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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4호 (2017.04.10. 발간)


[기획] 

인지자동화와 비고츠키

2. 비고츠키의 유물변증법적 인지이론으로 바라보는

인지자동화문제 

 

비고츠키실천연구모임

 

 


 

  * 인지자동화 시대와 인간의식의 재조명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담론이 떠들썩하다. 과연 그것이 정말 지능이며 4차 산업혁명인가라는 의문이 여전히 드는 것과는 별개로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되고 또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수반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인공지능과 관련해서는 인간 대 기계의 대립 구도가 펼쳐지고,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다. 낙관과 공포를 수반하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전망 그리고 혼란이 함께 야기되고 있다.

 

  * 약 인공지능 시대에 등장한 강 인공지능 쟁점들

  인공지능 담론 진영에서는 인지과정을 절차적으로 처리하는 수준의 약 인공지능과 인간과 유사한 자율성을 지닌 강 인공지능을 개념적으로 구분한다. 현재 인공지능으로 일컬어지는 대상들은 약 인공지능에 해당한다. ‘강 인공지능은 아직 현재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의 여부도 불분명하다. 알파고도 강인공지능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폐쇄적 인지 영역의 기능을 수행하는 약 인공지능에 해당한다. 다만 폐쇄적 영역이라 하더라도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할 수 없다고 본 영역까지 깨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정작 인공지능과 관련된 다수의 쟁점들은 강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형성된다. 그래서 SF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이 머지않은 미래에 등장할 것 같은 환상마저 자아낸다.

 

  * 인간의 인지/의식에 대한 논의와 인식이 먼저이다.

  인공지능 문제를 올바로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지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많은 혼란은 인간의 지능자체에 대한 다양하고 불분명한 인식에 비롯되는 바가 크다.

  

  이 글에서는 실재론적 인식론과 변증법적 방법을 통일적으로 결합하려는 유물변증법적 관점에서 인간지능 인간의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루고, 그에 기초하여 진정한 인공지능이 과연 가능한지, 점차 발달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유물변증법에서의 인간의 지능/의식에 대한 관점과 논의

 

  사전적 의미에서 지능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유물변증법에서는 지능을 별도의 고립적인 기능으로 다루지 않는다. 인간의 지능, 고등정신기능은 신체, 정서와 떨어져 있지 않으며 사회적 상호작용, 실천적 행위들과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인간의 지능은 인간의식의 핵심적 부분으로서, 동물과 구분되는 고등정신기능의 형태, 과정으로 다루어지며 좀 더 총체적인 관점에서 의식에 관한 논의 속에서 전개된다.

 

  인간의 지능/의식 문제가 과학적 탐구와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유물변증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맑스-엥겔스에 의해 정초된 유물변증법의 초기 논의에서 의식의 문제는 인간의식 자체 보다는 주로 물질-의식의 관계라는 인식론적 차원에서 다루어졌으며 러시아혁명 이후 비고츠키에 의해 본격적인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비고츠키의 인간의식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관점과 논의는 한 동안 역사 속에 묻혀버렸고, 스탈린주의에 영향 받은 (결코 유물변증법적이지 않은) 관점과 논의가 현실사회주의 하에서 전개되었다. 여기서는 인간의식에 대한 맑스-엥겔스의 언급, 스탈린주의의 기계적 유물론,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논의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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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의식에 대한 맑스-엥겔스의 논의

  맑스-엥겔스는 관념론과 대립하였던 당시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의식의 문제를 대부분 물질과 의식의 관계라는 차원 속에서 다루었다.

 

이념들, 표상들, 의식 등의 생산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물질적 활동과 물질적 교류 속에, 현실적 생활의 언어 속에 직접적으로 연루된다.”(맑스, ‘독일이데올로기’)

의식은 결코 의식된 존재 이외의 어떤 것일 수 없으며, 인간들의 존재는 그들의 현실적 생활과정이다”(맑스, 독일이데올로기)

 

  맑스는 이념, 표상 등 인간의식의 내용이 물질적 관계에 연루되며, 물질적 존재의 반영임을 강조한다. 당시의 상황에서 물질에 대한 관념의 우위를 주장하는 관념론에 맞서 관념에 대한 물질적 선차성, 규정성을 강조한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작업에 주력하면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인간의 의식작용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짤막하지만 인간의식의 기원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있는데, 여기서 맑스는 인간의식이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또한 의식을 가진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는 역시 처음부터 순수한의식으로 간주될 수 없다. 정신은 애초부터 물질에 묶여 있다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으니, 여기서 물질이란 진동하는 공기층, 음성, 요컨대 언어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언어란 의식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이다. - 언어는 실천적인 의식, 즉 타인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런 연유로 또한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존재하는 현실적인 의식이다. 의식과 마찬가지로 언어는 타인과의 교류의 필요성, 욕구로부터 발생한다. 어떠한 관계가 존재할 경우, 그 관계는 나에 대해서 존재한다. 동물에게, 다른 동물들에 대한 자신의 관계는 관계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식은 애초부터 사회적 산물이며, 일반적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존속한다.”(맑스, 독일이데올로기)

 

  맑스는 이 글에서 인간의식이 사회 속에서, 즉 관계 속에서 언어를 통해 형성된 것임을 강조한다. 관계성, 사회성이라는 인간의식의 기원 및 본질적 속성과 언어의 매개성을 강조한 것이다. 엥겔스는 조금 더 구체적인 논의를 내놓는다.

 

처음에는 노동, 그 다음에는 그것과 함께 언어 이것들은, 원숭이의 두뇌가 매우 유사하지만 훨씬 더 크고 더 완성된 인간의 두뇌로 점차적으로 이행하는 데 영향을 준 가장 본질적인 두 가지 추진력이다. 그리고 두뇌의 계속적인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그 다음의 도구인 감각 기관들의 계속적인 발달이 병행하였다. 이미 언어가 점차적으로 발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청각 기관의 정교화를 수반한다. ......원숭이에게는 극히 조야한 발단으로 겨우 존재하는 촉각은 인간의 손 자체와 더불어, 즉 노동을 통해서 비로소 형성되었다.”“두뇌, 그것에 복무할 수 있는 감각, 점점 더 명확해지는 의식, 추상력, 추리력 따위의 발달이 노동과 언어에 가한 이 양자에게 가일층의 발달을 위해 항상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엥겔스, 원숭이의 인간화에서 노동이 한 역할)

 

  두뇌와 감각이라는 인간의식의 생물학적 토대 그리고 추상력, 추리력 등의 인지능력 발달이 노동과 언어의 출현을 통해 양자의 변증법적 작용을 통해 이루어져 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식에 대한 맑스, 엥겔스의 논의는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짤막한 논의 속에서도 유물변증법적 관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들이 제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식이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인간의식의 기원과 관련하여 맑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됨을 강조하였고, 엥겔스는 노동과 도구 그리고 언어의 사용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지적하였다.

셋째, 노동과 도구, 언어의 사용은 다시 두뇌와 감각 등 생물학적 토대를 확장시키며 인간의식은 노동과 도구, 언어 등의 사회, 문화적 매개 그리고 두뇌와 감각 등의 생물학적 토대의 상호관계 속에서 변증법적 발달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제한적이지만 맑스, 엥겔스의 인간의식에 대한 기본 관점은 유물변증법의 기본 관점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들에 의해 제시된 시사점은 이후 비고츠키에 의해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어진다.

 

  2) 스탈린주의의 기계적 관점과 혼란

  스탈린주의의 영향 속에서 진행된 기계적 유물론적 관점의 인간의식에 대한 논의는 올바른 유물변증법적 논의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의식-물질 관계의 철학적, 인식론적 문제와 객관적 실재로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식/인지작용문제를 혼동하였다. 그럼으로써 인간의식/인지작용에 대한 기계론적, 물리주의적 인식에 머물렀고,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학문적 성과와 인간의식에 대한 규정을 분리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우선 인식론적 차원의 의식과 객관적 실재로서 인간의 의식작용문제를 혼동하고 동일시한다. 조금 복잡한 문제지만 스탈린주의에서 나타났던 인간의식에 대한 폄하, 기계론적 관점의 근본 요인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한때 스탈린주의의 기계적 유물론의 교과서였던 세계철학사 : 변증법적 유물론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사고/의식을 속류 유물론자가 하고 있는 것처럼 물질로서,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서 보는 것은 바르지 않다.”(세철2, 70)

 

  이 말은 속류유물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식을 전기 작용과 같은 물리적 실체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는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는다. 인간의식이 물리적 물체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분명한 기능, 과정으로서 객관적으로 실재한다. 여기서 혼동이 일어난다. 물리적 물체가 아니라고 해서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혼동은 인식론적 범주의 의식’(유물변증법의 인식론에서 물질객관적 실재이며, ‘의식실재의 반영으로 규정된다)과는 다른 차원인 하나의 객관적 실재로서 인간의 의식작용’(인간의 의식작용은 객관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에 인식론적으로는 물질개념에 포함된다. 따라서 심리학이나 인지과학과 같은 의식(작용)에 대한 의식(내용)’이 가능하다)을 동일한 차원에서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책에서는 철학적, 인식론적 범주와 객관적 실재로서 인간의식을 혼동하면서 바로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연결한다.

 

의식을 물질 가운데에 포함시켜 버리면, 정신에 대한 물질의,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인식론상의 대립이 의미를 잃어버린다.”(세철2, 50)

 

  인간의식을 인식론상의 물질-의식 관계에서의 물질개념, 즉 객관적 실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동은 스탈린주의에 영향받은 기계적 유물론에서 일관되게 지속된다.

 

사유를 물질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물론과 관념론을 혼동하는 데로 발걸음을 잘못 옮기는 것을 말한다.”(F. Fiedier, 변증법적 유물론)

 

  인간의식/인지작용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면서 기계적 유물론에서는 인간의식에 대해 매우 어정쩡하고 일면적인 규정을 내린다. 인간의식에 대해 고도로 조직된 물질의 성질이라든지 물질의 산물이자 기능, 속성’, ‘현실 반영의 최고 형태라고 하는 널리 알려진 규정들이 그것이다. 이 같은 규정은 여전히 물질-의식 관계의 인식론적 차원에서 내려지는 규정이며 객관적 실재로서 인간의식 자체에 대한 과학적 규정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인간의식에 대한 폄하를 가져오고 과학적 탐구를 막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기계적 유물론 자체의 붕괴를 가져오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스탈린주의도 인간의식이 객관적 실재로서 과학적 탐구의 영역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의식이 일반적으로 현대과학이 사용하고 있는 엄밀히 과학적인 객관적 방법으로 연구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감각에 의해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식 그 자체를 지각하지 못한다 해도, 사람들의 실제적인 활동, 그들의 행위, 언어를 지각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주위 사정과의 그들의 상호관계나 연관을 알 수 있다. 개개 사람의 활동 안에서,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관계나 연관의 성격 안에서 일정한 개인이 갖고 있는 의식의 모든 본질적인 특수성이 해명되는 것이다.”(세철2, 66)

 

  결국 이처럼 인간의식/인지작용에 대한 과학의 성립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간의식에 대한 폄하와 기계적 관점은 인간의식에 대한 조야한 기계적/행동주의적 견해로 귀결된다. 예컨대 자극-반응 체제로 동물과 인간의 행동 및 심리를 해명하고자 했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이론이 인간심리를 이해하는 핵심 이론으로 추앙되었던 것이다.

 

과학이 이 관계에서 특히 눈부신 업적을 올렸던 것은, 세체노프와 자연과학방법의 적용에 기초하여 동물 및 인간의 고차신경활동의 정연한 이론을 만든 파블로프에 힘입고 있다.”(세철2, 67)

러시아의 생리학자 세체노프와 파블로프에 의하여 기초가 정립된, 더욱 고차적인 신경활동에 관한 이론의 가장 중요한 인식은 조건반사적인 관련성에 관계하며, 외적 자극을 능동적으로 가공하는 것은 이러한 관련성에 의하여 반영과정 내에서 일어난다.”(F. Fiedier, 변증법적 유물론)

 

  살펴본 바와 같이 스탈린주의 영향 하에서 전개된 인간의식에 대한 논의는 비록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지만 결코 진정한 변증법적 유물론혹은 유물변증법관점의 논의라 할 수 없다. 여타의 문제들을 제외하고 인간의식에 관한 부분에 한정해서 볼 때, 그들은 인간의식자체를 객관적 실재로서, 유물론적 주제로서 설정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의간의식을 인류의 진화 및 문화역사 속에서 발생하고 변화, 발전하는 역동적 실재로서 볼 수 없었다. 인간의식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인식은 비고츠키와 이후의 과학적 성과에 대한 올바른 결합에서 찾아야 한다



  3) 비고츠키의 유물변증법적 인지이론

  비고츠키는 유물변증법적 관점에 입각해서 인간의식에 대한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인 연구 및 분석 작업을 진행하였고, 사회적 관계를 통한 전수와 주체적 구성의 결합 문제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의 유물변증법적 인지이론은 인공지능 혹은 인지자동화 문제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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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물변증법과 비고츠키 인지이론

 

  문화역사주의

  비고츠키는 유물변증법적 관점과 방법에 의거해 인간의식 연구를 전개했다. 인간의 정신, 의식 작용은 그에게 명백한 객관적 실재로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영역이었다. 그는 인간의식의 자본론을 구성하려는 원대한 지향을 가지고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시사되었던 인간의식에 대한 기본 관점들을 구체화하였다.

 

마르크스의 잘 알려진 입장을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인간의 정신적 본성은 인격의 기능과 구조의 형태로 내면화되고 변형된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이러한 입장이 문화적 발달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본다.”(비고츠키, 2013 : 492)

 

  비고츠키의 이론은 인간의식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문화역사주의로 불린다. 그는 인간의 역사 및 자연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발달과정 역시 변증법적이기 때문에 유물변증법에 의해서만이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발달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인지적 발달이 개별적 변화들의 점진적 발달이라고 빈번히 거론되는 견해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동발달이 주기성, 상이한 기능의 발달에서의 비균등성,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변질 또는 질적 변형, 외부적·내부적 요인의 통합, 아동이 직면하는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적응적 과정 등을 특징짓는 복잡한 변증법적 과정이라고 믿는다." (마인드인 소사이어티, p.73)

 

  인간의식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분석

  그는 인간 특유의 언어적 사고를 분석하기 위해 생각과 말의 관계를 발생적으로 추적하였으며 개념적 사고의 형성을 밝히기 위해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의 상호침투를 분석하였다. 이 외에도 비고츠키는 인간의 고등정신기능을 발생적으로 분석하면서 아동과 성인, 글말과 입말, 자연발생적 개념와 비자연발생적 개념, 사고와 행동, 구체와 추상, 기초정신기능과 고등정신기능, 내적말과 외적말 등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어떤 것을 역사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그것을 동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변증법적 방법의 기본 조건이다. 연구 속에 어떤 대상의 발달 과정 전체의 국면과 변화를-그 탄생부터 소멸의 순간에 이르기까지-포함한다는 것은 곧 그 대상의 성질을 밝히는 것, 그 본질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존재는 오직 동적인 상태에서만 그 본질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존재는 오직 동적인 상태에서만 그 진정한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동의 역사적 연구는 이론적 연구에 대하여 부가적보조적일 뿐 아니라 바로 근본 토대를 구성한다. 이에 따르면 과거 형태들을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현재 형태들을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똑같이 가능하다. 역사적인 이해는 일반 심리학까지도 확장된다. P.P.블론스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일반적으로 나타내었다. , 행동은 행동의 역사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심리학의 진정한 변증법적 관점이 있다."(역사와 발달)

 

  비고츠키는 인간의식의 문제를 규명하는 열쇠로서 생각과 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는데 이는 인간본성과 의식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고 비변증법적인 견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유물론적 결과였다. 비고츠키는 생각과 말의 관계가 지각, 주의, 기억, 사고 등의 다양한 심리적 기능들의 관계와 의식 활동의 다양한 측면들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핵심 계기라고 여겼다.

 

  관념론 및 기계적 유물론과의 투쟁

  그는 유물변증법에 입각하여 당시의 인간의식에 대한 다양한 관념론적 견해와 투쟁하였으며 러시아 내부의 기계적 유물론과도 대립하였다. 비고츠키는 당시 러시아 심리학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행동주의적 심리학의 견해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비고츠키는 행동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지만 방법론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의식과 심리기능을 물리적 법칙으로 환원시키는 기계적 유물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인간이 만든 과정의 기원에 대해 잊어버린 연구자는 그 과정이 지시 없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반응에 대한 실험들은 마치 반응이 주어진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드러난 자극에 의해 야기된 것처럼 연구되었다."(역사와 발달)

 

 

(2) 인간의식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분석과 이해

 

  인간발달의 원천은 사회

  유물변증법에 의거하여 비고츠키는 인간발달의 원천은 사회적 관계임을 일반법칙으로 정립하였고 인간발달의 핵심기제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상호작용임을 강조하였다. 비고츠키는 아동발달에 대한 관념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점진적인 양적 누적만이 아니라 혁명적 변화가 점진적 양적 누적에 결합되는 역동적인 변증법적 과정으로 인간의 발달을 규정하였다. 또한 인간의 발달은 새로운 것이 출현하는 '발생의 과정'이며 문화적 발달 노선에 따라 저차적인 것을 지양하고 고차적인 것으로의 질적 변화로 나아가는 고양의 과정이다.

 

"인간은 사회적 창조물이다. 사회적 상호작용 없이 인간은 결코 인류의 역사적 진화의 결과로서 전개되어 온 인간적 본성과 특성을 자기 스스로 내부에 전개할 수 없다. ...당신과 나의 말하는 능력은 어떻게 발달했겠는가? 인류는 말하는 능력을 역사적 발달의 전체 경로 속에서 창조하였다. 나는 내가 걸어온 일반적 발달의 경로 속에서 역사적으로 발달해온 이상적 형태와의 상호작용 과정을 거쳐 이 같은 능력을 숙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환경은 이러한 인간고유의 특성을 발달시키는 원천이다. 역사적으로 진화되어온 인간적 특성들은 모든 인간 존재에 유기체적으로 잠재해 있지만 개별 인간 존재들이 어떤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힘 위에서만이 이러한 이러한 가치들은 발현될 수 있다. 한 인간은 특정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 어떤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는 특정한 역사적 단위이다." (비고츠키, 환경의 문제)

 

  기호의 매개에 의한 고차적 정신기능 발생

  비고츠키에 따르면 인간의 기호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지배(mastery)하는 '심리적 도구'이다. 기호는 인간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기호를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기호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인간의 의식과 언어 양자는 역사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서로 엮여 있다. 비고츠키는 생물학적 인간이 문화적 인간으로 되어가는 과정, 기초적인 행동 형태가 고등의 행동 형태로 도약을 이루는 과정, 기초정신기능이 고등정신기능으로 변혁을 이루는 과정의 핵심적인 열쇠가 '기호'임을 밝혔다. 또한 비고츠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와 역동적 과정'에 대한 견해를 중시하여 인간행동의 발달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인간행동의 고유성이 동물의 수동적 적응과 대비되는 인간 적응 형태의 능동성에 있음을 밝혔다.

 

  의식 발달 : 생물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의 엮임과 짜임

  비고츠키는 복잡한 고등 정신 기능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아동심리학에서 어린이 발달의 자연적 노선과 문화적 노선을 구분했다. 그 이유는 생물학적 진화와 역사적 발달의 과정이 각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발달의 노선을 나타내는 계통발생과 달리 개체발생 즉 어린이의 고등정신기능 발달에서는 두 노선이 병합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리고 어린이의 문화적 발달은 두 노선의 엮임과 짜임으로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고등정신기능

  비고츠키는 인간의 의식발달을 고등정신기능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그는 파블로프와 같이 자극-반응 도식으로 기초정신기능과 고등정신기능 모두를 설명하려는 것에 반대하였다.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과 기초정신기능을 구분하고 이 둘 간의 내적 관계의 문제로 나아갔다. 두 행동형태 간의 본질적 차이는 행동을 행하는 주체와 행동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범주적 지각 등의 기능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외부자극에 대한 비매개적이고 직접적인 반응(반사)적 행동이 아닌 기호의 매개를 통한 주체의 능동적 대처라는 동일한 심리적 규칙을 따른다. 이러한 고차적인 심리기능들은 발생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인간 행동 발달의 역사적 산물로서 인간의 개입과 무관한 자연적인 생물학적 진화의 노선이 아닌 비자연발생적인 문화적 노선을 따라 발생한 산물들이다.

 

"변증법에서 보통 '지양'이라 불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경우에 고등 형태와 저차적 형태 사이의 관계는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저차적, 기초적 과정들과 그 과정들에 의해 통제되는 규칙들이 하나의 지양된 범주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바로 이 말을 사용하여 우리는 기초적 과정과 그것을 조절하는 규칙이 고등 행동 형태 속에 묻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들이 고등 행동 형태 속에 종속되고 숨겨진 채 나타난다는 것이다. ... 저차적 형태 없이는 어떤 고등 행동 형태도 불가능하지만 또한 저차적 혹은 보조적 형태들이 주된 것의 본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비고츠키, 2012)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의 발생을 저차적 행동 형태의 변증법 지양을 통한 고차적 행동 형태로의 고양의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양자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이지만 저차적 형태를 토대로 고차적 형태는 출현하는 것이며 또한 고차적 형태의 발생 과정에서 저차적 형태는 소멸/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차적 행동의 구조 속에 종속된 채로 유지된다.

  한편,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매개된 지각 등의 고등정신기능들은 서로 연관되어 통합성을 갖는다. 인간의 의식이 하나의 전체(비고츠키, 2011)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각, 주의, 기억, 생각 등 기본적인 정신기능의 고등한 형태들은 따로 고립되어 별개로 발달하는 기능들이 아니다. 고등정신기능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기능적 체계를 형성한다.

 

"사실상 동일한 기원과 발달의 기제를 토대로 고등정신기능들이 통합성을 가짐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개별적인 심리적 사실로서 서로 분리되어 관찰된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지각의 고등한 형태, 운동과 같은 기능들은 우리 실험에 비추어 볼 때 단일한 심리적 규칙으로부터 나타난 현상, 즉 근본적으로 단일한 행동 발달의 역사적 산물로 나타난다."(도구와 기호)


  총체적 인간발달

  "무엇이 어떻게 발달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비고츠키는 기초적인 기능을 토대로 하여 고등정신기능이 총체적으로 발달하는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 -> 미적 범주 인식에 의한 심미적 윤리적 정서’, 언어와 생각이 분리된 채 시각장의 지배를 받는 실행 지능 -> 시각장을 뛰어넘는 말로 하는 생각’, ‘외부 자극에 대해 충동적이고 직접적인 반응 -> 기호를 매개로 능동적으로 행위를 선택하는 의지로 나아가는 과정이 인간의 발달이다.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의 총체를 '인격'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비고츠키 이론에서 인격은 정서적, 지적, 의지적 측면을 갖는 고등정신기능들의 통일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격'personality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인격의 총체적 발달을 고등정신기능을 중심으로 크게 지성, 의지, 정서의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한 것이 문화역사적 인간발달이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분석의 필요에 의해 나누었지만 이원적인 채로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역사적 이론에서 각 측면은 항상 역동적으로 결합되는 체제로 종합된다. 여기에서 결합의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기호'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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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적 의미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인지발달 이론은 유물변증법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인간의식을 다룬 논의이다. 그의 논의는 스탈린주의 하에서 파묻혀 있다가 1980년 이후부터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참 전의 논의가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확산, 발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논의가 지니는 과학적 설명력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의 연구가 기반한 유물변증법의 철학적 타당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80여 년 전에 이루어진 그의 논의는 그 뒤 발전한 과학적 성과들과 결합하면서 재구성되면서 새롭게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인지자동화 시대의 도래로 인간의식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논의의 필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4) 유물변증법 관점에서 보는 인간의식의 특성

  유물변증법적 관점과 비고츠키 논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인간의식의 본질적 특성에 대해 다음의 몇 가지 범주로 파악할 수 있다.

 

  (1) 총체적/통합적 의식

  인간 의식은 단순한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인간의식은 지각, 주의, 기억, 생각, 초인지 등의 개별 인지기능이 그리고 기초정신기능과 고등정신기능이 총체적으로 통합된 실체로서의 의식이다. 인지기능만이 아니라 본능과 정서 등 비인지적 정신기능도 결합되어 있다.

총체적/통합적 의식이라는 점은 인간의식이 개별 정신기능들의 합을 뛰어 넘는 새로운 질을 갖는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또한 개별 인지기능이 총체적/통합적 의식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본래의 모습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총체적/통합적 인간의식은 고립적 개인이 아닌 사회적 관계와 실천적 태도 속에서 인격이라는 더욱 포괄적인 형태로서 존재한다.

 

  (2) 관계적, 사회적 의식

  인간은 고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오직 사회적 협력 속에서 살아가는 협력적 존재이다. 협력을 통해 생존력을 키워왔고 협력을 통해 문화를 창달하고 협력을 통해 역사를 창출해 왔다. 인간의식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현되고 발전해 나간다. 맑스, 엥겔스는 인간의식의 기원이, 그 원천이 사회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비고츠키는 생각과 말의 관계, 기호의 매개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체계적으로 밝혀냈다. 인간의 지능, 의식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며 언어(기호)를 매개로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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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역사적 의식

  인간의식이 인간에게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의 진화와 사회의 성립 속에서 어느 시점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 발전과 생물학적 토대의 상호결합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발달해 온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역사적 발달이라는 인간의식 발달과정을 인간은 개통발생 차원에서 집단적, 사회적으로 공유한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문화를 창조하면서 스스로를 형성해 온 존재이며 인간적 가치와 내용, 방향 즉 인간의식 자체를 개척해 나간다.

 

  (4) 발달하는 의식

  인간은 유적 차원에서 문화역사적으로 발달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개별적으로도 발달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존재이다. 인간적 자질과 능력은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문화적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형성, 발전되는 것이다. 늑대소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오직 인간 속에서 인간이 되어 간다. 인격과 세계관도 문화적 발달의 결과이며 따라서 주체성도 발달적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 인간이 발달적, 자기형성적 존재라는 점은 인간발달을 돕는 교육실천의 중요성과 모든 사람의 발달 가능성을 함께 일깨운다.

 

  (5) 창조적/혁명적 의식

  인간발달 과정에서 전개되는 내적 변혁은 외부적, 기계적인 것이 아니며 외부의 작용과 결합하는 주체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은 기존의 인지/의식 구조를 재구성하는 한편으로는 파괴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적이고 혁명적인 과정이다. 인간은 발달과정에서 자신의 현재적 발달수준보다 진보된 사회적 기능을 접하면서 발생하는 위기로 가득하다. 이 위기를 사람들은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또한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극복하는 가운데 새로운 발달단계로 진입해 나간다.

인간발달은 필연성과 창조성의 결합이다. 필연성을 자기화함으로써 정신기능/의식이 발달하며 인간의 자유가 형성된다. 인간은 외부 현실만아 아니라 자기 행동 나아가 자신의 의식까지 사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럼으로써 세계와 자신을 변혁해 나갈 수 있다.

 

  (6) 주체의 의식

  인간은 주체성을 지닌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이 의식을 지님으로써 귀결되는 가장 핵심적 특성이다. 비고츠키는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정신적 본질이 의식성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 의식은 기본적으로 자극-반응의 본능적, 수동적 차원을 넘어 문화적, 능동적 차원을 지닌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또한 물론 물리적 차원의 인지자동화와는 더더욱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만이 주체적 의식을 지닌다.

  나아가 총체로서의 인격적 의식을 형성하는데 인격적 의식은 자기정체성에 기반한 자유의지를 담지하는 실천적 의식이다. 총체화된 의식은 자아정체성과 자유의지라는 인간의식의 자기의식적, 실천적 특성을 가능케 한다.

 

  인간의식의 특성을 몇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았지만 유물변증법과 비고츠키의 논의 그리고 현대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총체적 의식은 그것이 명백히 있다는 존재만 확인될 뿐 그 실체와 형성과정은 여전히 완벽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인지자동화 시대의 도래는 인간의식에 대한 철학적, 존재론적 문제와 과학적 이해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식 곧 우리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논의를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유물변증법의 관점에서 실체에 대한 완전한 해명과 이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와 실체에 끊임없이 다가갈 뿐이다. 그 점에서 인간의식의 실체는 인류의 끊임없는 질문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2. 인간의식과 인지자동화 기술

  비고츠키 인지이론을 중심으로 유물변증법 관점에서의 인간의식에 대한 이해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 인지자동화와 관련된 대한 몇 가지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인간의식인지자동화의 근본적 차이

  우선, 인간의식과 인간의 기술발달에 의해 구현되는 인지자동화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인지자동화는 기억, 연산, 분류 등 개별적 인지기능들의 특정한 차원과 과정을 자동화한 것으로 인간 의식과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첫째, 생물학적 토대에 기초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식과 달리 본능과 정서에 연결되는 의식일 수 없다.

  둘째, 실존적 자의식, 자기정체성에 기초한 자유의지가 부재하다. 어떤 정교한 설계에 의해 미리 프로그래밍된 대응방식이 절차적으로 수행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진정한 자율성일 수 없으며 자유의지는 더더욱 아니다.

  셋째, 개별 인지 기능을 뛰어넘는 총체로서의 인간의식일 수 없다. 총체적 인간 의식은 개별 인지 기능의 결합은 물론이고 본능, 정서 등의 생물학적 토대와 자유의지라는 실존적 지향 전체가 연결되어 형성되는 새로운 차원의 의식이다. 자율주행차처럼 지각, 정보 입력, 기계적 운동, 선택적 처리 과정이 결합되더라도 그것은 개별 인지기술의 단순한 연합이지 총체적 의식의 탄생이 아니다.

  넷째, 인간의식은 상호작용에 의한 변증법적 의식, 자유의지에 기초한 실천적 의식이며 항상 망각과 오류, 모순과 딜렘마 속에서 형성, 발달, 작용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자동화된 인지기능은 정반대이다.

 

  따라서 인지자동화는 개별 기능 자체는 알파고처럼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인간 의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기술발달에 따라 아무리 인간의 정신기능을 닮아가더라도 인간의식과 동일한 차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2) 진정한 인공지능은 가능한가?

  현 단계는 인지자동화 즉, ‘약 인공지능단계이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꿈은 인간을 닮은 지능 나아가 의식 전체개발을 추구하고 있다. 소위 강 인공지능이 그것이다. 그리고 많은 담론이 강 인공지능이 곧 도래하리라는 전망 속에서 다루어진다. 적지 않은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빠른 기술발달 속에서 강 인공지능은 시간문제일 뿐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을 닮은 진정한 인공지능은 철학적, 인식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제시한 인간의식과 인지자동화의 근본적 차이들은 기술발달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양보해서 궁극적으로 기술발달이 정서, 자유의지 등의 근본적 차이와 한계마저 넘어설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의 창조자인 인간 자체의 한계로 인해 인간과 같은 진정한 인공지능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무한한 측면을 지닌 어떤 대상에 대한 절대적 진리 도달은 어느 순간에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 이상으로 창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선 개별 인지기능 자체에 대해서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과 동일한 개별 인지기능의 창조도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총체적 인간의식은 개별 인지기능, 개별 정서기능(감정을 흉내 내는 기술개발도 추구하고 있음)의 단순한 연합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다. 개별 인지기능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인 총체적 의식은 그것이 있다는 존재만 확인할 뿐 어떻게 형성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차원의 변화에 대한 인간 인식의 한계는 인간의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화학적 차원->생물학적 차원등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인식과 과학기술은 차원 내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대상의 성질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며 대상의 성질 자체를 새로운 차원으로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자연 자체를 창조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어쩌면 존재적 한계이기도 하다.

 

 

  3) 인지자동화 기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지자동화는 인간과 같은 지능/의식의 창조로 나아가기보다는 실용적 차원에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기계의 출현은 인공적 운동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발전방향은 실용성 추구에 맞추어 졌고 그 결과 생물학적 운동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원, 운동방식, 산출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인지자동화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인공지능이 가능하지 않거나 적어도 한참 동안 도래하지 않을 문제로 본다 하더라도 편안하기만 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별적 영역으로 본다면 인지자동화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으며, 사회적으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인간과 사회에 커다란 위험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가축의 운동기능을 대신한 기계는 개발된 영역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능력을 발휘한다. 자율주행기술, 알파고 등 인지자동화 기술 역시 개별기능 및 개별기능의 연합에 있어서는 인간보다 당연히 뛰어나다. 만약 인간보다 뛰어나지 않다면 실용적으로 쓸모없다. 또한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처리-결론-실행을 스스로 기능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지자동화는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접근 금지 지역을 침범하는 대상을 인지하고 타격을 가하거나 위험 정도를 파악하고 자동적으로 대응한다든지 하는 기술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인명 살상 등의 사고를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다. 적국의 핵 공격에 자동 발사되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상상해 보라. 진정한 인공지능과 별개로 커다란 위험성을 지닌 인지자동화 기술은 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인지자동화에 대한 인간적, 사회적 통제 문제는 당면의 문제인 것이며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인지자동화 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은 현재 두 가지 차원에서 주어진다. 하나는 정해진 절차에 따른 기술적 판단과 결정, 실행에 대한 인지자동화영역이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통제 시스템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예측처럼 위험과 다른 차원에서 일자리 감소, 사회경제적 재구성 등 인간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인지자동화 기술은 새로운 단계의 사회발전을 요청한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을 온전히 통제하기 보다는 거꾸로 규정당해 온 측면이 더 크다. 그러나 인지자동화 기술은 인간이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인지자동화 기술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새롭게 확장하는 인지 수단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배치하며 인간의 삶과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상황 속에서 더욱 나아가야 할 인간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04-기획.PDF 

진보교육64호_기획_2. 비고츠키 유물변증법 인지이론과 인지자동화 시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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