가 있지만 화질은 양호하다. ‘섬의 아픔을 뭍이 기억하다’로 검색하면 된다. 마에스트로 구자범은 ‘참 필하모니’의 악장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서의 학살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은 연주회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또 어떤 음악으로 우리의 양심을 일깨울지 궁금해진다.

 

산 자를 위로함

 

레퀴엠은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모양새이지만 음악을 듣고 있는 산 자의 넋을 위로하기도 한다.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를 넘어 삶의 에너지를 길어 올린다. 따라서 레퀴엠을 일상적으로 감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4.3을 추념하기 위해 연주된 베르디의 레퀴엠은 포레의 레퀴엠, 모차르트의 레퀴엠, 브람스의 ‘독일어 레퀴엠’, 브리튼의 ‘전쟁레퀴엠’과 더불어 합창 음악의 걸작으로 꼽힌다. 출중한 연주로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와 빈 필하모니의 1967년 음반(DECCA)이 먼저 떠오른다. 솔티는 1977년에도 시카고 심포니와 이 곡을 녹음했지만, 빈 필과의 연주가 더 좋게 들린다. 네번째 트랙, ‘Liber scriptus’부터 도드라지는 메조 소프라노 마릴린 혼(Marilyn Horne)의 목소리는 마치 피를 토하는 듯 호소력이 짙다.

 

영상으로는 카라얀이 지휘한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 합창단의 1967년 기록이 인상적이다. 평소와 달리 카라얀은 눈을 뜨고 맨손으로 지휘한다. 이 영상을 악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두환 시절부터 TV에서 종종 봐서 그런지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어렸을 적에 이 영상을 보면서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젊은 시절 젊은 목소리도 담겨 있다. 라틴어 가사를 한글자막으로 처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뒤섞여 유통되고 있으니 DVD를 구입할 때에는 자막 옵션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그림 5 : 베르디의 레퀴엠-게오르그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니 (1967, DECCA)

▲ 그림 6 : 베르디의 레퀴엠.-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 합창단 (1967, Deutsche Grammophon, UNITEL, DVD)

 

분수처럼 흩어지는 한여름 밤의 음악

 

에어컨보다 시원한 음악이 있다. 미국 작곡가 퍼디 그로페(Ferde Grofe)가 1931년 작곡한 '그랜드 캐년 모음곡(Grand Canyon Suite)’이다. 묶여진 다섯 곡의 제목은 ‘일출’, ‘붉은 사막’, ‘산길에서’, ‘일몰’, ‘소나기’인데, 3번째 곡인 ‘산길에서’가 가장 유명하다. 에릭 쿤젤(Erich Kunzel)이 지휘한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의 1983년 녹음은 특이하게도 마지막 곡 ‘소나기(Cloudburst)’의 두 가지 버전을 수록하고 있는데, 하나는 천둥번개음을 연주와 믹싱한 것이다. 따라서 이 트랙을 큰 음량으로 듣는 경우 오디오의 스피커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들을 때에는 굉음으로 귀가 손상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음반 표지에 경고문이 붙어 있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로 한여름 밤의 악몽을 몰아내고 재충전을 해야겠다. 오페라 연출자 오토 솅크(Otto Schenk)의 저서 제목을 빌자면, “(음악을) 듣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 (Wer's hört, wird selig)”

▲ 그림 7 : 미국 작곡가 퍼디 그로페의 '그랜드 캐년' 모음곡-에릭 쿤젤 지휘,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 (1983, TEL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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