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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높고 찬란한

 

동마중학교 강수정

 

 

‘봄인가, 아니 여름인가. 세 여자가 개울에 발 담그고 노닥거리고 있다. 하얀 통치마 저고리 위로 한낮의 햇볕이 부서진다. 팽팽한 종아리와 통통한 뺨, 가뿐한 단발은 세 여자의 인생도 막 한낮의 태양 아래를 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 여자가 물놀이하는 개울은 청계천인가’

프롤로그 중에서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는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다.

사진 속에는 단발머리를 한 세 여자가 있다. 식민지 조선이라는 암울한 시기에도 이렇게 상큼하고 발랄한 대낮이 있었을까 싶은 날에. ‘이 시대에 여자들이 쪽찐 머리를 풀어 자르는 것은 ‘나, 독립된 인격체요’ 하는 시위나 다름없다. 세 여자가 동시에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공동의 투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성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통쾌하게 한 방 날린 후 끊어 오르는 청춘의 열기를 잠시 식히고 있나 보다. 씩씩하고 당차다. 이 사진은 <신여성> 1925년 10월호에 실린 사진이다. 세 여자의 이름은 허정숙(왼쪽), 주세죽(가운데), 고명자(오른쪽)다.”

 

: 1920년 상해

“근대학문을 배우겠다는 조선의 젊은이 대부분은 일본으로 갔고, 간혹 미국이나 유럽까지 진출했지만 단순한 학문보다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들의 선택은 상해였다. 청년들은 꿈꾸는 자들의 도시 상해로 갔다. 그들의 스물은 비장하고도 상쾌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 ‘맹수 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조선민족을 구할 사상과 이론’이 궁금했던 허정숙과 충동적으로 3.1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요시찰 인물이 되자 음악교사가 되어 독립운동에 보탬이 될 길을 찾던 주세죽, 각자의 꿈을 찾아 상해로 온 두 사람은 단짝 친구가 된다. 그리고 ‘사회주의연구소’에서 만난 고려공산당 청년조직 책임비서인 박헌영과 그의 친구이자 동지로 고려공산청년동맹을 결성한 임원근, 일본인 교사들의 폭력에 항의하는 동맹휴업을 주동해 퇴학을 당하고 3.1만세 시위를 주도한 후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찾아 온 김단야의 만남은 예정된 필연이었다.

‘사회주의연구소’는 상해라는 커다란 캠퍼스 안에 있는 학교였고, 고향을 등지고 온 이들에게 하나의 가족공동체였다. 허정숙과 주세죽은 사회주의연구소에 모여 박헌영이 번역한 공산당선언과 마르크시즘, 혁명, 조국해방에 대해 학습, 토론을 하면서 유물론자가 된다. 예상했겠지만, ‘사랑과 혁명이라는 강렬하고도 민감한 발화점’에서 허정숙과 임원근은 연인이 되고, 주세죽과 박헌영은 여운형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다. 독일어판 <자본론>의 양피지 장정 위에 손을 얹고, 조국의 독립과 무산자계급을 해방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맹세하면서. 결국, “음악선생을 꿈꾸며 국경을 넘었던 주세죽은 엉뚱하게 혁명가 남편과 마르크스 사상을 얻고, 신사상을 섭렵하리라 상해로 온 허정숙은 남자 하나를 챙겨 돌아간다.” 그들은 이렇게 그들의 찬란한 봄을 열고 있었다.

 

여름 : 경성

“때는 이른바 경성의 봄이었다. 무슨무슨 청년회니 동맹이니 하는 단체들이 하루에 열 개씩 생겨나고 없어졌다. 종로 거리는 청년들로 북적거렸고 YMCA나 태화관, 천도교당 아니라도 요릿집이나 선술집, 심지어 파고다공원 벤치에서도 단체 창립식이 거행됐다. 3.1만세 이후 달라진 풍경이었다. 경찰정치의 서슬에 얼어붙었던 식민지 대중의 정치적 욕망이 해빙을 맞고 있었다.”

상해시대를 정리하고 고려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동맹을 조직하러 경성으로! 세 남자는 화요회와 신흥청년동맹활동을 하면서 언론사에 기자로 취업하고, 허정숙과 주세죽은 공산당 창당을 위한 조직사업으로 조선여성동우회와 경성여자청년동맹을 조직한다. 동우회 강좌에 참석한 이화학당 고명자가 가세하면서 애정과 우정, 이념으로 결합된 강고한 세 남자, 세 여자의 연대가 시작된다.

전국을 누비며 여성계몽 강연을 하고 여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허정숙은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민족이 자유를 찾아도 여자가 구속되면 아무 소용이 없고, 여자가 해방돼도 한 줌의 유산계급 여자만 자유로우면 무슨 소용이며, 민족과 여자, 무산계급을 한꺼번에 구제하는 길은 공산주의뿐’이라고 말한다. 허정숙과 임원근이 결혼하고, 고명자와 김단야는 연인이 된다.

1925년 1월 레닌 서거 1주기에 조선일보는 모스크바 피압박민족대회에 다녀온 김단야의 무용담을 11회나 실을 정도로 마르크시즘은 하나의 세련된 유행이었다. 세 남자와 세 여자는 1920년대가 가기 전에 무산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의 날이 올 거라고 낙관했다. 그들의 혁명은 그들의 여름을 유난히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가을

“마르크시스트는 지금 감옥에 있거나 고문과 독방생활로 정신줄을 놓거나 아니면 천황의 신민으로 소속을 바꾸거나 했다. 조선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운명은 여기까지인가. 가령 파리 코뮌처럼 유토피아의 이상이 피바다 속에 침몰하는 그런 장렬한 패배도 없이 비밀 회합하고 암호 편지 주고받다가 끝나버리는 것인가.”

 

주세죽: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상해-모스크바

주세죽은 항의투쟁과 광인 행세로 고문 끝에 병보석으로 석방된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 망명길에 오른다(1928년). 열차 안에서 딸(비비안나 박)을 낳고 마침내 ‘혁명의 심장’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대학 생활을 하고 딸과 함께 단란한 생활을 보내지만 코민테른의 12월 테제인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10년 만에 모스크바에서 배편으로 유럽을 돌아 상해로 간다. 하지만 박헌영은 체포되어 조선으로 이송되고 주세죽은 김단야와 함께 남지나해와 지중해, 흑해를 거쳐 두 달 만에 다시 모스크바로 온다. 남편과 딸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과 스탈린의 공포정치(스타하노프 운동. 1934년)로 지식인들이 공개 처형되자 소비에트의 민낯을 마주한 주세죽은 마르크시즘에 회의를 느끼면서 점점 지쳐가고 결국 김단야와 결혼한다. 하지만 김단야는 일본 밀정으로 몰려 총살되고 주세죽은 고려인 강제이주(1936년)로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유형을 가게 된다. 도중에 김단야 사이에 낳은 아이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허정숙: 모스크바-경성-뉴욕-경성-타이페이-남경-무한-연안-태항산-연안

허정숙은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성이 다른 두 아이를 낳았다’는 등 ‘성적, 사상적 모험을 즐긴 신여성’에게 가해지는 시대의 응징을 받자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1년 반 만에 경성으로 돌아와 수감 중인 임원근과 이혼하고 송봉우와 결혼하여 셋째를 출산한다. 좌우합작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의 전국 조직인 근우회 활동으로 ‘부인야학, 기관지 발간, 조혼폐지, 이혼 자유, 공창폐지 캠페인, 2주간의 출산휴가 확보’ 등 의욕적인 활동을 재개한다. 근우회 사무실을 아지트로 삼아 광주학생시위의 진상을 알리는 작업을 하던 중 임신 중에 체포되어 수감, 형집행정지로 가출옥, 1년 뒤 재수감된다. 1935년 남경군관학교 사건으로 송봉우가 전향서를 쓰고 나오자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최창익(서울파)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다. 이후, 항일군정대학에 들어가 마오쩌뚱에게 공부를 배우고 최창익과 결혼한다. 조선의용대의 집결지인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해방을 맞고 김두봉, 최창익, 무정 등 조선의용군과 함께 평양으로 들어간다.

 

고명자: 모스크바-경성

고명자는 모스크바에서 김단야와 만나 2년 남짓 유학생 부부로 지내다가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라는 코민테른 12월 테제에 따라 공산대학 동창들과 함께 경성으로 가면서 김단야와 이별한다. ‘전조선 피압박 피착취계급에 격(激)함’이라는 전단지를 뿌리는 조직 활동 중 체포에 체포를 거듭하고 김단야를 잡기 위한 일본의 술책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만 늘 감시당하는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조선공산당 재건의 원대한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되자 부모도 조직도 사랑도 모두 잃은 상태에서 수예와 독서로 소일하다가 일본의 협박성회유로 일어잡지 <동양지광>에서 편집 일을 하게 된다. 1945년 여운형의 배려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윤동명과 결혼하지만 여전히 김단야를 잊지 못한다. 근로인민당 대표로 평양에 가면서 북쪽에 안주하려다가 허정숙을 만나 김단야의 재혼과 사망소식을 듣고 바로 남쪽으로 내려온다.

그들은 어떤 열매를 기다렸을까... 해방! 그 격랑 속에서 그들은 세 개의 혁명, 세 개의 삶을 묵묵히 그러나 쓸쓸히 살아내고 있었다.

 

겨울 : 1950년 서울, 평야, 그리고 크질오르다

“이런 사람이 2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1910년 세 여자는 글자를 깨치기 시작한 어여쁜 소녀들이었지만 어느 결에 공중 납치된 나라의 국민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우리 집 마당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고 구둣발로 내 침실을 휘젓고 다닌다면 일상은 이미 깨지고 생활은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 여자와 남자들은 삶을 역사에 ‘올인’했다. 한 겨울 영하 20도에 허술한 차림으로 서울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걸어서 갔다. 재산을 챙기기는커녕 있는 재산도 버렸고 애인과 가족도 버렸고 더 버릴 것이 없을 때는 목숨을 버렸다. 그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누구나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이 평등해야 존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이들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흥망성쇠를 자신의 생애로 겪어냈고 과학이라 믿었던 역사 법칙의 오작동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들은 온전히 시대의 자식들이었다. 폭격 맞은 나라에서 파편처럼 주변으로 튕겨나간 사람들, 그것은 절박하고도 다급한 디아스포라였으며 슬프고도 고난에 찬 글로벌 라이프였다.”

고명자는 노비였던 삼월이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다가 남로당 등 좌파정당들이 해산되자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전쟁을 맞이하고 전쟁 중 근로인민당 활동을 하지만 양쪽으로부터 거부당하고 결국 혼자 굶어 죽는다.

허정숙은 김일성에 매력을 느끼고 내각 문화선정상으로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과 일인체제 확립과정을 지원하고 남로당, 연안파, 소련파 등이 차례로 숙청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최창익이 재혼하자 허정숙은 채규형(스탈린파)과 결혼했지만 채규형은 숙청당한다. 남로당과 월북예술인들의 숙청과정에서 심문을 당하기도 했으나 복권되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김일성에 대항하여 한반도 중립화 통일론을 주장했던 최창익(부수상 겸 재정상)의 숙청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처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버린다.

크질오르다에서 유배중이던 주세죽은 조선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 박헌영이 있는 조선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스탈린에게 탄원서를 보낸다. 하지만 스탈린과 박헌영 모두에게 거부당한 채 모든 희망의 끈을 놓고 알코올에 의지해 살다가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지도에 그려진 굴곡진 선만큼이나 세 여자의 삶이 고되다. 조선희는 그녀들의 삶의 행로, 인생반경을 입체적으로 전개하면서 전지구적인 규모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난립하던 20세기, 그 정점에 있었던 1920~1956년 조선공산당을 우리 앞에 정확하게 불러낸다. 여전히 분단에 갇혀 각자의 의식을 점검하고 재단하는 아직까지도 위험한 대한민국으로. 과감하다. 눈감고 있던 어둠의 시대를 직시하게하고 ‘빨갱이’라는 저급한 오명을 덮어쓰고 우리사회에서 외면당했던 공산주의자들을 회복시키면서 여성해방운동까지 들춰낸다.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역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사장되었던 페미니즘의 계보를 찾아낸 것이다! 이 지점이 감동의 꼭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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