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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사진파일 참고


남영동 대공분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타라(진보교육연구소 문화연구분과)

 

남영동이라는 지명이 익숙해진 건 1호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부터 였다. 그러나 내게 남영역은 그저 스쳐 지나는 곳이었을 뿐 역에 내려 본 것은 채 열 번도 못 된다. 그곳에 갈 일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했고, 지하철 4호선이 생기면서는 숙대입구역을 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남영역에 처음 내렸던 때가 1990년대 초 전교조 교사대회가 있었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과 회포를 풀고자 불쑥 내린 곳이 남영역이었다. 그리고는 2013년 1월에서야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찾았다. 인권연대에서 주관하는 인권연수가 2005년 이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탈바꿈한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18일 나는 용산구 갈월동 88번지 남영동 대공분실을 다시 찾았다. 대한민국의 박물관을 마음껏 상상한다는 ‘대박상상’ 프로젝트의 답사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1987> 이후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일요일 아침이어서인지 관람객은 우리들뿐이었다. 5년 전 육중한 철대문이 벽처럼 서있던 자리엔 속이 훤히 보이는 앙상한 철제 대문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사다리꼴 모양의 철문이 바리케이트처럼 놓여 있다. 속이 빈 철문은 레일을 따라 밀면 여전히 요란한 탱크 소리가 난다. 두 번째 방문이어서 였을까?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이 공간을 설계한 김수근의 또 다른 건축물 ‘공간’ 사옥 구관과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외눈박이 괴물

남영동 대공분실은 중앙정보부 차장과 검찰총장을 거쳐 1975년 내무부장관이 된 김치열의 발주로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하여 1976년 완공되었다. 중앙정보부와의 인연은 김수근이 1961년 워커힐 힐탑바(현 피자힐)를 설계하면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종필의 눈에 들었던 데서 비롯된다. “자유의 냄새가 물씬 풍기도록 지어 보라”는 김종필의 주문으로 설계된 것이 자유총연맹의 본산인 남산자유센터(1963)였고, 1966~1969년 동안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라는 용역 단체를 만들어 부사장, 사장을 역임하며 5·16 군사정권 주도의 대규모 건설 설계 용역에 본격적으로 뛰어 든다.

김수근은 여의도 종합개발, 김포공항 종합개발, 경부고속도로 기본 계획, 포항제철 입지 선정, 종로3가 종합 개발과 세운상가 등 박정권의 산업화 근대화 사업에 깊이 간여하며 입지를 다져갔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966년 김종필에게서 격려비로 받은 200만원 수표가 종자돈이 되어 시작된 것이 잡지 <공간>의 창간이었다. <사상계>, <창작과 비평>과 함께 잡지 <공간>은 건축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을 담고있던 잡지로 내가 즐겨 보던 것이었는데, 그 탄생이 씁쓸하다.

동행한 건축가는 ‘남영동 오피스 빌딩’이라고 영문으로 쓰여진 설계도면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이 건물의 치밀한 설계에 어느 정도 간여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건축학계에선 “설계를 주문한 군사정권의 강압에 의한 것인지, 설계자 스스로 정권의 주문에 부응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건축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이 건물은 그가 아끼던 공간 사옥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검은색의 전돌을 활용하여 탄탄하게 쌓아가며 각이 진 곳을 끼어 맞춘 모양새며 창호를 연상케 하는 돌출형의 사각 창문과 세로로 길쭉한 창문들의 연속 배치, 그리고 안으로 한 단씩 밀어넣으며 설계된 함몰형의 입구와 이어진 두 건물 사이의 공간 처리까지 그 모습이 섬칫할 정도로 비슷하다.

쇠창살을 인 콘크리트 담벼락 밖에서 바라본 대공분실의 측면은 외눈박이 동물의 형상이다. 1983년 무렵 6~7층이 증축되기 이전 원형을 5층까지로 본다면 5층 측면의 쇠창살 달린 창문은 외눈박이의 유일한 눈이다. 지금은 6층과 7층의 세로창이 눈의 위치를 점하는 탓에 쇠창살이 박힌 5층의 창문은 그저 입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그 눈의 테두리는 안쪽으로 세 겹이나 밀려들어가 있어 그 속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설계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검은색의 이 건물은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감금하고 고문하던 내부를 숨긴 채 의뭉스럽게 서있는 외눈박이 괴물의 형상이다.

이 건물을 본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키클롭스’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오무’ 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제주도 설화 속 외눈박이가 떠올랐다. 외눈박이는 바람을 다루는 괴력으로 어부의 배를 자기가 사는 섬으로 유인해서 사람들을 찢어 죽이거나 잡아먹는 잔인하고 포악한 괴신이다. 확인해 본 적은 없으나 아마도 바다에서 먹고 사는 어촌 마을에서 고기잡이 배를 난파시키는 거친 바람을 외눈박이에 빗댄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래서였을까? 이곳은 실체가 드러나기까지 ‘○○해양연구소’(<1987>에서는 ‘부국해양연구소’로 표현됨)라는 간판을 걸고 오피스 빌딩으로 위장되어 왔다. 어장의 먹이감을 관리하는 외눈박이 감시자처럼 말이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이었던 김수근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은 사람을 죽이는 나쁜 바람(외눈박이)이었고, 공간사옥은 사람을 살리는 좋은 바람(영동할멈)이었을까? 설화 속 영동할멈은 외눈박이에게 먹힐뻔한 어부들을 구해주는 착한 신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 일들이 탄로나고, 영동할멈은 외눈박이들에게 잡혀 몸이 세 조각으로 나뉘어 바다에 던져진다. 세 조각은 지형이 되어 솟아오르는데, 그 중 하나가 성산이 되었다고 전한다. 1971~ 1972년에 1차 완공 후 1967~1977년에 증축된 공간 사옥의 역사 속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딱 걸쳐 있으니 모 건축가의 말처럼 두 건물은 각각 김수근의 ‘지킬과 하이드’에 비견될 만하다. 더구나 공간 사옥을 증축할 때 사용한 벽돌은 1971년 공간사옥을 처음 지을 때 사용했던 회색 전돌이 아니라 대공분실과 같은 검은색 전돌이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건축가 혹은 지식인의 책임과 성찰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게 된다. 1970년대는 “박물관에 기와만 하나 얹고 육영수가 좋아하는 계란색만 입히면 된다”는 말이 나돌던 ‘박조(朴朝)건축’ 의 시대였다. 그리고 박정권의 졸속 정책으로 동빙고동 호화 주택촌 사건, 부실시공에 의한 와우아파트 붕괴, 청계천 등 철거민들의 강제 이주와 경기도 광주 대단지 빈민 봉기가 있었다. 이 때 유망한 건축가였던 김중업은 당시 박정권의 졸속 건축 행정과 부도덕함을 매섭게 비판하고 국외로 추방까지 당한다. 그러나 김수근은 오직 벽돌과 공간 실험에 집착하며 외눈박이 건축가로 살아간다. 그에게 대공분실은 그저 권력자의 주문에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답한 건축물이었을 뿐이다.

 

철제 원형 계단

대공분실 내부로의 진입은 정면의 큰 문과 후면부에 위치한 작은 쪽문으로 가능하다. 정면과 후면의 창 모양은 대조적이다. 정면 1~4층까지의 창이 크고 입체적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반해 후면부의 창들은 5층의 세로형 창호 모양이며, 안쪽으로 벽면을 파고 들어간 꼴이다. 그래서 벽에 바짝 기대어 위를 올려다 보면 창들은 숨겨진 채 검은색 전돌로 연결된 평면이 너와집 지붕처럼 펼쳐진다. 게다가 후면의 출입구는 수도원의 은밀한 뒷문처럼 잘 숨겨져있다. 둥글게 안으로 말아 넣은 듯한 곡선의 벽면과 무심코 지나기 싶상인 겹쳐지는 공간의 안쪽에 한쪽짜리 세로 철문을 달아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양새는 수원 화성의 암문(暗門; 적에게 들키지 않게 성곽의 은밀하고 후미진 곳에 뚫어 놓은 문)을 연상케 한다.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갈 때면 질주하여 달려 보게 하던 서암문의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1974~1978년은 박정권이 문예중흥을 외치던 시기였고, 수원 화성이 국방 유적으로 분류되어 성곽 보수 작업이 한창이던 때이니 어떤 연관성이 감지된다. 김수근은 1969년 자신이 설계한 부여박물관(1967)이 왜색으로 논란이 된 후 미술사학자 최순우와 함께 전국의 초가와 사찰들을 살피며 한국적인 것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후 달라진 그의 건축풍을 논자들은 “전통문화의 현대적 접목, 인간적인 스케일이 반영된 건축, 인간의 손맛이 느껴지는 건축”이라고 평한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의 한 복판에서 설계된 것이 공간사옥과 내공분실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 인식과 괴리된 추상적인 ‘인간과 자연의 상생’ 혹은 ‘인간과 공간의 어울림’이란 것이 얼마나 끔찍한 건축물로 설계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철문을 열면 두 사람이 겨우 탈 수 있는 1.6×1.8m 너비의 호송용 엘리베이터와 직경 2.5m 가량의 공간에 철제 원형 계단이 나타난다. 눈이 가리워진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몇 층인지 인지할 수도 없는 원형계단을 타고 올라 취조실로 끌려갔다. 너비가 30cm 가량의 가느다란 창들이 전부인, 외부 세계와 격리된 5층의 유배지로 끌러갔던 것이다. 어두컴컴한 계단의 위쪽을 플래시를 켜고 사진에 담아 본다. 고성의 첨탑으로 오르는 길에 놓여있을 법한 원형 부채 모양으로 펼쳐진 발판들의 조형미가 놀랍다. 끔찍한 정도로 아름다워서 더 불쾌하다. 철판을 밟는 발걸음 소리가 음산하게 울리는 좁고 불편한 원형계단을 오른다. 내 몸뚱아리가 뱀이 되어 기둥을 감고 오르는 듯한 환상에 빠져 발이 꼬인다. 연행되어 끌려온 이들에게 심미적으로 설계된 이 길은 고문의 지옥행이자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욕지기가 치민다.

나선형 계단으로도 불리는 원형계단은 권력의 상징이자 건축가들에게는 공간에 미학적 아름다움을 넣어주는 매혹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비밀의 다락방으로 통하는 길에 낭만적인 동선을 제공했을 법한 원형 계단도 어느 곳에 어떤 의도로 설치되는가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다. 대공분실 우측 뒷면에 설치된 원형 계단은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밀폐감과 억눌림을 느끼게 하여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공간사옥에 대한 비평에서 곧잘 등장하는 이른바 ‘전이공간’의 역할을 대공분실에서는 원형 계단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계단을 오를수록 바깥세상과의 단절감은 커지고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 감각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공간 사옥에도 중2층과 2층, 3층을 잇는 반경 1m도 되지 않는 좁은 원형 계단이 있다. 계단실 앞에 설치된 문 때문에 사람들은 통로를 잘 인식할 수 없고, 계단을 오르다보면 내가 몇 층에 있는지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현재는 ‘아라리오 뮤지움’이라는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으나 원형 계단과 각 실의 구조는 예전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원형계단은 응접실, 회의실이 있던 1~2층과 설계실, 소장실, 자료실이 있던 3~4층을 분리하는 기능을 한다. 요컨대 설계와 관련되는 작업 공간, 즉 본질적인 공간을 원형계단으로 완벽하게 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간 분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도 포착된다.

1~4층이 평범한 인간의 공간인 사무 공간인데 반해 5층은 극악한 짐승의 공간인 고문의 공간이다. 그리고 1층에서 5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원형계단은 이들을 명확하게 분리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 건물에는 비상계단(비상계단으로 추정되는 서쪽 끝 75° 경사의 가파른 계단)을 포함하여 총 3개의 계단과 2개의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한다. 보통의 빌딩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형태의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일반 직원이나 수사관이 사용했고, 분리된 두 공간을 오가기 위해서는 조사실 입구로 위장된 출입문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짐승의 공간에서 인간의 공간으로 건너가려면 조사실 입구로 위장된 출입문을 제대로 찾아 열어야만 비로소 이 연결 통로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의 공간과 인권 학습장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서 벌어졌던 고 김근태 의원에 대한 22일 간의 모진 고문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장준환 감독의 <1987>은 1987년 박종철 물고문 치사가 일어났던 바로 이곳 509호를 담고 있다. 2018년 현재 남영동 대공분실은 509호만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황색 타일과 진회색 대리석 욕조, 흰색 세면대, 볼트로 바닥에 고정해놓은 심문용 철제 책상과 의자, 침대가 4.09평의 공간에 놓여 있다. 물고문과 심문을 고려하여 절묘하게 기능적으로 배치해 놓은 꼴이며 고가의 수입 재료 사용까지 설계자는 주문자의 요구에 딱 맞는, 고문과 감금, 취조에 최적화된 공간을 구축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침대보와 꽃무늬 이불 때문인지 509호는 내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밝고 정갈하다.

키 170㎝의 박종철이 팬티만 걸친 채 물에 흠뻑 젖은 시체가 되어 눕혀져 있던 그 침대가 지금은 따뜻한 덮개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19년 만에 이곳을 찾은 오○○ 의사가 원형이 보존된 것이 맞냐고 반문했던 것을 보면 일반인에게 노출되기 전에 이미 이곳은 어느 정도 재가공된 것 같다. 현재는 박종철 열사의 영정 사진과 조문 국화, 서울대 언어학과 동문회 깃발 등이 꽉 채워진 공간을 다시 투명 유리가 막고 있다. 2013년에 509호실로 깊숙이 들어가 두려움과 분노에 떨며 욕조와 샤워기를 보고 세면대 옆에 있는 창에 기대서서 밖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추모의 공간으로 박제되어 버린 509호를 쇼윈도우 너머로 보는 꼴이 영 마뜩잖지만 이렇게나마 보존된 것이 다행이다 싶다.

5층 조사실의 출입구는 맞은편 방과 서로 어긋나게 배치되어 감금된 이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각 방에는 천장과 벽에 흡음판을 설치하여 소리를 차단한다, 시방서(공사 순서를 적은 문서)의 조치대로 스프링 소켓을 사용한 형광등은 철망 덮개로 가리고, 심문대 위 백열등은 밖은 은회색, 안은 흰색으로 칠해진 갓에 씌워져 있다. 이 공간은 출입문 밖에 설치된 조도조절기로 취조당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감정까지 조종하고, 출입문 위에 부착된 '소화가스방출중‘이라는 표지로 고문 작업 중임을 표시하고 있다

각 방마다 출입구 쪽 천장 모서리에는 검은색 유리판이 비스듬하게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뒷면에 설치한 CCTV로 중앙의 권력자는 16개 조사실의 모습을 동시에 감시하고 분석하며 선두 지휘한다. 끌려온 이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들이 끔찍하다. 서쪽 끝에 있는 515호는 전기고문 도구인 칠성판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복도와 문들을 산뜻하게 도색하고 세면대와 변기를 제외한 일체의 물품들을 다 치워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취조실 바닥마다 일정한 위치에 남아있는 못자국은 냉혹하고 질서정연하게 저질러진 고문의 역사를 그대로 증거하고 있다.

나는 이 생생한 고문의 현장들이 더 이상 훼손되거나 순화되지 않고, 제대로 복원되어 기억과 역사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야만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유치원생에게도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는 독일처럼 우리도 잔혹한 역사를 알고 성찰하게 하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아이들의 정서와 발달수준을 고려한 학습과 활동들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1987> 이후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에게 돌려달라는 운동이 일고 있다. 대공분실 건물 앞에 펼쳐진 테니스장이 시민들의 인권 토론장으로 열리는 것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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