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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맞짱칼럼] 나는 ‘갑’이다

2011.10.12 12:10

진보교육 조회 수:875

나는 ‘갑’이다
-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주권자의 권리 찾기 -

송원재/서울고척고

오십 평생 살아오면서 나는 ‘갑’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을’이었고 교직에 처음 발령받을 때도 ‘을’이었다. 자동차 보험에 가입할 때도 휴대폰을 새로 살 때도 ‘을’이었다. 심지어 그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도 나는 늘 ‘을’이었다. ‘자유와 권리’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항상 따라다녔고,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불이익’이란 게 늘 발목을 잡아당겼다. ‘갑’은 거역할 수 없는 권력이었고 나는 주눅 들린 한 낱 ‘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을 ‘갑’으로 하고 정부를 ‘을’로 하는 계약으로 성립한다. ‘갑’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기 위해 ‘을’에게 권리의 일부를 양도했고, ‘을’은 ‘갑’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권력만을 제한적으로 위임받았다. 계약 이행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국민투표라는 ‘재신임 절차’를 거쳐 ‘재계약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 알고 보니 나는 ‘을’이 아니라 ‘갑’이었던 것이다. 이런 된장!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누구도 이걸 알려주지 않았다니… 가슴 벅찬 발견이었다. 민주주의는 ‘을’에 대한 ‘갑’의 권리 찾기 운동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갑’이면서 스스로 ‘을’이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이, ‘을’인 주제에 ‘갑’의 행세를 해 온 자들에게 대항하는 ‘갑’의 자아회복 운동이다.

유럽에서 ‘갑’의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지금부터 322년 전 영국이다. 의회는 1689년 명예혁명을 일으켜 전횡과 독단을 일삼던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선포했다. 주된 내용은 ‘아무리 국왕이라도 국민의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세금을 매길 수 없다’는 것, ‘국민은 선거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이 문서는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이 되었고, 100년 뒤 아메리카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에 직접 충격파를 안겼다. 처음엔 다소 엉성하고 귀족 중심이었던 자유와 권리의 내용도 한층 더 구체화되고 보편화됐다.

그런데 1930년대 뉴딜정책과 함께 복지국가가 등장하면서 ‘을’의 의무가 하나 더 늘었다. 종래의 수동적인 ‘자유와 평등’ 개념이 한 발 더 적극적으로 ‘행복추구권’으로 확대됨에 따라 ‘광범위한 사회보장’과 ‘완전고용’이 정부의 새로운 책임으로 추가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단순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국민생활의 평온을 보장하고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확대해야 할 책임을 더 떠안게 되었다.
계약이 모호하고 불분명하면 나중에 분쟁이 터지니까 ‘갑을관계’는 분명히 하는 게 좋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분명치 않으면 머슴이 주인 행세를 한다. 지금 이 나라 정부가 하는 짓이 꼭 그 꼴이다. 진보정당에 소액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교사 1,535명을 기소한 것이 그것이다. 유죄로 판결이 나면 형사처벌이 불가피하고 최악의 경우 해직되어 교단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그들이 내건 이유란 고작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서로 모순되는 법령 몇 조항이다. 가장 상위법인 헌법에서는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 놓고 하위법인 교원노조법, 공무원법에서는 ‘일체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아니 된다’니, 이건 다리를 건너가라고 해놓고 뒤에서 폭파하는 짓이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아예 건너가란 말을 하질 말든가… 헌법은 벌써 포장지로 전락해 버렸다.

공무원이나 교사가 공무를 빙자해서 유권자에게 정치선전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건 ‘갑’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지 ‘을’이 주제넘게 나설 일이 아니다. 사랑방마님과 안방마님이 무슨 대화를 나누든 머슴은 신경 끄고 “너나 잘 하세요!” 그렇게 걱정 되면, 선거 때마다 설치고 다니면서 ‘갑’의 판단을 흐리는 ‘을’ 측의 고위 공직자 입부터 단속하는 게 먼저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혼란이 우려된다고? 그건 맞다. 주제넘은 ‘을’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요 모양 요 꼴이다. 이번 사태도 검찰이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켜 혼란과 국제 망신을 자초했다. ‘을’이 충실히 제 자리만 지키면 더 이상 혼란은 없다.

이념갈등, 국론분열이 걱정되니 아직 시기상조라고? 그럼 국론분열 위험이 더 큰 종교의 자유도 ‘유보’하는 건 어떤가? 헌법적으로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마땅하지만, 국민의식이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전 국민을 기독교로 통일하면? 이왕이면 교회도 소망교회로 화끈하게 통일하면? ‘적합한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벌써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그것을 아직도 못 받아들이는 ‘을’이 있을 뿐이다. ‘시기상조’는 사실 그들의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교육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그런 저울이 있으면 당장에라도 교육을 꽁꽁 묶어서 강력본드로 저울에 붙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교육의 당사자인 교사, 학생, 학부모가 모두 사람인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발현되는 특정 정치집단의 의도와 목적이다. ‘교육의 정치중립’은 곧 ‘교육을 지배수단화 하지 말라’는 것이지, ‘교사의 입을 틀어막으라’는 게 아니다. 입을 틀어막는 게 정치중립이라면, 한나라당에 거액을 헌납하고 대놓고 선거운동을 한 교장과 교육관료들의 입은 왜 내버려두는가? 그들의 입은 ‘중립적인 입’이고 교사의 입은 ‘치우친 입’인가? 이건 한쪽 선수는 팔다리를 꽁꽁 묶어놓고 이종 격투기를 하는 꼴이다. 정의와 형평의 문제를 떠나, 만약 이런 코너가 개콘에 올라오면 개콘은 그 날로 문 닫는다. 서초동 법원청사 앞의 정의의 여신이 왜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지, 중립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가 정치활동을 하면 국민과 학부모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맞다. 민주주의란 게 원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시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토론하고 설득당하며 소란스럽게 굴러가는 수레다. 교육에 대해 교사만큼 잘 아는 집단이 또 있는가? 국가행정에 대해 공무원만큼 훤히 꿰뚫고 있는 집단이 있는가? 교사가 교육정책에 대해 말함으로써 ‘갑’에게 판단자료를 제공하고, 공무원이 밀실행정을 감시하고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갑’의 판단을 돕는 게 뭐가 잘못인가? 우리는 그 동안 ‘을’이 ‘갑’에게 해 온 부당한 일들을 널리 알리고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내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을’은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확보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교육을 살리는 지름길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역사발전의 방향과도 부합한다. 지난 7월, 세계 170개 나라 교원단체가 모여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 총회를 열고, 한국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것이 상식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숨 쉴 자유’, ‘잠 잘 권리’처럼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술자리 가십거리로나 화제에 오를 일이다. 그런데 그걸 붙들고 죽자 살자 싸우는 것은 정말이지 역겹고 창피한 일이다.

참고로, 나는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시민후보를 지원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1, 2심 판결로 보면 교단을 떠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이번엔 진보정당에 불법으로 가입해서 당비를 냈다는 혐의로 또 기소되었다. 어느 칼이 먼저 목을 칠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공무원과 무슨 악연이 있어도 단단히 있었나 보다. 나도 이제 좀 글로벌하게 살고 싶다. “‘을’아 ‘을’아, 좀 도와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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