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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현장에서] 기간제교사의 겨울

2018.04.06 22:12

희동 조회 수:195

기간제 교사의 겨울

 

기간제 교사 강서희 (가명)

 

 

1.

 

매년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다가오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희박해져 점점 숨이 가빠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장 몇 달 뒤에 나는 어떤 학교에 있게 될지 모른다. 올해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곳에 있을 수 있었다. 갑질을 하는 교감이나 일을 닥치는 대로 떠넘기는 무능한 부장이 없고 편도 한 시간 정도 거리였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던 셈이다. 그러나 당장 몇 달 뒤에 나는 어디에 있게 될까? 공립일까? 사립일까? 이상한 부장이나 갑질 심한 교감이 있으면 어쩌지. 편도 한 시간 반 걸리는 먼 학교면 어쩌지. 아니 그조차도 못 구해서 일을 못하게 되면 어쩌지. 3월이 되었는데도 방구석에서 노트북으로 구직란만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6개월, 아니 3개월짜리 자리라도 불러주면 다행이라고, 그러고 있으면 어쩌지. 불확실성은 기간제 교사를 가장 옥죄는 고통이다.

 

일단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 전 교감 선생님께 가서 인력풀에 올려달라는 부탁을 해야 한다. 인력풀은 해당 시나 도의 교감들이 본인 학교에서 일했던 기간제 교사 중 ‘만족’스럽게 일했던 사람을 ‘추천’하는 사이트이다. 교감들은 이 사이트에 접속하여 ‘구인’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여기에 올라가지 못하는 기간제 교사들은 결과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는 기간제 교사들이 교감 앞에서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어렵게 말을 꺼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올려주지 못하겠다는 교감도 가끔 있다고 한다. 운 좋게 지금까지 그런 교감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말할 때마다 겸연쩍고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겨울방학 동안은 사립 공고가 많이 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교육청 사이트 구인란에서 공고를 확인한다. 비슷비슷한 것처럼 보이나 모두 다른 양식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고쳐서 이메일로 원서를 접수한다. 도대체 왜 양식을 통일하지 않는 걸까? 제각각 다른 양식에 맞춰 이력서를 수정하려면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루 종일 교육청 사이트 구인란을 ‘새로 고침’ 하며 원서를 쓴다. 오후가 지나고 저녁 시간이 다가오니 하도 모니터만 들여다봐서인지 구토가 치밀어 오른다.

이메일 접수는 그나마 다행이다. 무조건 행정실로 직접 원서를 가져가야 하는 곳도 많다. 직접 접수만 받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평균 100명이 넘는 구직자가 몰리는 우리 과의 경우, 100분의 1의 확률을 바라보고 이 눈 오는 겨울에, 버스를 타고 빙판길을 걸어 학교까지 와서 원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심한 곳은 자필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A4 두 장에 달하는 자기소개서를 자필로 쓰려면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린다. 무슨 악취미일까? 타인의 고통과 고생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매년 그렇게 해왔기에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걸까? 경력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학교까지 내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앞으로 더 나이를 먹으면 거꾸로 이런 학교에 다시 원서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원서를 쓰는 시간은 모멸감을 견디는 시간이다. 학력, 경력, 맡았던 업무, 자기소개서의 가정 환경, 성장 배경, 지원 동기 등등. 짧지 않았던 인생이 펼쳐진다. 쓰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일생을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닐까. 어쩌다 평생을 이렇게 누군가의 선택을 간절히 기다리며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렸을까. 나는 그냥 인생 패배자, 실패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닐까. 어째서 이렇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나의 잘못이 있다면 임용 고사에서 소수점 차이로 떨어진 것이고 계속 시험 준비만 할 수 없는 가정 형편 때문에 기간제 교사를 시작한 것이며, 포기할 수 없어 일하면서 공부하였으나 결국 처음보다 더 많은 점수 차이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도 그보다 더 노력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 기간엔 친한 동료 기간제 교사들 사이에서 우울증을 호소하거나 정신과 상담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이대로 살다가는 몇 년 뒤에 자살하게 될 것 같아요.” 두 명의 선생님들에게 똑같은 말을 들었다.

공고가 나는 대로 원서를 썼지만 기이할 정도로 연락이 없다.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도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1월은 사립 공고, 2월은 공립 공고가 나는데 그렇게 1월을 보내버렸다. 집에서 가까운 괜찮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멀고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은 곳에서조차 연락이 없었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사립은 거의 부리기 쉬운 젊은 사람을 선호한다는데 이제 더 이상 30대 초반이 아닌 내 나이 때문인 것일까? 2월이 되니 이제 초조했다. 밤에 자다가 깨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심장이 너무 빠른 속도로 뛰고 식은땀이 난다.

개학을 했다. 개학 후 3일째 되는 날, 우리 지역 공립 발령이 난다고 한다. 본격적인 기간제 교사의 공립 학교 구직이 시작되는 것이다. 워낙 많은 구직자들이 몰리다보니 단 시간 내에 원서를 접수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젠 전투적으로 원서를 썼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공고를 확인하고 원서도 쓴다. 혹시 내 뒷자리로 학생이나 다른 교사가 지나갈까봐 식은땀이 흐른다. 일하라고 준 학교 PC로 응시 원서를 쓰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혹시 학생이 보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해. 너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해주었던 담임샘이 사실은 당장 몇 달 뒤에 백수가 될 지도 모르는 처지였단다. 상담을 하면서도 어찌나 자괴감이 들던지. 이런 걸 보면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을 맡기는 것 자체가 너무 잔인한 일 아닐까.”

 

 

2.

이 시기, 기간제 교사들은 휴대폰에 매우 예민해진다.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올까봐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을 가져간다. 전화가 올 때마다 절박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나 대부분 보험 가입 권유나 택배와 관련된 전화이다. 실망을 거듭하며 언제 이 지겨운 악몽이 끝날까, 2월 중순, 심지어 말까지 계속 끌게 될까 생각하니 끔찍하다.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전화벨이 울린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교감의 목소리가 마치 구세주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연락이 온 사립 학교에 도착했다. 전형은 필기 시험 - 수업 계획안 작성 및 제출 - 수업 시연 -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필기 시험과 수업 계획안 작성이 끝난 후 수업 시연을 하러 들어갔다. 여러 명의 전공 교사 중 25살 정도로 보이는 교사가 앉아 있다. 10년 간 늘 해오던 수업을 어쩌면 1년도 채 안되는 경력을 가졌을 정교사 앞에서 되풀이한다. 검증받기 위해. 저 사람은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 사립 정교사가 되었을까.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그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다. 그 다음은 면접. 갑자기 자리가 나서 급구 공고를 냈는데 걱정과는 달리 원서가 너무 많이 몰려 당황했다는 말을 꺼내며 교감은 어떤 업무가 주어지든 다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어떤 일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담임도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역시 질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정교사들의 몇 배에 달하는 기피 업무를 담임까지 맡으며 하더라도 백수가 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집에 와서 몇 시간이 지나도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다시 원서를 써야 하는 건가, 낙담할 때쯤 전화벨이 울린다. 올 해 같이 일하게 되었다고, 다음 주에 전체 교직원 회의가 있으니 나와 달라고. 나는 절이라도 할 듯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를 반복한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숨이 쉬어진다. 바다의 밑바닥에서 수면 위로 올라온 느낌, 겨우 숨을 쉬게 된 느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로 1년을 더 연명하게 되었다는 안도감, 이를테면 1년 간 숨 쉴 공기를 미리 확보해두었다는. 한편으로 언제까지 불확실성에 내 인생과 생계를 맡겨야 하는가 하는 불안과 근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선은 기분이 좋다.

원서 쓴 학교를 세어보니 100군데가 넘었다. 취업준비생들이 원서 100통을 써도 취업이 안된다며 좌절한다는데 우리는 이걸 매년 해야 한다. 어째서 우린 매년 이렇게 발버둥 치듯, 몸부림치듯 절박하게 자리를 구해야 하는 걸까. 1년 중 가장 어둡고 축축하고 고통스러운 시기가 이렇게 지나간다.

 

 

3.

위 내용은 1년 전의 일기이다. 지금 읽어보니 저 때는 저렇게 원서 쓸 곳이 많았으니 그나마 살 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 해는 하루 종일 교육청 사이트의 구인란을 들여다보며 ‘새로 고침’을 여러 번 눌러도 화면이 별로 바뀌지 않을 정도로 공고가 줄었다. 안 그래도 구직 경쟁이 치열한 내 과목인데 체감 상 자리가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하루 종일 올라오는 공고 수가 작년에 한 시간 동안 올라오던 공고 수보다 적다. 몇 시간 만에 새로 고침을 눌렀는데 몇 시간 전 확인한 마지막 학교 공고 이후로 아무 것도 안 올라온 것을 확인했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섬찟한 느낌을 누가 알까. 대기근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거군. 21세기에 보릿고개가 어떤 건지 이렇게나 명확하게 이해가 간다니. 그나마의 공고도 대부분은 6개월짜리거나 심지어 여름 방학 직전까지인 5개월짜리 쪼개기 계약 자리가 대부분이다. 본인 사정에 의해 편리하게 일은 쉬면서 방중 월급을 챙기겠다는 정교사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계약 기간이다. 처음 기간제 교사를 시작하던 10년 전에는 그래도 1년짜리 계약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젠 1년짜리 계약을 찾기가 힘들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내리막길이 생각보다 가파르다.

항간에는 기간제 교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니 아예 경력 많은 기간제 교사를 재고용하지 말라는 교감끼리의 담합이 있었다는 말, 신규 교사들을 대거 발령 내서 미발령 자리를 아예 없애버리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말이 들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야비하지 않은가? 기간제 교사 제도의 부당함을 호소하니 그럼 너희를 다 없애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답하는 셈 아닌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출발한 정부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심한 분노와 배신감이 든다.

 

그래, 이 모든 것이 임용 시험에 합격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고? 그렇다면 정부의 잘못은 없는 건가?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교사 자격증을 남발하여 임용 고사 경쟁률을 높이고 3년, 5년 공부해도 합격할 수 없는 시험을 만들어버린 책임은 없는 건가? 현재 학급 당 학생 수가 OECD 국가 평균 학급 당 학생 수를 훨씬 선회하는데도 거꾸로 학급 수를 줄이며 교육 예산 절감에만 목을 메는 교육부는? 교육 과정을 수시로 바꾸고, 학생 수 감축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기간제 교사를 전체 인원의 10퍼센트 이상이 되도록 양산한 정부는? 왜 그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가?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할 때이다. 부당함을 호소하는 기간제 교사의 목소리에 ‘기간제 교사 자연 소멸’로 응답하는 비열한 처사를 멈추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외쳤던 처음의 그 목소리를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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