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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7(발간 : 201576)

 

[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토양의 이끼들

 

김윤주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15. 나는 어떻게 옷 장사가 되었나.

  몸빼, 냉장고 원피스만 입고 산다. 멋 부리는 게 불가능한 조건이니까.

 그러나 아기엄마가 되기 전까진 나도 나름 패피였다. 해직직후 기자들이 우리 반 애들을 인터뷰할 때면 여자애들은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 쌤은요~ 패션감각도 좋으시고요..어헝헝....”

지금의 내 모습에 초라함이나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었고, 멋 내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나는 대체로 수수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그 일상적인 낙이 너무 그리웠다. ! 꾸미고 싶다! 여자에게 옷과 외모란 어떤 의미일까

 

   처음엔 다 쓴 아기용품을 파는 걸로 시작했다. 더는 필요 없는 아기침대, 젖병소독기, 신생아 카시트...마흔 줄에 노산하였으므로 친구들은 이미 아기를 다 키워서 어디 줄 데도 없었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물건들이었다

중고용품을 파는 어플에 상점을 차리고 저렴하게 내놓았더니 모든 물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필요 없는 가구도 팔아치웠다.  ? 이거 재밌잖아? 오오오~~~ 눈을 돌린 곳은 옷장.  저 많고 짐짝같은 옷들...팔자!

  전부 쏠드아웃!!!~~~무지 잘 팔렸다. 옷 장사 치고 내 말재주와 거래매너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했으므로 어느 새 나는 그 중고장터에서 가장 잘 나가는 상점이 되었다.  옷을 파는 일은 아기물품을 파는 일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쾌감이 있어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옷을 예쁘게 디피하여 젤 좋은 각도로 사진을 찍고, 그 옷을 어떻게 입으면 예쁜가를 설명하는 일, 구매자와 밀당하며 흥정하는 일, 옷이 정말 마음에 든다는 후기를 접하는 일은 단순히 안 쓰는 물건을 리싸이클링하면서 용돈을 벌 수 있다는 윤리적/경제적 정합성을 넘어서는 쾌감이 있었다. 내게는 일시정지된 욕구를 복기하여 타인의 욕구를 최대한 부추기면서 대리 만족하는 쾌감.  

마침내 옷장이 텅텅 비었음에도 그 쾌감에 중독된 나는 급기야 옷을 사다 팔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갇혀 사는 일상에 돈 쓸 일도 없었고, 남편도 돈 버는 유세를 하는 남자는 아니었음에도, 동면 중이던 통장에 다시 입출금이 활발해지자 나는 마치 막혀있던 혈관이 뚫려 싱싱한 피가 도는 것 처럼 생기를 찾았다. 여자에게 경제적 자립이란 어떤 의미일까.

 

  평소 너무 노골적으로 사람의 속물근성을 전제한 내용의 광고는 보고 있노라면 소비자에 대한 광고주의 멸시의 시선이 읽혀져 불쾌하곤 했다. 그런 광고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대체로 자신만 돋보이고자 하는 이기심, 아닌 척 하면서 남자들의 시선을 갈망하는 여자들의 성적 피동성, 외관으로 자신감을 업할 수 있다는 물신주의와 외모지상주의 같은 것이어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속물근성을 자극하는 불쾌한 광고가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광고제작자의 감각이 한심했다.   

그러나 판매자 입장이 되고 보니 그게 먹혔고, 사람들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집요하게 자극하는 일은 부끄럽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단추마다 다 로고가 새겨져 있어 남들이 다 명품인지 알아본다던가,  “청순한 듯 하면서 슬쩍슬쩍 바디라인이 드러나 은근히 섹시한 요망템이라던가 남자들이 환장하는 코피퐝템이니 시선 좀 받아보라”, "고급스러운 섹시함" 같은 말들을 덧붙이는 것은 마치 나만의 소설을 쓰는 것처럼 신이 났다.  옷에 대한 사실정보만 설명한 제품보다 이런 말을 덧붙인 제품은 훨씬 인기가 좋았고 빨리 팔렸다.  

사실 나는 "싼티나는" 것을 "고급스러운" 것 보다 사랑한다. 싼티나는 연예인, <니글니글> 같은 싼티개그, 빈티지룩..  싼티는 일사불란한 자본주의적 미감과 안목을 교란시키고 우리에게 개그감과 전복적 쾌감을 선사하므로 고급스러움보다 훨씬 재기발랄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정체성과 일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장사꾼 비긴즈~ ~~이것은 뒤늦은 깨달음.

 

  교사는 제가 가진 가치관과 지식을 열정적으로 풀어놓는 직업인데다, 특히나 나는 그것을 학생 뿐 아니라 세상에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른바 운동권이었으므로 이 분리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잠재된 곳 어딘가에 꾸준히 각인되고 누적되어왔을 자본주의적 감각을 소환하여 타다다닥 만개시키는 일. 그것은 마치 실 세계에선 소심한 콰이어트맨이 넷 세계에선 무자비한 키배전사가 되는 경험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원래 나는 맘에 없는 소리를 절대 못하고, 내 감수성과 맞지 않는 공간을 견디지 못하는데, 이런 일련의 옷 판매 과정이 버겁기는커녕 키득키득 무척 재미났다. 뭐지...?

내 안에 십 수년 간 웅크리고 있던 이명박이 기지개를 켜고 신나게 팔다리를 휘저었다. 진보적 가치를 품고 그러한 삶을 정체성으로 삼고자는 이들에게도 발 디딘 토양이란 참으로 강력하며, 그 토양에서 매일같이 자양분을 먹고 광합성을 해온 잎은 그렇게 기회가 생기면 여 보란 듯 꽃을 피운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였다. 평소 사람들의 욕망에 기가 질려 진절머리를 치던 나의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 욕망을 쟁취하고자 경주마같이 모두 달려가는 이 황폐한 삶의 등급을 허물고, 공생과 행복, 평화가 실현되는 삶의 목표를 우리 모두 가지고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나름 실천해왔다. 그러나 옷을 팔 때는 자본이 매긴 브랜드 밸류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고급스러움을 떡밥으로 던지고 누군가가 낚이길 바라는 낚시꾼이 되어 지루한 세월을 즐겁게 소일했던 나는 누구인가.

흔히들 "진보의 위선"을 이야기하지만 요즘 세상이 그 위선으로 얻을 것은 빈곤과 피로감 뿐이니, 이런 이중성은 위선이라기 보다는 발 디딘 토양과 자기애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라고 본다.  일베가 동접률 1위 커뮤니티가 되는 토양, 이씨에 이어 박씨가 대통령이 되는 토양에서, 어느 진보적인 남자는 둘만의 공간에서 데이트폭력을 일삼았고, 어느 진보교사는 스마트폰 공간에서 신나게 옷을 팔았다. 은밀한 내적 공간에 놓였을 때 초록빛이 되는, 그토록 우리가 반기를 들고 극복하고자 했으나 우리 몸에 이미 뒤덮여있는 토양의 이끼들. 우리 아기가 진보적인 인간으로 성장했을 때 부디 이러한 분열증에서 오는 자괴감이 덜 드는 토양이 되어있길 바란다. 한 사람의 형성에 부모는 사회보다도 강력한 토양이니 정신 잘 차려야겠다.    

           

  여튼 옷들은 날개 돋힌 듯 팔려서 용돈을 넘어설 정도의 수입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사기꾼들이 상습적으로 내 아이디를 도용하여 사기판매를 자꾸 획책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그만 두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잘나가는 상점들은 전부 해킹을 당했는데, 그간에 쌓인 상점의 단골들과 신뢰도 때문에 해킹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 어플 써버는 그렇게 사기꾼들이 맘만 먹으면 자유자재로 해킹 가능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고, 간만에 투쟁심에 불탄 나는 여러 차례 고객센터에 항의 글을 올리고 어플 개발자, 어플 대표자 전화번호까지 알아내어 전화를 했지만, 그들은 다 수수방관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이 곳 역시 각자도생의 시대정신, 아몰랑의 책임자 정신이 구현되고 있었다.  

7개월간의 옷 장사 대장정에서 한숨 돌리는 중인 지금 와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뭐에 홀린 듯 괴력에 휩싸여있었다.  아기를 보면서 옷을 파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발송 외 모든 일은 아기가 자는 시간에 내 수면시간을 줄여가면서 한 일이었는데, 재밌지 않았다면 절대로 못할 짓이었다.   7개월 동안 더는 육아히스테리를 남편에게 부리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잊었는데, 거룩하지만 단조로운 돌봄의 세계에서는 유실되었던 세계,  다시 말해 천박하지만 버라이어티한 세계가 스마트폰을 타고 순간이동 가능하게 내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장사경험을 통해 체감한 것은 노동의 가치가 참으로 낮다는 것과 돈이 돈은 낳는다는 것. 옷 장사에 한창 신이 나 있을 무렵, 우리 집 주인이 2년 만에 2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집을 팔았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즉각적인 감정은 지난 몇 달간 밤잠을 줄여가며 옷 팔기에 열중하여 벌어들인 내 노동의 대가가 너무 초라하고 허무하다는 것이었다.

한편, 내가 지난 한 달간 벌어드린 수익이 마트 점원이 이 메르스여름에더 마스크를 쓴 채 한 달 내내 서서 일한 임금수준이란 것을 깨닫고는 세상 참 요지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쏟는 노동이래봐야 쾌감 팡팡 느끼며 옷을 쇼핑하고, 상세하게 옷에 대해 설명하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택배기사를 기다렸다 건네 준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소한 옷 쪼가리에서도 돈놓고 돈먹기의 원칙은 강력했는데, 비싸게 산 옷들일 수록 마진 폭이 컸고,  싼 맛에 들여놓은 옷들은 많은 경우 그냥 수고비도 없이 떨이하거나 덤으로 소진했다. 이러한 결과를 마주할 때 마다 나는 부동산 시장이 생각나곤 했는데,  돈 많고 배짱 좋아 강남에 고급 아파트를 산 이들은 가만 앉아서 수억을 벌었고 비쌀 수록 그 폭은 커서 톱스타들이 20억에 산 청담동 빌딩이 5년 지난 지금은 50억이네 어쩌네 하지 않나. 은퇴 후 창업한 사람들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넉넉한 자금으로 목 좋은 곳에 커피점을 연 사람들은 돈을 긁어 모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퇴직금만 날리는 걸 자주 보았다.

여튼 나 역시 말재주와 애티듀드라는 내 문화자본을 동원하여 대단한 노동 없이 쏠쏠한 이윤을 챙겼다는 happy but not good story.

 

#16. 데이트 폭력에 대한 단상

명성있는 진보적 인사들의 데이트폭력 과거가 일주인간 세 건이나 피해당사자들에 의해 폭로되었다. 가해자도 지목된 이들은 그간의 글이나 태도에서 꽤나 여성주의적 감각을 보여왔거나, 운동에 대한 헌신성으로 존경받는 이들이었다.

이런 류의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나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에 늘 곤란을 겪어왔다. 여초집단 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살면서 남자들에게 대체로 후한 대접을 받아왔고 나도 남자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인기가 많았거나 밝힘증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나를 박대하거나 내가 싫은 남자들과는 일절 친분을 맺지 않았던 이성애자로서의 일반적 자각 - 일상의 성 정치에 투철하려는 마음가짐과 단련이 부족했다. 리버럴하고 펑키한 기질 탓에 연인 간에 발생한 일에 대해 제 3자인 내가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로 목소리를 높일 만한 의욕 또한 없었다. 그러나 사회적 권력이나 물리적 힘에 있어 일방적으로 열세에 있는 한 쪽이 어떤 폭력에 희생당해왔음을 절규할 때, 그것을 다만 둘간의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로 치부하며 가만있는 것도 어딘가 찜찜하여 안절부절하곤 했다.

이렇게 입장을 스스로는 확고하게 견지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때 마다 다른 이들의 이런 저런 견해에 대한 내 마음의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서 입장을 정리하곤 했는데, 한번 말해보겠다.

 

일단 이미 헤어진 연인의 데이트폭력을 폭로하는 것에 대해 그것이 사적복수심의 측면이 있으므로 비겁하다는 시선에 대해 반대한다. 모든 피해자는 당연히 사적 복수심을 가진다. 데이트 폭력은 다른 성폭력 범죄와는 달리 피해자가 관계지속을 선택한 이상 남이 왈가왈부하기가 곤란한데, 그것이 사랑이든 매맞는 자의 심리로 길들여져 버린 것이든 피해자가 감당하기로 선택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운동판의 연인들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이것을 폭로한다는 것은 피해자도 정치적 타격을 입지만 실제로 이 사건을 두고, “페미니즘 물 꽤나 먹었다는 여자들이 몇 년씩이나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선 이제와서 폭로하는 것은 찌질하고 한심하다는 취지의 반응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 가해자는 정치적 매장을 당할 것이 눈에 빤히 보이므로, 피해자는 관계를 청산한 후에도 일말의 측은지심과 자기방어본능이 남아있을 때까지 이 폭로를 꺼리고, 상처를 자기업보로 끌어안는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그렇게 염려해줄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었다는 판단을 하게끔 하는 행동을 가해자가 할 때 뒤에서 자기를 욕보이고 모함하고 다닌다거나 하는 피해자는 모든 버틸 힘을 잃고 폭로를 감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것을 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완료시제의 데이트 폭력은 폭로해본들 가해자가 받을 타격은 명예의 몰수 정도인데, 이 정도의 응징조차 피해자가 할 수 없는가. 피해자는 인생의 한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폭행당해왔는데? 이 복수심에 흰 눈을 뜨는 것은 피해자가 고독하게 스스로 고통의 강을 건너 복수심을 극복한 다음에 운동적 차원에서만 문제를 제기하라는 요구와 다름없는데, 그런 시선이야말로 운동적으로 이율배반적이고 인간적으로 잔인하다. 설사 폭력이 아닌 다른 일에서 증오심을 느끼게 되어 그간의 폭행을 폭로했다 해도 내 생각은 같다. 자신이 행했던 폭력이 화약고 같은 원죄임을 모른 채 배짱좋게 피해자의 심기를 후벼 판 그 안일함의 기저가 무엇이겠는가.

두 번 째는 피해자의 심중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인데, 피해자가 그 사실을 일기장에 쓴 게 아니라 네트워크 공간에 공개했다면 일단 피해자의 심중은 어떤 구설과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이 일이 공론화되어 가해자를 단죄하고 세상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는 게 온당한 것 같다. 따라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사건을 함구하라는 주문에는 반대한다.

셋째는 피해자의 폭로와 가해자의 매장 사이에 절차가 필요하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성 폭력 문제에 대한 태도가 개인의 가장 밑바닥을 가늠하는 척도인 건 맞다고 본다.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본능적인 영역이므로. 그러나 그 척도가 가해자의 즉각매장이라는 즉결처형의 방아쇠가 되는 것은 불편하다. 왜냐면 나는 이런 태도가 어느 동지의 마인드 베이스가 알고 보니 쑥대밭이었음이 드러났으니, 그 동안 그가 생을 걸고 일군 논밭과 농작물도 실상은 다 거짓 쓰레기이므로 그런 자의 해명은 들어볼 가치조차 없다는, 다시 말해 베이스가 곧 전부라는 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편한 것은 아마도 내가 베이스가 취약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모두가 각자의 나약한 베이스를 극복하고자 안간힘쓰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노력을 스스로 가상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즉각매장은 그간 성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가해자인 남성활동가를 제대로 응징하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자 여성만 멸시해온 운동권 내 마초그룹이 자초한 게 분명한데, 이렇게 가해자가 매장될 정도로 사람들이 부글부글해야만 그나마 진상규명위를 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연인관계라는 것은 끊임없이 서로 애정과 상처를 주고받는 밀도 높고 은밀한 관계이므로, 진실의 맥락은 각자 다르게 재구성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지는 상징성이 아무리 강력하다해도 가해자가 자기 맥락을 해명하고자하는 것까지 닥치라고한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넷째는 카니발리즘을 경계하라는 경고를 마음에 새기기로 한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 사람들의 신나는 화젯거리로 폭발하는 것에 대해 카니발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남녀간 사건이 수면 위에 떠오를 때면 당사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도 없으면서 들썩들썩 한마디씩 덧붙이고 사건을 퍼나르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령 세월호 정국에 폭발했던 우리의 분노 또한 좌파들 떡밥 물고 신났네라고 여기는 이들이 존재했음을 기억할 때, 위험한 명명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별 더러운 꼴 본 적 없이 평탄하게 지내온 여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성폭력 사건들에 밀도 높은 감정이입과 분노감을 가지는 여성들이 많고 그것은 대체로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들썩거림과 설왕설래의 의중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설사 진짜로 공감과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다 해도 무성한 말과 참견이 해결을 촉구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니 저 경고는 우리가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양심과 양식에 대한 내적 호소일 것이며, 반드시 경청해야 할 충고라고 본다. 사실 누구나 다 뜨거운 화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고픈 욕구를 가지며, 말했다가 깨지고 욕먹고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생각이 정리되고 성숙해지는 것이 누군가의 삶보다 중요하지는 않지 않나. 내가 솔직하겠다고 뱉는 말이 2차가해가 될 수 있으며, 무성한 말잔치 속에 제대로 된 해결 없이 두 사람의 인생에 주홍글씨만 새기는 걸로 끝나는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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