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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출생/고령화 시대와 교육의 변화

 

아포리알 I 자유기고가

 

* 코로나 이후 교육과 저출생/고령화

코로나 사태가 아직 진행 중인데도 포스트코로나와 교육 변화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나 글이 활발하다. 아마도 코로나 이후 세상이 크게 변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교육도 변화될 것 혹은 변화되어야 할 것이라는 전망, 기대를 많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원격학습의 확대를 미래 교육의 상으로 잡고 있고, 진보 진영에서는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을 내건다. 한쪽은 소위 ‘4차산업혁명이 가속화되었다면서 도래하는 사회변화에 대한 적응을 주로 강조하고 진보진영은 만들어가야 할 사회에 강조를 둔다.

그런데 이미 도래한중대한 사회변화인 저출생/고령화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있다 하더라도 학령인구 감소라는 직접적 문제에 대한 논의 차원에 머문다. 저출생/고령화는 학령인구 감소차원을 뛰어넘는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야기할 근본적 문제이다. 그것은 저출생/고령화가 사회변화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생활양식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으며 단지 인구변화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 시스템, 정치 지형 등 사회 전반의 총체적 변화를 가져오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매우 완만하게 진행된다는 특성 때문에 문제의 중대성에 비해 그동안 시급한 인식과 대응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왔다. 새로운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저출생/고령화가 가져오는 교육 변화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학령인구 감소 문제를 넘어 더 근본적 변화 지점이라 생각되는 생애주기 변화, 교육에 대한 인식의 변화 문제를 주로 논의하고자 한다.

 

 

저출생/고령화 현상의 근본요인 : 삶의 형태, 욕망의 변화

먼저 저출생/고령화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동시대 현상이고 상호연관되지만 직접적 요인은 다소 구분된다. 고령화 요인은 의료 발달, 생활 개선 등 어느 정도 분명하기 때문에 저출생 현상의 요인을 살펴본다.

저출생 문제를 바라보는 가장 잘못된 혹은 무심한 오류는 이 현상이 일시적이거나 잠정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저출생 현상이 이미 현실이 된 역사적 변화이고, 앞으로의 명백한 추세라는 사실은 정설로 자리 잡았지만 의외로 이런 생각, 기대는 광범하다. 특히 경제성장에 대한 기존의 관성적 관념, 기대와 충돌하기 때문에 어떤 정책적 대응으로 그 추세를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 그러나 온갖 정책에도 저출생 경향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 것에서 보듯 이는 결코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이러저러한 얕은 장려책을 편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이 여러 사실들에서 나타난다. 많은 국가에서 출생률을 높이려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지만 저출생 추세는 요지부동이다. 물론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비해 다소 실효적인 장려 정책을 편 프랑스가 출생률을 일부 끌어 올렸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2017년 현재 합계출산률 1.88로 인구 증가는커녕 인구 유지도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이 정도 출산률도 이민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출생률까지 포함한 것이다. 프랑스 태생 여성의 합계출산률은 2017년 현재 1.77이다.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나라 중 장려 정책이 가장 성공적이라는 프랑스가 이 정도이니 저출생 경향 자체를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급격한 출생률 저하 및 인구감소를 완화하기 위한 실효적 장려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저출생 경향 자체를 반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환상이다. 그것은 저출생 경향이 인류의 생활양식, 삶의 방식 자체의 변화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다산이 더이상 사회경제적 생존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다산이 가족노동력의 증가이고, 가문의 힘이며 부족의 병력 증가였다. 다시 말해 이전 시대까지 오랫동안 다산은 사회경제적, 정치군사적 생존에 유리한 방식이었다. 대가족 시대에는 부양과 육아 부담도 분산되었기 때문에 다산에 대한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산이 사회경제적 생존에 불리한 시대로 변화했다.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고 가족 구성 형태도 변화해 시간적, 심리적 양육 부담은 더 커졌다. 사회경제적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적게 낳거나 낳지 않게 된다. 장려정책은 (한국처럼 비실효적이든, 프랑스처럼 다소 실효적이든) 부담을 완화시키는 것이지 사회경제적 생존의 유리함으로 반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계가 있다.

 

둘째, 더 근본적으로는 삶의 형태, 존재 양식이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매우 오랜 역사적 기간 동안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 자기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양육되고, 경제적 생존 수단을 확보하고,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고 그 자식들에게 경제적 생존수단을 나누어 주고 혼인을 시킨 뒤에는 손주를 보고 퇴장을 준비하는주기로 진행되어 왔다. 생물학적 재생산 과정에 사회적 재생산이 결합되고 거기에 개인의 삶이 종속되어 온 것이다. 여전히 많은 드라마에서 중년 여성들이 그 자신의 삶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식에 쏟는 어머니로서만 그려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삶의 방식, 형태는 변화되었다. 재생산 주기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이제 스스로의 개인적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삶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개인적 삶의 추구는 이전 시대에도 있었지만 귀족이나 사회엘리트들에게나 국한된 것이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이야 개인적 삶을 추구한들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철학적으로는 근대 이후 개인이 출현했다고 하지만 실제 많은 사람들이 개인이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로소 현대 사회에 이르러 인간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구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삶의 존재 양식의 커다란 변화이며 바로 이 점이 저출생 경향의 가장 근본적 요인이다. 다산은 물론이고 심지어 양육 자체가 개인적 삶의 영위와 현실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 많은 수의 자녀를 둘 경우 개인적 삶의 여지가 사실상 거의 없어지며 1~2명의 적은 자녀라 하더라도 개인적 삶을 상당 정도 할애해야 한다. 경제적, 시간적 측면만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삶이 중요해진 만큼 자녀의 삶에 대한 책임과 염려라는 심리적, 정신적 부담도 강해졌다. 저출생 현상은 필연적이다. 물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본능에 토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양식 일부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지만 자녀 수는 줄 수밖에 없고 출산과 양육에서 분리된 개인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이제 혼인, 출산과 양육은 선택 가능한 문제가 되었고 낳더라도 적게 낳아 양육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변화된 것이다.

 

다수 사람들의 개인적 삶의 추구가 저출생의 근본 요인이라는 점은 이 현상이 단지 경제적 상황 개선만으로 전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 지점인 삶의 존재 양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출산 및 양육과 개인적 삶의 영위가 균형 혹은 조화로운 결합을 이루는 수준으로 사회가 변화, 발전하기까지 지속될 경향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규정하는 근본적 지점의 변화와 결부된 것이기 때문에 그 변화의 영향 또한 심대할 것임을 의미한다. 교육에는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 생애주기 변화와 교육 변화

저출생/고령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 생애주기의 변화이다. 생애주기 변화는 삶의 기간이 늘어나면서 생애를 구성하는 각 연령기의 폭과 성격 변화를 의미한다. 주로 고령화와 연관된 현상이지만 사회의 복잡성 증가와도 관련이 깊다. 가장 주요한 현상으로는 0 청소년기의 연장 0 청년기의 이연 0 노년기의 새로운 탄생 등이 있다.

 

* 청소년기의 연장

 

청소년기는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의 이행적 연령기이다. 대략 중학 입학 연령인 만 13세 전후에서 10대 후반까지의 연령기를 이른다. 이렇게 긴 기간의 청소년기는 오직 인간에서만 나타난다. 동물에게는 청소년기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짧다. 비고츠키는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회문화적 성장과 발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적 발달과정에서 청소년기가 탄생된 것으로 본다. 자연적 발달만이 아니라 문화적 발달을 겪는 인간만의 발달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비고츠키 논의에서의 중요한 시사점은 청소년기가 원래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문화역사적 조건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가변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또한 청소년기 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애주기 전체가 문화역사적 조건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저출생/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인간 생애주기는 크게 변화되고 있다.

 

최근 청소년기 변화와 관련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청소년기 기간이 길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마보이 현상 등 청소년기 심리적 성숙 속도가 예전에 비해 늦어지고 있다는 보고들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대학생들이 덜 성숙하다는 교수들의 하소연도 꽤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예전에는 고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성인 대접을 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성인기 진입 시기가 늦어졌다는 사실은 적어도 경험적으로는 충분히 확인되는 사실이다. 청소년기 연장을 일부에서는 핵가족화/과보호로 인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인기로의 진입은 직업세계 등 사회진출, 결혼 등 생활의 독립, 가족관계의 독립 등과 관련이 깊다. 그런 점에서 사회진출 및 혼인 시기가 늦어지는 추세가 주요한 요인이 된다고 보여진다. 반대로 선거권의 부여 같은 주체로서의 독립을 북돋는 요소들도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청소년기가 연장되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인간의 청소년기가 문화역사적 발달에 따른 인류의 계통발생적 적응 혹은 대응이라는 비고츠키의 관점을 빌어온다면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사회문화적 성장에 필요한 기간이 더 필요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화역사적 조건 변화가 청소년기 연장의 배경인 것이다. 사회의 발달과 복잡성 증가는 교육 기간의 확대로 나타나고 교육 기간 확대는 사회 진출 시기의 이연으로 나타난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삶의 길이 연장은 그러한 생애 주기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청소년기의 연장은 교육적 차원에서는 보편적 교양교육연한이 확대될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청소년기가 독립적인 사회적 주체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민적 교양과 세계관과 가치, 보편적 노동능력을 형성하는 시기라고 할 때, 그러한 역량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청소년기까지는 보편적 교양교육의 시기로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회 발전 정도와 복잡성도 크게 증가하여 보편적 교양교육기간 확대의 필요성을 함께 제기한다. 역사적으로도 보편적 교양교육은 근대 공교육 성립 이후 사회발전 정도에 따라 초등-중학-고교 등으로 확대되어 왔다. 청소년기의 연장은 적어도 고교까지는 보편적 교양교육으로 확립하고 나아가 그 이상, 예컨대 대학 저학년 시기까지 보편 교양교육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진출 시기가 늦어지기 시작한 것은 꽤 되었으며, 사실 사회 진출 시기가 멀어졌을 때 심리적 성숙 속도가 완만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청소년기가 연장되고, 보편적 교양교육 기간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교육과정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보편 교양교육 기간을 오히려 단축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와 관련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보편 교양교육 축소로 주체적 시민 형성, 노동능력의 전반적 상승, 폭넓은 교양에 기초한 전문화에 해악을 미친다는 점이다. 또한 진로 선택의 측면에서도 청소년기의 연장, 사회진출 시기의 지연이라는 상황에서 조기 선택은 의미있고 책임있는 것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 청년기의 이연

청년기는 보통 20대 정도의 나이 대에 속하는 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청년기는 독자적 연령기가 아니다. 개념도 다양하다. 청소년기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거나 청소년기 후반부를 가리키거나 성인기 초반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청소년은 청년과 소년의 합성어이고 청장년은 청년과 장년의 합성어이다. 전자에서는 청소년기 후반부를 의미하며 후자에서는 성인기의 전반부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엄밀한 의미에서 별도의 독자적 시기가 아님에도 청년기는 매우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인간의 생애에서 삶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하고 활동이 왕성한 시기를 지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신체적ㆍ정신적 성장이 무르익은 청소년기 후반부와 성인기 초반부를 아우르는 시기로, 연령으로는 20대에서 30대초반까지의 정도로 보고자 한다.

 

청소년기가 연장되면서 청년기는 순연된다. 그리고 동시에 청년기도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대체로 20대에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적어도 30대 초반까지는 청년으로 보는 듯하다. 물론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사람마다 다양하다. 그렇지만 청년으로 지칭되는 세대가 연장되는 추세는 분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청년기의 연장은 대학-대학원 등 고등교육으로의 교육 기간 확대, 사회진출과 결혼 시기의 지연 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발달의 차원에서 본다면 청년기는 청소년기에 형성된 생물학적 성숙과 발달된 사고 역량을 토대로 전문적인 학문, 기술을 연마하고 세계관과 인격을 구체화하는 시기이다. 나아가 사회에 진출해 구현을 추구하는 시기이다.

 

비고츠키는 청년기에 관해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비고츠키는 청년기를 청소년기 후반부에 나타날 수 있는 특정 상황으로 보았는데 청소년 발달 과정 중 성적 성숙을 지나 문화적 발달이 최고에 이르는 시기로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 청년기를 별도의 연령별 시기, 단계가 아니라 청소년기 후반부에 나타날 수 있는 문화적 발달의 정점기로 규정하면서, 상황에 따라서 청년기는 나타날 수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조건적 시기로 본 것이다.

 

블론스키가 바르게 지적하듯, 노동자 계급의 청소년이 종종 이 최고의 문화적 발달 시기인 청년기를 전혀 거치지 않은 이유이다. 종종 매우 가변적이고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인류의 이러한 후기 성취는, 어떤 의미에서 명백히 계급적 자산이다.”(‘성애와 갈등’ 232. 살림터 2019)

 

비고츠키에 따르면 청소년은 성적 성숙이 완로된 이후에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화적 발달을 지속하는데, 이 청소년기 후반 문화적 발달이 최고에 이르는 시기가 청년기인 것인데, 먹고 살기 위해 이른 시기에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 계급의 청소년들은 문화적 발달이 단축되어 버림으로써 청년기가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기는 생존을 위해 문화적으로 일찍 어른이 되어버리지 않아도 되는 유한 계급 청소년들이 누리는 계급적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문화적 발달이 최고조에 이르는 청년기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누리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역사적 조건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블론스키 교수는 말한다. ”미래의 인류 역사는 청년기를 공고히 해야 한다. 지금, 적어도 장기적 현상으로서 청소년기는 공통 자산과는 거리가 멀다. 빈곤한 노동자 대중은 아직 이러한 자산을 공고히 획득하지 못하였다“(‘성애와 갈등’ 232. 살림터 2019)

 

청년기에 대한 비고츠키의 언급에서 중요한 점은 청년기가 언제냐가 아니라 삶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시기가 최고의 문화적 발달의 시기라는 청년기에 대한 성격과 의미 규정이다. 그리고 그런 발달의 황금기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올 수도 있고, 못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고츠키가 이러한 언급을 하던 시대 이후 90년의 세월이 흘렀고 현대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비고츠키가 말한대로 청년기를 최고의 문화적 발달기로 볼 경우 그런 의미의 전형적인 청년기는 역사적 상황이 달라졌음을 감안할 때 현재는 주로 대학에 다니는 경우에 해당한다. 꼭 대학에 다니지 않더라도 문화적 발달에 매진한다면 청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비해 그런 청년기를 누리는 사람은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제한적이다. 여전히 많은 노동자, 민중의 청소년들은 비고츠키가 말한 청년기를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

 

비고츠키의 청년기 개념은 교육에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모든 청소년이 전생애에서 최고의 문화적 발달기를 누릴 수 있도록 모두에게 고등교육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문화적 발달의 가능성이 최고일 때, 그 기회를 누리는 것은 인간적 권리로 보아야 하며 그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의 마땅한 책임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그것이 개개인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고 사회 전체의 주체적 역량을 최대화하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둘째, 대학 등 청년기 교육이 진정한 문화적 발달의 황금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와 스펙 쌓기에 매몰되는 현재의 대학 현실은 문화적 발달의 황금기와는 거리가 멀다. 독일의 대학 이념처럼 대학은 미래의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소우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 노년기의 새로운 탄생

생애의 연장은 비단 청소년기의 확장, 청년기의 이연, 연장만이 아니라 노년기의 의미와 존재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노년기는 더 이상 인생의 황혼이 아니다. 퇴직 이후로도 거의 30년에 가까운 삶을 영위한다. 마무리 시기가 아니라 삶의 주요 시기로서 하나의 독자적 의의와 활동 영역으로 구성되는 생애주기가 되었다. 또한 사회 전체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적,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 문화역사의 발달 속에서 청소년기가 탄생했듯이 현대사회는 노년기를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노년기에 대해서도 인식과 대응은 매우 뒤쳐져 있다. 심지어 경제성장이나 연금 문제 등을 다룰 때는 거의 부담으로만 인식된다. 먼저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기대수명 연장은 인류의 큰 발전이며 길어진 노년기는 개개인의 인간적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조건의 발생으로 보아야 한다. 변화된 노년기를 새롭게 이해하고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노년기에 대한 규정은 직업적 은퇴, 조부모가 되는 것. 독자적 거동의 어려움 등 다양한 기준들이 섞여 있다. 노년기 규정 자체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우선 길어진 기간 중 독자적 거동이 어려운 시기와 그 이전 시기는 구분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개인마다 다양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동이 어려울 때까지 은퇴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사회적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사회적 활동이 여전히 왕성한 장기간의 노년기는 인류 역사에서 최근에 이르러 발생한 것으로 아직 당사자들도, 사회적으로도 이 시기를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지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몇 가지 지점에서 새로운 노년기는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표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고령화 현상이 진행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투표집단을 이루게 되었으며, 소비주체로서 경제적 비중 또한 크다. 최근에는 한국에서의 트롯트 열풍 현상에서 보이듯 문화적 주체로도 부상하고 있다. 방향은 잘못되었지만 태극기 부대현상은 사회운동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노년기의 내용적, 실천적 정립 과정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이 시기 교육 자체가 전반적으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교육 자체가 결핍되어 있으며 그나마 있는 것들은 무료함을 달래는 시간 때우기식이 대부분이다. 주요한 사회적 주체로서 재인식하면서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생애주기에 대한 관념은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청소년기, 청년기, 노년기는 물론이고 생애 주기 전체의 재구성 속에서 청소년기 이전의 영유아기, 아동기 그리고 청장년기도 새롭게 의미지어질 필요가 있다. 저출생/고령화는 단지 기간의 변화, 연장 만이 아니라 인간 삶을 둘러싼 조건 변화, 전체 삶 자체의 존재 양식 변화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전 역사 어느 때 보다도 모든 인간 하나하나가 소중해졌고, 삶의 영위가 중요해졌다.

 

 

3. 교육 일반에 대한 욕구, 인식과 태도의 변화

생애주기의 변화만이 아니라 저출생/고령화는 직간접적으로 교육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켜 나간다. 몇 가지를 살펴 본다.

 

* 모든 이의 발달이 소중하다.

 

저출생은 개별 아동에 대한 관심과 의미 부여가 집중되는 조건이 된다. 이는 육남매’ ‘칠공주와 같은 다산시절과는 매우 다른 조건이다. 물론 예전에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었지만 경제적, 심리적 여력의 한계 속에서 장남이나 똘똘한 아이에게 자원과 에너지가 집중되는 경우들이 많았다. ‘다산 시절양육 및 성장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자원 배분의 차등, 결핍은 학교교육에서 많은 아동들이 서열과 선발에 의해 위계화, 도태되는 것을 용인하는 심리적 조건으로 연결되었다.

저출생 시대에 사정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모든 아동은 모든 가정에서 관심과 에너지가 집중되는 존재가 되었다. 모든 아동이 정말로 소중해진 것이다. 그것은 이제 학교에서 서열과 선발에 의해 아이들이 상처받고 도태되는 것을 예전보다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아동의 희소적 가치만이 아니라 아동의 삶을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개인적 삶이 추구가 아이들의 성장과 삶에도 투영된다. 아이들은 더 이상 가족노동력도, 가문의 힘을 키울 기대주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다. 아이들의 삶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교육이 아이들에게 삶의 역량과 내용을 갖추어주길, 즉 풍부한 발달을 도모해 주길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오고 있다. 양육과정에서의 자원의 차등분배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과잉 투여가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서열과 선발의 학교교육에 반발하여 많은 부모들이 대안교육을 찾기 시작한 것도 꽤 되었다. 최근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슬로건이 유행하는 것도 모든 아동의 발달이 소중해진 상황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양육과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동,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아동 하나하나가 소중해지고 학교가 그런 소중한 아이들이 행복한 가운데 풍부한 발달을 이루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갈수록 커다란 흐름이 되어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좋은 구호에 불과했던 모든 이의 전면적 발달 추구가 점점 더 현실의 방향이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다. 여전히 학교교육이 서열과 선발 체제로서 남아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행동은 소중한 내 아이서열과 선발의 꼭대기에 올라서도록 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치열하기도 하다. 아직 소중한 내 아이에 머물고 모든 아이가 소중하다로는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서열적 교육의 현실 속에서 행동은 따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오래 갈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모든 아이가 소중하다로 인식과 태도가 확장되기 마련이며 무엇보다 서열과 선발 시스템에서는 다수의 내 아이들이 상처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교육이 전 생애적 문제가 되다.

 

노년기가 새롭게 탄생하면서 노년기 교육이 새로운 형태로 부상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저출생 현상은 유아교육의 보편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렇게 교육의 대상 연령이 아래위로 확대되면서 생애 교육의 전체적 상이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연령기에 국한되는 것을 넘어 생애 교육으로서 교육의 새로운 상이 형성되는 것은 교육을 바라보는 인식에 두 가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나는 교육이 특정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가운데 내내 함께하는 하나의 삶, 생활 영역으로 이해되기 시작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만큼 살아가는 동안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로서 파악하기 쉬워졌다는 점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권리로서 교육권 개념이 분명히 정립될 경우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공공적 목적과 원리 하에 다루어야 할 문제가 된다.

 

* 이행기적 현상 : 공정담론에 대해

 

저출생 시대와 위계-선발 체제는 맞지 않는다. 아동, 청소년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생각, 정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변화된 사회 조건과도 맞지 않는다. 학교의 선발 기능은 많은 인구에 비해 교육 자원이 협소한 조건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저출생 시대 교육받을 인구는 적어졌고 교육자원은 충분하다.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질 높은 교육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남아있는 것은 사회경제적 위계와 그에 따른 교육 서열이다. 물론 쉽게 변화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저출생 시대, 개인적 삶과 가치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면서 위계와 서열에 대한 반감과 저항도 늘고 있다. ‘금수저-흙수저론’, ‘갑질에 대한 저항등이 그것이다. 페미니즘의 확산도 모든 위계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개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졌지만 위계와 서열이 현실적으로 엄존하는 조건에서 등장하는 것이 소위 공정담론이다. 모두가 다 소중하고, 따라서 평등하지만, 위계와 서열이 있으므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담론은 최근 수년 사이에 매우 민감한 모습으로 크게 확장되었는데 이와 같은 공정담론의 분출은 그만큼 소중한 나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타고난 위계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공정담론은 소중한 나에서 소중한 우리, ‘타고난 위계에 대한 거부에서 후천적 위계에 대한 거부로 나아가는 과정의 이행기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부분적으로나마 후천적 위계에 대한 거부감도 빠르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법조계, 언론, 의료계 등 대표적 엘리트 집단의 특권에 대한 반발이 광범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분야에서는 그와 같은 전환들이 이미 일정하게 나타나기 시작햇다고 생각된다. 초등의 경우 순위와 서열을 매기는 교육이 자리를 잃고 있으며, 중등에서도 절대평가론이 입지를 넗혀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모든 아이들의 발달이 소중하다는 생각 확대와 궤를 같이한다. 물론 대학서열과 입시가 엄존하기에 여전히 학교교육의 핵심 기능은 선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 아무리 성적 매기기에서 벗어나도 결국은 입시교육으로 귀결된다. 학부모들의 과도기적 이중성은 시기에 따라 달리진다. 초등 때까지는 소중한 내 아이발달 지향으로 연결되고 모든 아이들의 소중함으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중학교 입학 이후로는 입시 매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발달선발 경쟁사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인식, 태도의 이중성, 부분성, 모순들은 현재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밑으로부터의 새로운 정서, 욕구, 행동 양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기존의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으로 표출되어 나가리라 생각한다.

 

 

4. 저출생/고령화 시대와 교육의 재구성

저출생/고령화의 요인이 되는 생활양식의 변화, 저출생/고령화 그 자체, 그리고 학령인구 감소, 생애주기 변화 등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변화들 모두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교육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서 중간중간 언급한 부분들도 있지만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변화와 기존 교육 시스템의 충돌 지점과 그를 극복하기 위한 재구성 방향을 정리해 본다.

 

* 기존 교육체제와의 마찰, 충돌 지점

저출생/고령화 시대의 교육 조건과 이전 시대에 구성된 현재의 교육 체제는 여러 지점에서 어긋나고 충돌한다.

첫째, 영유아 돌봄/교육 요구의 보편화와 협소한 기회 및 사유화와의 충돌이다. 저출생은 아동, 청소년만이 아니라 영유아 시기부터 질 높은 돌봄, 교육을 통한 발달 요구를 보편화한다. 반면, 핵가족화, 맞벌이, 개인적 삶의 추구 등 생활양식 변화는 영유아 돌봄, 교육에 오히려 이전보다 어려운 조건을 부여한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공적 차원의 영유아 돌봄/교육 시스템을 요청한다. 그런데 아직 현실은 영유아 돌봄, 교육의 공간과 기회 자체가 협소하며 그마저 상당 부분이 영리화되어 있다. 현재 격한 마찰과 충돌이 이는 지점이다.

둘째, 아동, 청소년의 발달 위기이다. 이전 시기 대가족, 마을은 초기 발달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 속에서 성인과의 상호작용, 또래와의 놀이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대가족, 마을문화는 해체되었지만 아직 대체 기능은 형성되지 못했다. 놀이의 자리를 학원과 선행학습이 차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기초기능 발달이 지연, 결핍되는 아동들이 늘고 있으며, 뒤처지는 학습자를 버리는 선발 시스템 속에서 발달 위기는 청소년기까지 연장되며 또한 확대된다. 기초발달의 중요성이 사회적 보완 기능 부재, 아직 교육과정으로 인입하지 못한 현단계 교육체제와 모순되면서 광범한 발달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셋째, 교육의 핵심 방향 및 역할에 관한 것으로 보편적 발달에 대한 요구 확대와 기존의 경쟁과 선발 위주 시스템과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가장 핵심적 대립 지점이다.

넷째, 저출생 시대 대학, 고등교육의 보편화는 필연적이다. ‘소중한 내 아이, 우리 아이들이 최대한의 교육과 발달 기회를 누리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정서이고 요구이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저출생 시대에는 가능한 모든 후속세대의 전면적 발달을 추구하는 것이 발전 전략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대학의 보편화, 무상화, 공공화가 요청되며 현재 대학의 서열화, 상품화, 사유화와 대립한다.

다섯째, 노년기의 재탄생과 노년기 교육의 부재, 낡음과의 대립이다. 노년층이 새로운 형태와 의미로 형성되었으나 교육시스템은 거의 부재하며 있더라도 낡은 노인상에 입각한 것들이다. 노년기 교육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구성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교육시스템 전반이 이전의 대가족, 다산과 과잉인구, 협소한 교육 자원, 성장주의적 경쟁 시대의 산물이다. 정부 정책은 여전히 이전 시대의 관념과 틀에 사로잡혀 있다.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 재구성 방향

첫째, 교육 목표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의 전면적 발달이 더 이상 듣기 좋은 구호가 아니라 실제의 교육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발달의 관점과 원리에서 교육과정과 내용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동능력의 형성은 발달의 하위 개념으로 설정되는 것이 타당하다. 저출생 시대 전면적 발달 추구는 현실의 목표가 될 수 있다.

둘째, 생애교육의 관점, 사회적 기본권으로서 전 생애에 걸친 교육권 정립이 필요하다. 전 생애를 통해 본인이 원한다면 무상으로 교육받을 권리가 부여되고 사회적 시스템이 구성되어야 한다.

셋째, 보편 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교양있는 주체적 인간 형성을 위한 보편 교육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보편교육 연한을 대학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령화 시대 보편교육 확대로 사회적 진출이 이연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은 다수가 대학 이후로 사회진출 시기를 이연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마저도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고령화 시대 은퇴 시기를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 보편교육 확대로 진출 시기가 이연되더라도 한 개인이 노동하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역량은 상승, 발전하는 것이 된다.

넷째, 교육시스템의 총체적 재구성은 저출생/고령화 만이 아니라 생태, 평화와 안전, 민주주의와 평등 등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변화 방향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사회적으로 확고하게 정립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핀란드나 독일 등에서처럼 교육개혁 방향과 필요성을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고 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헌법적 가치로 사회적 권리로서 평생교육권, 전면적 발달의 이념 등을 자리매김하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5. -저출생/고령화의 역사적 의미

 

올해 상반기 태어난 아기가 142천여명에 그치며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상반기 혼인 건수도 통계 집계 이래 최소였다.....합계출산율은 2분기 기준 0.84명으로, 1분기(0.90)보다 적었다. 전년 동기에 비해서도 0.08명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2분기 기준으로 2008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저치다.“(연합뉴스.2020.08.26.)

 

코로나 사태는 당연하게도 저출생 현상을 더 확대시키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경과하면서 사회변화를 이야기하는 논의들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현대 사회변화의 가장 근본적 지점으로 점차 새롭게 인식되어 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 저출생/고령화와 결부된 교육 변화의 방향, 내용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체계적, 포괄적으로 분석,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저출생/고령화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먼저 인구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인구구조 변화는 사회변화의 가장 근본적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과도한 인구 증가는 유수한 문명들이 몰락하는 원인이 되었고, 반대로 적절한 인구 증가는 사회 부흥의 조건이 되어 왔다. 그것은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그 사회구성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고, 한 사회의 힘이라는 것이 결국은 그 사회구성원들이 보유한 양적, 질적 역량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구변화는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요한 변화 요인으로 바로 보이기 쉽지 않다. 그것은 변화속도가 워낙 완만하고 영향이 거시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변화의 방향만큼은 일관되며 그 힘 또한 매우 강력하다. 따라서 인구구조 변화의 성격을 이해할 경우 사회변화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상수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

 

저출생/고령화는 이전의 인구변화와도 또한 차원이 다르다. 저출생/고령화라는 새로운 양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인류 역사 최초이다. 첫째, 저출생/고령화라는 인구구조 자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적게 낳고, 가장 오래 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역사적 상황으로 이전에는 다뤄보지 못한 중대한 문제들을 제기하며 그 자체가 매우 강력한 변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둘째, 저출생/고령화라는 인구변화를 가져온 요인, 힘의 문제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사회변화의 방향과 관련해서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인간사회는 생산력이 허용하는 한 인구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먹이가 풍부하고, 질병이 적다면 개체 수는 증가한다. 그런데 저출생/고령화 현상이 더 발전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에서 보듯 물질적으로 더 풍요해지고, 질병으로부터 더 안전해졌는데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주 크게 본다면 과잉 인구가 생태계 파괴 등 생존 기반 자체를 허물 수 있기 때문에 인류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유적 대응으로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유적 대응방식과 내용이다. 생물학적, 집단적 재생산 기제에 종속되어 온 삶에서 벗어난 개인들의 출현, 낳더라도 적게 낳아 잘 키우려는 욕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 개인, 그런 욕망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인구구조를 변화시킬 정도로 다수가 되기 시작한 것은 비로소 현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 욕망의 변화는 사람들의 의식, 행동의 기저에 있는 것으로 매우 강력한 변화의 힘으로 작용해 나갈 수밖에 없다.

 

저출생/고령화의 새로운 인구구조는 교육만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시스템 전반과 충돌한다. 따라서 사회 전체 변화의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앞으로 그 작용의 힘은 점점 더 커져 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자유로운 개인들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엄밀하게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다수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다수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개인이 아니었고 주체적 세계관에 기초한 자유의지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적어도 인구구조를 바꿀만큼 개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다수의 개인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 다수의 개개인들이 비고츠키가 말하는 자유의지를 지닌 진정한 개인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꿈꿀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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