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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기고] ‘경기동부’ 파동과 전교조

2012.10.15 15:19

진보교육 조회 수:771

[기고]

‘경기동부’ 파동 그리고 전교조

송원재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최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불거진 ‘경기동부’ 파동이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든 느낌이다. 당 혁신을 추진하던 신당권파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분리독립을 선언했고, 구당권파는 누가 뭐라든 제 길을 갈 모양이다. 구 당권파만 남은 통합진보당은 ‘경기동부당’으로 전락했고, ‘신자유주의 좌파’와의 정략적 실험은 시운전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무기한 연기됐다.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도 물 건너갔고, ‘진보진영 독자후보’ 전술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통진당도 통진당이지만, 더 뼈아픈 것은 그 괴정에서 ‘경기동부’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가 도매금으로 매도당한 것이다. 수구언론은 거의 매일 특집기사를 쏟아내며 ‘경기동부 흠집내기’에 나섰고, 나아가 이것을 진보진영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시켜 도덕성에  타격을 가했다. 진보진영은 정치적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고, 언제 헤어날 지 가늠조차 안 되는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은밀한 권력’을 휘두르던 ‘경기동부’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냄으로써 공개적 검증의 계기를 만든 것이 그나마 유일한 성과였다고나 할까?
여기서 새삼 그들의 노선과 전략을 문제 삼고 싶진 않다. ‘민족해방’이든 ‘민중해방’이든 생각이 다르면 토론과 설득을 해야지 비난을 퍼부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와 운동적 대의마저 무시해 가면서까지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려 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요컨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입장을 관철하는 ‘방식’의 문제, 다시 말하자면 진보운동 세력이 공유해야 할 ‘게임의 기본규칙’에 대한 것이다. 물론 “민주적 절차는 헤게모니를 관철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라고 한다면 더 할 말 없다. 이런 지적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전교조 출신 비례대표 정진후 의원의 처신을 둘러싸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통진당 사태가 전교조 내에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참으로 뜬금없는 일이다. 사실 정진후 전위원장이 느닷없이 통진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대의원대회나 중앙집행위원회 같은 공식단위에서 아무런 논의도 없었던 데다가, 전교조 내 어느 누구도 정 전위원장을 통진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추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통진당에 확인해 본 결과, 이정희 대표가 자기의 ‘몫’으로 정 전위원장을 지명하며 민주노총에 추천을 요구했고, 민주노총으로부터 이를 전달받은 전교조 본부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승인을 받고자 했으나 강한 내부반발이 있었고, 결국 본부의 임명직 임원들을 중심으로 상임집행위를 열어 이를 추인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명색이 교육부문을 대표한다는 진보정당의 비례대표 의원을, 교육부문 최대 대중조직인 전교조 내에서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당 대표가 자기의 ‘몫’으로 정 전위원장을 추천했고, 전교조는 집행부 차원에서 서둘러 이를 승인해 준 꼴이다. 게다가 정 전위원장은 민주노총 성폭력사건 당시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으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의심까지 받는 인물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파행을 거쳐 꼴사납게 국회에 입성한 정진후 의원은 막상 통진당 파동이 터지자 무슨 이유에선지 구당권파와 거리를 두면서 신당권파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동기가 정치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양심과 소신의 발로였는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뒤 정 의원에 대한 구당권파의 시선이 날이 갈수록 차가워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급기야 신당권파 의원들이 통진당을 줄줄이 탈당하기 시작하면서 정 의원 역시 ‘스스로 제명’ 형식을 빌어 이 대열에 합류했고, 이를 지켜보던 전교조는 9월 7일, “전교조 위원장 출신 정진후 의원이 통진당에 남아 민주노총의 요구를 실현시키겠다는 입장을 번복해 탈당을 선언했다.”며, “이는 전적으로 정의원 개인의 결정”으로 “논란이 많은 이른 바 ‘스스로 제명’이라는 절차를 통해 정치적 진로를 선택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전교조 본부가 정 의원과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전교조의 이 논평은 간단하지만, 뜯어보면 볼수록 정파적이다. 민주노총이 통진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민주노총 출신 의원들의 통진당에 대한 ‘정치적 의무’가 해소됐는데도, 정 의원에 대해서만은 “통진당에 남아 민주노총의 요구를 실현시키겠다는 입장을 번복”했다는 식으로 적반하장의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정진후 당신만은 통진당에 남아야지, 왜 멋대로 행동해?” 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는 결국 전교조 본부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철회’ 결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에 동조한 정 의원을 ‘배신자’로 낙인찍음과 동시에, 구당권파에게 정 의원의 자진탈당이 전교조 본부 집행부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정이 이러니 전교조 본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전교조가 경기동부의 구사대냐?”, “전교조가 구 당권파의 하부조직인 줄 처음 알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전혀 논의한 바도 없고, 추천한 적도 없는 인물을 ‘전교조 대표’로 들이대는 것도 난감하지만, 그 의원이 자신들의 방침에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전교조 대표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 모든 사태를 모순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즉 전교조가 통진당 구당권파의 하부조직일 때뿐이다. 실제로 이 보도자료를 작성한 전교조 본부 집행부는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전교조 본부는 이 보도자료를 평상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보도자료가 나오면 가장 먼저 게시판에 올리고, 교육부 기자실과 중앙 언론사로 팩스를 날린 다음,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도자료의 골자를 알리고, 메일로 보도자료와 해설을 보낸다. 그 뒤 친분관계가 있는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이 보도자료는 본부 게시판에만 잠깐 올렸다 내렸을 뿐, 나머지 다른 절차와 과정은 모두 생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직 딱 한 군데, 통진당 구 당권파의 ‘기관지’로 불리는 ‘민중의 소리’에만 기사화되었을 뿐, 많은 언론사에서는 그런 보도자료가 나왔다는 사실조차 아예 모르고 있었다. 결국 이 보도자료는 처음부터 언론 보도보다 ‘통진당 관계자’들을 더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지난 파동에서 드러난 ‘경기동부’의 이런 극단적 정파주의의 행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그들의 패권주의적 행태는 일찍이 과거 민주노동당 당권장악 과정에서도 무수히 입질에 오르내렸고, 민주노동당 분당 때도 ‘종북주의’와 함께 분당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많은 활동가들이 ‘경기동부’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유감스럽게도 전교조의 현 집행부 역시 이런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교조의 웬만한 활동가라면 이미 알고 있듯이, 현 집행부는 경기-인천-광주-전남-경남지역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특정정파들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장 선거 때마다 이 지역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묻지 마 몰표’ 현상도 결코 이와 무관치 않다. 오죽하면 “한 지역에서 80% 이상 몰표가 나오면 모두 무효처리 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겠는가?
그들은 전교조 창립 이래 딱 3년을 제외한 모든 기간에 걸쳐 전교조 본부를 장악하고, 전교조 바깥의 특정 정파와 호흡을 맞추며 결정적 고비마다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민주대연합의 깃발 아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의식적으로 방기했으며, 거의 모든 조직역량을 통일사업에 집중 투입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정권교체’ 구호를 앞세워 교원평가-일제고사-성과급 등 주요 현안사업을 철저히 방치했다. 그 결과, 지금 전교조의 실핏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학교단위 분회는 활동력을 대부분 상실했고, 조합원들은 방관자로 나앉아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
현실로 존재하는 정파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역기능 못지않게 순기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파의 입장을 대중조직에 반영하고 관철하는 방식이 대중조직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훼손하는 것이 되어선 결코 안 된다. 활동가들은 대중조직 속에서 자신이 속한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권리가 있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중조직의 민주적 절차와 자주성을 훼손할 권리까지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대중조직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당의정이 아니다. 아쉬울 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갖다 쓰고, 용도가 다하면 한순간에 낙인을 찍어 내다버리는 산업폐기물은 더더욱 아니다. 대중조직은 대중조직으로서의 원칙과 기준이 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민중적 민주주의를 배우고 익힌다.
‘경기동부’ 혹은 통진당 구당권파가 가장 잘못했고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중조직을 자신의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단으로 대상화하고, 스위치만 누르면 원하는 결과를 산출해 주는 ‘자동판매기’나 ‘거수기’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파라면, 앙상하게 뼈만 남은 대중조직의 골수까지 파먹을 궁리부터 할 게 아니라, 대중조직의 원칙과 절차를 존중하고 풍성하게 살을 붙일 고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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