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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 비고츠키교육혁명

2.청소년의 뇌와 ‘비고츠키’ 그리고 학생인권

김태정 /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집행위원장

1. 들어가며

이미 우리는 비고츠키 주요 저작들을 통해 인식에 있어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언어를 매개로 한 ‘교수-학습’이 인간의식의 발달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것 그리고 비고츠키의 연구방법론이 맑스의 자본론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비고츠키의 ‘교수-학습’이론이 맑스와 엥겔스의 ‘교육’에 대한 이해와 연관되어 발전한 개념이며, 또한 동시대의 혁명가인 레닌의 ‘의식성’과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 등의 개념과 유비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식발달은 물론 집단의 의식발달 즉 계급의식의 형성에도 ‘교수-학습’의 중요하게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비고츠키는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유물론과 사적유물론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있었고,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도 유물론에 입각해 이해하고 있었다. 즉, 맑스와 엥겔스가 인간이 ‘노동’을 매개로 세계와 관계 맺고 있으며, ‘노동’을 매개로 세계를 가공하고 변화시키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증명했다면, 비고츠키는 인간이 ‘언어’를 매개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으며, 인간 의식 발달에 ‘언어’와 ‘언어’를 매개로 한 ‘교수-학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증명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비고츠키가 인간 의식을 유물론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점에 근거하여, 현대 뇌 과학의 연구 성과를 빌어 그의 주장의 타당성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뇌 과학에 입각하여 십대청소년들의 행동을 해석하고자 한다. 다음 비고츠키의 이론에 입각하여 청소년들의 의식발달에 있어 협력 즉 ‘교수-학습’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함을 확인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에 입각하여 학생인권을 당위적으로 주장해온 경향들의 한계를 넘어 학습권의 보장과 협력과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학생인권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2. 뇌 과학을 통해 본 청소년행동

2-1. 감정조절과 기억력 등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청소년들은 충동조절 능력이 성인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이들은 물건을 잘 잃어버리며, 금방 지시받은 내용도 잊곤 한다. 마치 기억력 장애를 겪는 사람처럼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정리정돈도 잘 못하여 번번이 부모나 교사로부터 지적을 받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하며, 화를 잘 내고, 충동적인 행위를 보인다. 이들은 심지어 위험한 장난을 일삼고, 그것을 즐긴다. 호기심이 지나칠 정도로 왕성하며, 그 행위가 위험하다는 부모나 선생님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치기 일쑤이다. 청소년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한 행동 예를 들어 흡연, 음주, 약물, 가출, 피임하지 않는 성행위 등은 대체로 남자의 경우 13세에서 시작하여 17-18세에 이르면 절정에 다다르다가 성인이 되면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되며 이 시기에 여자의 경우 우울증 빈도도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대체 왜 그런가? 그 이유는 바로 뇌에 있다. 인간의 뇌는 생후 2년간 급격하게 발달하며 만5세(6세)가 되면 성인 뇌의 95% 크기가 된다. 때문에 기존의 학설은 뇌가 5세 이전에 거의 다 성장하고 심지어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는 성인의 지적능력과 아동의 지적능력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지 그리고 성인과 아동의 중간단계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과 성인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놀랍게도 비고츠키 또한 뇌의 크기와 무게의 선형적 성장률이 고등심리기능들의 비선형적 성장률과 유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 범주의 심리학을 자연적 범주에서 접근하려는 방법론적 불합리성은 고등행동형태의 배아적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용기를 지닌 연구들과, 정신발달과 뇌의 무게의 증가 사이에 평행론적 원칙을 적용하는 신뢰할 만하고 안내적이지만 고등행동을 설명하기에는 명백히 부적합한 설명들을 뒤로하는 연구들에서 극명하게 내적 모순을 드러낸다.”

뇌의 무게와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면, 왜 청소년들은 충동조절에 어려움을 겪는가? 이에 대해 뇌 과학의 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청소년기는 신경세포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경세포는 태어날 때 최대치를 유지하다가, 더 이상 많아지지 않으며, 반대로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접합 즉 시냅스를 형성하며 이른바 가지치기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냅스가 우리의 학습, 경험, 관계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청소년기는 이 시냅스가 폭발적으로 형성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여자아이는 11세, 남자아이는 12세 6개월 쯤부터 시작되며, 신경세포의 접합 즉 시냅스로 세포들이 가지치기된 결과 뇌의 회백질이 연간 0.7% 씩 감소한다고 한다. 가지치기는 자주 사용하는 세포의 접합관계는 유지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제거하는 방식으로 시냅스망을 재구성하는데, 전체적으로 25세쯤 그리고 뇌의 전두피질 같은 영역은 30세가 되어 마무리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청소년기 뇌에서 또 다른 중대한 변화가 있다. 바로 수초화이다. 뇌는 회백질 뿐만 아니라 백질로도 이루어져 있으며, 청소년기에는 백질이 회백질보다 많다, 백질은 축삭돌기(신경세포에서 뻗어나온 기다란 돌기)를 둘러싸고 있는 막으로 이 막은 ‘미엘린(myelin)’이라고 불리는 흰색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이 ‘미엘린’은 방전을 막아주는 전선의 피복처럼 전열체 기능을 하여 신경세포 사이를 이동하는 전기신호를 최대 100배 빠르게 전달시켜 주는데, 이 ‘미엘린’으로 구성된 백질이 30대 이후에도 두꺼워지면서 50세에 이르면 최대치에 이른다.
뇌 과학에서는 이를 수초화(髓鞘化) 혹은 수초형성(myelination)라고도 하는데, 이 수초화는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인 척추가 가장 먼저 시작되어 태아 때 완료되며, 대뇌와 소뇌 사이의 간뇌는 1세까지, 대뇌는 15세까지 진행된다. 그리고 대뇌 중에서도 전두연합 영역 특히 전전두엽쪽이 느리게 진행되는데 이 부위가 바로 인간의 개념적인 사고와 비교와 예측 추론을 담당하는 곳이다. 전전두엽의 수초화는 20세 이후 왕성하기 진행된다. 때문에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5-60대처럼 종합적이고 거시적으로 사고하기 힘든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 수초화는 ‘해마’와 ‘뇌이랑’에서도 진행된다. ‘해마’는 뇌 중간에 자리 잡은 세포다발로 새로운 기억을 처리하는 영역이다. 또 ‘뇌이랑’은 뇌간과 척수로 연결되는데, 바로 이것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반응(예를 들어 문을 쾅 닫고 싶은 혹은 배고픈 욕구)을 조절하는 부위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아동이 걷기 시작하고 손이 민첩해지는 시기 즉 5-6세에 중추신경계의 수초화가 끝났다고 이해되었으나, 최근에는 청소년기에도 수초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십대 청소년들이 충동조절과 기억력 등에 어려움을 겪는지 추론이 가능해진다. 즉, 청소년들은 뇌에서 개념적 사고와 논리적 이성적 추론능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수초화가 완성되지 않았으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도 감정을 조절하는 뇌이랑도 마찬가지로 수초화가 진행중에 있는 시기이기에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2-2. 십대청소년들이 종종 잠에 취해있고, 좀비 같이 늘어져 있는 이유는?

십대청소년들은 늘 잠이 모자라다고 호소한다. 초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일찍 일어나 밥 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이 이제는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날 줄 모른다. 이들은 대체로 밤에는 안자고 버팅기다가 아침에 겨우 일어나 학교로 기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청소년들 대부분이 이른바 아침잠에 취해 있는데 학교는 아이들을 일찍 학교에 보내라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입시경쟁교육은 잠자는 시간을 더욱 축소할 것으로 강요하고 있다.
또 청소년들은 그 특유의 늘어진 자세로 좀비처럼 나 뒹구길 좋아한다. 학교에서도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기 힘들어하며, 집에서는 널부러져 있기가 일쑤이다. 반듯한 자세로 책상에 붙어서 공부하는 모습을 원하는 대부분의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이들의 삐딱한 모습은 몹시 불안정하고 그 자체로 못마땅한 존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일까? 이 또한 청소년의 변화하는 뇌와 관련 있다.
먼저 십대 청소년의 수면시간에 대해 살펴보자.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인간의 수면시간은 연령대별로 변화를 겪는다. 신생아들은 하루 16시간 이상을 잠을 잔다. 6개월이 지나면 12시간의 수면이 요구된다. 5세미만의 아이들도 11시간을 자야한다. 10세가 되면 9시간 그리고 사춘기 청소년들은 평균 9시간 15분 이상의 수면시간을 요구한다. 이후 성인이 되면 7-8시간 정도를 유지하다가 65세 이후에는 잠자는 시간이 줄어든다. 과학자들은 노인들이 초저녘에 잠들어 새벽에 일어나는 현상을 ‘전진성 수면 위상 증후군’이라 하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십대 청소년들의 증상을 ‘지연성 수면 위상 증후군’이라 한다.
인간의 수면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시신경 교차상핵’으로 알려져 있다. 완두콩 크기의 이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과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멜라토닌은 밤과 낮의 길이나 계절과 일조시간의 변화를 감지하여 생체리듬을 주관한다. 즉 밤이 되면 ‘시신경 교차상핵’이 멜라토닌을 분비하라는 명령을 보내, 1-2시간 내 우리 몸은 졸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뇌가 변화 중에 있는 십대 청소년시기에는 이 멜라토닌의 분비가 최소 1시간에서 2-3시간 이상 뒤로 미뤄져 그 수치는 밤 11시나 되어야 높아지기 시작한다. 자연히 청소년들은 늦게 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변화가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류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현상은 뼈의 성장이 끝나는 시점 즉 사춘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사라진다.
한편 십대청소년들이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 것은 앞서 언급한 시냅스 형성과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인간의 뇌는 어는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더 많이 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졌고 그 중 제일 많이 사용된 부분이 잠이라는 휴식을 취하는 과정에서 그 부분의 시냅스 또한 강화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졸음을 오게 하는 50가지의 뇌 화학물질이 뇌세포간의 시냅스 구축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십대청소년기에는 파장이 느린 수면의 영역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는 대표적으로 파장 느린 수면 단계의 특징(예를 들어 오줌싸개 아이)이 청소년이 되면서 감소되는 것과 연관된 것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대뇌피질을 이루는 뉴런의 밀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러서야 즉, 대뇌피질이 회백질을 맹렬히 가지치기하는 과정에 도달해서야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종합하면 십대청소년들이 잠이 많은 것에는 과학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에는 십대청소년들이 소파에서 뒹굴기를 좋아하고,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십대 청소년들은 그들의 뇌가 그러하듯 팔과 다리 등 전신 또한 급격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청소년기에는 1년에 10cm 이상 자란다. 그 결과 뼈의 급격한 성장으로 척추의 인대를 긴장시키고, 근육의 긴장을 떨어뜨린다. 때문에 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들고, 심지어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신장과 체중의 급격한 증가는 신체의 비율을 변화시키고 근육의 강도와 근육운동의 협조능력을 떨어뜨린다. 근육이 뼈만큼 빨리 자라기 않기 때문에 강도와 유연성 통제력 등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때문에 십대청소년들은 이러한 급격한 신체 변화에서 오는 고통을 덜기 위한 자세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널브러져 있는 자세가 그것으로, 그 유명한 ‘127도’ 자세로 알려져 있다. 소파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대체로 탁자에 다리를 올리고 쿠션에 팔꿈치를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 있다. 이는 놀랍게도 우주비행사들의 의자제작을 위해 나사(NASA)가 계산한 의자의 등받이 각도 127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의자는 특허까지 얻어 팔리고 있는데, 무중력 상태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십대청소년들은 근육의 수축이 적어 피로가 최소화되는 자세를 취한 것 뿐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부모와 교사들은 십대청소년들의 자세가 삐딱하다고 야단을 쳐온 셈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2-3. 외모에 대한 관심, 또래집단에 휩쓸리는 이유는?

십대 청소년들은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순수하게 자신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바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관심이 것이다. 이는 인간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아동기의 인간에게는 그가 속한 가족이 가장 큰 세계이며 그 자체로 전부이다. 마치 아이들에게 엄마가 전부이듯이. 그러나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가족 외의 타인의 존재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다 자의식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외모에 대한 관심, 지나칠 정도의 자기애가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아동기와 달리 가족을 넘어 다른 사람과 친구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데에는 뇌의 변화도 한 몫을 한다. 대표적으로 뇌의 ‘해마’가 그것이다. 뇌 과학에 의하면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 시기 이 해마의 크기는 계속 커지는데, 특히 여학생들의 해마가 더 크게 자란다. 그래서 신경과학자들은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들이 대인관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타인과의 관계가 청소년기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것은 이른바 ‘사회적인 뇌’와도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람의 얼굴 표정에 대한 정교한 해석, 두려움 같은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은 사춘기 말에 가서야 완성된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뇌 영역은 내측전전두피질, 전대상회피질, 하전두이랑, 전측뇌섬엽 등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 결과도 있다. 일예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질문을 던졌을 때, 앞에서 언급한 뇌 영역들에서 활성화되는 비율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잘했네!”라는 표현이 정말 고마움을 표하는 것인지, 비꼬는 것인지 구분하는 실험에서 성인과 청소년 모두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내측전전두피질’과 ‘좌하전두이랑’ 등이 활성화되는 비율이 달랐고, 청소년이 더 많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청소년들이 타인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그 만큼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됨을 의미하며, 이 시기가 이른바 ‘마음이론’의 형성이 서서히 마무리 되는 시기이자 동시에 타인의 머릿속을 좀더 정교하게 이해하기 시작하는 시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십대 청소년들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또래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는다는 점이다. 친구들이 입는 옷을 원하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부모의 충고 따위는 쉽게 무시하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최우선으로 놓는다.
이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의 전전두피질이 관련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또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아이보다 적에 받는 아이들의 전전두피질의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나타났다.
전전두피질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전두엽 부위는 인간에게 가장 늦게 발달하며, 특히 청소년기는 급격한 변화중의 과정에 있는 곳이다. 때문에 청소년들은 또래집단의 유혹과 영향을 성인에 비해 강하게 받게 된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뇌가 아직 형성 중에 있는 십대청소년들은 끊임없이 자아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자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때문에 이들은 또래의 행동에 동조함으로써 이런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고 비슷하게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고 정상이며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개성과 또래의 승인의 완벽한 혼합체를 만들려고 애쓴다.
이처럼 청소년의 외모에 대한 관심과 지나칠 정도의 자기애, 타인과의 관계 능력향상, 또래집단의 영향 등은 변화중의 뇌와 일정한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자체로 인류의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3. ‘의식’의 발달과 ‘교수-학습’

앞에서 우리는 십대청소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변화 중에 있는 뇌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아동기에서 성년기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산물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성인이 되면서 즉 성인의 뇌로 변화되면서 대부분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십대청소년들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터이니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키가 크고 덩치가 커지면서 겪는 육체적인 변화는 지켜볼 수 밖에 없다 하더라고, 충동조절능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에 어려움을 겪고, 정리정돈을 못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으며 심지어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그대로 두어야 할까? 더욱 중요하게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 의식의 발달도 그저 시간이 지난다고 향상될까? 아니면 십대청소년들은 미숙한 존재이므로 성인에 의해 훈육되고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일까?
우리는 이미 비고츠키를 통해 인식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을 확인하였으며, 인간의 ‘의식’ 발달에 있어 ‘교수-학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과연 ‘의식’이란 무엇일까? ‘의식의 발달’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낮은 의식과 높은 의식이 있을 것인데 그 구분과 차이는 무엇일까? 또 십대청소년의 의식 발달에 있어 ‘교수-학습’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래에서는 이에 대해 뇌 과학자들의 논의와 비고츠키의 주장을 비교하면서 조심스럽게 답을 찾고자 한다.

3-1. ‘의식’ 이란?

비고츠키가 인간 ‘의식’의 ‘자본론’을 쓰고자 한 인물로 평가되는 것은 결코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의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과 동의어인가? 의식은 ‘마음’인가? 이원론적인 세계관 혹은 관념론적인 세계관의 영향으로 육체와 정신 혹은 몸과 마음으로 구분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의식’은 종종 ‘정신’ 혹은 ‘마음’과 동의어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사전적인 정의만 봐도 이들은 완전히 구분되는 개념들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신(sprit:精神)’은 일반적으로 물질ㆍ육체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마음(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 마음(mind)은 일반적으로 ‘정신’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정신’에 비해 훨씬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뜻으로 쓰이는 일이 많고, 그 의미와 내용도 애매하다. 이에 비해 ‘의식’(consciousness: 意識)은 심리적 활동의 총체를 말한다. 의식은 인간의 지식, 감정, 의지라는 일체의 활동을 포함한다. 감각 기관이나 신경계나 뇌수에 기초하여 심리적 활동이 발전하여 왔다. 인간의 의식은 객관 세계를 인식하는 기능, 미래를 예측하고 목표를 정하여 목적을 세우고 동시에 그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을 위한 계획을 만드는 기능, 결정하고 결단을 내리는 기능, 나아가 행동의 규범ㆍ가치의 설정ㆍ행동ㆍ그 목적과 수단의 평가 기능 등을 갖는다.
그러면 현대의 뇌 과학은 ‘의식’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우선 ‘기억’의 형성과정을 살펴보자. 기억은 외부의 신호를 뇌가 받아들인 결과이다. 뇌간과 자율신경계에서 올라간 내부 항상성 신호와 외부에서 유입된 시각, 청각, 체감각 입력이 뇌의 ‘해마’와 ‘편도’에서 외부 신호체계와 내부 신체 신호의 상관관계를 형성하여 기억을 만든다. 해마는 기억을 만들어내고, ‘신피질’은 대뇌반구 표면을 덮고 있는 회색질의 층으로 학습, 감정, 의지, 지각, 언어, 수의운동 등을 생성하는 곳이다. 신피질은 대뇌피질 중에서도 계통발생적으로 나중에 나온 것으로 파충류 이상의 고등동물에서 큰 규모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대뇌피질 그 중에서도 신피질의 역할이 비고츠키 시대에도 일정하게 밝혀졌으며 그가 이를 인간의 고등심리기능의 발달 즉 고차의식발달과 연결시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각 동물들의 형태가 그 유기체적 구조와 기능에 상응하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특정한 행동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더 나아가서 행동의 생물적 발달에 있어 각각의 결정적 단계가 신경체계의 구조와 기능상의 발달과 일치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두뇌 발달이 보다 오래된 층 위에 새로운 층을 건설함으로써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모든 하등 동물의 고대 두뇌가 같은 방식으로 배치된다는 것, 고등정신기능발달의 새로운 각 단계가 중앙 신경 체계 속에 새로운 층을 건설하는 것과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고등심리기능 발달의 새로운 각 단계와 두뇌 발달의 새로운 각 층의 연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건 반사라는 회로가 완결되는 장소로서 대뇌 반구의 피질의 역할과 중요성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은 기본적인 사실들이다.”

이렇게 대뇌피질은 변화하는 외부세계의 감각 입력을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는 기억으로 저장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다시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과 연계하여 가치-범주기억을 형성하는데, 전두엽은 비교, 예측, 판단을 하고, 두정엽은 공간지각을 하며, 측두엽은 사물과 인간의 얼굴에 대한 기억을 담당한다고 한다.

다음 ‘의식의 생성과정’을 살펴보자. 앞에서 기억의 형성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감각피질에 의해 외부 환경 입력정보가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의 가치-범주기억과 실시간으로 연결된 회로를 만든다. 이 회로가 작동하면서 해마에서 형성된 기억과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의 상호 연결을 통해 지각 범주화 과정 자체가 다시 범주화 된다. 이것이 바로 ‘개념의 범주화’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경회로의 전체 순환 과정에서 ‘언어’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상징 기호를 매개로 하는 언어가 출현하기 이전에 감각-운동 이미지에 의한 개념이 먼저 생긴다. 이를 ‘애덜먼’ 등의 뇌 과학자들은 ‘1차 의식의 생성’이라고 한다. 1차 의식은 현재만을 보는 의식이다. 그래서 동물들의 의식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절된 현재 의식만을 갖는다.
이에 비해 ‘고차의식’은 ‘언어’를 매개로 하여 현재가 연속적으로 흘러가 미래와 과거가 생기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아의식이 형성된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대뇌 부위는 ‘브로카영역’과 ‘베르니케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역은 고차 피질의 전두엽, 두정엽, 축두엽과 연결되어 생성된다. 한편 고차의식의 형성에는 인간 뇌에서 연합피질이 큰 영역을 차지한다. 1차 감각인 시각, 청각, 체감각 등이 종합적으로 처리되면서 연합되고, 이는 다시 측두엽 안쪽에 있는 다중감각 연합영역으로 모인다. 이렇게 모인 덕분에 하나의 전체적인 기억이 형성되는데, 이 정보는 편도체 위의 ‘파페츠회로’를 거쳐서 다시 전전두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전전두엽에서  비교, 판단, 예측의 기능을 수행한다.
결국 뇌 과학에 의하면 의식은 감각-운동-이미지에 이르는 신경세포의 연결망이 초래한 가장 놀라운 현상이며, 이때 저차의식(1차의식)과 고차의식을 가름 짓는 결정적인 변수는 바로 ‘언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비고츠키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3-2. 의식 발달에 있어 ‘언어’의 중요성

앞서 우리는 ‘애덜먼’ 등의 뇌 과학자들이 저차의식과 고차의식을 구분하는데 있어 ‘언어’를 준거점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미 1930년대에 비고츠키와 루리야는 이와 동일한 주장을 한 것이다. 현대의 뇌 과학이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였음을 고려할 때, 비고츠키를 두고 ‘미래에서 온 사나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코 허언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점은 비고츠키와 루리야가 고차의식(혹은 고등정신) 형성에 있어 단지 ‘언어’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언어’가 사회 문화적 산물임을 상기시킴으로 방법론적으로는 사적유물론적을 인식론 혹은 심리학 영역으로 끌어들여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비고츠키가 종종 인용했던 게슈탈트 심리학자의 한 사람이었던 ‘뷜러’는 언어의 기능을 세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표현기능이다. 언어는 발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둘째, 명령, 신호, 호소 기능이다. 언어는 수신자에게 특정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쓰인다. 셋째, 서술기능이다. 언어는 사물들의 상태를 기술하기 위해서 쓰인다. 뷜러는 앞의 두 기능들은 동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에 공통되나, 서술기능은 인간의 언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으로 보았다. 여기에 칼 포퍼는 언어의 제 4기능으로 논증기능을 덧 붙였다.
그런데 비고츠키와 루리야는 단지 언어의 기능적 측면만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고등심리기능 혹은 고차의식형성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유인원의 도구 사용과 어린이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면서 고차의식 형성에 있어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 조작과정에서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린이는 유인원의 도구 사용 행동에서 관찰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자유를 획득하여 자신이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장(場)에 있는 도구를 사용하여 실행적인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 이 모든 조작에서 정신과정의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행위의 장을 향하던 비매개적인 조작들은 복잡한 간접적인 행동들로 대체된다. 조작에 포함된 말은 심리적인 기호체계가 되고 이는 완전히 특수한 기능적인 중요성을 얻게 되며 행동의 완전한 재조직화로 이끈다.”

비고츠키와 루리야는 언어(기호,상징 등)의 사용이 고등심리기능을 발달시킨다고 주장한다.  실험과 관찰에 입각하면 언어를 숙달하지 못한 어린이는 움직이는 것에는 모두 눈길을 돌린다. 오직 대상이 움직이는 동안만 집중하게 된다. 이는 다른 동물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쥐를 쫓던 고양이는 쥐가 구멍으로 들어간 뒤 잠시 그 앞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반면 말을 할 수 있는 어린이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도 주의를 기울 일 수 있다. 이는 뇌 과학자들이 ‘현재’만 존재하는 1차적 의식과 고차의식을 구분하는 설명과 거의 유사하다. 비고츠키와 루리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것은 현재 상황에 직접 적응하게 하는 마력으로부터 어린이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 준다. 말을 사용하면서 행동의 공간장과 함께 시간장 또한 실제적이며 예견 가능한 상황으로 작용하게 되고, 시각 영역처럼(비록 좀 더 모호하기는 하지만) 미래의 장에서 본 관점으로 현재에 작용하여 때때로 현재의 상황이 능동적으로 생성한 변화들을 과거의 관점으로 현재에 작용하여 때때로 현재의 상황이 능동적으로 생성한 변화들을 과거의 관점으로 반응하면서 어린이의 주의를 역동적으로 주도하는 능력을 어린이에게 제공한다. 특히 말을 사용하면서 주의를 자유자재로 할당할 수 있게 된 덕분에 미래 행동의 장은 추상적인 언어 표현에서 생생한 상황으로 변형된다. 그 안에서 기본적인 구도로서, 가능한 행동이라는 일반적인 배경으로부터 미래의 행동계획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분명해진다.”

그러면 똑같이 도구를 사용하는 유인원과 어린이의 결정적인 차이 즉 언어의 사용은 어디서 기능하는가? 이들은 유인원의 도구사용이 생물학적인 진화의 산물이라면, 어린이의 도구사용은 그 형태는 비슷하나 다른 경로 즉 인격의 역사적 발달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전자는 동물에게 제시된 문제를 생물학적으로 형성된 기능을 통해 해결하는 반면, 후자는 비슷하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능들이 전면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계통발생적 관점에서 이 기능들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성의 역사적 산물이다. 또한 개체발생적 관점에서 이 기능들은 그들의 생물학적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긴 하지만 그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어린이 심리발달의 두 번째 경로를 그리는 그들 고유의 특수한 발달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들 기능을 고등 기능이라 부르며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는다.”
“계통발생적 수준에서 고등정신기능의 근본적인 발생적 특징은 그들이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행동의 역사적 발달의 산물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즉 고등정신기능은 특정한 사회역사를 담고 있다. 고등정신기능의 개체발생을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특수한 성질은 자극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기초적인 정신과정의 직접적인 구조와는 반대로, 그들을 매개적 자극(기호)의 사용에 기초해서 세워지며 이런 영향으로 간접적인 특성을 품는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등정신기능들은 기초적인 기능들에 의해 수행되었던 역할에 비해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역할들을 하며 행동의 역사적 발달의 산물로 출현한다는 사실로 특징지어진다.”

결국 저차의식에서 고차의식으로 발전은 언어 즉 기호와 상징의 사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기원이 사회 문화적인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회 문화적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비고츠키와 루리야는 이에 대해 ‘사회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 기호의 사용과 관련된 조작의 기원의 과정들은 결코 습관의 형성이나 발명으로부터 추출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개인 심리학의 영역에 머문다면 일반적으로 이 모든 범주는 도출 될 수 없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어린이 인격의 사회적 형성 역사의 한 부분이고, 전체 사회적 구성 안에서만 그것을 통제하는 규칙성이 밝혀진다. 인간 행동은 그것의 개별기능 체계의 산물이라기 보다 더 넓은 체계의 발달의 산물이며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의사소통과 관계들의 체계, 행동의 집합적 형태들과 사회적 협력의 산물이다.”
“이와 같이 기호는 초기에는 어린이의 행동에서 사회적 연결의 수단으로 나타나고 심리 간 기능을 갖게 된다. 그런 후 기호는 자신의 행동을 숙달하는 수단이 되면서 그 사회적 관계를 주체의 인격 내부로 이행시킨다. 고등정신기능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며 발생적으로 기초가 되는 법칙에 의하면 어린이의 모든 상징 활동은 한 때는 협력의 사회적 형태였으며 최초 지점으로 가기까지의 전체 발달 과정동안 기능의 사회적 양식을 보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고등정신기능의 역사는 사회적 행동의 수단으로부터 개인-심리적 조직의 수단으로 이행되는 역사로 나타난다.”

이렇게 비고츠키와 루리야는 고등정신 혹은 고등심리기능의 사회적 기원을 강조하였다. 이는 인간의 의식을 단순하게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뇌 활동의 산물로만 이해하는 기계적인 사고, ‘인식’은 대상세계를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조야한 인식론인 반영이론, 심지어 물론 개체 발생적 변화가 유전된다고 주장한 ‘라이센코’류의 진화론과도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고츠키와 루리야는 현대의 뇌 과학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실어증환자를 예로 들면서 ‘언어의 붕괴가 기호조작의 몰락으로 이어지며 다시 고등정신 체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짐’을 논증하였다.

“언어적 상징의 장애를 겪으면서 나타는 고등정신기능의 전반적 붕괴는 실어증에서도 가장 생생하게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언어의 붕괴는 기호 조작의 몰락(또는 상당한 장애)을 동반한다. 하지만 이러한 붕괴는 결코 고립된 단일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모든 고등정신 체계의 활동에서 전반적이며 가장 심오한 장애를 수반한다. 일련의 특별한 실험에서 우리는 고동 조작을 할 수 없게 된 실어증 환자가 실행적 활동에서 시각적 영역의 기본 법칙들에 전체적으로 종속됨을 확립하였다...”
“... 실제로는 고등정신기능이 저차적 기능에 침투하여 행동의 가장 깊숙한 층조차 개조하기 때문에, 고차적 기능과 저차적 기능 간 연결의 와해는 기초정신과정들을 그 구성 요소들을 분리시켜 행동의 전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이를 가장 원시적이고 ‘원형정신적’ 형태의 활동으로 환원시킨다.”

비고츠키와 루리야의 주장은 현대 뇌 과학의 발달로 언어의 개체발생에 대한 연구, 뇌의 언어어 영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그 타당성이 다시 입증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어의 개체발생 연구는 최근들어 기능 핵자기공명 촬영술과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술로 열렬한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의 대상의 조작과 언어 기능이 적어도 아동발달의 초기 단계에서는 동일한 뇌 구조를 근간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언어장애가 있는 환자들의 ‘인지적 프로필’을 상세히 분석해보면 그러한 프로필은 결코 고립되어 떨어져 있지 않고 세계에 대한 조작과 이해에 관련된 다른 기능들이 거의 항상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가 모든 인간에게 있는 본능임은 분명하지만 그 본능의 발현은 인간의 수완과 지능을 발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위업들에 쓰이는 뉴런 체계들 전체를 필요로 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겠다.”
“뇌의 여러 부위는 어휘, 의미, 구문론 등 언어의 세가지 다른 측면에 따라 특성화되어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 대부분의 설명에 따르면, 브로카 영역은 구문론의 구조에 관여한다. (때문에 이 부분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가정과 종속절로 가득찬 긴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 피질의 한 부분인 브로카 영역의 자체 네트워크에 자율적인 문법규칙이 내재한 것처럼 보인다. ... 의미론과 관계있는 뇌 영역은 뇌의 중앙에 있는 수평 열의 뒤쪽에 가까이 있는 좌측 측두엽에 있다. 베르니케 영역이라 불리는 이 부분은 의미 표현을 위해 특성화 된 것으로 보인다.”
“ 이(브로카) 영역은 배치 지도 또는 운동 프로그램을 포함하는데 이는 신호를 혀, 입술, 입천장, 후두의 여러 가지 근육으로 내려보내 말이 잘 나오게 만든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러나 이 영역에는 거울신경이 많이 있고 소리 내는 입의 움직임, 소리 듣기, 입술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행동간의 접점 역할을 한다.”
“인간에게서 절정을 이루는 영장류의 진화 중에 좌측 하부두정엽의 급격한 발달이 있었다. 그 외에도 인간의 엽은(인간 단독으로) 연상회 및 각회라고 불리는 두 개의 뇌회로 나뉘어 있다. 그러므로 하부두정엽과 그것의 부차적인 분열은 인간에 고유한 기능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능력은 추상화라는 높은 수준의 유형을 포함한다. 각회를 포함하여 하두부정엽은 전략적으로 뇌의 접촉, 시각, 그리고 청취 부분 사이에 위치하여 교차-양상 추상화를 위해 원천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각 반구에 하나씩 두 개의 뇌회가 있기 때문에 이들은 아마도 다른 스타일의 추상화를 진화시켰을 것이다. 오른쪽은 공간시각 및 신체에 기반을 둔 은유 및 추상이고, 다른 하나는 익살을 포함하여 좀 더 많은 언어 기반의 은유인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인간 의식에 대한 현대 뇌 과학의 연구성과와 비고츠키와 루리야의 연구결과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하며, 특히 언어(상징, 기호 등)가 고등심리 혹은 고차의식의 형성과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언어를 매개로 하는 고등심리기능의 발달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까? 이에 대해 비고츠키는 ‘과학적 개념 형성’을 통해 답하고 있다. 그는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을 구분하면서, ‘교수-학습’이 과학적 개념 형성에 기여하며, 이를 통해 고등심리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고 답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3-3. 과학적 개념형성의 중요성: 의식 발달과 ‘교수-학습’

앞에서 우리는 십대 청소년의 뇌가 형성과정에 있으며, 특히 이성적인 판단, 추론 등을 담당하는 부위인 전두엽이 늦게 완성됨을 알 수 있다. 특히 전전두엽 부위는 개념적인 사고와 비교와 예측 추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인간의 의식발달은 성인이 되면 저절로 발달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뇌 과학에 의하면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접합 즉 시냅스를 형성이 인간의 학습, 경험, 관계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신경학자들은 인간의 기억이 마치 도서관에 보관된 책들과 같은 가정을 해왔다. 즉 뇌가 무언가를 회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서가를 뒤져서 찾아낸 문장을 크게 낭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억은 ‘재통합(reconsolidation)’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다시 활성화된 것이 밝혀지고 있다. 시냅스가 신경세포를 접합하는 것이라고 할 때, 두 개의 뉴런을 시냅스로 연결하려면 즉, 모든 뉴런학습의 핵심인 연합 연결을 형성하려면, 단백질 학성이 필요하다. 이때 단백질 합성이 차단되면 그 학습된 행동이 사라지기도 한다. 결국 뇌는 며칠 또는 몇 달전에 형성된 기억을 단지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새로운 연합맥락에서 다시 만든다.
이는 의식 발달에 있어서, 고등심리의 발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즉, 기억이라는 것이 재통합의 산물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외부자극의 산물이고, 가장 적극적인 자극의 하나인 학습이야 말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말해, 인간의식의 발달은 개체발생적인 사실, 즉, 뇌의 성장과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오로지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다시 말해 ‘교수-학습’이라는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현상과 본질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겨우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파악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억이 재통합되는 것처럼 우리는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한 사실들, 현상들의 나열 그리고 기억의 연합을 넘어서는 보다 높은 사고능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의식의 발달이며 개념적인 사고능력이다. 비고츠키는 바로 이 문제를 ‘과학적 개념’의 형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과학적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적 개념의 본질은 마르크스에 의해 대단히 심오하게 정의되었다. ‘사물의 외양과 그 본질이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쓸모없을 것이다.’ 이것이 과학적 개념의 본질이다. .. 따라서 과학적 개념은 반드시, 개념밖에서는 불가능한, 대상과의 또 다른 관계를 전제로 하며, 그 과학적 내용안에 포함된 이 다른 관계는 다시.. 개념들 간 관계, 즉 개념체계의 존재를 반드시 전제로 한다. ... 이것을 순수하게 논리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어린이의 자연발생적 개념과 비자연발생적 개념을 구분하는 것은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을 구분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렇다면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비고츠키는 과학적 개념은 일상적 개념의 경로와 다르며 이는 과학적 개념 형성에 있어 언어 및 언어적 정의가 주요한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무리. ... 실험적 연구보다 경험적인 지식과 관련이 깊다. ... 두 개념 발달이 일어나는 내적 조건과 외적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과학적 개념은 자연발생적 개념과는 전혀 다르게 어린이의 개인적 경험과 관련을 맺는다. 학교의 교수-학습에서 개념은 어린이의 개인적 경험이 취하는 경로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를 따라 생겨나고 발달한다.... 종합하면, 교수-학습 과정에서 형성되는 과학적 개념은 어린이의 경험과 상이한 관련을 맺고, 그들이 나타내는 대상과 다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탄생에서부터 마지막 최종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른 경로를 따른다는 점에서 자연발생적 개념과 다르다.”
“.. 그 까닭은 과학적 개념발달의 주요한 요소가 언어적 정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언어적 정의는 조직화된 체계 속에서 구체적, 현상적 수준으로 내려가는 경향이 있고, 일상적 개념은 이와 다르게 어떤 한정된 체계 밖으로 발달하여 일반화를 향해 위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 개념은 기억의 도움을 받아 학습한 단순한 연합적 연결로 얻은 수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개념은 .. 단순한 기억과정을 통해 숙달할 수 없는 복잡하고 진정한 생각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연구는 개념발달의 어떤 단계에서도 개념은 하나의 일반화 작용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념이 낱말의 의미가 발달할 때 심리적으로 표상된다는 견고한 입장이다. 개념발달의 본질은 우선적으로 한 일반화 구조에서 다른 일반화 구조로 이행한다는데 있다. 어떤 연령에서도 모든 낱말의 의미는 일반화된 것이다. 그렇지만 단어의 의미는 발달한다.”
  
그렇다면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은 상호관계는 어떠할까? 비고츠키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실험결과에 근거하여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의 관계를 상호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의 상호관계를 변증법적인 지양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비고츠키가 직접적으로 이를 두고 변증법적 방법이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으나, 이미 우리가 그의 방법론이 자본의 서술방법과 유사함을 확인한 것에서 보듯이, 그는 변증법적인 지양 즉, 대립물의 갈등과 통일이라는 방법론을 과학적 개념형성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학령기 어린이에게 있어 발달의 초점은 저차적 형태의 주의와 기억으로부터 자발적 주의와 논리적 기억으로의 전이이다. ... 이는 기능들의 지성화와 기능의 숙달이 하나의 단일한 과정의 두 측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고차적 정신 기능으로의 전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어떤 기능이 지성화되는 만큼 그 기능을 숙달하게 된다. 어떤 기능의 활동에서 의지의 개입은 언제나 그에 대한 의식적 파악과 한 쌍을 이루는 부분이다. 학령이 어린이들에게 기억이 지성화된다고 말하는 것은 자발적인 기억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하다.”
“.. 발달의 일반 법칙에 따르면 의식적 파악과 숙달은 오직 기능의 고차적 단계에만 적합하다. 그들은 나중에 출현한다. 그들은 반드시 어떤 활동 형태의 기능의 비의식적, 비자발적인 단계에 뒤따라 나타난다. 의식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식되어야 하는 그 대상을 먼저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숙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사용할수 있는 것을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연발생적 개념에 대한 과학적 개념의 의존과 자연발생적 개념에 대한 과학적 개념의 호혜적 영향은 과학적 개념이 그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고유한 관계로부터 나온다. 이 관계는 .. 다른 개념을 통해 매개되며 따라서 대상에 대한 관계와 다른 개념에 대한 관계, 즉 개념 체계에 있어 다른 기본 세포에 대한 관계를 동시적으로 포함한다는 사실이 특징이다.”

그러면 현상을 넘어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 일상적 개념이 아니라 과학적 개념의 획득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교수-학습’이다. 충동조절이 안되고,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십대 청소년, 그야말로 비고츠키가 말한 것처럼 여전히 ‘자연발생적 생각’ 그리고 ‘복합체적 사고’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교수-학습’이다. 비고츠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상적 개념을 통한 수행수준에서 급격한 증대와, 과학적 생각의 고양된 수준으로 나아가는 점진적 발달은 지식의 누적이 틀림없이 더욱 상승된 수준의 과학적 형태의 생각으로 이끌며 이것은 이어서 자연발생적 생각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학령기 어린이의 발달에서 교수-학습이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교수-학습’이란 무엇인가? ‘교수-학습’이라는 용어 즉 러시아어 obucheni의 가장 정확한 영어번역은 교사와 학생의 교수-학습 상호작용(teacher student instructional and learning interaction)이라 한다. 즉 영어에서 instruction의 의미가 교사가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들과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가 결여된 일방향적인 것이라면, 반대로 learning은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비고츠키가 사용한 obucheni는 교사와 학생 상호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결국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상호작용 즉 협력이 의식의 발달을 이끈다는 점이다. 비고츠키는 이를 ‘근접발달’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과학적 개념의 발달은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이루어진다. 이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인 협력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린이의 고등정신기능의 성숙은 어른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협력 과정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영역에서 그러한 발달은 인과적 생각에서 연관성의 증가와 과학적 생각에서, 교수-학습의 조건에 따라 창출되는 어떤 자의적 수준의 성숙에 따라 일어난다.”
“현재 발달 수준과 어린이가 혼자가 아닌 협력을 통해 얻는 발달 수준의 차이가 근접발달지역을 결정한다.”
“어린이에게 있어, 협력과 모방을 통한 발달, 교수-학습을 통한 발달은 근본적 사실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방은 학습이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형태이다. 어린이가 접근할 수 있는 이행 영역을 정의하는 근접발달영역은 교수-학습 및 발달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 협력을 통해 할 줄 아는 것을 내일은 혼자서 할 수 있다. 발달을 앞서서 발달의 전진을 이끄는 학습만이 효과적이다. 교수는 모방이 가능할 때만 가능하다. 학습의 가능성은 근접발달영역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학령기 과학적 개념의 발달에 대한 문제에 완전히 적용된다. 이 발달은 그 원천을 학교에서의 학습에 두고 있다. 따라서 학습과 발달의 문제는 과학적 개념의 기원과 형성의 중심적인 문제이다.”

결국 우리는 ‘교수-학습’이 의식의 발달을 선도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뇌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가소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십대 청소년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또한 방치의 대상이 아니며, 적절한 ‘교수-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를 교사와 학생, 부모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협력적인 관계가 아닌,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학교문화 속에서 훈육과 통제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기존의 권위주의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주입 위주의 입시경쟁교육이 아닌 협력을 통해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을 도모할 수 있는 교육방법론이 요구된다. 아래에서는 그 일환으로 뇌과학의 성과와 비고츠키의 논의에 근거하여 학생인권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다소 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4. 청소년의 뇌와 ‘비고츠키’ 그리고 학생인권

학생을 단지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학생인권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들은 학생인권조례는 매우 불온한 것이라고 참주선동하고 있으며,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게다가 버릇없고 무례한 아이들, 공부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아이들의 성적향상을 위해서는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는 그야말로 폭력적이고 반교육적인 발상을 버리지 못하는 교사와 학부모들도 여전히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하는 근거로 인권의 당위성을 아무리 주장해도, 또 유엔아동권리협약, 유네스코의 교육차별금지협약 등을 예로 들면서 국제사회의 흐름을 아무리 설명해도 여전히 적지 않는 수의 교사, 학부모 그리고 심지어 학생들조차도 우리의 이야기를 ‘맞는 말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에게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이라는 추상적이며 당위적인 논리를 반복하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인권조례만으로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근본적인 원인 즉 학생에게 폭력적인 학교문화를 재생산하는 대학서열체제 입시경쟁교육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능점수 몇 점 내신점수 몇 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고 갈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고 그렇게 임금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교사-학부모-학생들에게 학생인권이란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을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식적인 틀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제는 인권이라는 당위를 넘어 여전히 학생인권에 부정적인 혹은 학생인권에 대해 긍정은 하나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의 압박을 짓눌려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못했던 이들도 동참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아래 글을 통해 먼저 앞의 뇌 과학의 논의에서 확인한 것처럼 십대 청소년들의 행동은 성인과의 차이에 근거한 것이기에 그 차이는 존중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는 그 자체로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임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 인간의식의 발달을 선도하는 ‘교수-학습’의 본질인 협력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과 때문에 이를 파괴하는 체벌 등 청소년에 대한 폭력은 근절되어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자율성에 입각한 교육이야 말로 창의성을 형성하며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에 기여할 것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4-1. “잠좀자자! 밥좀먹자!”라는 요구는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잠잘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 십대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성인의 그것보다 긴 이유를 뇌 과학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는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을 그저 보장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수면시간을 보장하는 것은 곧 학습능력은 물론 감정조절능력과도 연동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점을 주목해야 한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십대들에게 수면이 지나치게 부족할 경우 사고력과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이 동시에 손상될 수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각종의 실험결과에 의하며 잠이 부족한 십대들은 감정과 생각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오케스트라가 완벽한 화음을 내기 위해 각자 악기를 조정하고 조율해야 하듯이, 신경체계도 더 잘 연결되려면 휴식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른 학교등교로 십대 청소년들의 뇌는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수면부족은 호르몬의 전반적인 기능장애를 만든다. 그중에서도 스트레스 호르몬은 코르티솔의 상승을 유발하고, 포도당 처리기능을 저하시키는데 이는 비만과 당뇨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욱 중요하게 수면부족은 학습능력의 저하와도 연결된다. 인간의 수면은 몇단계를 거친다. 1단계 수면은 선잠이 든 상태로 뇌파가 여전히 활동을 하기 때문에 쉽게 깬다. 2단계는 체온이 떨어지고 뇌파가 느려진다. 3단계와 4단계는 가장 깊은 수면이다. 5단계는 이른바 REM(rapid eye movement sleep) 수면으로 뇌파가 깨어있을 때만큼이나 활발하기 때문에 역설수면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REM수면이 지속적인 뇌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충분한 수면이 학습능력을 높인다는 것은 실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때 역설수면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역설수면 동안 대뇌피질이 활성화되며, 각성상태에서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 같은 구조가 역설수면 단계에서 더 활성화된다고 하며, 또 역설수면이 기억력과 학습을 강화하는 것과 장기기억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수면과 꿈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꿈은 기억에 관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특히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울 때 잠은 그날 익힌 것에 뇌 속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도록 돕는다고 한다. 각종의 실험결과는 잠을 충분히 자는 사람이 그날 배운 외국어 단어나 수학공식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자는 동안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니 뇌가 이미 들어온 정보를 효과적으로 갈무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은 물론 미국의 일부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충분한 수면을 위해 등교시간을 늦추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등교시간을 늦추면 충분히 잠을 잔 학생들의 학습태도가 좋아지며, 십대의 범죄와 임신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간 (즉, 부모가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시간인 오후 3-6시 사이)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있기에 그런 류의 위험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학생들의 수면시간을 보장하기 위하여 등교시간을 늦추게 되면 곧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는 학습능력의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며 뇌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포도당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약 2%에 지나지 않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전체의 20%에 육박한다. 만일 뇌에 필요한 영양소인 포도당과 단백질, 지방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뇌 활동은 지장을 받는다. 공복 때에 사고력이 흐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며, 각종의 실험 결과에 말해주 듯, 아침밥을 먹는 것은 활발한 뇌 활동에 필수적이다.
결국 학생들이 지난 2008년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고 외치며 0교시 폐지,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것은 과학적으로도 타당한 주장이다. 학생들이 충분한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게 될 것이며 그자체로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십대 청소년의 뇌와 성인의 뇌는 갖지 않다. 십대 청소년의 행동은 성인과의 차이에 근거한 것으로 억압의 대상이거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청소년시기에 나타나는 차이를 존중하여야 하며, 차이를 차별로 왜곡시키는 전근대적인 교육방식을 혁파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4-2. ‘경쟁’이 아닌 ‘협력’이 발달을 이끈다!

우리는 십대 청소년의 뇌와 성인의 그것이 다르며, 개념적인 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논리, 추론을 담당하는 부위인 전두엽이 성인이 되어서야 완성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더욱 중요하게 인간의 의식발달은 개체발생적으로 즉 청소년이 성인이 되면 저절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교수-학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실제로 뇌 과학에서도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접합 즉 시냅스를 형성이 인간의 학습, 경험, 관계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수-학습’은 일방적인 지식의 주입의 과정, 훈육과 통제가 아니라 비고츠키가 말한 것처럼 ‘이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인 협력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나타나며, 이 협력이 ‘근접발달 영역’을 형성하여 발달에 기여하게 된다.
때문에 교사와 학생의 협력적 관계를 파괴하는 일체의 행위, 특히 체벌과 폭언과 같은 행위 그 자체로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반교육적이며 발달에 역행하는 행태이다. 일각에서는 학생에 대한 체벌이 불가피한 이유로 학교폭력의 심각성 특히 극히 일부의 학생들의 동료학생과 교사에 대한 폭력이 거론된다. 물론 폭력행위 그 자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 행위에 대한 응분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사에 의한 폭언과 체벌 또한 폭력적인 학교문화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십대 청소년들이 공격성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사의 체벌로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십대들의 공격적인 태도는 생리학적인 원인, 입시경쟁과 같은 사회 심리적 요인, 과밀학급과 같은 열악한 학습 환경,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사회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편 뇌 과학에 의하면 십대 청소년들의 공격적인 성향과 행동은 뇌의 ‘편도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성적 논리적 추론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성인이 되어서야 발달하기 때문에, 십대 청소년기에는 상대적으로 뇌에서 편도체가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편도체가 공격성을 좌우한다.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편도체의 자극정도에 따라 폭력성이 변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편도체를 자극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다. 이것은 공격적인 성향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용기를 내게 만들고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물질이기도 하다. 반면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은 진정작용을 하는데 이 물질은 부모나 교사 그리고 동료학생으로부터 칭찬과 격려 그리고 위로를 받을 때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십대 청소년의 공격성향은 교사와 학생간의 협력적인 관계를 통해서 얼마든지 학생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학생에 대한 폭언과 체벌은 반인권적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학생의 발달을 가로 막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반교육적인 행동인 것으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협력이 교사와 학생만이 아니라, 학생과 학생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그를 통해 발달을 진전시킨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핀란드의 학교 수업이다. 이에 대한 관찰에 따르면 학생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협동을 통하여 학습의 질을 향상시킨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속에서 보다 충실한 지식을 찾아내고,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한다.  
학생간의 협력 즉, 또래간의 협력의 중요성은 뇌 과학의 성과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즉, 뇌 스캔 실험을 통해 인간이 협동을 하면, 상을 받거나 초콜릿 케익을 먹거나 코카인을 흡입할 때와 같은 영역에서 환하게 불이 들어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의 그 부분은 ‘도파민’에 반응하고 즐거움의 만족감을 지공하는 뇌의 보상회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협동을 하는 것은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며 이는 본능이라는 것이다. 또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협동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의 산물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속성이라고 한다. 즉 인류는 그 탄생에서부터 자신보다 큰 사냥감을 잡기 위해, 또는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 서로 돕지 않으면 안됐고 그것이 인간 유전자속에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교육, 특히 한국의 입시경쟁교육은 또래간의 협력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동급생들은 경쟁의 대상이며, 학습효율성 혹은 수월성이라는 미명하에 점수로 학생들은 쇠고기처럼 등급화 되어 교사로부터는 물론 학생들 사이에서도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또 수준별 수업 등 성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친구와의 협력을 통한 학습과 발달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엄청난 학습량과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의 시험으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학생들이 협력을 통해 학습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기본적인 소통능력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때문에 학생인권은 조례와 같은 형식적인 틀만이 아니라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을 가로막는 경쟁교육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과 결합될 때만 보장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4-3. 자율성이 창의적인 교육을 가능하게 만든다.

학생인권을 부정하는 자들은 청소년들은 미숙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청소년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마땅히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입만 열면 내 뱉는 말이 ‘창의적인 인재양성’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면서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한다니 이처럼 모순되는 주장이 있을까?
단언하건데 이들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앞서 살펴보았듯 십대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불안정한 행동들은 ‘교수-학습’ 즉 협력을 통해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교사와 학부모의 몫이다. 비고츠키가 “오늘 협력을 통해 할 줄 아는 것을 내일은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교육의 역할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즉, 자율성을 고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초중등교육 과정은 대학서열체제로 인해 입시경쟁교육으로 왜곡되어 협력적 관계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명문대 진학률로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교의 가치가 매겨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강제적인 수업노동을 감내해야 하며,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노동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통제하고 감시하는 ‘간수’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창의적인 인재양성이 가능하겠는가?
인간의 창의성은 외부로부터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인간의 자유의지 즉 자율성에 입각할 때만 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창의성은 학습자 스스로의 필요와 학습자체가 즐거울 때 그리고 편협하지 않는 다방면의 지식을 일정한 수준이상으로 확보할 때만 만들어진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경쟁교육은 제한된 지식을 주입하고, 그 주입된 지식의 보존여부를 확인하는 평가시스템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창의성은 결코 발현될 수 없다.
그런데 현재의 입시경쟁교육체제하에서 제한된 지식을 효과적으로 주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억압적 기제를 동원한 통제이다. 학칙이 가장 대표적인 기제이다. 학칙으로 두발과 복장을 통제하는 것은 실상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학칙이 정해진 범주 내에서 행동이 제한되고, 당연히 사고의 방식도 그를 넘지 못한다. 심지어 학칙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 그 자체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된다. 더욱 문제는 그 학칙은 학생의 자발성과 동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상상력, 창의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물론 어떤 사회나 집단에서도 규율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만일 학생들이 체벌과 폭언 그리고 벌점과 같은 압박에 못 이겨 규율을 지킨다면 그것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교육적이고 반도덕적이며 반사회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학생들이 자율성 없이 즉 자기 스스로의 판단과 조절능력을 갖지 못한 채 규율에 순종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규율에 반하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런 식의 규율의 강제는 결국 학생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때문에 필요한 것은 외적규율이 아닌 자율을 갖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비고츠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 ...교육학적 질문 속에서 자기 행동 숙달은 오랫동안 중심문제로 여겨져 왔다. 현재의 교육은 행위를 자발적 의지로 바꾸도록 제안한다. 외적 규율과 강제된 훈련 대신에 독립적 행동 숙달이 존재한다. 이것은 어린이의 자연적 경향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그들의 자기 행위 숙달과 연관된다.”
“..복종과 선의는 배후로 물러서고 자기 숙달의 문제가 전면으로 나오게 된다. ... 어린이는 자기 숙달을 통해서 복종을 배워야 한다. 자기 숙달을 토대로 복종과 의지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숙달 속에 복종과 의지가 포함 된다”

그렇다. 규율은 외적으로 강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숙달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숙달하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수-학습’ 즉 협력적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실제로 학습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학생의 자율성이 관건적이다. 체벌과 벌점을 동원해서 외우게 하는 학습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한편 자율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자치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치활동은 그 자율성과 창의성을 진작시킨다. 이는 외국의 사례로도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핀란드의 학생자치활동의 성과를 들 수 있다.
핀란드 교육에 대한 각종의 탐방보고서들은 일관되게 학생자치활동 즉 학생회 또한 학습자의 자율성을 증대시킨다고 말한다. 이때 학생회의 운영의 핵심은 협력적인 태도이다. 이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학생회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은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서로에게서 배우면서 개방성, 역동적 관계, 집단적 토론, 공동의 문제해결 능력 등을 얻는다. 공동으로 위험에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론을 진전시켜 나가면서 학생회와 나아가 사회전체를 민주적인 공동체로 인식하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든다. 학생들은 학생회 운영을 통해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하고,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협상하고, 논쟁하고, 함께 결정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인식능력과 추론능력을 갖게 된다. 상호 이질적인 개인과 집단들이 이 과정을 통해 열린 사고능력과 창조적인 사유능력을 획득하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즉 구성원들 간의 차이는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이점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창의성은 자율성을 근거로 발현된다. 그리고 이 자율성은 학생들이 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수-학습’의 과정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협력을 통해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칙을 학교와 교사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만드는 것도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학교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심성보’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폭력 없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이를 통해 자율적인 질서를 수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학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중의 하나다. 대화와 설득이 아니라 오로지 강제와 폭력으로 학생들을 통재하는 교사들을 보고 자란 학생들이 어른이 되면 그들도 배운 것이 그것뿐이기에 다시 힘으로 자기의견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규범의 내면화는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덕목을 되풀이해 암기하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학교의 교칙을 학생들에게 준수하도록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체계를 벗어나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학생들과 함께 공동으로 책임지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욕구를 반영하여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규칙과 벌칙을 과정은 아이들을 자율적인 존재로 키우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진정 우리가 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길 원한다면 그것은 바로 학생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확대하기 위한 노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율성은 방임이 아니라 ‘교수-학습’이라는 협력적인 관계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5. 나오는 글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현대 뇌 과학의 논의를 통해서 청소년들의 뇌가 성인의 그것과 같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 시기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입각하여 청소년들의 발달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생물학적인 특징을 존중한다는 것이 자칫 청소년의 뇌가 성인의 뇌로, 사춘기가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것이라는 식으로 방치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뇌 과학의 성과와 비고츠키와 루리야 등이 말했듯이 인간의 의식이 고양되는 것은 뇌 그 자체 변화가 아니라 외부와의 능동적인 관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식의 발달은 언어(상징, 기호등)를 매개로 하는 ‘교수-학습’이라는 협력적 관계를 통해 발전한다.
이런 관점들을 종합하면 기존의 학생인권에 대한 논의와 실천 또한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즉, 학생인권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본래의 목적인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을 위한 전제인 셈이다. 예를 들어 충분한 수면을 보장하는 것은 곧 학습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 ‘교수-학습’의 핵심인 교사와 학생의 협력적 관계를 파괴하는 체벌 과 폭언등은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다. 학생의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이야 말로 창의적인 인재양성의 필수조건으로 두발, 복장의 자유는 물론이고 학생자치활동 또한 보장되고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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