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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교육담론의 오류와 문제점

 

연구소20주년기념심포준비팀

세계자본주의와 한국 자본주의가 저성장시대에 돌입하고 있는 이때 한국사회 정치사회적 헤게모니는 수구의 강력한 저항 속에서 자유주의세력 쪽으로 확연히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시대인식과 교육담론을 살피는 것은 현 단계 교육운동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1. 현 단계 자유주의의 시대변화와 교육개편에 대한 인식

 

“우리 교육은 이제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산업구조의 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교육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팽창 시대에 만들어졌던 교육 내용과 방법, 교육 시설과 환경은 인구구조 변화에 맞추어 새롭게 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략)... 또한 지식과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일자리의 생성과 소멸이 급격하게 나타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이들이 마주칠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어떠한 역량을 어떠한 방법으로 키워줄 것인지,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직업세계에서 필요한 역량을 함양하는 재교육 기회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우리 교육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유은혜 교육부장관,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개회의 글, 2019년 10월23일)

 

“최근 4차 산업혁명, 초연결사회, 저출산·고령화 등 급격한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2030미래교육체제의 방향과 과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 (중략) .미래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유·초·중등교육, 고등교육, 평생·직업교육, 디지털교육, 교육자치 연구 등을 통하여 과도한 시험, 맹목적 암기, 입시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에서 벗어나, ‘포용’과 ‘혁신’의 직업교육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룡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환영의 글, 2019년 10월23일)

 

2기 국가교육회의 의장 김진경은 현재의 교육체제를 산업사회체제에나 맞을 ‘산업화 시대의 교육’에 규정하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그 기술혁신이 포용적 국가 사회체제와 포용적 경제사회정책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것 자체가 ”포용-혁신“ 패러다임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 기술혁신에만 초점을 맞추고 포용적 국가 사회시스템과 정책을 소홀히 하면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빠”지게 되므로 지속가능한 포용적 성장이 가능한 교육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의 인용문에서 짐작되듯이, 자유주의의 시대인식을 드러내는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지능정보사회”, “저출산 고령화”, “포용적 성장” 등이다. 결론부터 말자면, 인구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사회는 현 교육체제와 조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 단계 자유주의자들의 인식이며 이러한 인식이 자유주의 미래교육담론의 요체를 이룬다.

그들은 “4차 산업혁명과 지능정보사회 진입, 인구구조 변화 등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응하고 미래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인재양성 교육체제 필요”하다고 여기며, 지난 시기의 경제개발모델과 교육개혁방안의 문제점을 살짝 덜어내면 “지속가능한 포용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한다. 과거의 구태의연한 교육체제에서 가장 시급하게 채워야 할 것은 ‘유연성’이라고 보고 “유연하고 개방적인 교육체제수립”을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이 갖추어야할 미덕이며 공적인 ‘직업교육체제’를 새로운 교육체제의 이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등 새로운 교육거버넌스로의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는 국가주도식 하향적 교육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교육거버넌스로 개편하는 작업”이다라고 강조한다. 새로운 교육체제의 수립과 정착을 위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포함하여 ‘협력적 교육거버넌스’를 구축함으로써 교육패러다임 전환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글로벌화, 디지털화, AI자동화로 인한 노동·고용구조의 변화, 기후변화 등의 메가트랜드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갈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필요. 특히,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등은 교육의 사회적 기능 강화를 요구

(국내) 획일적 국가주도의 학교교육과 입시중심의 경쟁 심화로 인한 학생들 삶의 만족도 저하, 자주 변경되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피로감 극복 필요.

따라서, 학생, 학부모, 교원, 지역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교육체제와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교육거버넌스 개편으로 국민 신뢰도 제고

(비전) 경제적 가치 추구의 개발경제시대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고려하는 포용적 성장에 걸맞은 새로운 교육체제 필요. 모든 학생들에게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 관계없이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 제공과, 학생 중심의 협력적 교육 지원체제 마련 필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재의 교육체제는 ▷ 소수 관료, 전문가 중심 하향식 교육정책 수립 구조, ▷ 자기주체성과 창의력을 잃어버린 학습자, ▷ 고등교육의 국제 경쟁력 정체 및 내부 혁신 동력 취약 (수직적 서열화 등)이라는 문제를 드러내는 등 한계에 봉착했으며 따라서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새로운 교육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고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구구조변화) 출산율 감소로 총인구 및 학령인구(만6세~21세)가 감소하고 고령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6년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만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20%이상)에 진입

(미래 인재 양성)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미래를 주도해 나갈 미래형 인재 양성 교육으로 전환. 정보통신기술 등의 발달에 따라 융·복합의 신산업 등이 발생, 이에 따른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 필요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총 71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신기술이 210만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2020년까지 필수 업무 역량 중 35%가 변화할 것으로 전망되어 새로운 직무에 대한 교육 필요성 증대(OECD, 2017)

(새로운 교육체제) 산업사회의 시장주의 하의 교육체제를 탈피하여 지속 가능한 생태계 하의 인간의 웰빙을 추구하는 포용적 교육체제 마련. 인공지능, 로봇 기술 발달로 저임금 단순 기술직 일자리 소멸 및 고임금·전문 기술직 일자리 증가로 빈부격차 심화 전망. 경제적 효율의 사회에서 삶의 질 향상과 포용 사회로의 전환. 산업사회에서의 개인은 집단에 속한 통제되어야할 객체로 존재하였으나 개인의 주체성과 삶의 질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변화

(협력적 교육거버넌스 구축) 학생, 학부모, 교원,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중장기적인 교육비전 수립을 위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2. 자유주의 미래교육담론 “2030교육체제”

 

현 시기 자유주의 교육담론의 키워드는 교육의 공공성과 자율성, 학교체제의 유연성과 개방성, 기초생애역량 형성과 미래인재 양성, 교육거버넌스(국가, 지역, 시민사회의 협치)이다.

 

“2030 미래교육체제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무엇인가 하는 성찰에 바탕한 새로운 교육 비전 정립과 이를 토대로 교육행정 거버넌스 개혁, 학제 개편과 대입제도 개편, 교 원 양성·임용·재교육 제도 개편과 교육과정 개편, 미래형 직업교육 창출과 실전형 고등직업교육 모델 창출, 연구개발 (R&D)사업의 질 제고와 책임성 강화, 평생학습을 시민적 권리로 정립하기 위한 제도 도입 등 큰 틀 의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개회의 글, 2019년 10월23일)

 

시장주의와의 단절과 분리 정립을 공식적으로 표방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시기 고등교육 정책을 “국가 중심 시장주의 고등교육 정책”이라고 규정하는 등 소품종대량생산으로 상징되는 산업사회와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인 5.31교육개혁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디지털 지식정보 기술의 급진전을 바탕으로 세계화가 이루어지던 1990년대에 수립된 5·31교육개혁안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경제 산업 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때문에 열린학습사회 지향 등 일정한 성과도 있었으나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갈등,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사회적 관계와 교육의 역할 재정립에 소홀히 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특히 공교육이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완충하는 본래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양극화를 재생산 또는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은 깊이 되짚어보아야 할 지점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양극화를 증폭시키는 교육적 양극화 속에 나타나는 아이들 인성의 악화와 폭력문제, 일반계고등학교와 직업계고등학교에서의 사실상 학업포기의 만연, 고등교육의 위기와 청년실업 심화, 평생·직업교육의 정체 등은 교육체제의 전반적 재검토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다행히 세계적으로 부의 편중으로 인한 만성적인 경제위기,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에 대한 반성이 지속가능한 사회체제로서 포용적 사회체제, 포용적 국가체제의 모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OECD에서 포용적 2030교육체제 수립을 지향한 작업으로 ‘모든 학습자들이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개인과 공동체 및 지구의 웰빙에 기반한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하기 위한 ‘OECD 교육 2030 : 미래 교육과 역량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서구 선진국 모델을 따라가던 산업화 단계를 지나, 세계 모든 선진국들이 부딪히고 있는 동일한 문제에 같이 부딪혀 있는 바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세계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유네스코와 OECD 2030 교육체제를 충분히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기반하여 국민적 합의과정을 거쳐 2030년 10년과 후 10년을 규정하는 2030교육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2기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식 자료집, 2018년 12월)

 

“5.31 교육개혁에 내포된 학습과 학력개념은 지식 중심의 산업화 시대 학습과 학력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5.31 교육개혁은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 밀도가 최상위권이고, 디지털 지식정보 기술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 자동화가 진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교육이 산업사회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으면 교육적 사회적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 학습과 학력개념의 근본적 전환을 핵으로 교육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하여, 25년 전 발표되어 초·중등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왔던 5.31 교육개혁을 대체하는 새로운 교육혁신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의장,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환영의 글, 2019년 10월23일)

 

“5.31 교육개혁은 공급자 중심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의 전환을 내세웠다. 이러한 전환 선언은 권위주의적인 군사 정권에서 벗어나, 문민정부를 표방한 시기에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교육 틀에 변화를 주려한 것으로 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되나, 국민주권 국가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는 측면이 있어 왜곡이 우려되는 말이었다.

국민은 교육수요자로 한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교육제도나 정책과 같은 게임의 룰을 결정하는 데에 관여할 권한이 있는 교육주권자이다. 교육주권자는 자기의 삶과 학습에 대해서도 결정권을 갖는 주체이다. 교육수요자라는 말은 국민을 시장을 움직이는 게임의 룰을 따르는 수동적 존재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산업사회 교육프레임에 갇힌 말이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의장,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환영의 글, 2019년 10월23일)

 

“산업사회와 냉전시대에서의 학문중심의 교육과정 잔재가 온존해 왔으며, 이로 인해 교육과정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학생들이 짊어져야 할 학습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20여 년 전부터 국가수준에서는 교육과정 운영의 큰 방향성만을 제시하고,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은 시·도교육청 및 학교단위에 부여하는 교육 분권화가 우리 교육의 방향으로 정해졌으나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대전환기에 교육과정이 국민적 관심사 속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내실 있게 개발되고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 아울러 교육과정 운영을 시도교육청 및 개별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대폭 이양함과 동시에, 시도교육청과 개별 학교의 교육과정 관련 역량 제고를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2기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식 자료집, 2018년 12월)

 

실용주의에 입각한 역량중심 교육을 강조하는데, 지식 중심의 학력에서 “살아가는 능력 중심의 역량”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 수준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초연결 스마트사회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신의 삶에 바탕 하여 문제를 설정하고 설계하여 여러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고 필요한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 공감 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관계 맺는 능력을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지능정보사회 학습체제는 이러한 “역량”을 길러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오늘날 인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발전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비약적 기술 혁신이 더 인간다운 삶으로 귀결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 격화, 국제분쟁과 같은 파 괴적 결과로 귀결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뉴런이라는 신경세포에 의한 두뇌혁명으로 현 생인류의 본질이 된 관계에 대한 사유와 공감능력의 극대화로서의 “역량”은 이러한 도전에 대한 교육적 응답 일 것이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개회의 글, 2019년 10월23일)

 

자유주의의 오랜 전통이자 트레이드마크는 학습자중심사상인데, 미래교육체제 담론에서는 이를 “학습자의 주체성 신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학습자의 주체성 신장을 위한 현 단계 중심 정책이 고교학점제, 자유학년제이며 이는 향후에도 초중등교육의 중심정책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수년간 교육과정의 중핵으로 떠오른 진로, 직업교육 강화 입장은 여전할 뿐 아니라 학교교육의 핵심으로 삼을 전망이다. 이를 직업교육의 공공성 강화로 표현하기도 한다. 미래교육체제에서 학교교육=노동력양성인 셈이다. 물론 이미 고교학점제에도 이런 기대는 투영되어 있다. 과목선택 기회 확대가 성장과 진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고교학점에라는 정책의 제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조국 사태를 의식해서인지 교육의 공정성에 대한 강조가 늘었다. 김진경은 교육 “내적 공정성”을 강화하여, 교육 외적 공정성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적 공정성을 기하면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계급모순이든 대학서열체제든 상관없이 학생중심의 유연한 교육과정과 ‘고급의 시험’을 도입하여 잘 운영하면 입시경쟁이든 사회불평등이든 해소가능하다는 대단한 착각을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수능에 미래역량을 측정할 수 있도록 서술·논술형 문항을 도입하여 개선하면, 수능을 둘러싼 교육 외적 공정성 시비는 완화될 수 있다. 또한, 고교 교육과정의 프로그램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고, 학교주민자치가 실현되어 학부모와 주민들이 학교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가 되면, 학생부종합전형을 둘러싼 외적 공정성 시비도 완화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교육의 내적 공정성을 강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결국 해법은 중장기적으로 교육 내적 공정성을 강화해가는 교육개혁에 있는 것이다.

교육 외적 공정성을 둘러싼 이해관계 다툼은 단기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할수록 번번이 더 꼬이게 되고, 그 때문에 정작 교육 내적 공정성을 강화하는 교육개혁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나 있었다. 정권 차원을 넘어 사회적 합의에 바탕 하여 중장기 교육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자는 취지의 국가교육위원회가 제안되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 내적 공정성을 강화하여 교육 외적 공정성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 해소하는 것이 정답이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개회의 글, 2019년 10월23일)

 

한편, 미래교육체제에는 일부 진보적 정책도 있다. 취학 전 교육 및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가 대표적이다. 보편적 유아교육 체제 구축을 새로운 교육체제의 중심 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자유주의의 미래교육체제 담론은 겉으로는 공공성, 공정성을 표방하지만 가장 중시하는 새로운 교육체제의 특성은 개방성과 유연성이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들에 따르면, 미래교육체제(교육과정과 학제)는 “살아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체제”, “지식을 창출하는 교육체제”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체제의 유연화. 학생중심의 개방적인 체제, 학교자율화, 분권화(=민주성과 동일시)가 요구되는 것이다.

조만간 교원 노동 유연화 정책이 미래교육체제의 필요성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추진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미래교육체제를 위해서는 교원정책에서의 ‘과감한 변화’는 그들이 보기에 필수불가결하다. “급격히 변화하는 학습자, 사회, 산업계의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현재의 교원 양성·임용제도가 지나치게 경직성을 가지고 있으며, 교사 재교육 시스템이 부실하다. 지능정보사회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긴밀한 결합을 요구하는데, 기왕의 산업사회 교육시스템과 교원 양성·임용·인사제도는 지역사회로부터 지나치게 분리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양성 임용 재교육 등의 전반적인 교원정책의 변화는 학령인구 감소로 불가피하다고 피력하기도 한다. 고교학점제 역시 ‘교원노동의 유연화’를 전제로 하는 정책이다.

 

3. 오류와 문제점

 

자본주의 체제 유지 중심의 세계관

자본주의 체제 유지가 자유주의 교육담론의 출발점이다. 시대와 사회 변화는 개별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적응해야 할 대상(제한적 능동성 요구)일 따름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 유지가 자유주의적 세계관의 중심이기 때문에 인구구조 변화에 대해서도 커다란 불안감과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미 시작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를 앞으로의 교육체제 개편에서 매우 중대하고 커다란 요소로 인식하는 자유주의 교육담론에서는 이를 부수적으로만 ‘기회’의 요소로 볼 뿐, 기본적으로는 ‘위기’의 요소로 규정한다.

 

한국 고등교육은 경제성장에 요구되는 숙련인력을 효율적으로 공급하여 왔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협치 구조를 수립하기보다 시장원리에만 기초하여 교육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 5.31교육개혁으로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 기회의 확장을 위한 규제완화는 과도한 양적 팽창을 불러일으켰고, 1인당 교육비를 낮춤으로서 질적 악화를 초래하였다. 또한 사립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사부담 교육비가 증가하였다. 이는 교육시장과 노동시장의 미스매치, 졸업자 과잉공급, 수도권 중심 서열화와 같은 보다 구조적인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장수명, 남기곤,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한국 고등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체제혁신과 정책과제”, 2019년 10월23일)

 

중요한 정책 사례로는 민주화 이후 규제완화 정책으로 대학을 공급자로, 학생을 수요자로 보는 시장원리 중심의 개혁을 들 수 있다. 설립준칙주의와 정원자율화로 대변되는 5.31 교육개혁의 대학정책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시장원리를 통한 사립대학의 설립과 국공립 사립의 정원확대로 고등교육 접근성이 좋아지고 대학들 간 경쟁이 강화되어 교육과 연구의 질이 향상되었다. 이러한 시장 원리 중심의 개혁은 한국인의 ‘교육열’과 맞물려 세계 최고 수준의 진학률을 가져왔고, 많은 민간자본들을 사립대학에 투자하여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사립대학 의존율을 가진 고등교육체제를 만들었다. 이는 졸업자 과잉배출,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화 강화 등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이 직면한 과제들을 야기한 측면이 크다. 또한 현재의 높은 사립 의존도는 고등교육의 공공성 추구에 장애가 되고 있다. (장수명, 남기곤, 앞의 글)

 

노동시장에 대한 고려와 사회파트너와의 협력 없이 고등교육시장의 수요와 공급 기제에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맡김으로써, 기존 대학들의 경쟁적 학생수 늘리기와 기존 및 신설 사립 학교법인들의 대학 설립으로 인하여 고등교육시장은 노동시장과 체계적이고 긴밀한 연계 없이 작동하였고 고등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는 대부분의 직업영역에서 졸업자 개인의 몫이 되었다. ... (중략) ...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정책방식은 고등교육시장의 수요·공급 원리를 존중하되 노동시장과의 밀접한 연계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시장기제가 작동하지 않거나 외부효과가 큰 균형발전 등을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 파트너들의 참여를 통한 협치로 시장, 국가, 사회의 협력적 조정이 이루어지는 대학체제의 의사결정 구조의 구축이 요구된다. (장수명, 남기곤, 앞의 글)

 

숙련 미스매치는 노동시장과 교육(시장) 간의 연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교육, 훈련, 연구와 개발이 기업의 실재, 또는 현장의 요구와 밀접한 연계 속에서 진행되지 않고, 교육시장이 노동시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대학 정원을 관리하는 조정기구가 부재하기 때문에 노동시장과 교육(시장)이 연계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수명, 남기곤, 앞의 글)

 

성장주의, 도구주의를 기본 축으로 하는 자유주의 교육담론에서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를 노동력 공급의 위험신호로 파악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절벽’이라는 조건 하에서 노동력 공급에 용이한 방향으로 교육체제를 개편하는 것이 자유주의 교육개편에서는 우선적인 과제이다.

학령인구감소는 지방 소재 대학에서는 이미 현실화되기 시작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장수명·남기곤은 학령인구감소가 고등교육의 규모는 물론 학문적 역량의 측면에서도 커다란 위기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시에 학령인구 감소는 기회의 측면이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고등교육의 위기는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과 연구의 질 향상의 기회가 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1인당 공교육비를 향상할 수 있는 기회이며, 현재 20%에 불과한 국공립의 체계를 잡고 비중을 확대하여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고, 단기 평가 중심의 단편적인 지원에서 관련법에 따라 ‘1인당 교육비’, ‘전임교원 수’ 등 교육의 기본을 지키는 방식의 예산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 대학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 및 질 제고를 꾀할 절호의 기회”(장수명·남기곤, 앞의 글)라고 고등교육체제 개편의 불가피한 계기로 인구구조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령인구감소에 따라 지방 소재 대하들의 수용력을 낮추거나, 외국인 학생들로 채우거나, 성인의 평생학급기관으로 재탄생하거나, 또는 수도권 학생들이 이동하거나, 학생수를 줄이되 질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매우 단순한 추산이지만, 조건이 그대로라면 현재 90,288명의 대학 전임교원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2040년에는 현재의 56.5% 수준인 51,038명까지 줄어들게 된다. 전임교원이 4만 명이나 줄어들 뿐 아니라 강사 등을 포함하면, 이보다 매우 큰 수의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거나 구하지 못할 것이다. 수요(학생)의 감소에 따른 공급(교원)의 감소라는 측면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과정이라 볼 수도 있으나, 이는 이후 학문을 하겠다는 대학원생이 크게 줄 수 있어 대학원 체제를 허약하게 만들고 한국의 학문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한편으로는 한국 국가의 학문·연구 및 혁신 역량의 위기가 될 것이며, 동시에 학문후속 세대 양성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학령인구의 급속한 감축이라는 위기에서 고등교육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대학체제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급격한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라 직업 인력을 풍부하게 양성하던 전문대학 부문은 지방으로부터 타격을 받고 있으며,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할 주요 대학원들은 취약한 교원·정보·자료·장비와 대학원생들의 어두운 미래 전망으로 소수를 제외하면 더욱 약화되고 있다.”

 

성장주의, 도구주의, 개인중심주의적 교육관

교육은 경제성장, 사회발전,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노동시장과 교육(시장) 간의 연계가 불충분한 상황을 특히 고등교육에 있어서 크나큰 문제라고 여긴다. 교육을 통해 노동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숙련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여전히 교육에 대한 성장주의, 도구주의적 관점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숙련 미스매치는 노동시장과 교육(시장) 간의 연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교육, 훈련, 연구와 개발이 기업의 실재, 또는 현장의 요구와 밀접한 연계 속에서 진행되지 않고, 교육시장이 노동시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대학 정원을 관리하는 조정기구가 부재하기 때문에 노동시장과 교육(시장)이 연계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수명, 남기곤, 앞의 글)

 

교육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여긴다. 사회구조개편 없이 교육을 통해 평등, 삶의 질 향상, 사회통합 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나 과학적 인식과 실천 전략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뇌내 망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학교교육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신, 폄하하면서도 학교가 실현할 수 없거나 요구해서는 안 되는 기능과 역할까지 부과하는 정책을 펼치는 모순적 행태이다.

 

반쪽의 공공성 추구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와 성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유주의 교육담론의 교육공공성 추구는 근본적으로 한계적이다. 현단계 자유주의 교육담론과 미래교육체제 논의는 신자유주의 교육재편과 분명히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시장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공공성을 교육의 중요한 가치로 내세움. 하지만 근본적 한계가 있다.

예컨대, 고등교육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어정쩡한 입장이 그러하다. 고등교육에 대한 과도한 민간 부담, 개인이 부담하는 고비용 구조는 문제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학생 1인당 투자가 낮은 점 등으로 인해 고등교육의 부실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등록금 인상과 같이 민간 부담을 확대함으로써 고등교육 예산을 충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임을 알고 있지만 ‘대학교육 무상화’와 같은 적극적 대책을 내놓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이는 모든 단계의 교육 공공성에 대한 인식은 이전에 비해 강화되었지만 이를 대학교육 무상화와 같은 분명한 방법을 회피하는 이유는 현실세계를 ‘자본주의 체제’로 스스로 한계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나 이 둘에 대한 변증법적 쌍으로서의 인식은 부족하다. 공공성은 시장주의와 자유주의 교육담론을 구별 짓는 상징적 개념으로 중시하지만 자율성은 시장주의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없이 ‘개인의 선택 확대’의 측면에 치중되어 있는 매우 편협한 개념에 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과 자율성의 조화를 이루는 미래교육체제를 제시한다고 하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시장주의적 색채가 풍기기도 하고 진보적인 교육담론을 수용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교육거버넌스(협치)에 대한 과잉 의미부여

현단계 자유주의 교육담론의 키워드 중 하나가 거버넌스임. 이른바 ‘협치’라고도 명명되는데,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거버넌스를 하며 무엇을 결정하는지가 관건이다.

자유주의 교육담론에 따르면, 거버넌스의 목적은 기존의 국가, 중앙정부 중심의 ‘관치’를 극복하는 것이 중심과제이며 다양한 관계자들이 거버넌스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이루면 합리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사업장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 인구절벽, 고령사회로의 진입, 가족 구조와 기능의 변화 등 경제·사회 문제는 교육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교육혁신은 경제·사회 혁신과 맞물려 추진되어야 하고 경제·사회 분야와의 거버넌스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김진경, “2030 미래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방향과 주요 의제”, 한-OECD국제교육컨퍼런스 기조연설, 2019년 10월23일)

 

“유초중등교육은 학교주민자치를 지향하여,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와 교육지원청을 실질적인 교육행·재정상의 자치단위로 하고,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결합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광역 시·도 단위는 교육관련 연구, 교육활동 지원 및 네트워킹과 같은 전문 지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전국 차원에서는 교육자치 연합기구를 두어 교육자치제의 네트워킹으로 유·초·중등교육의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경, 앞의 글)

 

문제는 거버넌스에서 다루는 의제와 중앙정부와의 관계, 참여 주체인데, 향후 거버넌스에 대한 기대와 전망에서 자유주의 교육담론의 위험성은 참여주체에서 드러난다.

지금까지 ‘국가’가 교육의 여러 의제들을 독점하고 결정해왔다면 여기에 ‘지역시민사회’가 결합하여 “국가와 시민사회의 협치” 시스템을 통해 국가의 주요한 교육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지역시민사회의 실체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더라도 지방자치와 ‘분권화’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음. 거름장치도 없이 학교에 수많은 사업과 요구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학교와 교사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학교교육과정이 중심도 없이 난삽해지고 복잡해지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기여 중이다.

자율성과 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것들에만 권한이 주어지다보니 근본적인 체질은 바뀌지 않은 채 일만 많아지는 꼴인데 이에 대한 분석과 대책 없이 무조건 ‘거버넌스’에 여러 단체, 여러 사람 참여시킴으로써 여러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허나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테면 대학서열화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등) 거버넌스에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다. 아울러, 자율성과 민주주의라는 명분 만이 아니라 ‘노동시장과 교육의 연계’라는 차원에서 거버넌스를 제출하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구태의연하고 취약한 과학적, 철학적 기반

몇 가지 점에서, 현 단계 자유주의는 체계적 교육철학과 전략을 가지고 교육재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중등교육(학제와 교육과정)-대입제도-대학체제에서 변화의 중심 고리를 교육과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인간발달(역량)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자본주의 성장기의 이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강화이론, 연합주의,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새로운 경제체제가 요구하는 기능 습득 여부가 발달의 일차적 기준이다. 자유주의 교육철학(듀이)은 ‘전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따라서 여러 기능에 대한 직접적 경험과 활동이 교육과정의 중심이 된다. 자유주의 교육론에서 역량이 키워드로 부상하였으나 역량 그 자체와 역량 발달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결여된 셈이다. 역량에 대한 과학적 토대 없이 세계적 대세를 따라 수용한 탓에 학력저하 논란, 기초학력 문제제기가 등장하면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지식교육과 역량발달의 변증법적 관계 몰이해도 지적 대상이다. 교수-학습 및 교우-학습을 통한 발달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해 이해가 없다. 학생중심주의, 상향식, 교육거버넌스 구축 등의 담론은 일견 인본주의. 민주주의 사상을 표현하는 교육담론으로 보일 수 있으나 착시에 불과하다. 목적은 (경제) 성장이고 사실상 기계적 연합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자율화, 분권화 등을 통해 교육체제의 민주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정치적·정책적 무능과 개혁의 중심 방향 부재

대입제도 개편의 방향성과 주도권 상실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은 무능과 방향의 부재였다.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미국식 대입제도인 학종을 선호하지만 조국사태를 계기로 공정성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자유주의 내부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정책입안자나 제도권 학자들은 미국 유학 출신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등 미국 교육체제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받은 편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대학서열체제와 대입경쟁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일정 정도 견지하고 있다.

5.31교육개혁안 당시부터도 대입제도에 있어서는 미국식 학종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강하게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입학사정관제에 이은 학종은 대학서열체제에 기생하여 정착하면서 대학서열체제의 불합리성. 비효율성을 강화시켰다. 이들은 다양화와 자율화를 모토로 한 대입제도 개편을 통해 서열구조를 완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헛되다. 현실은 거꾸로였다. 한마디로 관념적이고 사적 경험과 취향에서 출발한 방안으로 20년 이상 국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면서 낭비해온 셈이다.

한편, 현 시기 자유주의 교육론에서는 대학서열체제가 고등교육의 총체적 부실의 원인이라고 과거보다 한결 강하게 지적하고 고등교육체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입제도는 이와 무관하게 논의가 전개되고 있고 폭이 큰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정시 v.s 수시의 구도에서 내내 끌려다니다가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대학체제와 입시개편의 주도권을 더욱 상실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생명력을 상실한 수구의 공세에 대한 대응력도 허약한 것이다.

 

후기중등교육에 대한 시대착오적 관점

후기 중등교육은 계열 분리 및 직업교육 강화, 대학은 기능분화를 통한 지능정보사회의 인재 양성이 기본 방향이다.

 

“지능정보사회에 맞는 지속적인 혁신 역량을 갖춘 고등직업교육기관이 발전하지 않으면, 상위권 대학을 향한 학력경쟁의 압력이 줄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학력중심 사회에서 역량중심 사회로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편교양교육의 단계라는 인식은 아직도 없다. 4차 산업혁명, 인구구조 변화를 새로운 사회변화의 중심으로 파악하면서도 후기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과거의 인식 그대로라는 의미이다.

 

발달 위기에 대한 인식 부재

대처는커녕 문제를 키워왔다. 파시즘적 교육체제에서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기를 거쳐 악화된 교육 관계를 개선하기는커녕 어설픈 온정주의와 교육적 근거가 미비한 채 관념적으로 선호하는 학습자 중심주의로 문제는 개선되고 있지 않다. 기술혁신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장막에 가려진, 혹은 그로 인한 발달 위기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스마트 기기를 일찍이 접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외적 모습만을 보고 “인지발달이 빨라졌다”는 현실 왜곡 분석을 근거로 과거에 진보적으로 평가된 학제 개편안을 재탕하는 형편일 정도로, 현재의 어린이 청소년이 처한 발달 상황과 발달 위기 심화를 분석할 과학적 개념과 문제의식이 없다. 사적이고 일상적인 수준의 인식을 교육개혁안으로 내놓는 형편에 있는 것이다.

발달위기는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추세적 현상이다. 따라서 원인은 사회적, 구조적인 것에서 찾아야 맞다. 단순히 학교에서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만을 따져서 될 일도, 교사들의 지도역량을 문제삼아 채찍질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뜻이다. 발달의 토대를 형성하는 시기인 영유아기의 정서적· 언어적 발달의 조건은 전반적으로 악화되었다. 또한 영유아기 발달의 토대가 갖추어지지 않은채 접하는 초등학교 교육과정도 문제가 많다. 특히 초등 저학년의 교육과정의 경우 지극히 ‘생활중심’적이거나 과도하게 자발성을 전제하고 이에 의존하는 ‘발견 학습적’, ‘자기 주도적’ 구성이라는 것도 발달위기를 강화하는 중심 원인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3R(읽기, 쓰기, 셈하기)조차 차근차근 습득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서 ‘토론하세요’ ‘의견을 말해보세요’ ‘생각을 써보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난 교육의 지나친 일방적, 단순반복 학습도 문제지만 지금의 ‘자기주도성’ 강조는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결과들을 놓고 이제 낡은 방식이라고 자신들이 공언하고 있는 ‘시험’이란 수단에 의존해 기초학력 미달자를 색출하고 기초학력을 보장하겠다고 나섰으니 혼란스러운 것이다. 자기규제, 만족지연, 자발적 주의집중 등 학습의 전제가 되는 역량의 형성이 미비한 채 학교생활에 돌입하다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데, 일부 어린이들은 글쓰기, 산술, 영어 등의 선행에 과몰입할 것을 요구당함으로써 학습에 대한 피로감, 거부감이 강화된 상태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학습혐오의 씨앗을 선행하여 뿌린 셈이다. 반면, 일부 어린이들은 환경적 요인으로 학습은커녕 기본적인 돌봄조차 없이 방치됨으로써 발달역량이 미형성된 채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직접적 이유는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다 문제인 것이다. (진보교육 74호, “기초학력, 관점과 대응”에서 발췌, 2019년 11월)

 

 

4. 맺는 말

 

자유주의 교육론은 총체적으로 문제임을 확인했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교육혁명”의 조건이 진전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중심 개념의 변화를 통해 비록 더디긴 했으나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이 해온 역할을 가늠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의 치열한 대치와 투쟁의 과정에서 결국 “공공성”이 국가교육정책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끝났고 그 시대가 남긴 유산이 현재의 개혁의 대상임을 자유주의자들이 공식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둘러싼 각축의 시기가 이미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의 현실화 가능성은 더욱 커졌음.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긴 하지만 특히 학령인구감소라는 외적 조건은 새로운 것으로서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대학평준화, 대학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앞당겨 현실화할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는 요인임. 자유주의에 대한 최대 견인이 필요한 대목도 이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교육과 사회, 교육과 노동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한 담론투쟁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는 노동시장과 교육의 ‘직접적’ 연계론에 대한 공세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 저출생, 저성장 시대로 이미 진입한 마당에 역량이니 주체성이 아무리 포장해도 직업훈련을 학교교육의 제1의 역할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특성화고등학교의 위기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홍보’의 문제로 오인한 채 특성화고 교사와 학생들을 ‘영업’에 내몰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자유주의가 수용하고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 과제는 ‘인간 발달’임이 확인되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는 인간의 발달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량’ 개념도 외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고등정신기능들의 총체로서의 인격’이라는 개념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인식론적 배경을 지녔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과연 모든 인간이 이렇게 발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인간의 발달권리 실현을 교육개혁의 근본 과제로 삼는다면 자본주의 체제 변혁은 필연적이다.

끝으로, 모든 생물학적 개체가 자유의지를 지닌 문화적 주체로 형성하는 토대인 협력적 사회관계는 1/n의 원칙조차 관철이 버거운 자본주의-자유주의 체제 하 ‘거버넌스’ 구축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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