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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현장에서] 그냥 놀고있다

2012.10.15 15:23

진보교육 조회 수:976

[현장에서]
그냥 놀고있다 - 혁신학교에서의 1년 반...

권재호 / 선사고

“ 교육모순의 엑기스인 고등학교에서의 혁신학교는 실현불가능하다. 발을 담그지 않는 것이 났다.”
“초, 중에서는 몰라도 입시로 모든 것이 판가름되는 고등학교에서 혁신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책임을 덮어쓰지 말고 각자 학교에서 우리의 열정을 펴는 것이 낫다.”
“ 설사 혁신학교에서의 작은 성공(?)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는 거시적 논점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 우리가 꿈꾸는 학교는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차근차근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 각자 단위학교에서 오랜 세월동안 노력해 왔지만 변한게 뭐냐? 멍석을 깔아줘도 못 논다면 우리는 언제 참교육이라는 마당에서 교육활동을 펼칠 수가 있나?”
“ 학교가 변해야한다는 논의만 무성했지 언제 우리가 실천적으로 학교를 주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과 시스템을 만들어본 적이 있었나?”

신설 고등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어 참여하느냐에 관해 20여명의 학교활동가들이 모여서 나눈 지역에서의 토론에서 나온 얘기들이었다.  긴 토론의 결론은 나지 않았다.

* 출발
그러나 희망자들이 모였다.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누가 중심이랄 것도 없이 ‘이건 아니야’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개인적 실천을 해 왔던 구성원들이 하나둘 모여 새로운 학교를 위한 준비모임을 구성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고 공감하며 학교라는 얼개를 마련해 나갔다.

중학교 사례는 있었지만 고등학교 사례는 용인의 흥덕고 하나였고, 이 학교는 서울지역에 적용하기에는 조건과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 모든 것은 無에서 출발했다.
아니, 단 한가지 有가 있었다.

‘ 교육활동은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 속에서 결정하며, 합의가 안되면 표결까지 간다.’

1주일에 한번 모여 혁신학교의 철학을 공유하고(구성원들 대다수가 경기도의 혁신학교에서 장황하게 이론화된 것들에 대체로 문외한이었고, 그야말로 교육노동 노가다들이었다.) 학교에서 적용가능한 사례들을 모아나갔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론을 나눌 때는 다들 하품을 했지만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할 때는 눈에서 광채가 났다.

학교건물이 완비되지 않은 먼지구덩이 공사판( 중학교를 리모델링하면서 3월 1일에야 교실모습이 나타났음)에서 학교운영철학, 교육과정, 업무분장, 역할분담, 수업방식, 생활교육, 행정시스템, 학교꾸미기 등의 큰 덩어리에서 학교교가 만들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준비, 교무실 배치, 학급운영 계획 등의 작은 덩치까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고긴 터널을 암중모색했다.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뭘까?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 아닐까?”
“ 학급을 반으로 쪼개자! ”
이렇게 공론화된 것이 ‘복수담임제’였다.(올해 교과부에서 학교폭력 대안으로 우리의 진의를 왜곡하였기에 현재 우리 학교에서 ‘복수담임제’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작은 학급제’라는 명칭으로 시행하고 있음. 용어에서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차이는 ‘복수담임제’는 교사의 책무성을 강조한다면 ‘작은 학급제’는 학급당 인원수 감축이라는 시스템의 변화다!)
준비모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었고 결국 표결까지 가서 결정이 되는 최초의 안건이었다. 교과교실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교실구조를 해체하고, 교과교실 지원금도 포기하고 오히려 2명의 담임 중 1명은 담임수당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학교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교육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교사 한명이 담당하고 있는 학생수가 15명정도라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다. 일대일 밀착상담, 학급에서 돌봄이 필요한 학생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애정, 모둠활동․모둠일기․학습플래너․ 독서지도 등의 학급활동에서 교사 눈을 벗어나는 학생은 없다.

“멋진 교가 한번 만들어보면 어때?”
“형식적인 교훈을 없애는 것이 어때?”
“남녀 혼성반으로 해야만 협력적인 공동체 형성에 유리해!!!”

우리가 함께 얘기한 것들은 모든 것이 현실화되었다.

* 형식적인 행정 중심에서 실질적인 교육 중심으로...
“ ‘부장’이라는 말을 없애자! ‘선생’이라는 호칭이 좋지 않아?”
우리학교에서 ‘부장’은 명목상으로는 있을지라도 내용적으로는 없다. 학급담임에서의 열외(현재 8명의 부장 직함 중에서 담임은 7명)도 없고, 수업에서의 시간수 혜택도 없으며, 동아리도 예외없고, 업무에서 부서내 교사들과 똑같이 자기 고유업무가 있으며, 부장결재 라인도 없앴다.
교장-교감-부장-일반교사라는 위계체계속에서 ‘부장’은 언제나 관료적 지시와 통제의 중간기제로 작용해왔고, 업무의 효율성이란 명목으로 학교교육을 행정중심으로 편도되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었다.
작년 초 첫 번째 업무회의(‘간부회의’라며 교장, 교감, 행정실장, 부장들이 1주일에 한번씩 회의를 하는 것을 명칭을 바꾸었음)에서 결재라인에 대한 공론이 있었다.
“결재라인을 어떻게 할까요? 공문분류도 해야 하는데...”
“공문분류라뇨? 우리 학교에서의 부장은 다른 학교와 다릅니다. 모두가 담임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부장과 일반교사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혁신학교를 시작한 것은 행정에서 탈피하여 학생교육(수업과 학생상담)에 사고의 초점을 맞추자는 것 아닙니까?”
갑론을박 끝에 업무담당 교사 - 교감 -교장으로 결재라인을 간소화했으며 대신 관련부서내 업무협의는 자체적으로 상설적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모든 교사는 ‘에듀파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교감샘은 행정요원과 함께 공문처리하느라 무척 고충이 심했다. 거의 하루종일 공문과의 전쟁을 하느라 주변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아킬레스근이 있는데, 공문에 약하고 예산에 약하고 미리 결재맡는 것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대신 실질적인 교육활동에서는 탁월한 창의력과 순발력으로 빈틈없이 해낸다. 초창기에 교장, 교감샘이 이것에 대해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무슨 행사가 있으면 미리 계획서 결재가 올라와야 검토를 해 볼 수 있는데 직전까지 결재가 올라오지 않으니...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오후 3시에 떠나는 간부수련회 계획서가 당일 오후 1시가 넘어서 올라갔음. 그렇지만 학생들로부터 가장 의미있고 내용있는 수련회였다고 평판이 자자했음)
‘이 친구들이 내용을 고민하느라 결재가 늦는 것이지...’라며 지금은 교장, 교감이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 인권이 생동하는 생활교육
‘학생들과의 만남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토론 속에서 작년초 서울의 인권조례는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내용으로 생활규칙을 제정해보자라고 의기 투합되었다.

“ 교문지도?”, “당연히 없애야지!”
“ 교복?”, “학생들 의견을 들어봐야지!”
“두발, 화장, 피어싱?”, “3주체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해야지!”
“흡연은?, 절도는? 무단출결은?......”, “이건 안돼!!!”

대체적인 의견들은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타율적으로 규제하고, 개성의 표현과 신체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은 자율적으로 규제하자는 것으로 모아졌다. 타율규정과 자율규정의 2개의 축은 상호보완적이다. 타율규정(8조법금: 흡연, 폭력, 성폭력, 수업방해행위, 무단출결, 부정행위, 절도,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대한 불응)은 타협의 여지가 없이 단호하고 엄격하게 적용한다. 대부분 학교마다 수십가지 되는 규제조항을 8개로 압축하여 단순화시킨 결과, 학생, 교사, 학부모들은 타율규정이 뭔지를 안다.(알아야 지키지...)
자율규정은 교사, 학생, 학부모의 3주체가 각자 스스로 지킬 규칙(3주체 공동체 생활협약)에 대해서 약속을 했다.(‘어른들도 잘못하는 게 많은데 왜 우리 학생들만 규제대상이어야 돼지?’) 약속에 대한 ‘밀당’은 전교생이 참여한 공청회에서 무려 3시간에 걸쳐 각 주체의 대표들이 상호토론을 진행했다. 예상대로 논란이 가장 많이 되었던 것은 두발, 화장, 피어싱에 관한 것으로서 학생대표와 학부모 대표와의 의견대립이 심했다.( 교사대표는 학생편이었지만 학부모들의 논리가 궁색하여 중립적 입장을 표방했다.) 이후 여러 후속과정을 거쳐 학생들은 신체의 자유를 얻었다. 파마, 염색, 길이, 화장, 피어싱 등에 대해서 자기자신 외에는 누구도 간섭하지 않게 되었다. 교사들은 더 이상 사소한 것(?)을 갖고 학생들과 전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학생들과의 만남은 형식이 아닌 내용으로 소통했고 이것은 상호신뢰와 존중의 관계로 발전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올 수 있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
“체육복을 단체로 정했으면, 모두가 입도록 학교에서 강제했으면 좋겠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도가 필요하지 않나요?”
“치마길이가 너무 짧지 않아요?”
올해 학부모 대표들이 교사들과 만남에서 요구한 내용들이다.
교직원회의에서 어느 샘의 문제제기, “아직도 교복을 구입하지 않은 학생이 있는데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오지 않는 학생이 약 20%는 된다. 신발에 대한 규제도 하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 때 장발단속과 미니스커트가 시대착오적이듯이 세대간의 문화차이를 기성의 관점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성장하는 학생회
처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교사들이 간섭해야했다.
직선으로 뽑힌 학생회 회장단들이 학생회 임원 공모제에 지원한 수십명을 대상으로 논술시험(임원으로서의 각오와 계획 등에 관한...), 구술면접을 할 때 교사들이 도와주었다. 대의원회의 방법, 안건잡기, 의견수렴하는 방법, 학생회 계획짜기 등등에서 작은 손이 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열린 판에서 맘껏 성장했다.
‘작은 학급제의 2학년 확대 시행요구 집단서명’
‘신입생 OT에서 1박 2일동안 후배들을 위한 학교소개 촌극과 및 방방 미팅’
‘교복 및 체육복 디자인 정하기’
‘학생회 신문 만들기’
‘스승의 날 강당 축하공연’
‘학생 체육대회, 학교 축제’
......

급기야
“수업에서의 학생참여가 원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8조법금 위반 학생에 대한 징계가 너무 온정적입니다.”
“교복을 입지 않는 학생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음수대와 선풍기가 필요합니다.”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등등, 자신들이 여러가지 방법(벽보, 설문지, 학급탐방 등)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교사들에게 대화의 시간을 요구하여 나온 최근의 얘기들이다. 교사들과 원탁에 둘러 앉아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주제별로 발표하며 함께 해결을 모색하는 자세에 감읍하여 교사들이 긴급회의를 잡아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서운 놈들!!!

*선사고(先史高) 후수습과 교사공동체
학교의 전반적인 교육활동은 개학전인 1, 2월에 모든 교사들의 심도있는 토론과 협의 속에서 만들었지만, 개학 후 실천 속에서 문제가 있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군가가 제안한다.
“개교식을 학생들이 주인되는 마당극 버전으로 어떻게 해보면 안될까?”
“학교부적응 학생을 위해 대안교실을 만들면 어떨까?”
“아버지의 날을 마련하여 학부모랑 소통구조를 다양화시키면 어떨까?”
“스승의 날 행사에 교사대신 학생들이 수업하면 안돼?”

으례 응답은 이렇게 전개된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구체적으로 계획안을 한번 세워보지?”

먼저 事故(?)를 치면 그 교사는 思考한다.(선사고) 세부적인 것까지...
그러면 전체회의 속에서 집단사고로 결정한 다음, 수습은 함께한다.(후수습)
그것은 “선사고 후수습”라는 용어로 정리되면서 “선사 00 TF”라는 명칭으로, 관계되는 핵심요원들이 학교의 부서에 관계없이 협력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실무적인 영역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모든 교사들이 알아서 한다. 교사들이 유기체처럼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학교에는 교육과정에 기술․가사과목이 없다. 당연히 담당교사도 없다.
그런데 가사실은 있다.
늘상 다양한 메뉴의 가사실습이 일어난다.
‘열무김치, 해물파전, 김치전, 돼지고기 수육, 손칼국수, 잔치국수, 수제비, 김장김치, 홍어무침, 해물탕, 삼겹살 구이, 라면파티, 가리비, 최근에는 막걸리 빗기까지...’
학교내 교과협의회, 학교회식, 학부모 모임, 지회행사, 혁신학교 워크샵,  전국교사대회, 양로원 봉사활동 등 주요행사가 있으면 그날은 가사실이 바쁘다. 모두가 조리사가 되어 부지런히 음식기량을 발휘한다. 학급잔치도 가사실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급의 학생들이 가사실에 모여 함께 삼겹살파티, 라면끓여먹기, 밥해먹기 등으로 공동체를 형성해간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우리학교 샘들과 학생들은 많이 먹는다. 혼자서 먹는 것이 아니고 함께 먹는다.

선사고의 교사들은 말한다.
“학교가 너무 즐거워요. 인생에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어요. 마치 대학교 생활을 다시 하는 듯해요.”
“수업시수, 업무역할, 고사감독 등에서 선생들 사이에 생기는 이기적인 욕심이 사라졌어요. 양보와 협조, 배려가 있을 뿐...”
“내가 할 일을 내가 결정하고 학교가 해야 할 일을 우리교사가 결정하는 실천의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내 학교이고, 학생들은 나의 자식들이예요.”
학교에 대한 자존감이 충만하고, 실천에서 부족한 것을 서로 도와가며 협력할 때 우리는 온전히 교사로서 최대의 행복함을 느낀다. 이 행복함은 고스란히 학생들에 투영되고,. 가정에 반영되고, 사회에 환원된다.

*그러나 남는 문제들...
점점 공고화되어가고 있는 대학입시 서열체제 속에서 대학진학을 위해 어떤 관점에서 교육활동을 펼쳐야할까? 교원평가와 성과급으로 줄 세우는 교원경쟁구도를 우리학교에서만 협력과 소통을 강조한다고 문제의 본질이 해결될까? 점수만으로 뽑는 교원임용체계를 두고서 새내기 교사들의 방관자적인 혁신의지를 탓하고 있어야만 할까? 행정중심의 교원승진구조와 업무체계 속에서 우리만 독야청청하면 될까? 특목고-자사고-사립고-공립고로 분리되는 고교평준화 해체의 악조건에서 단위학교에서 돌봄을 위해 안간힘을 쏟는 게 교사들을 탈진케하는 소모적인 헌신이 아닐까?, 중간층이 사라지고 해체된 가정에서 출발하는 학교부적응 학생에 대해 학교내 대안교실을 모색하여 작은 탈출구를 마련한다고 그 많은 학생들이 공교육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쟁과 효율이라는 교육시장화의 구조적 모순에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도 사실은 속수무책이다.

그냥 놀 뿐이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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