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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담론과문화] 타라의 문화비평 - 푸른나래 이야기

2015.01.12 16:09

진보교육 조회 수:412

[담론과 문화] 2. 타라의 문화비평

푸른나래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 교실 공동체 약속을 중심으로


타라 (진보교육연구소 문화분과)


  현실 사회에서 개인과 집단 간의 관계 설정은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개인들이 집단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휘둘려지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사적인 공간에 칩거하며 낱낱이 부서져 있는 모습이 일상의 곳곳에서 목도된다. 그런 속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납득할 수 없는 마무리와 봉합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벤야민의 성찰에 의하면 집단은 강고한 덩어리이기 보다는 개별자들이 모여 있는 무리, 즉 은하수와 같은 성좌(Konstellation)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집단이 몽롱한 집단적 최면 상태인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계기를 개인의 각성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은 집단의 내부에 있다.
  이 글은 서울의 한 중산층 아파트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의 공동체 문화를 ‘교실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학급의 아이들이 사회적 개인으로 성장 발달하는 과정에는 교사 주체의 실존적 고민과 성찰이 함께 한다.

  S초등학교 5학년 푸른나래반은 18명의 남학생과 16명의 여학생으로 이뤄져 있다. 남학생 중에는 한 살 많은 자폐아 ‘노마’(가명, 이후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임)가 있다. 담임교사는 20여년 경력의 여교사이다. 아이들 중 1/3가량은 지난 해 이 교사로부터 과학을 배우기도 했으므로 아주 초면은 아니다. 그러나 한 교실 공동체로서는 모두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담임교사는 아이들이 권위와 강제에 눌리기보다는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훈계를 한다. 그리고는 “생각과 말이 살아있는 교실” 이라는 모토를 한해살이의 기본 방침으로 정한다. 적어도 이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이 부당한 힘에 눌리지 않으면서 제 나름의 생각을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자. 일종의 ‘숨통이 트이는 교실’이라고나 할까? 굉장히 민주적인 듯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와 같은 군림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교사 개인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봄
  3월 첫 주는 개별 아이들의 인지, 정서, 신체의 발달 정도를 진단하는 활동을 시작으로 해서 서로의 어색함을 깨는 다양한 활동이 전개된다. 그 중에 학급의 첫 공동 결정이 바로 ‘학급 이름 정하기’이다. 교사는 학급 아이들 전체에게 이것을 어떻게 정할 지를 묻는다. 이제 막 생겨난 우리 교실 공동체를 지칭할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아이들은 저마다 지난 학급에서 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왁자지껄 떠든다. 저마다 생각해온 뒤에 발표하고 그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것으로 결정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다음 날 교사는 아이들 각자의 제안을 모두 듣고 전지[全紙] 크기의 종이를 교실 뒷면에 붙이고는 원하는 이름에 각자 스티커 2개로 표시하게 한다. 2개를 한 곳에 붙이든 나누어 붙이든 아이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긴다. 교사가 제안한 ‘생각나무’는 단 5표를 받는 데 그친다. 교사는 과반수를 넘은 것이 없을 때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둘을 놓고 결선투표를 하기도 한다고 말한 뒤 우리 반에서는 어떻게 할지를 묻는다. 종이로 무기명 투표를 해보자는 한 아이의 제안이 있자 다른 아이들도 이에 찬성한다. ‘푸른나래’와 ‘우리’ 사이의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고, 숨죽인 개표 과정을 거쳐 3표 차이로 ‘푸른나래’가 결정된다. 노마도 짝의 설명을 듣고 하나를 적었다. ‘우리’를 이름으로 갖고 싶었던 아이들이 근소한 차이에 아쉬워하자 한 아이가 ‘우리 반’이라고 할 때 불러주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공동의 과업에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그 방법까지 결정해가며 수행한 첫 경험은 아이들의 몰입도가 높았던 만큼 이후의 교실 공동체 약속 논의와 결정에 그대로 이어진다.
  교사는 요일별 청소 당번 정하기도 교사다모임에서 학년 배정 때 했던 방식대로 포스트잇에 이름을 적어 붙이고 하루 종일 서로 의논해서 정하자고 제안한다. 조정할 때에는 반드시 강요가 아닌 개인 사정을 밝히고 설득하는 말하기를 하도록 당부하면서 말이다. 학년 초이므로 아이들은 친한 친구들로 무리짓기보다는 각자의 스케쥴에 따라 편한 요일에 이름을 붙여서 조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 수업시간이 적은 수요일에 많이 몰려 있어서 조정하는 방식을 의논하려고 하자 한 아이가 스스로 이동한다.
  사회시간에 고조선의 ‘8조법금’이 등장하자 아이들 간에 생각들이 분분하다. 법이 너무 가혹하다느니 남에게 해를 입혔으니 처벌은 당연하다느니 법에 대한 말들이 무성하다. 어떤 아이가 우리도 그런 법 하나 만들자는 말을 툭 던진다. 교사는 일종의 ‘교실 약속’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법이란 것은 우리 반 모두가 합의하여 만들어야 하고 그런 만큼 함께 지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거듭 강조한다. 아이들은 학급 이름을 정했던 방식을 스스로 활용하여 ‘나래법’이라는 이름을 정한다.
  그런데 각 조항은 어떻게 만들지 우왕좌왕이다. 학급에서 벌어질 많은 일들을 미리 예상하여 그걸 모두 만들자니 저마다 지난 학교생활에서 벌어진 온갖 일들에 대한 사실 확인에다가 판단들이 얽혀 어수선하다. 모두의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는다. 교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염려하여 법 조항을 만들지는 말자고, 그리고 실제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에 관해 충분히 얘기한 뒤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여기에는 한 번 만든 법이나 규약에 공동체 구성원이 오히려 매어버리는 폐단에 대한 교사의 비판적 의식이 녹아 있다.
  4월 중순이 되자 숙제 안하는 아이들과 수업시간에 딴 말과 딴 짓으로 흐름을 깨는 아이들이 제법 많아진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교사의 태도가 학생들에게 느슨함과 게으름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아이들에게 매 시간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 수업의 즐거움과 몰입도가 뚜렷이 떨어진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애로사항을 말하고 두 가지 사안에 대한 법 조항 제정을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구체적인 회의가 시작된다.
  교사는 나래법은 처벌보다는 친구가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게끔  돕는 데 주안점을 두자고, 그러므로 그 친구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벌로 청소를 하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제법 진지하게 다양한 의견을 제출하고 의견에 대한 문제점을 서로 짚어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일상에 직접 닿아 있는 문제인지라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생각할 시간을 요청하며, 지난 번과 같은 방식으로 결정한다.

다음 숙제를 두 배로 한다.
2
중간놀이, 점심시간, 방과후에 숙제를 하고 혼자 논다.
2
중간놀이, 점심시간에 책(만화책×)을 읽는다.
7
숙제를 한 번 안하면 문단속, 두 번 안하면 우유당번을 한다.
21
놀이시간에 숙제하고 숙제 두 번 베끼기(중간, 방과후)를 한다.
0
중간, 점심시간에 팜플렛에 “숙제를 열심히 해오겠습니다” 쓰고 복도를 돌아다닌다.
1


  아이들은 중간놀이 30분의 자유시간을 크게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1조>를 만들어낸다. 문단속을 하면 점심식사를 늦게 하게 되고, 우유당번을 하면 놀이시간의 5분 정도를 봉사하므로 이 정도만으로도 숙제를 잘 해오려는 의지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사가 만족하지 않아 보였는지 안 지키는 사람이 많아지면 다시 재논의하자고 말한다.
  <2조>를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년 수업에서 교사가 했던 방식을 시간만 조정하여 수용한 것이다. 나래법 1~2조로 봄학기 생활이 마무리된다.

< 나래법 >
1조 : 숙제를 한번 안하면 문단속, 두 번 안하면 우유당번을 한다.
2조 : 수업을 방해할 경우에는 15분간 엎드려 있는다.
      ※ 함께 만들고 함께 지켜 갑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바꿀 수 있어요.



  여름
  여름학기 국어 수업은 동학년 교사들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토론 위주로 진행된다. 찬반토론의 형식에 따라 근거를 들어 주장하기, 상대 주장에 대해 반론하기, 판정하기 등의 말하기 기능과 토론 절차를 학습하고 숙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즉흥적인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와 자료를 찾아 그것을 토대로 의견을 제시하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한다.
  교사는 아이들이 근거와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책이나 인터넷만이 아니라 논제에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활동을 권장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어른들의 견해를 모아오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세상과 소통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된다. 무심히 지나치던 타인의 얼굴을 새삼스레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할 수 있으며 비슷한 생각도 표현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생길 수 있음을 깨닫고 자기의 생각과 말을 정교하게 나타내려고 애쓴다. 종종 토론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바뀌는 아이들도 있다.
  초등학생이 학원에 다니는 문제와 만화책의 유용성 여부에 관한 찬반토론 연습 후 “초등학생이 전자교과서로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논제로 80분간의 집중 토론을 한다. 만화책과 전자교과서 논제는 아이들이 함께 협의하여 결정한 것에 따른다. 초등학생이 다루기에는 다소 어려운 주제라고 머뭇거리는 교사에게 아이들은 우리의 문제라며 대단한 결단을 한 것처럼 말한다. 교사는 최근의 신문과 동영상 자료들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여러 교사들과 주위 어른들에게 의견을 물으며 자료를 수집하러 다닌다.
  학기 중반 즈음 자기 물건을 말없이 그냥 가져가서는 마구 쓴다고 하소연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다른 친구의 실내화를 신고 화장실을 다녀온다든지 친구의 필통 속엣 것들을 자기 것처럼 다루면서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너무 자기 것에만 연연해하고 나누어 쓸 줄 몰라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훈계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힘이 센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의 것을 함부로 쓰는 경우를 실명은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사례를 들어가며 자세히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작년에 같은 반 친구를 툭하면 괴롭힌 정이는 말없고 소극적인 친구들의 물건을 가져가 쓰다가 싫증나면 돌려주던 전례가 있다. 아이들의 말을 듣자니 아이들은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에서 작년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어떤 징후를 감지했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교사는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듣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교사의 관심에 민감한 정이는 언행이 다소 거칠고 다루기 쉽지 않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래법 <3조> 제정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근거를 들어가며 주장하고 서로 질문하고 반박하는 모습이 제법이다.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친구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질문과 반박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정한 친구를 지칭하지 않으면서 실제 있었던 일을 일반적인 상황으로 제시해서 말할 줄 안다. 그리고 듣는 아이들도 친구의 말하기를 도와준다. 불안한 표정으로 주춤거리던 정이도 질문하는 식으로 논의에 끼어든다.
  <3조>는 특히 문구를 만드는 데 많은 협의가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남의 물건을 말없이 가져갈 때에는 친구에게 똑같은 것으로 사준다”가 “남의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가져갈 때에는 친구에게 똑같은 것으로 선물한다”로 다듬어진다. ‘말없이’는 자칫 “이거 나 빌려줘”라는 말만 던진 채 냉큼 가져가는 아이들을 제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교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주 구체적인 상황을 그리면서 적합한 문구를 고른다.  

  교사 : 그런데, 애들아! ‘사준다’를 ‘선물한다’로 바꾸어 봐야 준다는 건 똑같잖아.
  영이 : 선생님! 사주는 건 돈이면 그만이지만 선물에는 마음이 담겨야 하는 거잖아요.
  민이 : 그럼 돈으로 때우면 안 되겠네.  

  아이들은 <3조>에 큰 애착을 보인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던 교사를 설득하고 교실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제안하여 공들여 만든 조항이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1학기 교실 공동체는 나래법 1~3조를 만들고 서로의 약속으로 지켜냈다.

< 3조 > 남의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가져갈 때에는 친구에게 똑같은 것으로 선물한다.


  가을
  2학기 초 교실은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1학기 때의 안정감과 차분한 질서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나래법 1~2조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숙제를 연거퍼 안 해오거나 건성으로 해오는 아이들이 늘어간다. 교사는 아이들의 학습 태도와 정서적인 면을 고려하여 4인 남녀 모둠 구성을 하고 자리 배치를 전략적으로 해본다.
  2학기의 교실 생활에 대한 훈계 중에 교사가 나래법 1~2조를 다시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1조> 수정에 대해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여 논의를 시작한다. 지난 번에 오랜 시간 논의했던 것에서 시작하자는 진이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 교사는 지난 스티커 투표 과정이 담긴 전지를 칠판에 붙여준다.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던 “중간놀이, 점심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책(만화책×)을 읽는다”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재논의 과정이 흥미롭다. ‘책을 읽는다’는 조항의 적절함을 두고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부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실제로 조사해보자는 의견과 최근 놀이시간의 교실 놀이 모습에 대한 묘사까지 다양한 말들이 이어지더니 결국은 책 읽기 부분은 사라진다. “숙제는 놀이시간에 다하고 자기 자리에서 혼자 논다”로 확정되는 것이다.
  <2조>의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5분은 실제로는 너무 길고 잘 지켜지지도 않는다는 교사의 개정 제안에 대해 아이들은 그러면 15분을 넘지 않는 것으로 하자고 말한다. 교사가 판단하여 수업시간에 5~15분 내에서 재량껏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굳이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그냥 두어보기로 한다.
  이어서 아이들은 친구들 간에 괴롭힘이 많아졌다며 <4조> 제정을 제안한다. 교사는 교실이 부쩍 소란해진 것이 이 때문일 수도 있다고 여긴다. 아이들은 서로 간에 무척 익숙해진 만큼 친한 친구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이 늘었음을 호소하는 것이다. 벌이는 이는 장난이지만 당하는 이에게는 괴로운 상황! 실은 누구랄 것 없이 서로 얽혀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교사는 우선 괴롭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의해보자고 한다. 뒤를 돌아보면서 귀찮게 하는 것, 별명, 은어(끄져,…), 욕, 놀리는 것, 등짝을 때리는 것, 초인종을 누르면서 같이 놀자고 강요하는 것 등 구체적인 사례가 쏟아진다. 논의 중에 아이들은 본인은 장난으로 가볍게 한 행위가 상대에게는 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인식하게 된다.
  <4조>는 친구에게 사과 편지 쓰기 조항과 선생님과 당사자들 간의 3자회담 조항이 동수인 상황에서 특수반에 간 노마의 한 표로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한다. 그런데 노마의 짝인 준이가 노마는 무조건 나중에 제시한 것을 고른다고 말한다. 실제로 노마는 무조건 뒤에 말한 것을 선택한다. 아이들은 둘을 합치자고 제안하고, 최종적으로는 단계별로 실행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 1조 (개정) > 숙제는 놀이시간에 다하고 자기 자리에서 혼자 논다
< 4조 > 친구를 괴롭힐 때에는 사과 편지(1단계)와 선생님과 3자 회담(2단계)을 한다.

  

겨울
  가을학기부터 시작한 동아리활동과 악기 연주가 이어진다. 아이들이 스스로 구성한 또래집단이 만들어지는데,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다양한 공동체 경험을 갖는다. 교사는 구성원 수가 6명을 넘지 말 것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할 것, 집단 구성이 바뀌면 보드판에 바뀐 내용을 알릴 것이라고 말한 뒤 활동을 지켜본다. 2~3주 동안 집단은 다양하게 변화한다. 초기에는 주로 친한 아이들 중심으로 묶이다가 활동 내용이 구체화되면서 차츰 자기의 관심사로 옮아가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악기 연주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A-Mint(댄스), 영제(영화제작), 프로애니(애니메이션 제작), 블링블링(악세사리 만들기), 마술사의 모자(마술), 레인보우(종이접기) 총 6개의 동아리가 구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동아리 이름을 짓고 활동 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 아이들이 교실 공동체 회의에서 배운 것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제안-토론-결정과정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 구성을 둘러싼 갈등과 분란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발표할 것을 확정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등 실행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잘 지내던 구성원들 간에도 이견이 속출하고 공동체의 협력이 깨져간다. 이 시기 교실은 온통 동아리와 친구들을 둘러싼 일들로 뒤숭숭하다. 드디어 몇 개의 성좌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교사는 넌지시 다가가 동아리 구성원들에게 일종의 대책회의를 제안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한 뒤,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 지를 아이들의 입으로 말하게 한다. 교사는 교사 공동체의 갈등을 풀던 방식을 활용해보는 것이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 집단에도 사회가 담겨 있다. 상황에 대처하고 관계를 맺는 아이들 모습에서 교사는 교사 공동체에서의 자기의 모습과 동료 교사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혼자 하기 어려운 과업을 함께 협력해가며 이루어간다. 과정마다 부딪힘이 없지는 않지만 그 중 누군가가 교사가 행하던 중재를 서툴게나마 수행하며 문제를 풀어간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5조>는 학년말이 되어 느슨해지는 모두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조항은 가을학기에 많은 아이들이 의견으로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 5조 > 나래법을 지키지 않으면 ‘×2’를 한다.


  푸른나래 교실에는 교사가 구성한 4인 모둠과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동아리, 악기 연주팀, 그리고 놀이집단 등 여러 층위의 작은 집단들이 있다. 이 집단들은 유연하고 유동적이다. 아이들은 여러 개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친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난다. 그 과정을 통해 원자적 개인이 사회적 개인으로 커간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소통에 능숙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관계 맺기에 서툴고 어설픈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진도로 발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교실에는 갖가지 그물눈들이 저마다 다름을 유지한 채 별무리를 만들며 이리저리 유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곳곳에서 새로운 부딪힘[갈등]이 예나제나 벌어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