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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는 게으를 권리가 있는가? -폴 라파르그, [게으를 권리- 폴 라파르그 글 모음], 차영준 옮김, 필맥, 2009

김산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초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을 보면 개미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개미와 베짱이’이야기이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개미는 열심히 일하는데 베짱이는 노래만 부르고 놀다가 겨울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다가 개미에게 식량을 얻고서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이다. 그 시절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한심한 베짱이를 보면서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에도 ‘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던가 여러 이야기가 있었으며 지금도 교과서에 존재하며 선생님들은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가르친다. 물론 나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교훈이 인정 되려면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단순한 결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도 잘 살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알고 있고 긍정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명언.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러한 명언들에 대해 우리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일하지 않은 자는 먹을 권리가 없는 것일까?  그럼 굶어 죽는 것이 당연한 걸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라파르그는 ‘노동의 교리’는 끔찍한 교리라고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들은 기묘한 환각에 사로잡혀 있다. ··· 그것은 일에 대한 애착 또는 노동에 대한 처절한 열정인데 각 개인과 그 후손의 생명력을 고갈 시킬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직자와 경제학자와 도덕가들은 이러한 정신적 이상상태에 반대하기는커녕 노동에 대한 거룩한 후광을 씌웠다.’  뜨끔한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는 도덕시간에 열심히 노동하라 가르쳤고 노동을 신성하다고 하였다. 지금도 노동계에서는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하고 일하게 해달라고 투쟁한다. 사실 오늘날 거의 모든 노동계의 투쟁이 일하게 해달라는 투쟁임을 부인 할 수 없다.(생존을 위한 투쟁을 폄하하는 뜻이 아님을 먼저 밝힌다) 더 나아가 라파엘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프롤레타리아가 겪는 비참함은 모두 다 노동에 대한 열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에 대한 열정이 비참함을 만든다고 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여 일하라. 사회의 부와 그대들의 개인적 번영을 위해 일하라. 더 가난해져서 일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아지도록, 그래서 더 비참해지도록 일하라.  자본주의생산의 가차 없는 법칙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진다.  오늘날 우리현실이 아닌가? 일하지 않아 가난하다는 것은 교과서 속의 헛된말에 불과 한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가난한 자일 수록 더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더 비참해진다. ‘노동의 도그마에 의해 짐승처럼 취급되는 프롤레타리아는 겉치레에 불과한 번영의 시기에 스스로 과도한 노동을 부과했기 때문에 그토록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보다 평균 444시간이나 많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한국 노동자들이 일을 적게 한다고 불평이다. 대공장 노동자들을 보면 잔업에 특근에 실 노동시간은 상상을 초월하나 이를 줄이기 위한 투쟁은 보기 힘들다. 노동시간이 줄면 임금이 줄기 때문이다. 내 몸을 갉아 먹는 노동을 하는 것이다. 사실 현대는 과잉생산의 시대이다. 물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과잉생산으로 소비 촉진을 장려하는 시대이다. 어느새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서 일하는 처지가 되었다.

가끔 해고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일을 하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솔직히 나 같으면 나를 해고한 회사에 망하라고 저주하면서 그곳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복직투쟁을 폄하하려는 뜻은 아님을 다시 밝힌다)) 그러면서 대개의 경우 아이들 학원비를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무능한 가장이라며 자책한다. 한국의 또 다른 가슴 아픈 현실이다. 어느새 학원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련해야하는 가장의 책무가 되었다.

지금 경제문제는 일자리 문제이다. 청년실업이 문제이고 노년의 일자리도 문제다. 그런데 진정 일자리가 부족한 것일까?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는 공장이 많은 데도 일자리는 부족하다고 한다. 분명한 건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파르그는 말한다. ‘6개월 동안 하루에 12시간이나 일하는 대신에 1년 내내 노동량을 골고루 분산시켜 모든 노동자가 하루에 대여섯 시간만 일하게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자들이 매일매일의 일자리를 보장 받게 된다면 더 이상 서로를 시샘하지도, 서로에게서 일거리나 먹을 것을 빼앗지도 않을 것이고, 심신이 기진맥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낸 ‘무기력한 ‘인간의 권리(노동의 권리)’보다 천배는 고귀하고 성스러운 ‘게으를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하루에 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130년 전 라파르그의 말은 허황된 말이 아니라 우리 노동 운동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이제 우리는 8시간 노동에 안주하지 말고 4시간 노동, 3시간 노동을 쟁취해야 한다. 이미 자본주의 생산력은 그러고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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