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교사의 교육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현(참교육연구소)

 

들어가며

최근에 SNS 등에서 학생과 학부모와의 갈등과 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교사들의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글들에서 풍기는 정조는 분노보다는 서글픔에 가깝다. 내가 또는 집단적 교사로서 우리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한탄과 자조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아야할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너무 쉽게 깨지고, 때로는 심각한 불신과 모욕을 당하고 있음에도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당혹감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5월에 참교육 연구소가 진행한 미발표 설문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연령별, 성별, 급별, 단체별 소속 등과 관계없이, 다수의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이로 인해 고통스럽다는 답변을 하였다. 하지만 교사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사실이 교사는 정당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부당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전국의 교장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많은 교장들이 전교조 조합원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고 답변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갈등의 성격을 좀 더 엄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교사가 느끼는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교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의 교육주체들의 만남은 진공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교육이념, 교육제도, 교육정책, 학교문화 등에 대한 분석도 필요할 것이다.

교사들이 불행하다는 것은 단순히 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학교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징후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육은 입시중심 교육, 관료지배 교육으로 인해 오랫동안 중병을 앓아왔다. 이런 병들이 치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가 더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글은 교사의 교육권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다. 필자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교사의 교육권 문제는 매우 보수적인 색깔로 채색된 ‘교권’이라는 개념 때문에 진보교육운동 진영에서는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모습은 교사의 교육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 글은 교사의 교육권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문제제기용으로 쓰여졌다.

 

권리와 권한의 구분

 

교사의 교육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권리’와 ‘권한’의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다. 권리는 어떤 주체의 정당한 이해, 요구, 지향 등의 실현을 보장하는 힘이다. 반면에 권한은 자신의 이익이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관이나 개인의 권리나 권력의 범위를 지칭한다.

교사는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과 시민으로서의 보편적 권리인 인권과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교사는 국가나 사학자본에 고용된 노동자로서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인권, 시민권, 노동권은 위의 분류에 의하면 교사의 ‘권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교사의 교육권은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권한’으로 볼 수 있다.

 

교사는 당연히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반대로 이야기 하면 부당한 인격의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 권리 즉 보편적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무시, 조롱, 모함, 폭언, 폭행 등을 당해서는 안 되며, 부당한 명령이나 권력의 강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또한 교사는 시민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치참여의 보장 등 시민적 자유권과 정치기본권을 폭넓게 보장받아야 한다. (반면에 교사의 교육적 권한, 즉 교육권의 측면에서 이는 논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교사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가,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가 등은 논란의 대상이다...)

또한 노동자로서의 교사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노동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교사의 권리’ 문제는 주로 국가권력과 교사집단 사이의 힘의 관계와 그 사회의 정치-문화적 여건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권력 즉 지배권력은 국가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교사와 공무원을 전체 사회구성원을 위한 봉사자가 아니라, 국가권력(또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세력)을 위한 봉사자로 만들려 한다. 교사와 공무원들을 지배세력의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국가권력은 교사-공무원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제약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교사-공무원들이 국민의 공복이기 때문에 시민권과 노동권을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교사-공무원에게 시민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면 그들은 국가권력의 부당하고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국가권력과 교사-공무원 간의 투쟁과 전체 사회의 민주화의 진척 정도에 따라(교사와 공무원도 시민과 노동자라는 사회적 인정 그리고 그들에게 시민권과 노동권을 보장했을 때, 국가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될 수 있다는 성숙한 정치의식) 그들의 ‘권리의 보장’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한국의 교사 교육권의 특이한 역사

- 권한의 부재와 권력의 과잉-

 

이 글의 주제는 교사의 권리가 아니라 교육적 권한, 즉 교육권의 문제이다. 교사가 교육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은 무엇일까?

교사의 교육권은 학생의 배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즉 학생의 학습권을 위해 존재한다. 학교는 교사들의 가르칠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교사들의 교육권은 독립적 성격을 띠기보다는 학생의 학습권을 충족시키기 위한 종속적인 성격 즉 이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근대 사회의 공적 기관이나 이에 속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의 보편적 속성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들의 행정 권한은 국민들의 권리 실현과 복리증진을 위한 수단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관계들이 전도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교사와 공무원이 학생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가권력이 사회구성원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지배하는 현상의 결과물이다.

 

한국 공교육의 역사에서 교사의 교육권(교육적 권한 또는 교육적 자율성)은 매우 특이하고 전도된 모습을 보여 왔다. 우선 교사의 교육권은 지배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부정당하였다. 1997년까지 존속하였던 교육법에 따르면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교육한다.”로 규정되어 있었다. 근대법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무제한적-무규정적인 인격적 지배-예속 관계가 교장과 교사 관계의 법적 규정이었다. 이후 초중등 교육법이 제정되어 “교사는 법령에 따라 교육한다.”로 바뀌었지만, 한국의 교육 관련법에서 교사들의 교육적 권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조항을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한국의 교사들은 국가수준의 교육정책과 교육제도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은 물론, 학교수준에서의 학교운영, 교육과정 편성, 수업내용 선정, 생활교육, 학생평가 등에서 자율적 권한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일반 행정사무와 다르게 교육활동은 폭넓은 자율성을 인정받는다. 국가나 지역수준에서 학교교육의 기본적인 원칙과 방향 그리고 준수해야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각 학교와 교사들은 이런 커다란 원칙 안에서 폭넓은 자율성을 향유한다. 반면에 한국의 교사들은 수직적 권력구조 속에서 일체의 자율성을 부정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사들은 학생과 관계에서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권력을 부여받았다. 학부모들도 학교와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권리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후원자의 역할만을 일방적으로 강요받았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군국주의적 학교 문화의 유산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일본 제국주의는 충량한 식민지 백성을 키우는 것을 학교교육의 목적으로 삼았다. 학교교육이 식민지 지배의 유지와 나아가 제국주의 전쟁에 학생의 동원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면서, 조선 총독부는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가의 결정권을 철저하게 독점하려 하였다. 교장에게는 상부기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간 마름의 역할이 부여되었으며, 교사들에게는 어떤 자율적 권한도 없는 말단 실행자의 임무가 주어졌다. 반면에 교사들이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교사들에게 학생들에 대한 무제한적 통제권을 주었다. 학교는 사실상 군사적 조직과 똑 같이 운영되었다. (철저한 명령-복종체제이며, 교사는 소대장 또는 하사관이며, 학생은 졸병들이다.) 해방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일본제국주의의 유산이 청산되지 못한 채, 매우 기형적이고 수직적인 권력관계의 사슬이 우리의 교육을 지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는 오랫동안 교사들의 권리 찾기 운동과 더불어 지배세력으로부터 부정당해온 교육적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으며(교무회의 의결기구화와 교장선출보직제가 대표적이다),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반인권적, 자의적, 폭력적 권력 행사를 감축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즉 학생들의 인권, 자치권, 학습권, 최근에는 참정권 보장 등등) 학생인권운동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교사들의 권리와 권한보장은 거의 진척이 없다. 정치기본권은 부재하고 노동권은 계속 위협당하고 있다. 여전히 학교운영권은 교장이 독점하고 있으며 교사의 기본적인 교육권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권리보장도 여전히 미미하다. 많은 학교에서 지금도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학교규정이 일방적으로 제정되고 있으며, 학생의 실제적인 자치권 보장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입시경쟁교육이 지속되면서 성장과 발달을 위한 학습권은 침해당하고 있으며, 참정권 보장도 요원하다.

 

교사의 과잉 권력의 약화와 교육주체 간의 갈등의 증가

 

학교현장의 교육주체들의 권리와 권한 보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주체 간의 갈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갈등은 좀 더 평등한 관계로 이행하기 위한 긍정적인 계기일 수도 있고, 상호파멸적인 소모적인 대립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부정적인 계기일 수도 있다. 교사의 일방적 권력행사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로, 사회 전반의 민주화의 진척이다. 민주화의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는 (국가)기관이나 개인의 자의적 권력행사의 제한이다. 한국 사회가 정치적(형식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적(실제적) 민주화로 전진하는 결정적인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민주화의 진전이 일정하게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교사의 일방적 권력 행사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둘째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효과가 존재한다. 교육소비자 주권론이 확산되고,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교원평가가 시행되면서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관계를 공급자와 소비자로 인식하는 흐름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삶에 깊숙이 연루되고, 학생들의 성장에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의 교사의 이미지는 점차 약화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육서비스를 공급하는 자로서의 교사의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소비자가 왕’이라는 통념이 작동하고 있다.

셋째, 교육과 학교를 계층상승이라는 사적 욕망의 충족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은 계속 강화되고 있지만,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보상체계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청년실업, 비정규직 확대, 좋은 일자리 감소 등등에 의해). 삶에 힘이 되는 교육보다는 입시중심 교육이 여전히 우세한 현실에서 보상체계의 붕괴는 학교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쉽게 이야기 하여 교사는 학생들이 왜 학교에서 열심히 (입시)공부를 해야하는지 설득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교육적 관계 맺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고,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만은 증가하고 있다.

넷째, 교사의 교육권의 부재가 이런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권한이 매우 작다는 사실, 따라서 무리한 요구나 저항을 하여도 교사가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고 있다. 학부모가 학교에 와서 교사에게 삿대질을 해도,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을 하여도 교사가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학습하게 되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또한 아동복지법 등 교사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은 증가하고 있다.

 

교사의 교육권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한 입장들

 

교사의 일방적 권력 행사의 약화와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갈등의 증가 현상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 구체적인 양상과 의미의 해석에서는 상이한 입장이 존재한다. 실제로 최근에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전교조 내의 의견대립이 첨예화되고 있다.

 

첫째,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관련된 학교현장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진단에 있어 이견이 존재한다.

교사들은 체벌, 가혹한 벌 등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여전히 포괄적이고 막강한 권력과 강제력을 학생에게 발휘하고 있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갑의 위치에 있으며, 일방적인 권력 행사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 저항한다면 이는 여전히 존재하는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한 거부이지, 교사의 정당한 권한에 대한 침해는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교사로서 누려왔던 부당한 권력의 약화에 따른 것이며, 이런 상실감은 교사의 인권의식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의 운동 방향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제도적 억압과 폭력을 막는 것과 더불어 교사들의 부당한 권력행사로부터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이지, 학생들(또는 학부모)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교사의 교육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의 입장은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 교사들은 교육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적 권한조차 행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교사의 교육권은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우선 국가권력이나 상부기관으로부터 교육적 권한을 이양 받고 보장받는 측면과 이 권한을 교육활동의 과정에서 행사하는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사들은 여전히 필요한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그 권한을 학교 현장에서 행사하는 것도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사의 교육권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것과 더불어, 교육활동 과정에서 교사의 교육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 필요하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위의 두 가지 현상이 공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학생에 대한 제도적-구조적 폭력과 더불어 교사들에 의한 학생의 인권 침해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인권과 자치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많은 교사들이 필요한 교육적 권한 행사에 매우 무기력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급별, 지역별에 따라 나아가 각각의 학교의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과 정도는 다르겠지만,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좀 더 근본적인 수준의 문제이다. “교육활동 과정에서 학생에게 행사되는 교사의 교육권은 어떤 성격을 지녀야할까”의 문제가 존재한다.

국가권력이나 상부기관으로부터 부정당하고 있는 교사의 교육권 확보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교사의 교육권은 법적 보장으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의 구체적인 교육활동을 통해서만 현실화된다. 이 때 학생들로 향하는 교사의 교육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첫 번째 입장은 다음과 같다. “교사의 교육권은 외부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적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이다. 즉 교사의 교육권은 교육과정편성, 수업내용과 방법의 선택, 평가방식의 구성 등에서의 자율적 권한이다. 하지만 교사의 교육권은 학생들에 대한 어떤 강제력도 발휘해서는 안 된다. 학생은 학습할 권리의 주체이고, 교사는 단지 이를 지원하는 존재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생은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을 거부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을 수용할지 여부는 학생들의 판단의 몫이다. 학생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학습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교사는 단지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을 뿐 강제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입장은 다음과 같다. “학생이 학습권의 주체인 것은 맞지만, 교사는 단순히 학습의 지원자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활동은 교사가 학생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지식과 가치를 전달하고 주입하는 일방적 과정은 아니지만, 교사가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련의 교육활동의 과정을 통해 학생의 학습은 이루어진다. 교사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할 수는 있지만, 학생이 수업내용을 결정하고 수업방식과 평가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목적을 추구하는 한에서 교사는 수업내용, 수업방식, 평가방식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으며, 학생은 교사가 조직한 일련의 교육활동 과정을 존중해야 한다. 학생은 권리의 주체인 동시에 책임의 주체이기도 하다.”

셋째로, 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관계없이 교사의 고유한 권한으로서 교사의 교육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학생의 학습은 권리이기보다는 의무이다. 교육활동은 교사가 주도하는 것이며, 학생은 이를 따라야할 의무가 존재한다. 학생은 권리의 주체이기보다는 훈육의 대상이다. 교사는 국가와 사회를 대리하여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훈육시킬 권리와 의무가 존재한다.

위의 입장들은 교육활동 속에서 형성되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한 시각 차이를 반영하고 있으며,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교육학적 이해의 차이도 담고 있다. 세 번째 입장은 가장 보수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으며, 적어도 전교조 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입장일 것이다. 문제는 첫 번째 입장과 두 번째 입장의 관계이다. 이 두 입장은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가? 아니면 공존이 가능한가?

 

세 번째 쟁점은 위의 질문과 관련된 좀 더 현실적인 수준의 문제이다. 학생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이 아무런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매일의 경험은 공존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교육활동의 과정에서 교사의 교육권은 어떤 양상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 또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교사의 교육권은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을까에 대한 입장들이 존재한다.

첫째, 학생을 향한 교사의 교육적 권한이 명시적으로 규정되는 순간, 다르게 표현하면 학생이 따르고 지켜야할 어떤 규범이나 규정이 명시적으로 설정되는 순간, 이는 필연적으로 학생들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 만약 교사의 교육권이 일방적인 교육이나 훈육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학생의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 어떤 명문화된 규정이나 강제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권력자의 위치에 서기 쉬운 교사들의 권한 행사의 방식을 제한하기 위한 규정이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학생들이 지켜야할 규정이나 규율을 제정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참된 교육은 강제력을 동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들의 교육권은 명시적인 규율과 규정의 도움을 통해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의 교육적-인격적 관계맺음을 통해 행사되어야 한다.

둘째,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 미리 정해진 어떤 규정, 약속, 강제가 없이 서로 간의 자발적 소통, 교류, 인격적 존중을 통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교육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학교를 상정하는 것은 점차 비현실적인 발상이 되고 있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의 권력관계가 수평적으로 될수록 명시적인 규정과 약속은 더욱 필요해지며, 교사의 권한 행사에 대한 규정이 필요한 것처럼, 학생들이 지켜야할 약속도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규정과 약속이 더욱 필요한 특수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우선, 학교는 사적이고 소규모의 친밀한 관계가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학교는 대부분 규모가 크며, 따라서 교사-학생, 학생-학생 관계가 사적 친밀성과 인격적 존중으로만 제대로 유지되기 힘들다.

다음으로 학생들 나아가 인간은 대부분 능동적 학습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학습과정은 상당한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만 성취감을 준다. 즉각적인 만족과 쾌락을 유예할 수 있어야 학습이 가능해지며, 이는 학생들의 순수한 자발성에 기초한 학습 참여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학생들은 성장과정에 있는 존재이다. 특히 교사와 충돌이 가장 심한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시기는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매우 불안정한 사춘기를 경과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은 상호권리의 주체로만 만날 수 없다(교사의 권리는 엄밀하게 권한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 또는 학생과 학생은 상호 권리-의무 주체로 만나야 한다. 단. 이러한 상호권리와 상호의무는 외부에서 부과되어도, 한쪽의 주체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도 안 된다. 모든 교육주체들의 논의와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학생들은 어른들의 영향을 받기 쉽기 때문에 어른들의 생각을 학생들의 동의라는 형식을 통해 관철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의 공유, 토론, 논쟁 등을 통해 학생들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한 이런 규정과 약속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규정과 약속은 학교공동체 구성원의 민주적 논의를 통한 상시적 해석 과정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개정 가능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야말로 실질적인 민주시민교육이며, 학교를 연대와 정의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과정과 겹치기도 할 것이다.

셋째로, 교사의 교육권의 행사에 대해서는 학생들과 논의나 합의를 거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학생을 교육과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교육활동의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형태와 범위는 학교나 교사가 설정하는 것이지 학생들의 동의를 구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다.

 

나아가며

중앙정부나 교육청이 독점해 온 권한을 학교와 교사로 이양하는 것, 이를 통해 교육과정, 수업, 학급운영, 생활교육, 평가 등에 관한 교사의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에는 커다란 쟁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사의 교육권이 교육활동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행사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복잡한 쟁점이 존재한다. 이런 쟁점은 교수-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교육학적 문제에서부터, 교사와 학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교육적 관계의 문제, 학교라는 공동체는 어떤 성격을 띠어야 하는가라는 학교문화의 문제까지 여러 영역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분명한 것은 학교 현장에서 교육주체간의 권력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의 일방적인 권력 행사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는 분명히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인권 친화적이고 민주적인 관계의 형성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호갈등과 무규범적인 혼란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 해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을 더 발본적으로 학생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학생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반면에 학교 내의 교육주체들을 상호 권리-의무 주체로 세우기 위한 일련의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그리고 교사의 과잉 권력은 문제가 있지만 교사의 교육권의 문제는 학생들과 관계에서 고려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을 선택하는 용기가 아니다. 이 문제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면밀히 탐구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실천적인 대안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사의 교육권 문제를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상처받은 교사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학생과 학부모를 제압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찾기 위한 것도 아니다. 진보교육운동이 추구해왔던 교육이 가능한 학교,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이 중심이 되는 학교, 인권과 민주주의가 넘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운동의 과정에서 교사의 교육권 문제는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현재의 학교의 상황이 교사의 교육권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오히려 교육주체들의 관계의 재구성을 통해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학교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겨우 논의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88 특집] 1. 디지털 기술과 인간 발달 file 진보교육 2023.07.13 74
1387 현장에서> 오만과 편견 file 진보교육 2020.08.17 75
1386 [특집1-2] 2022~23년 교육노동운동의 과제와 방향 file 진보교육 2022.08.04 75
1385 특집2-2> 팬데믹 시기, 중학교 교육과정 재구성 file 진보교육 2020.08.17 76
1384 <78호 권두언> 미래교육의 향방을 좌우할 관건적 시기가 도래했다. file 진보교육 2020.11.15 77
1383 [특집1] 윤석열-이주호식 교육시장화를 저지하고 ‘변혁적 기후정의-생태전환교육운동’으로 나가자! file 진보교육 2023.03.05 77
1382 [책이야기] 다시, 나무처럼 file 진보교육 2020.08.17 78
1381 담론과 문화> 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 2019~2020, 생의 한가운데 file 진보교육 2020.01.17 79
1380 [담론과 문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file 진보교육 2023.03.05 79
1379 <84호 권두언> 대전환 시대, 격랑의 문턱에서 file 진보교육 2022.08.04 80
1378 < 79호 권두언 > 코로나-대선 국면과 미래교육 대전 file 진보교육 2021.01.23 81
1377 현장에서> 비고츠키 공부로 코로나 19 헤쳐가기 file 진보교육 2021.01.23 82
1376 특집2-1] 팬데믹 초등교육과정 제안 file 진보교육 2020.08.17 83
1375 담론과 문화> 페미니즘으로 본 이야기-저 사람 페미예요! file 진보교육 2019.11.16 84
1374 기획2>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지적 발달에 대하여 file 진보교육 2023.03.05 84
1373 담론과 문화> 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한국을 다녀오다. 짧은 소감 file 진보교육 2019.07.17 85
1372 [책소개] 존중은 어떻게 가능한가? file 진보교육 2020.05.13 85
1371 현장에서> 코로나19-배움의 멈춤에 대하여 file 진보교육 2021.05.08 85
1370 <82호 권두언> 대전환 시대, 교육과 사회 변혁을 향하여 file 진보교육 2022.01.08 85
1369 [83호 특집] 1. 2022 대선이후 교육정세와 교육노동운동의 진로 file 진보교육 2022.04.10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