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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뽀] 전국 지자체들의 입시 사교육 시키기 경쟁실태

조진희(서울영일초등학교)

순창 옥천인재숙의 ‘화려한 휴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르 흐르는 8월 한여름, 서울로 수학여행이라니? 전북 순창군 옥천인재숙 입사생 130명은 지난 8월 3일 “학습동기 부여와 견문을 넓히기 위해” 서울대를 견학했다. 입사생들은 김희백 서울대 사대 부학장의 안내로 캠퍼스 투어(?)를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이 대학에 와야지’라는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옥천인재숙은 2004년부터 전북 순창군에서 연간 1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여 운영하는 사설 기숙학원이다. 처음에는 군에서 운영하는 군립학원이었지만 “세금으로 소수 학생만을 위한 사교육을 조장하고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전교조 전북지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군수를 제소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기소유예) 받은 다음 학원으로 정식 등록했다.
순창군은 군내 중3에서 고3까지 학교장의 추천과 자체 선발을 통해 학년별로 50명씩 200명을 기숙시키면서 ‘방과후 특별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 공립 기숙학원에는 서울과 광주 유명학원의 강사들이 초빙됐고 두 명이 올해 처음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이외에도 20여 명이 고대․연대․이대 등 수도권 유명대학에 들어갔다. 가난한 시골 지자체로서는 거액인 4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은 결과다. 단순 계산해도 군은 한 학생당 1억 원이 넘는 투자를 한 셈이다.
옥천인재숙이 ‘전국 우수 혁신브랜드 사업 선정 대상’으로 뽑히고 순창군 인구 증가의 요인으로도 꼽히자 전북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옥천인재숙 따라잡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1일 경남 산청군과 (주)부영은 지품초등학교 터에 ‘우정학사’ 기공식을 가졌다. 우정학사는 지상 3층 규모에 1실 4인용 기숙사 25실 외에도 다양한 학습 및 편의시설을 갖추게 된다. 산청군은 2008년 중고생 각 90명씩 180명을 선발하여 오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강의를 통한 방과후 학습을 지원할 예정이다.


공부 못하면 구로 학생 아니다

고추장보다 더 매운 순창군의 서울대를 향한 몸부림은 서울 구로구에도 상륙했다. 구로구청은 강남구청의 온라인 강의를 통한 입시교육과는 달리 학생들을 모집하여 직접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2일 구로구청은 학생 60명을 선발해서 관내 경인고등학교에서 1억원 논술 특강을 시작했다. 6개 학교에서 문과 전교 5등, 이과 전교 5등 학생들을 뽑아 이른바 ‘SKY를 향한 통합논구술반’을 만든 것. SKY 통합논구술반은 매주 토요일 4시간씩 유명 학원 강사들의 논술․구술 강의 및 첨삭지도를 받는다.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분필가루 날리는 교실에서 묵묵히 공부하는 2,500명의 학생들은 구로구청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논술 특강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에 전교조 서울지부는 성명서에서 “공공기관이 1%도 안 되는 극소수 학생을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혈세를 들여 사설 학원처럼 논술 과외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결과적으로 다른 자치구와 입시경쟁을 불러일으켜 소외지역의 박탈감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구로구청의 학생차별, 교육차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0년까지 총 4,380억 원을 투입하는 양대웅 구청장의 「4개년 교육계획」을 살펴보면 △과학고 건립 △영어체험학습센터 개관 △중학교 원어민교사 배치 △과학축전, 발명품경진대회, 외국어경연대회 등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업 추진을 하다 보니 대다수의 교사와 학부모들이 원하는 △친환경 급식 실시 △저소득층 중식비 △사서교사 채용 △학습준비물비 등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


세금 먹는 ‘이무기’, 지자체 영어마을

지자체들의 입시교육 열풍은 이미 영어교육에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어마을을 만들어 ‘단기 해외어학연수 대체효과’를 보겠다는 공약은, 내년 총선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2일 화려하게 문을 연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는 연간 200억의 적자를 보는 애물단지로 변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파주만 도 직영으로 하고 내년 개원하는 양평과 기존의 안산캠프는 민간위탁하겠다”고 밝혔다. ‘영어마을 1호점’안산캠프도 민간에 위탁할 수밖에 없는 재정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이다. 초기 건립비만도 997억이 든 파주캠프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져 수강료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정도 적자는 예견된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영어마을 건립이 혈세가 줄줄이 새는 사업임에도 몇백 억씩 들여 English Village를 조성하려는 자자체의 경쟁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영어마을을 운영중인 서울, 경기, 인천을 비롯하여 1조5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사업비가 들어갈 제주영어전용타운에 이어 부산, 대구, 대전, 경남 등 광역단체들이 영어마을 건립 계획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의정부, 용인, 수원, 이천 등 일선 시군구까지 지역 주민의 요구와 단체장의 선거공약을 이유로 앞다퉈 나서고 있다. 외국어마을 조성 계획을 검토중인 지자체는 전국적으로 30여 곳에 달한다.(출처:「영어마을 위기론」, 뉴스피플 4월호)

<자자체 운영 10개 영어마을 현황>


교육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단체장들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을 위한 정책은 결국 ‘강남 엄마 따라잡기’가 숨어 있다. 지자체들이 유명 입시학원과 제휴, 서울의 입시학원을 각 지역으로 끌어와 현지 학생들에게 온․오프라인 강의를 하는 모양새도 이와 흡사하다. 단체장들은 명문대를 보내기 위해 강남 엄마들이 하는 것을 지자체가 대신 해주는 게 뭐가 나쁘냐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야 인구 이탈도 막고 3류 고등학교라는 손가락질도 안 받는다는 얘기다.
허나 명문대 진학하는 학생들을 늘려 지역을 살려 보겠다는 정책은, 단체장들까지 나서서 입시경쟁을 조장하고 소수 아이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 8월 1일 전교조 경남지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저소득층․한부모․조부모 가정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충분해야 한다”면서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여 운영한다면 순수한 교육목적이 아닌 정치적인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체장들이 성과로 꼽고 있는 지역인구 유입효과를 반박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전교조 전북지부 김지성 정책실장은 순창군의 인구수는 늘었으나 학생수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를 해결해야 군단위에 인구가 유입된다”면서 “공립기숙학교는 경제, 사회복지의 실패를 교육부문에서 만회하려는 정치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자체들의 영어마을도 이미 오래 전에 정치화되었다. 지난 8월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10월부터 수유․풍납 영어캠프에 학생들이 단체로 입소하면 16만원이었던 5박 6일 프로그램을 4박 5일 12만원으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모든 언론은 “서울시, 영어마을 참가비 인하”라는 기사를 전했고 영어캠프 대중화를 위해 조례를 개정한다는 이미지를 팍팍 심어줬다. 그러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어마을에 4박 5일간 학년별․학교별 단체로 입소하면 당연히 인하해 주어야 한다(가격인하로 유인될 단체손님은 영어마을의 적자를 메워줄 중요한 아이템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2009년 개관을 목표로‘제3영어마을’을 관악구 봉천동에 추가 조성하기로 했다.)

입시가 사라져야 지역도 산다
지자체의 모든 정책들이 이렇듯 불평등한 것만은 아니다. 전북도는 2006년부터 13개 기초 지자체의 교육경비보조금 41억 원, 교육청 돈 44억 원 등 총 86억 원을 조성하여 도내 농산어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33,153명(전북 유초등학생 17만 명의 19.1%)에게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송경원 정책연구원은 지자체 교육예산과 관련한 쟁점이 ‘예산의 충분한 확보와 지자체간의 격차 해소’에서 ‘얼마나 잘 쓰고 있는가’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즉 지자체가 어디에 교육예산을 쓰며, 그 쓰임새가 타당한지, 얼마나 민주적으로 의사결정 했는지가 최근에는 더 관건이라는 얘기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는 교육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드러내준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에 비하여 저소득층 중식지원비를 약 37억 원이나 삭감하여 중식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났다. 저소득층 지원비도 지난해에 비해 약 20%인 120억 원이나 삭감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교육청은 수업료를 4.95% 인상하여 고교 신입생의 연 부담금은 180만 원에 이르렀다.
전교조 서울지부 최우암 정책기획국장은 “교육복지특별법․농산어촌교육지원특별법 제정으로 낙후시설 개선, 친환경 무상급식, 문화인프라 구축, 학습준비물비 지원 등에 지방 교육예산이 쓰일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입시폐지, 학벌철폐, 대학 평준화 없이는, 입시 결과를 지역의 경쟁력으로 바라보는 지금의 정책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역설한다.
등록금, 수업료, 급식비, 학습준비물비, 체험학습비 등 학부모가 부담하는 사부담 공교육비를 무상화 할 계획은 전혀 없는 중앙정부와 지자체들. 소수를 위한 정책, 입시를 강화하는 사업을 주민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은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다. 단체장들은 명문대 입시를 향한 공립학원, 해외유학의 발걸음을 되돌리려는 영어마을, 사교육비를 주민의 혈세로 감당하는 각종 입시프로그램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 학부모 한명 한명에게 모두 균등하게 혜택이 돌아가는 ‘양극화 해소, 복지로서의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지역 연대의 힘을 모아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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