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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음 아님에 대해 생각하기

산 은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1.

19701113일 전태일의 분신 이후 우리는 상중(喪中)에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죽음들이 넘실대 상복을 벗을 수 없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고, 삶은 잿빛이다. 애도의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것이 나에게 닥칠 일임을 체감하게 되어 버겁기만 하다. 남은 이들에게 애석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그럴 만큼 그러나 죽음에 관해 많은 책들과 훌륭한 글이 있다. 종교가 유지되고 번성하는 근본원인 또한 죽음이다. 그러니 구태여 여기에서 말을 더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저 삶을 더 지속할 밖에.

시대의 죽음과 전선에서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노래를 가장 가까이서 부르고 있는 송경동 시인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결심하고 있다.

 

몇 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송경동.

 

파울 첼란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다. 나치에 의해, 게토에 수용되고,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땅을 파고 또 파면서 시를 썼다. 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로 추방당해 처형당했다. 쇼와(절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살아남은 첼란은 오스트리아태생의 나치 장교의 딸인 잉에보르크 바흐만을 사랑했다. 그러나 첼란에게 행복은 금지되었다. 세상의 모든 의미가 절멸에 잠겼기 때문이고, 죽음의 공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삼켰기 때문이며, 그것이 결국 그녀와 그를 갈라놓았다. 첼란은 1970년 자살했다.

 

꽃을 뿌리라, 낯선 여인이여, 마음 놓고 뿌리라.

그대 저 아래 깊은 곳에

정원들에 꽃을 건넨다.

 

여기 누웠어야 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누워 있지 않다. 그렇지만 세계가 그의 곁에 누워 있다.

 

세계, 그것이 갖가지 꽃들 앞에서

눈을 떴다.

 

그러나 그는 붙들었다, 많은 것들 보았기에,

눈먼 사람들과 함께.

그는 갔다, 그리고 너무 많이 꺾었다.

향기를 꺾었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이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갔다, 낯선 물 한 방울 마셨다,

바다를.

물고기들-

물고기들이 그 몸에 와 부딪힐까?

- 가묘(假墓). 파울 첼란. 전영애 옮김.

 

2.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eb040b5.t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800pixel, 세로 1268pixel

 

 

 

 

 

 

 

 

삶은 소금처럼 그대 앞에 하얗게 쌓인다

정끝별 시인이 나이 듦죽음을 주제로 엮어 쓴 60여 편의 시에 관한 에세이집이다. 시인은 시 속의 구절을 자유롭게 인용, 변주하며 각각의 시에 짧은 감상을 덧붙인다. 그는 살아있는 것들은 하얗게 늙어가고 지나간 것들은 소금의 결정체처럼 하얗게 쌓인다는 시적 비유를 통해 세월을 지나온 사람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흰빛에서 생의 신비로움과 존엄성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나이 먹는 일은 낯설고 두렵고, 때로는 사무치게 슬픈 일이기에 시인은 늙음과 죽음의 어두운 면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침저녁 한 움큼씩

약을 먹는다. 약 먹는 걸

더러 잊는다고 했더니

의사 선생은 벌컥 화를 내면서

그게 목숨 걸린 일이란다

꼬박꼬박 챙기며 깜박 잊으며

약에 걸린 목숨이 하릴없이 늙는다.

약 먹는 일 말고도

꾸역꾸역 마지못해 사는 게

깜박 잊고 사는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쭈글거리는 내 몰골이 안 돼 보였던지

제자 하나가 날더러 제발

나이 좀 먹지 말라는데

그거 안 먹으면 깜박 죽는다는 걸

녀석도 깜박 잊었나 보다.

- 그거 안 먹으면. 정양.

 

이 시에 글쓴이는 덧붙인다.

, 나이를 먹지 않으면 죽는 거였다! 약도 그렇고, 그거 안 먹으면, 죽는 거, 또 뭐가 있지?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꿈도 무럭무럭 먹어야 하고, 마음도 매일 다 잡아야 하고, 때로는 화장도 겁도 물도 좀 먹어야 한다. 그게 사는 일이다. 꼬박꼬박과 깜박, 더러와 벌컥, 제발과 좀, 하릴없이와 마지못해의 대비적인 부사들이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나이를 한 더 먹는 날이 날이다. 설을 쇠는 건 나이를 먹는 일이다. 목구멍에 떡국 넘기듯 그렇게 쑥, 그렇게 미끈, 그렇게 쫀득하게 한 살 더 먹으려고 설날이면 굳이 떡국을 먹나 보다. ‘설날 떡국 먹듯’, 기꺼이 약도 밥도 마음도 먹고, 한 살도 더 먹어야겠다.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니까?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그림자를 뒤에 두고 상처뿐인 발이 혼자 가고 있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포도나무의 시간은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까?

그 시간을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이라고 부릅니까?

 

지금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무엇으로 불립니까?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습니까?

지금 타오르는 저 불길은 무덤입니까 술 없는 음복입니까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가을달이 지고 있습니다.

- 포도나무를 태우며. 허수경.

 

포도 농사를 지어본 이들은 안다. 포도나무의 키는 대체로 애매해서 바닥에 주저앉지도 무릎을 곧게 펴지도 못하는 서는 것과 앉는 것사이의 자세를 취해야만 열매 수확이 가능함을. 달리 말해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있을 때야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살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란 뭔가. 포도나무는 어쩌다가 숨을 멈췄나.

숨을 멈춘 포도나무가 버림받고 타들어가는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목이 쉬도록 곡을 한다 해도, 삶과 죽음의 사이를 겪어내는 시간은 간단치가 않다. 그러나 창공에 오르지 못하는 연기가 울분이 되어 번져가는 속에서도, 시침을 떼고 포도나무의 재를 제 손아귀에 쥐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겐 죽음만큼 삶도 간단히 취급되므로,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이 술 없는 음복이나 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포도나무 태우는 일을 거드는 자여, 제대로 말하라. 누구를 위한 진정성인가.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이 이토록 초라한가. 어디선가 가을달은 지고, 술을 올리지 못하는 마음만 더불어 타들어가는 것 같다.

 

3.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eb0000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98pixel, 세로 281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4년 07월 30일 오후 11:27

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7.0

이 책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자만시(自晩時)를 모아 한학자 임준철이 우리말로 옮기고 평설한 것이다. 만시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이니 자만시는 곧 죽은 자신을 애도하는 시, 나의 죽음을 가정하고 스스로 애도하는 시다. 내가 쓰는 나의 장송가.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결연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자만시의 가

장 큰 특징이다.

이 책은 글쓴이가 발굴한 자만시 158수를 싣고 있다. 1죽음 앞의 고독에 묶인 시

들은 주로 조선 전기에 사화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문인들이 남긴 것이다. 자신에게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정치현실에서 배제된 고독한 자아를 표현한 시들이다. 2초월적 죽음에 실린 시들은 현실사회의 왜소함과 부정적 성격에 대한 반면으로 기능한다. 허구성이 두드러지는 자아 표현 중심의 자만시라 할 수 있다. 3가장된 죽음의 시들에서는 상장례 과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이 밖에 어느 유형에도 포함되지 않는 예외적인 자만시들은 또 다른 죽음의 모습이라는 제목 아래 모았다. 책 뒤의 해설 자만시에 대하여는 자만시의 기원과 양식적 특징, 중국 자만시의 주요 작품과 미적 특질, 자료의 범위와 분류 기준, 조선시대 자만시의 유형, 조선시대 자만시의 전개 양상, 조선시대 자만시의 계보적 특징 등을 책에 실린 자만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글이다.

 

세월 흘러 나 죽은 뒤에 돌아오게 되면,

풍광은 그대로고 초가집은 한가로우리.

남은 사람 속에서 모범 될 만한 이 구하기 어려운데,

혼백이 어찌 이 세상에 연연하리오.

황량한 무덤엔 계절 따라 술 올린 자취 남고,

시로 이름난 옛집엔 강산만이 남아 있으리.

낙화유수 같은 영락함이 평생의 한이었으니,

모든 것 유유히 전혀 상관하지 않으려네.

 

인용한 이만용(李晩用)의 자만시에서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죽음과 삶은 하나(生死一如)라는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이 시에선 죽음을 통해 오히려 현실을 초월하고 싶은 시인의 의식이 엿보인다. 죽은 뒤 먼 훗날 다시 고향집에 돌아오면 풍광은 여전하고 집도 한가로울 것이다. 세상에 닮고 싶은 이 없으니 더 이상 여한은 없다.

 

어느새 무덤이 말 앞에 이르고,

성명이 귀신 명부에 떨어졌구나.

땅강아지와 개미가 내 입에 들어오고,

파리 모기떼 내 살을 빨아대네.

새로 꼰 새끼줄로 내 허리를 묶고,

해진 거적으로 내 배를 덮는구나.

다섯 딸은 아버지를 찾아 울고,

한 아들은 하늘 부르며 곡하며,

어린 종은 와서 박주를 올리고,

승려는 찾아와 명복을 빌도다.

경사는 풀 베어 제사 지내고,

지전은 풀 섶에 걸렸는데.

상여꾼은 늙은 뼈 묻고,

열 달구로 소리 맞춰 무덤 다지네.

 

위 남효온(南孝溫)의 시는 조선시대 자만시 가운데 최초로 자만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시다. 자신의 죽음의 정경을 묘사한 장면이 압권이다. “땅강아지와 개미가 내 입에 들어오고, 파리 모기떼 내 살을 빨아대네라는 참혹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4.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죽지 않은 지금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2012년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사망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Nicdwa razy’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들어 본 듯한 표현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죽음과 지금을 생각하면 새삼 다가오는 의미가 깊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 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더라?

꽃인가, 아님 돌인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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