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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현장에서] 점 선이 그리는 마법

2018.04.06 22:10

희동 조회 수:132

점. 선이 그리는 마법

강수정(진보교육연구소회원)

 

 

“이유는 없어. 그냥 네가 항상 그 남자애 이야기를 하잖니.”

“제가요? 모르겠어요. 아마, 걔 눈에 있는 어떤 것 때문인가 봐요. 아님, 미소 때문이던가요.”

“걔 자체는 어떠니? 항상 풍경 전체를 봐야 한단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림은 단지 부분이 합쳐진 게 아니란다. 소는 그냥 소이고, 초원은 그냥 풀과 꽃이고, 나무들을 가로지르는 태양은 그냥 한줌의 빛이지만 그걸 모두 한 번에 같이 모은다면 마법이 벌어진단다.”

-영화 <플립, flipped!> 중에서.

 

 

사진촬영으로 난장을 틀다.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모두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 이어서 애국가 제창, 애국가는 1절만... 두 가슴에 손을... 입학 선서... 이어서 부장교사 소개... 이어서 담임소개... 이어서 교장선생님 말씀... 이어서... 이어서... 이어서...이어서... 그럼, 이것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학교와 학교 언저리를 맴도는 이 오래된 유령의 정체는 뭐니?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나 반백년이 지난 지금이나 1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일제의 잔존이라니 뭐니 궁색한 변명은 노노! 그러기엔 학교 바깥은 LTE 속도로 내달음치고 있다. 느리게 가려면 고색창연하든가? 이거는 거의 허접한 군사훈련 모드다. 씁쓸하고 부끄럽다...

아이들을 이끌고 교실로 들어갔다. 추위에 떨면서 창문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도 들어오라고 했다. 어색함으로 다들 얼음땡이다. 난장트기를 해야겠다싶어 기념촬영을 하라고 했더니 아이가 앉아있는 자리로 가서 얼굴을 맞대고 얼짱각도 맞추면서 촬영하느라 분주하다. 신나라하면서 사진을 찍는 부모들 얼굴이 아이들보다 더 상기된 것 같다. 기왕지사 전체 촬영도 하자 싶어 아이들은 모두 나오라고 해서 교탁을 중심으로 포즈를 잡게 했더니만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나에게 꽃을 던진다. 할머니 센스 짱!^^ 촬영 세레모니가 거의 마무리되자 모두 긴장이 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편안해졌다. 학부모님들끼리도 서로 인사를 나누라고 하고 이어서!! 간단한 담임 소개를 시작으로 ‘버스킹’에 들어갔다. 학부모들과 아이들을 양쪽으로 번갈아 바라보면서.

 

‘해마다 담임을 하면서 “올해는 잘해봐야지...” 라고 다짐하지만 늘 후회한다. 늘 부족하고 늘 실패한다. 그러나 또 도전장을 내밀었다. 또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실패를 꿈꾼다. 아이들도 나도 많은 실패를 할 꺼다. 실패가 두려워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실패를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면서 함께 성장하겠다. 우리반은 모둠활동을 많이 한다. 모둠을 편성하고, 모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모둠일기를 쓰고, 모둠일기로 학급문집도 만들고, 모둠이 중심이 되어 학급헌법이나 규칙도 만들고, 학급야영이나 체험활동을 진행한다. 회장부회장 선거도 정책토론회를 통해 선출된다. 그래서 3월 종례가 길다~(실은, 이것이 장구한 이야기의 결론이다ㅋㅋ)’ 땅땅!!

 

정책토론회로 꿩 먹고 알 먹기

입학한 지 8일째. 아이들이 이름도 모르는데 회장·부회장을 뽑으랍신다~ 해마다 선거일을 늦추라고 좋은(!) 말로 하는데도 마이동풍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시는지... 뭐...늦춰보려고 했더니만 곧 학부모총회가 잡혀 있어 연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학생이 회장·부회장인 거 하고 학부모총회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그들은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그들을 이해하기엔 너무 에너지 소모가 심하게 예상되는 관계로! 우리반 아이들의 홱갈림 방지와 은밀한 동지애를 위해 선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독자노선을 선언했다. 선관위를 구성, 추천서 만들기, 3회의 정책토론회, 선거공지 등등 울반 만의 특별한 선거일정을 짰다. 처음에 회장·부회장에 각각 한 명씩 출마해서 정책토론회가 날아갈 뻔~ ‘일년을 설계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중요한 일’이란 것을 설명했더니 서로 출마하겠다고 난리가 났다. 2학기 회장 출마자까지 덤으로 확보!하고 각각 두 명씩 출마해서 찰지게 정책토론을 했다. 1차는 후보추천인과 후보가 함께 하는 소개 이벤트, 2차는 플로어 질의를 가지고 후보간 토론과 쟁점토론, 3차는 토론회를 거친 결과를 가지고 ‘학급운영의 大청사진’을 펼치는 막판 시스템 토론회로 진행되었다. 도발적인 질문과 은근한 디스,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발언발언발언! 아이들이 색깔이 무지개처럼 빛나는 유쾌․통쾌.발랄.상큼.의 한판 신명난 라이브쇼였다. 토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시스템’이다. 단순히 후보를 디스하거나 개별적인 사안에 임시웅변으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학급(정신)을 만들 거냐’에 집중하도록 손발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토론맛을 좀 알았는지 반톡에서도 학급일을 수시로 토론을 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종례를 안 하겠다는 일념으로 반톡에서 의견을 수렴해서 학급규칙과 벌칙을 만들었단다. ‘생일잔치 벌금 200원 3회 안 내면 생일날에 선물 못 받는다’는 항목도 있다. 벌금 200원. ㅋㅋ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못했을 녀석이다. 순산이다.

 

“혹시... 8반 영주권 좀 딸 수 없나요?”

점심시간에 옆 반 녀석이 우리반에 들어 오더니 정중하게 묻는다. 영주권을 딸 수 없으면 점심시간이라도 영주권을 인정해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옆에 있던 우리반 아이들이 ‘우리는 시민권이 있지’하면서 으쓱댄다. 핸폰 때문이다. 영어시간에 ‘favorite’이라는 단어를 공부할 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수가 ‘핸폰’이라고 말한다. 우리 세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라도 이미 핸폰은 그들의 숨구멍이고 어쩌면 자기 자신이다. 심지어 할 말이 있다면서, 쌤 얼굴보면서 말하면 부끄럽다고 문자를 써서 보여주는 녀석도 있다. 디지털세대에게 핸폰은 상상 그 이상으로 소중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도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 순간 교사와 아이들의 거리는 까마득하게 멀어진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와 교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할 것이며, 그런 아이들이 만들어 갈 세상은 또 어떨까? 두렵다. ‘우리학교는 핸폰을 걷는다’는 현실을 알려주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선배들에게 담임에 관한 정보를 빠삭하게 파악한 녀석들이라 걷지 않는다에 100퍼 찬성! 핸폰에 대한 담임의 입장을 밝히면서 자기 물건에 대한 결정권과 ‘물레에 찔려 잠이 든 공주’ 이야기를 했다.

 

‘물레에 찔려 죽을 거라는 마녀의 저주 때문에 궁궐 안에 있는 모든 물레를 없애버려서 물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공주가 처음 보는 물레가 신기해 만지다가 결국 잠이 들었다는 몹쓸 이야기. 아니, 죽는다는데? 물레 때문에 죽는다는데? 적어도 어떻게 생긴 건지 알려주고 제대로 피하게 해야지, 아예 없애고 접근 금지? 처음부터 어긋나니 설치고, 말하고, 노래해야할 말짱한 니네 같은 아이를 잠만 자는 금치산자로 만들어 놓고 백마 탄 왕자나 기다리게 하는 거다.’ 살짝 살짝 페미니즘 교육도 곁들이며. 아이들에게서 핸폰을 거두지 않으면 아이들과 나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생기고 그럴 때 마다 우리는 한 발짝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동생편만 드는 세상’을 무슨 세상?

아이들 하나를 보지 않고 학급이란 덩어리로 인식되는 우리네 학교 풍토에서 아이들 하나하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대를 갖기란 쉽지 않다. 공부를 잘하거나 말썽을 부리지 않는 이상. 그래서 아이들 모두를 ‘그 날’의 주인공으로 자연스런 무대에 올리는 것이 생일잔치인데, 교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3월 생일잔치가 시작됐다. 생일선물은 생일인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받으면 좋을지를 물어 봤더니 과자를 사달라고 해서 원하는 과자 목록을 또 물어 봤단다. 좋아하는 과자들을 지퍼봉투에 골고루 넣어 축하메시지가 들어있는 롱링페이퍼를 선물하고, 모두 무대로 나와 한 마디씩 소원을 말하면서 초코파이 생일케잌에 촛불을 끄는 의식을 진행했다. 기특기특. 이어서 아이돌 맞추기 프리젠테이션게임을 하는데 준비도 준비지만 내용과 진행이 왕 웃김. 아이돌 문제 사이사이에 넌센스 퀴즈를 넣고 모둠별로 앉아 맞추는 방식인데 첫 문제부터 서로 맞히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먼저 손 들었다고 난리법석을 떨어서 운 좋게 선정되어 정답을 맞췄는데! 글쎄 첫 문제는 연습게임이라는 거임. 그 순간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빵빵 터짐. 넌센스 문제 중에 ‘동생편만 드는 세상’을 무슨 세상이게?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정답은~~~~ 바로! ‘형편없는 세상’이다.ㅋㅋ 근데, 이걸 맞추는 건 또 뭐니? 게다가 여러 모둠이 한꺼번에 정답을 맞추는 대란이 벌어졌는데 진행하는 녀석의 유연함 좀 보소! “애들아, 모두 정답인데 세 팀이 맞혔거든. 그래서 이 문제는 3점짜리인데 내가 공평하게 각팀에 1점씩 줄게. 어때, 괜찮니?” 저런 센스 넘치는 녀석들은 가르친다고 쌩 애를 썼으니... 끙~ 종례를 좀 줄여겠다는 다짐을 함.

 

모두 한 번에 같이 모이면 마법이 된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내가? 우리아이가? 왕따가 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다. 가족 관계가 단순화되고, 부모가 학습 계획에 친구까지 점지하는 터라 ‘관계의 기술’이 생길 여지가 없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마을’은 구호밖에 없다. 왕따가 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입학 초에 이루어진다. 왕따가 되지 않으려고 서둘러 과도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짝짓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짝을 못 찾은 아이들은 스스로 아이들이 자기를 왕따를 시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게다가 교사의 손이 닳지 않는 ‘교사에게는 멀고 아이들에게는 가까운’ 디지털의 세상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학기 초에 소통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끊임없이 기획하고, 아이들의 얼굴을 깨알같이 살피면서 관계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엄청난 힘을 준다. 면담? 이런 거 필요없다!! 교사의 시선이 아이를 살린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도시락을 싸와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날이 달라지는 아이들의 자리이동을 지켜보는 재미가 흐뭇하기까지 하다. 처음에 한 명씩 자기 자리에서 먹다가 어느 틈에 커다란 몇 개의 책상을 붙여서 군집을 이루면서 밥을 먹는데 그때 보여주는 ‘관계의 생태계’는 아이들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해하고 치유하는 자료가 된다. 날마다 커지고 늘어나는 식탁의 풍경은 한 명 한 명의 합은 단순한 합이 아니라 모두 한 번에 같이 모이면서 아름다운 ‘마법’이 된다!

 

어릴 때 뭣도 모르고 화구 박스와 이젤을 들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어린 날의 치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ㅋㅋ 대학에 가서도,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친구가 다니는 미대를 기웃거렸다. 언젠가는 그림을 그리리라는 희망 비스무리한 것을 놓지 않고.

그래서 교사가 되었나보다! 하나의 점처럼 흩어진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의 아이들이 서로 손을 내밀어 선을 만들고, 때론,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꺾여진 굴곡을 이루면, 그 굴곡이 그리는 마법같은 그림을 그리는 교사. 다만, 내가 잡고 있는 붓은 나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여럿이 그리는 붓이다. 지금도 붓끝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올 해는 또 어떤 마법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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