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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담론과문화] 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1.04.10 16:51

진보교육 조회 수:1512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강수정(성수중)


3월, 학교에서 나눠주는 노트북을 켰더니 바탕화면에 떡~하니 현빈이 나타난다! 짙은 눈썹, 우수에 찬 눈동자,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 탄력있는 몸매 - 볼수록 빠져드는 자체 발광외모다! 현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크릿 가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크릿 가든’은 백화점 사장이자 재벌 2세 주원(현빈역)이 이틀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스턴트우먼 라임(하지원분)을 사랑하면서 티격태격,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하는 로맨틱 판타지다.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지만 탄탄하고 짜임새있는 구성을 통해 발현되는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주원의 톡톡 튀는 대화법과 사랑법, 주원을 맡은 현빈의 연기와 매력적인 외모는 말할 수 없이 달콤 쌉쌀하다.
그 덕에 ‘시크릿 가든’이 끝난 지 족히 두 달이 지났고, 현빈은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면서 하나둘, 하나둘 구호를 외치고 해병대 훈련병들과 함께 사라졌지만 현빈이 직접 불렀다는 ‘그 남자’(그 남자는 웁니다...)와 영혼체인지가 된 주원이 라임을 흉내 냈던 ‘문자왔숑 문자왔숑’은 여전히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전화를 울려대고 있다. 광고나 예능프로그램, 그리고 소소한 일상 대화에서까지 주원이 했던 대사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라든가, ‘이 옷은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옷이 아냐.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정도는 한마디 적절히 끼워 넣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쯤은 상식이고 대세가 되었다. 나야 상식은 식상하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경찰대나 테러진압부대를 동경해서 자연스레 해병대에 지원했다’는 현빈의 말에 완전 깨서 일찌감치 ‘시크릿 동화’ 속에서 나와 버렸다.

얼른 컴퓨터 제어판에서 디스플레이로 가서 바탕화면에 있는 현빈을 지워버렸다.
‘조각같은 외모에 물려받은 재산이, 또 앞으로 물려받을 재산이 얼만지 모르는 재벌 2세에, 백화점 사장에, 美명문대를 수석 졸업한 것도 모자라 뇌사상태에 빠진 사랑하는 라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영혼체인지를 하는 순수의 결정체’인  주원이 사라진 자리에 동화의 ‘바깥 세상’-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는, 다소  소박하고, 주목받지 못하고, 때론 고단하고, 평범한 우리가 사는 - 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 눈에 익은 재벌 2세 망나니들이 나타난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했던가? 재벌 2세 최강 망나니는 역시, ‘맷값 폭행’으로 세간을 들끓게 했던 SK 재벌 2세 최철원을 따를 자가 없다. 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용승계를 받지 않아 1인 시위를 하던 탱크로리 기사를 불러 국내 굴지 SK 본사에서 한 대당 100만원, 300만원하면서 알루미늄 방망이로 휘둘러 폭행을 하고 맷값으로 2000만원을 지불했던 자다. 평소 그의 행태도 가관이다. ‘지각한 직원들을 엎드려 뻗쳐놓고 삽자루나 곡괭이 자루로 폭행하기, 여직원들에게 사냥개의 목줄을 풀어놓고 물라고 시키기, 회의장에 개 풀어 놓기, 고속도로에서 군사작전 방불하듯 여러 대의 차량이 무전기로 연락하며 일렬 주행하기(실수하면 고속도로 갓길에서 엎드려 뻗치기), 골프채로 회사 간부 폭행하기, 도로가 막히면 인도로 차량 질주하기...’ 등등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경찰과 구사대를 동원하여 무참히 짓밟던 숱한 재벌들로부터 유전된 인면수심의 괴물이다.      
최철원에 결코 뒤지지 않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망나니 재벌 2세가 있다. 바로 ‘보복 폭행 사건’으로 유명한 한화그룹 김승연의 아들 김동선이다. 호텔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다가 호텔 여종업원의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하고 보안요원 두 명을 폭행하는 것도 모자라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서 지구대 방범창 창문까지 뜯어낸 자다. 검찰은 ‘성추행은 피해자가 원치 않고, 방범창은 재 부착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및 공소권 없음‘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고, 체육계 유력인사인 아버지 김승연의 힘을 업고 유유히 아시안 게임 승마 선수로 출전했다.(아버지 김승연의 보복 폭행사건은 언급하지 않겠다) 빽좋은 아버지 만나 폭력이면 폭력, 성추행이면 성추행 개기고 싶은 대로 개겨도 법이 비켜가는 신의 아들이다.  

최철원, 김동선 외에도 ‘청소상태가 안 좋다고 공업용 칼을 휘두르고, 직원들을 상습폭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정규직의 임금을 착복한 넘, 프라이드(차)가 버릇장머리없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벽돌로 운전자를 내려치고, 음주상태에서 단속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30m 까지 광란의 질주를 벌여 교통사고까지 내는 넘, 아버지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회사 어음을 횡령한 넘’ 등등
현실에서 만나는 재벌 2세는 나쁜 넘, 이상한 넘, 미친 넘으로 화려하게 뉴스를 장식하곤 하지만 ‘시크릿 동화’의 주원처럼 돈 많고 외모가 잘생기고 머리 좋고 착하면서 경영능력까지 겸비한 ‘능력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없다. 가끔 뭐한다하는 자식이면 무슨 무슨 미술관장이니 박물관장이 하는 간판을 달고 TV나 잡지에 곧잘 등장하기도 하는 걸로 봐서, 아무리 열성유전자를 물려받은 재벌 2세라 하더라도 잘 먹고, 잘 교육받고, 잘 누렸으면 귀티나고, 문화적인 소양이 높을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다. 하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 재벌 2세를 신으로 등극시키는 TV드라마의 심사는 한심하기보다 무섭다.  

우리에게 ‘재벌’이란 무엇인가? 웹스터 사전에 부끄럽게 등재되어 있는 ‘Chaebol'(재벌)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더불어 독재의 비호아래 성장하였고, 60년대 이후에는 군부독재의 두둑한 돈주머니로 갖은 정치적 특혜와 노동자 착취로 엄청난 초과이윤을 얻어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불법증여와 세금포탈, 부동산 투기로 몸집을 불려 기업을 사유화시킨 폭력과 탐욕의 화신이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기업을 일궈 국가 경제를 일으켜 세운 애국자가 되어 어느 틈에 사회지도층이란 이름으로 둔갑한다. 변신에 성공한 현대판 귀족인 재벌은 경영 능력에 대한 검증없이 오직 피한방울로 자식들과 친인척에게 기업을 물려주어 부를 대물림하는 작태를 서슴치 않는다. 오로지 ’산신할매의 램덤‘으로 태어나 기업을 물려받은 재벌 2세들은 수시로 터져 나오는 연예인들과의 스캔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각종 사건의 단골손님으로 데뷔하면서 70-8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래서 ’재벌 2세‘라는 타이틀은 결코 그들의 부모만큼이나 떳떳하지 못한 부끄러운 이름이었다. 게다가 최철원같은 개망나니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재벌 2세들의 현주소는 쫀쫀하기 그지없다. 해외 유학씩이나 갔다 와서 하는 사업이란 게 서민들이 생계를 위해 아등바등 사투를 벌이는 외식사업이나 의류, 건강식품까지 건드리면서 서민들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취미나 소일거리로 말이다. 재벌 2세들의 취미 생활에 죽어나는 것은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이다. 그런데, 언감생심? ‘백마탄 왕자’니 ‘완벽남’?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는 히틀러의 선전부장 괴벨스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감정과 본능을 예리하게 뚫어봤던 괴벨스는 대중을 장악하기위해 모든 집에 라디오를 보급하고 히틀러의 일거수일투족을 방송하여 무의식중에 나찌사상을 주입한다. 이때 ‘1%의 진실과 99%의 거짓’이라는 적절한 배합이 100%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둔다고 한다.  

주원이 ‘다모’ 액션 연기 펼치는 라임을 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 같은 시각적 환영 때문에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고도 슬픈 질환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극중 주원이 고백한 '앨리스 증후군'은 1955년 영국의 정신과 의사 토드가 자신의 논문에서 소개한 증상으로 이 증세를 가진 환자들은 시각적 환영으로 물체가 작아 보이거나 커 보이는 등 왜곡 증상을 일으키고, 마치 현실 세계가 동화 속 환상처럼 보게 되는 기이한 증상들을 겪는다고 한다.

‘시크릿 가든’의 ‘주원’은 ‘동화’와 ‘바깥’ - 현실과 상상, 아름다움과 추함, 진실과 거짓, 폭력과 아름다움, 노동과 자본 - 의 모든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허물고 환각 장애를 일으키는 신기하고 슬픈 ‘앨리스 증후군 바이러스’ 이다. 1%의 진실과 99%의 거짓을 적절히 배합해서 포장한 ‘주원’을 보고 있으면, 주원이 현빈이 되고, 현빈이 최철원이 되면서 환각 작용이 시작된다. 환각은 말초적인 신경만을 자극하여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고 우리 모두를 신데렐라 ‘길라임’으로 만들어 동화 속에 안주시킨다.      

우리가 드라마 속에 바글 바글 거리는 수많은 ‘주원'을 통해 ‘앨리스 증후군’의 집단 최면에 걸려 있는 지금, 어느 노동현장에서는 계급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제2, 제3의 최철원이 노동자를 향해 쇠방망이와 공업용 커터 칼을 휘두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누이는 성추행으로 벙어리 냉가슴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동화의 세계에서 나와 바깥을 보자! 봄이 오고 있다.

아참! 주원의 아름다운 외모는 즐겁게 감상하자,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니깐^^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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