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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4호 (2017.04.10. 발간)


[기획] 

인지자동화와 비고츠키

 인지자동화 시대, 비고츠키교육학으로 본 역량의 문제

창의성, 문제해결력, 융합을 중심으로

  

손지희_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1. 인지자동화 시대, ‘미래교육논의의 명과 암

 

인지자동화 기술발전과 교육 개혁

  현재의 기술혁명을 인공지능라 불러도 괜찮은가? 전혀 괜찮지 않다. 실제에 견주어도 타당하지 않고, 게다가 괜한 오해와 억측마저 불러일으키므로 제대로 된 명칭부여가 먼저다. 뇌인지과학자 김대식에 따르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는 딥 러닝 기반의 약한 인공지능은 엄밀히 말하면 인지자동화이다. 과거, 육체노동기능을 기계로 이전시켜 자동화했듯이 현재는 지적 노동에서 자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인간 vs 기계, pp.229-230). ‘인지의 사전적 의미를 감안하더라도 인공지능이 아닌 인지자동화로 부름이 타당하다.

  인지자동화 기술을 배경이자 동력으로 삼는 현 시기 자본의 담론이 ‘4차 산업혁명담론이다. ‘융합인재 육성등 교육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교육과 관련해서는 인지자동화 시대에 교육을 통해 육성해야 할 역량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인지자동화 쇼크를 계기로 활성화되고 있는 역량 관련 논의는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육은 주체형성의 문제로서, 구체적으로는 태어날 때 없었던 것을 자기화함으로써 주체가 되어간다. 여기에서 삶과 교육의 과정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기능들을 역량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교육은 각 개인에게 신형성(새롭게 발생하는 기능)을 발생시키고 고차화시키려는 의도적, 의식적 실천이다. 따라서 역량은 곧 교육목표와 방식의 문제로서 전부나 다름 없다. 이처럼 인지자동화 기술이 만개하기 시작한 지금, 교육적 판단과 적극적 대응이 불가피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교육목표 : 학력에서 역량으로

  현대 교육학의 경향은 역량이라는 말을 학력을 대신하여 쓰는 것으로, 역량을 개념화하려는 시도가 나라마다 학자마다 활발하다. 역량(competence) 논의는 서구에서 먼저 진행되었고 국내에서는 2009 개정교육과정부터 핵심역량이 공식적 교육목표가 되었다. 진보교육감 지역에서도 전북교육청이 참학력(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자신의 삶의 관리 능력 민주시민으로서의 능력, 문화예술 향유 능력)을 제시하는 등 핵심역량 논의는 어느덧 주류이다.

  역량 논의는 기존의 교과 지식교육의 전이효과를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지식 전달과 습득 중심의 기존 교과교육은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나 능력을 키우는데 실패해왔으며, 따라서 교육의 목표 자체를 지식의 습득량을 중시하는 학력이 아닌 실질적 능력의 키우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개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이 문화역사적으로 형성해온 역량은 대단히 많다. 그런데 수많은 인간역량 중 몇 가지를 골라 국가 교육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매우 난해한 문제이다. 발달심리학, 철학, 사회, 경제, 정치 등 여러 분야의 통섭과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복잡한 과제이다. 그런데 인지자동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능력의 일부를 핵심역량이란 명목으로 선별하여 강조하는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창의성, 문제해결력, 융합 등이 미래교육의 당연한 목표인양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홍익인간’(최고의 교육목표이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실제 교육과 무관한) 꼴이 된다. 발달적 관점과 현실적 고려가 없으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반짝 유행들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몇 해 전부터 융합교육이 그랬다. ‘인성교육도 마찬가지다. 문제해결력, 창의성 역시 인지자동화 시대를 맞이하여 갑툭튀 한 것은 아니다. 교육현장은 이런 담론과 정책과 내리먹임식 사업에 시달려 왔다. 신자유주의 시대부터 계속 그랬다. 효과가 있었는가? 없었다. 어떤 이의 승진에는 도움이 되었을 지 모르나 동원당한 이들은 의미없이 고통을 겪었다. 기존의 입시-진로교육체제 하에서 융합수업, 창의성을 개발하는 시험출제, 인성교육, 문화예술교육 등은 일거리일 뿐 실현된 바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4차 산업혁명미래교육

  정치의 시절이어서일까. 4차 산업혁명-미래교육 담론이 정치권에서도 급부상했다.

  (밑줄은 필자).

 

문재인 : 암기 위주의 교육은 4차 산업혁명에 맞지 않습니다. ‘암기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 많이 하는 사람’, 상상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개편하겠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 동안 1만 명의 초중등 교사인력을 양성하겠습니다. 기술인재와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교육도 개선하겠습니다.

 

안철수 : 창의 교육이 가능해야 한다. 지금 가장 문제가 초중고 12년 교육이 그 기간 내내 입시준비기간이 된다는 점이다. 그 고리 끊어야 한다. 많은 다양한 시도가 실패했기 땜에 이제 마지막 남은 유일한 방법은 학제개편이다. 이젠 길게 설명드릴 시간 없지만 학제개편 통해서 6-3-3 아니라 5-5-2를 제시했다. 그걸 통해서 이제 고리를 끊고 12년 간 보통 교육을 이젠 적성교육 창의교육 인성교육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그 방식으로 바꿔 창의적 인재, 4차 산업혁명시대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교육을 하고 창의인재를 길러야 한다.

 

유승민 : ·중등 과정 창업 교육 의무화, 소프트웨어 코딩 교육 강화, 이공계 국가 장학금 확대

 

교육부 : 국가경쟁력 확보는 이를 견인할 핵심인재 양성에 그 성패가 달려 있으므로,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적극적인 교육혁신 전략이 절실... 지능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른 미래 교육의 전망과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2030년까지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다섯 가지 방향은 1.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교육 2.사고력, 문제 해결력,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 3.개인의 학습능력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 4.지능정보기술 분야 핵심인재를 기르는 교육 5. 사람을 중시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교육. 또한, 이러한 방향 하에서 우리나라가 지능정보사회를 선도하는 인재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전략들을 도출... (미래전망) 인공지능의 발달로 단순반복·매뉴얼 기반 업무는 기계로 대체되고, 인성·감성·창조적 사고가 필요한 업무분야 우세 전망... 지능정보기술의 획기적 발전을 통해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학습 콘텐츠 개발 및 개인 맞춤형 교육체제 구축이 현실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에듀테크 산업의 발달로 기존 학급단위 집합식 교육에서 개개인에 최적화된 맞춤형 교육으로 변화 예상....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사회성·윤리성 등을 키우는 교육을 강화하고, 변화에 뒤처지기 쉬운 소외 계층에 대한 교육적 지원을 확대

 

조희연 : 이제 아이들을 기계처럼 공부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기계가 할 수 없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인간적 능력을 개발하는 식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은 무엇보다도 창의적 교육이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죽은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창출할 수 있도록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기계가 갖지 못한 감성적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인문학적 상상력, 문화예술적 감수성, 협력적 인성, 감성능력 등이 포함될 수 있다. ... 최근 강조되는 자기관리역량, 의사소통 심미적 감성 역량, 창의적 사고 지식정보처리 역량, 공동체 역량 등을 함양하는 것도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의 요목이 될 것이다....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더 우위에 서는 영역은 도리어 욕망과 감수성 등 획일화하기 어려운 개성의 영역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동안 누적되었던 모순이 인지자동화 기술의 공습과 만나면서 교육의 근본적 변화 담론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인지자동화를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교육개혁 논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지자동화 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교육체제의 근본적 개편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인적자원개발론과 근본적으로 달라 보이지는 않지만, 창의성, 문제해결력, 융합, 인성, 감수성, 공동체역량 등 인지자동화를 맞이하여 기계와 구분되는 인간적 역량의 형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적 역량 형성을 방해하는 주범을 입시교육이라 지목하고 있다. 진보교육진영에서 누누이 강조해 온 협력과 주체성을 중시하는 모습도 보인다. 논의 초기인 현재는 도구주의적, 기능주의적 관점이 우세한 형편이지만 인지 자동화 기술 발전을 계기로 교육의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니 고무적이다. 관건은 변화 여부가 아니라 변화를 누가 주도하느냐이다.

  알파고로 상징되는 현재의 기술문명은 인간이 창조한 도구의 대변혁이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창조한 도구가 거꾸로 인간의 변화의 조건이 되고 있다. 인지자동화의 인간에 대한 역습이 자아내는 지금 상황은 역설적이다. 인간과 교육에 대해 진지하고 세밀하게 논의할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고 인간역량에 대한 연구와 논의도 심화되어 갈 것이다.

 


2. ‘미래교육논의의 철학적 바탕

 

도구주의적 교육관, 인간관

  교육을 노동시장의 요구에 맞춰 때맞춰 재편해야 한다며 교육개혁을 밀어부친 게 수차례지만 실업은 상시적 문제가 되어 있고, 자본은 필요 노동력을 공급 안 해 준다고 볼멘소리를 한 지가 한참이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알파고 쇼크 이후 대선국면인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래교육 논의는 도구주의 프레임이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교육의 사회적 과제는 교육을 통한 융합인재 공급이고 미래교육의 개인적 과제는 교육을 통한 생존가능성 높이기이다. 기계가 차지하고 남은 부분을 채우는 것이 당연한 생존전략인양 하고 있으며,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을 학교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지성의 극히 일부를 본 따 만든 기계와 인간이 경쟁하는 미래를 당연하다고 여긴다. 막연한 예상으로 교육을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

  미래인재가 갖춰야 할, 미래인재가 되려면 필요한 핵심역량의 으뜸은 창의성이다. 여기에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협업능력, 감성적 능력, 인성, 의사소통역량, 공감능력 등이 부가된다. 갖추면 나쁠 것 없는 좋은 기능들이지만 당장 학교에서 이런 역량들을 형성하라고 하면 정말 난감하다.

 

역량에 대한 연합주의적 이해와 구성주의 학습관

  지성은 기계에게 맡기고(개인의 입장에선 일자리 빼앗기는 것) 감성, 창의성, 문제해결력 키워라? 그러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이것저것 다(STEAM) 습득해서 융합해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교육정책, 노동시장정책 좌우하는 분들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윤리적이지도 않다. 인간의 권리여야 할 교육과 발달을 놓고 이런 망상적 협박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식이 총체적이라는 과학적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인지자동화 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견주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집단의 인간 역량에 대한 이해는 연합주의 심리학 수준이다. 구구단을 배우면 구구단만, 바느질을 배우면 바느질만, 글쓰기는 글쓰기만... 아주 피곤한 이론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래교육논의를 근본적으로 파고들어가면 연합주의와 다를 것도 없다. 문제해결력 향상을 위해 문제해결 교육을, 창의성 함양을 위해 창의성 교육을? ‘새는 날개가 있기 때문에 날 수 있다와 다를 것이 없다. 100가지 기능이 있다면 100가지 교과나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능들은 각각이고 체계를 이루는 게 아닌 연결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이론이다. 인간의 여러 기능들이 맺는 관계를 떠올리면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하면 교육적으로 대단히 무거운 과제로 인식되어 버리고 과거에 반복했던 것처럼 해당 역량들을 형성하는 각각의 형성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 교사들은 다 안다. 저러다 말겠지.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다수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

  그간 수학이나 과학, 사회처럼 문제해결교과’ ‘창의교과는 없었지만 인간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왔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왔다. 이에 대해 전이를 부정하는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이런 문제제기에 그들은 그런 역량은 우연히, 타고난 재수 좋은 개인들에 해당할 뿐이며 그들을 추적해서 교육과정에 일반화해서 반영하자고 할테지?

  앞서 제시한 미래교육논의들은 인간역량에 대해서는 연합주의 심리학의 틀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 교육 철학적 바탕은 구성주의이다. 학습과 교수를 분리시켜 바라보며 학습을 교수-학습의 관건으로 본다. 또한 좋은 교육은 자연적인 것이라 여기며, 따라서 체계적 교육과 자발적 학습을 대립시키고 전자를 과거의 입시교육과 동일시한다. 체계적 교수-학습과 입시위주 교육은 동의어가 아니다. 자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학습자관을 가지고 있다. 학습자를 고독한 탐구자로 상정한다. 정보에 대한 비판적 판단능력을 강조하면서도 교육을 지식습득과 동일시하기도 하는 모순을 보인다. 이는 지식교육과 역량형성의 관계를 해명하지 않은 채 과거의 교육을 비판하고 미래교육을 주장하느라 발생하는 논리적 모순이다.

  기술발달에 따라 인간 교사를 기술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정보기술 혁명시기보다 약화되고 줄어들었으나 교사를 구성주의 교육철학과 마찬가지로 보조자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현재의 미래교육 논의는 낡고 잘못된 교육이론인 도구주의, 연합주의, 구성주의의 인간관과 교육관이 혼재된 채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역량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인지자동화 시대의 교육혁명을 위해서는 인간역량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먼저다.

 

핵심 역량의 문제점

  교육은 학력도 역량도 아닌 인격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핵심역량은 인격의 총체적 발달이라는 지향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핵심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여타의 기능들은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인간의 총체적 인격을 억지로 쪼개고 좁혀 과학적, 교육적 근거 없이 전문가들이 중요하다고 선별한 몇 기능들을 교육 목표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OECD 등에서 핵심역량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은 아주 얼토당토하지는 않지만, 인간발달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전제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지배적 요구를 바탕으로 하여 도출·선별된 것들이다. 핵심역량이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은 다른 기능들을 토대로 하거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특정의 역량을 선별하여 강조함으로써 원하는 역량이 선별적으로 길러질 수 없으며 도리어 발달이 왜곡된다.

  체계적 학습과 협력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 범주적 지각,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개념적 사고 등의 고차적 기능이며 이러한 고차적 기능들은 조급하게 주입하고 남들보다 앞서 한다고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읽기-쓰기, 듣기-말하기 등 상호교류를 핵심으로 하는 교과, 비교과 활동들을 학교에서 교사와 그리고 동료들과 오랜 시간 지난하게 해나간 바탕 위에 형성된다. 어린이, 청소년기에 이렇게 형성된 역량들을 바탕으로 성인기 협업 등의 활동을 통해 그 꽃으로 피어나게 되는 것이 창조성이고 문제해결력이다. 총체적 인격 발달과 유리되어 특정 역량을 인간적 가치로 부상시킬 경우 교육적으로 실패할 것이 뻔하다.

총체적인 것을 억지로 쪼개어 자본의 이해를 위해 핵심을 선별하기에 앞서 인간의 역량에 대해 발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다.



3. 인간역량에 대한 발달적 이해

 

  미래교육 논의에서는 문제해결력, 융합, 창의성 함양을 위한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아이들에게 코딩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타당한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는 세심한 과학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역량에 대한 발달적 이해가 필요하다.


비고츠키교육학

  비고츠키 이론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1930년대를 전후해서 이루어진 러시아의 한 천재심리학자와 그 동료들의 협력 작업이 남긴 유산으로서, 현대교육을 넘어 미래교육의 나침반으로 재해석되고 수용되고 있다. 현대 교육학과 현장 교사들은 비고츠키 이론이 인간발달에 대한 매우 높은 설명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 6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피아제의 대안으로 각광받아 1980년대 1차 비고츠키 붐에 이어, 현재 2차 비고츠키 붐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상당히 현대교육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론이다. 혁신학교를 필두로 국내 현장교사들의 관심이 높은 이론이기도 하다.

  서구 일부 구성주의 교육학자들은 비고츠키 이론적 맑스주의적 성격을 회피하기 위해, 피아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론의 지극히 일부만 알려진 비고츠키의 이론을 사회적 구성주의의 원조인 양 왜곡하기도 하였으나, 비고츠키의 선집 전권이 1980년대에 영어로 완역 출간되면서 왜곡이 가능한 조건은 사라졌다. 현재는 비고츠키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맑스의 견해를 토대로 하는 맑스주의 심리학자로 규정하고 있고, 비고츠키가 인간발달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문제를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과학적으로 분석·설명하여 발달이론으로 정립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맑스주의자인 비고츠키의 이론과 저작들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교육학에서도 탁월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수용되는 이유는, 맑스의 사회와 인간에 대한 기본관점을 계승하면서도 발생적 방법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론을 발전시켜 인간발달의 보편적 원리와 과정을 밝혔다는 데에 기인한다. 특히 발달의 기제, 변화의 역동에 대해 매우 탁월하게 설명하고 입증했다는 것에 대해, 후대의 교육학자들은 다른 이론과 견주어 보았을 때 이를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라 평가한다. 비고츠키는 실제로 발생적 방법을 방법론적으로 유난히 강조하였으며, 이를 통해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정과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 교육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교육과정, 교수-학습론, 평가론 등 교육의 전 분야에 걸쳐 토대가 될 만한 이론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현재 협력의 강조는 교육 분야 뿐 아니라 현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담론의 대세이다. 협력을 도덕적 가치 이상으로 상승시키는데 기여하는 이론 중 하나가 바로 비고츠키 이론이다. 핀란드와 쿠바가 경쟁의 유혹을 물리치고 협력을 근간으로 공교육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협력의 교육적, 발달적 가치를 비고츠키 교육학이 과학적으로 규명했기 때문이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국가 차원의 공교육 시스템의 철학으로서 뿐 아니라 교육혁신의 열망이 있는 여러 주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사회 미래교육 논의에서 협력을 여러 요소들과 횡적 관계에 있는 것 중 하나, 혹은, 하면 좋은 것 정도로 설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으로서 발달하는 과정의 불가피한 것이 협력이다.

  또한 비고츠키교육학은 맑스의 인간의 전면적 발달사상을 고등정신기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 형성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고, 전인교육, 전면적 발달 등 막연한 수준의 교육학적 용어를 과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전인교육은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과 사상의 위치에서 내려와, 이제는 현실의 교육목표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비고츠키교육학에서는 교육목표를 학력, 능력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교육을 통한 고등정신기능의 형성이 발달 목표이다. 여기에서 고등정신기능은 범주적 지각, 논리적이고 언어적인 기억, 능동적 주의, 자유의지, 개념적 사고, 창조적 상상 등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성격을 지니는 인간 고유의 심리기능들을 통칭하는 용어로서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 기초정신기능과 비교하여 고등정신기능은 의지적이고 능동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고등정신기능과 핵심역량

  비고츠키 교육학의 고등정신기능은 최근 교육학을 주도하고 있는 역량논의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된 핵심역량논의는 비고츠키교육학의 고등정신기능 개념을 일정 정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관점은 다르다. 핵심역량 논의는 의식의 총체성이라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으며 역량을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시키큰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개인의 역량은 쓸모에 의해 핵심이냐 부차냐로 갈린다.

  비고츠키교육학에서 인간발달이란 사회적인 것(고등정신기능)이 개인적인 것(고등정신기능)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지 개인의 역량을 발현하는 과정이 아니며, 이것의 발현을 거드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인간적 특성과 가치를 함축한 고등정신기능 개념은 개인은 개인으로 설명 불가능함을 전제로 한다. 고등정신기능의 기원은 사회이며 인류의 역사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개인의 역량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교육은 한 때는 두 사람 사이에서 행해지던 것이 개인적인 것이 되듯이교류를 통해 고등정신기능을 자기화하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이다.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 기초를 토대로 하여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한 인격체로서 형성되어 간다. 환경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인격체로의 거듭해서 변화한다. 환경은 발달의 부분적 조건이나 요인이 아닌 발달의 원천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격 형성의 과정의 핵심은 주체화이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발달은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주체로의 질적 변화이다. 외부 통제로부터 타인에 의한 규제로, 그리고 자율적 자기 통제로의 변화가 인간발달의 방향이다. 이러한 수동적 존재가 능동적 주체로 발달해가는 과정의 핵심 기제는 기호(언어)의 매개에 의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이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의식에서 지적 측면과 감정적·의지적 측면의 인위적 분리는 두 가지 상호 연관된 이유에서 곤란하다. 인위적 분리는 첫째, 생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게 만들며 둘째, 생각이 정신적 삶의 정서적·의지적 측면에 미칠 효과 또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양자를 분리하여 하나를 다른 하나로부터 분리하여 분석해버리면 생각의 원인을 설명할 수도 그리고 생각의 영향을 설명할 수도 없게 된다.

 

"생각과 말의 관계에 대해, 삶의 다른 측면인 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겨나는 첫 번째 질문은 지성과 열정의 연관에 대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의식의 지적 측면과 감정적·의지적 측면을 분리하는 것은 전통적 심리학의 근본적인 결함을 드러낸다. 생각은 이런 식으로 불가피하게 실제 삶의 풍부함으로부터 떨어져 생각하는 사람의 생생한 동기, 이해관계, 성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채 발생하고 불필요한 부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삶과 행동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고의 자율적인 흐름으로 어쩔 수 없이 전환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의식적인 삶과 인격적인 삶을 방해하면서 이 둘 모두에 설명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고대적, 원시적 그리고 자발적인 어떤 힘으로 전환된다."(Vygotsky, 2011: 38)

 

"처음부터 생각을 열정으로부터 분리한 사람은 생각의 원인들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영원히 가로막는데, 그 까닭은 생각에 대한 결정적인 분석은 반드시 사고의 추진 동기로서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사고 작용의 방향을 결정하는 필요와 흥미, 즉 동기와 경향성의 발견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생각을 열정으로부터 분리한 사람은 생각이 정신적 삶의 정서적·의지적 측면에 미칠 역효과에 대한 연구를 사전에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그 까닭은 정신적 삶에 대한 결정론적인 분석은 그 체계로부터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마법적인 힘을 생각에 부여하지 않으며 또한 사고를 행동의 불필요한 부속물, 즉 무력하고 헛된 행동의 그림자로 변형하는 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생각과 말, [1-40], 38)

 

  따라서 인격은 정서적, 지적, 의지적 측면을 갖는 고등정신기능들의 통일체이다. '인격'은 집단적 특성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각 인간 고유의 개별적 특성인 personality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타고난 개성'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기 어려우나, 생물학적으로 유전된 특성이라 할지라도 그 자질을 가진 개체가 사회적 관계 및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애초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되어 간다는 점에서, "인격"은 곧 어떤 특정한 인간의 삶의 총체이다. 인격을 이루는 제 측면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지적인 측면', '의지적 측면', '정서적 측면'이며 이러한 측면들이 실제 속에서는 결합된 통일체가 인격이고 의식이다. 인격은 어린이의 성장과정에서 변화 발달한다. 분석하기 위해 나누었지만 이 측면들은 분리된 채로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역동적으로 결합되는 체제로 종합된다. 여기에서 결합의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기호'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말'이다.

 

생각과 말의 관계에 대해, 삶의 다른 측면인 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겨나는 첫 번째 질문은 지성과 열정의 연관에 대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의식의 지적 측면과 감정적·의지적 측면을 분리하는 것은 전통적 심리학의 근본적인 결함을 드러낸다. 생각은 이런 식으로 불가피하게 실제 삶의 풍부함으로부터 떨어져 생각하는 사람의 생생산 동기, 이해관계, 성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채 발생하고 불필요한 부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삶과 행동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고의 자율적인 흐름으로 어쩔 수 없이 전환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의식적인 삶과 인격적인 삶을 방해하면서 이 둘 모두에 설명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고대적, 원시적 그리고 자발적인 어떤 힘으로 전환된다. 처음부터 생각을 열정으로부터 분리한 사람은 생각의 원인들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영원히 가로막는데, 그 까닭은 생각에 대한 결정적인 분석은 반드시 사고의 추진 동기로서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사고 작용의 방향을 결정하는 필요와 흥미, 즉 동기와 경향성의 발견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생각을 열정으로부터 분리한 사람은 생각이 정신적 삶의 정서적·의지적 측면에 미칠 역효과에 대한 연구를 사전에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그 까닭은 정신적 삶에 대한 결정론적인 분석은 그 체계로부터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마법적인 힘을 부여하지 않으며 또한 사고를 행동의 불필요한 부속물, 즉 무력하고 헛된 행동의 그림자로 변형하는 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비고츠키, 2011 : 38-39)

 

  개념적 사고 형성 등 여러 고등정신기능의 형성은 체계적 교수-학습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따라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을 위해 학교교육(더 정확히는 체계적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학습에서의 읽기, 셈하기, 글쓰기 및 교과 교수-학습에서 하는 여러 활동들이 발달의 외적 노선을 형성한다면, 이와 짝을 이루어 학습자의 내면에서는 내적 변화가 진행. 이러한 외적 활동들은 의식적 파악, 의지적 통제 등의 고차적 정신기능들로 전이된다. 훌륭한 교수-학습은 발달을 이끄는 교수-학습이다. 학교 학습이 시작될 때 아이들은 글쓰기에 필요한 심리적 토대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 글쓰기를 배우면서 새로운 심리기능이 형성된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개념적 사고는 청소년기의 인격의 총체적 변화를 이끄는 중심기능으로서 지각, 기억, 주의 등의 정신기능들은 개념적 사고를 통해 재편된다.

 

이제 왜 우리가 그렇게 생각발달을 설명하는데 많이 할애했는지 이유를 밝힐 차례가 되었다. 과도적 연령에 있어서는 특히나 생각 발달을 다른 부분적 과정들과 동등한 평범한 한 부분으로 취급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연령에서의 생각은 다른 기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지 하나의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생각 발달은 다른 모든 기능과 과정에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생각발달)은 이 시기 발달의 열쇠이자 중심이다. 우리는 이를 주도적, 선도적 역할leading role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이 말 외에 더 이상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생각 발달은 청소년의 지성발달을 주도한다. 그리고 지성은 청소년의 정신기능의 모든 것, 청소년 인격 전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개념을 형성하는 기능의 획득은 청소년의 심리적 변화 모두와 연결된 청소년기 변화를 주도하는 중심이다. 다른 모든 특정한 기능들은 개념형성기능과 연결되어 지성화되고 새로운 형태로 바뀐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청소년의 생각이 달성하는 매우 중대한 성취들의 영향 아래 재구성된다.“ (비고츠키 영문판 선집 5Development of Thinking and Formation of Concepts)

 

  개념적 사고는 지각, 주의, 기억, 자아의식, 세계관 등 각 정신기능의 질적 변화를 이끌고 관계를 총괄하는 핵심으로써 청소년의 고등정신기능의 구조적 변화를 선도하는 기능을 한다. 즉 개념적 사고는 청소년 인격 형성의 열쇠인 셈이다(비고츠키, 같은 책). 또한 개념적 사고는 변증법적 사고의 숙달의 경로로 나아간다(비고츠키, 청소년기 개념의 형성).

  비고츠키는 고차적 기능과 저차적 기능 간의 관계를 '제거'되면서 '간직'되는 변증법적 "지양"의 관계로 파악했으며, 과도적 시기에 출현하는 고차적 정신기능은 이전 연령에서 형성된 저차적 기능과 변증법적 "지양"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과도적 시기의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전체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기능들(주의, 기억, 지각, 의지, 사고)은 나뭇가지가 제각각 자라듯 별개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차적으로 종합되는 양상으로 발달한다. 각각의 정신기능들은 위계를 가진 하나의 복합적인 체계를 이루며 발달의 과정에서 이러한 복잡한 체계의 중심이자 전면에 등장하여 다른 기능들의 발달을 이끄는 것이 바로 개념적 사고의 발달이다. 다른 정신기능들은 개념적 사고를 토대로 재구성되고 지성화된다.

 

지각과 개념적 사고 : 범주적 지각의 형성

  인간은 대상을 개념으로 창조함으로써 즉각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낱말의 도움으로만 어린이는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으며 어린이는 개념의 도움이 있어야만 비로소 대상을 실재적이고 지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 청소년의 시각적 사고는 추상적 사고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청소년은 그가 지각한 실재를 개념 속에서 종합한다. 즉 청소년은 시각적 지각 행위 속에서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복합적으로 종합된다. 이것이 복합체로 사고하는 어린이와 개념으로 사고하는 청소년의 지각에 의해서의 차이이며 개념적 사고를 통해 청소년은 범주적 지각을 할 수 있게 되며 지각을 통해서보다 생각을 통해 더 많이 기억한다.

 

기억과 개념적 사고 : 논리적 기억의 발생

  자연적 기억능력이 학령기 막바지에 최고조로 달하는 것은 맞지만 지성과 기억의 종합을 토대로 하는 논리적 기억은 오직 청소년기에 진정으로 성취된다. 학령기 초기의 어린이의 지성은 기억에 의존한다. 즉 기억에 의해 생각한다. 학령기 어린이는 직관에 주로 의존하며 기억과 생각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린이에게 생각한 것을 이야기 해보라고 요구해도 기억한 것을 이야기한다. 어린이의 사고는 구체적이라는 특징이 있고 기억, 경험, 심상에 의존하며, 어린이 지성의 주된 토대는 기억이다. 즉 학령기에는 기억에 의해 지적 활동이 지배되던 관계였다면 청소년기 발달의 과정에 접어들면 기억과 지성의 관계가 뒤바뀌기 시작한다.

  청소년의 기억은 사고에 의존한다. 어린이가 경험적으로 지각한 이미지를 기억하고 기억을 통해 사고를 하는 반면, 개념적 사고와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청소년은 지각한 것을 논리적으로 종합하여 기억한다. 즉 지각한 이미지를 기억하는 것이 아닌 관념을 기억하게 된다. 과도적 시기에 직접적이고, 직관적이고, 자연적인 기억은 매개된 형태의 문화적인 기억으로 전이된다. 낱말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낱말을 매개로 기억을 하는 것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시작되지만 이것만으로는 문화적 기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기호의 기능적 사용, 즉 인류가 기억술을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기억을 통제하였듯이 어린이의 기억발달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기에는 개념을 통해 기억한다. 청소년의 기억은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우며 개념으로 기억하는 언어적 기억이다. 청소년은 내적 말이 외적 말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강력하게 발달하는 가운데, 내적 말에 의존하는 언어적 기억 그 자체는 지적 기능의 일환으로 전환되고 기억과 사고의 이전 단계의 관계는 완벽하게 뒤집어진다. 논리적 기억은 매개된 기억의 내적 형태이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성숙하는 과도기에 일어나는 내적 기억으로의 이행은 내적말의 강력한 발달과 연결되어 있다. 외적 기능의 내적 기능으로의 전이의 법칙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의와 개념적 사고 : 능동적 주의의 발생

  주의도 기억과 마찬가지로 지성화된다. 주의를 어떻게 스스로 통제하는지 모르는 동물들은 시각장의 노예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시각장의 구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린이의 사고는 주의에 종속되지만 발달의 과정에서 주의는 사고에 의존한다.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자발적) 주의의 일차적인 특징은 그것이 생각과 결합되었다는 점이다. 전통적 관점에서 청소년의 주의는 증상적 이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주의의 범위가 확장되고 안정성이 증가한다는, 다시 말해, 양적 측면에서 이해되었다. 주의의 발달과 개념의 발달은 상호 관련된다. 주의의 발달이 개념의 발달에 앞서 개념발달을 이끌며, 개념의 발달은 주의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킨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풍부하고 세밀하게 대상을 지각한다. 이러한 어린이 지각의 특성의 이면에는 협소하고 비자발적인 주의가 있다. 어린이는 자신의 의지 하에 과정과 대상을 통제하는 주의의 기제를 가지지 못한 상태이다. 어린이의 주의는 직접적이고 비의지적(비자발적)이며 외부에 의해 통제된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대상의 지배를 받는다. 대상이 주체의 주의를 흩트리거나 끈다. 달리 말해, 어린이는 자신의 주의를 끄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반면 청소년 시기에는 사고의 발달과 개념적 사고를 통해 고차적 형태의 매개된 주의가 발달한다. 주의 발달의 두 가지 기본적인 발생적 단면을 경과한다. 첫째는, 외부의 통제를 받는 단계이다. 둘째는, 내적(자율적) 통제의 단계이다. 학령기 어린이가 첫째 단계에 해당하며 청소년기가 둘째 단계에 해당한다. 과도적 시기에 외적 통제로부터 내적 통제로의 내적 혁명이 일어난다. 외적 기호의 조작이 없이도 내적인 조작을 통해 스스로 주의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고차적 주의는 개념적 사고에 기능적으로 의존한다.

 

청소년의 상상과 개념적 사고 : 창조적 상상의 발생

  비고츠키는 병리적 퇴행현상으로부터 안티테제를 끌어낸다. 어떤 원인에 의해 고차적 정신기능이 붕괴된 환자들은 상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이는 통념과 다르다. 환각과 상상에 빠져 현실감이 없을 거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경우나 어린이가 상상이 더 자유롭고 풍부할 것이라는 일반적 견해와 반대되는 것이다.

  비고츠키의 사례 관찰에 따르면, 정신적 병리현상을 겪는 고등정신기능이 붕괴한 환자는 상상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각에 종속되어 철저히 구체에 속박된 사고를 함으로써 사고 기능에서 상상을 할 수가 없다. 고차적 정신기능은 개념적 사고와 말을 토대로 구축되지만 이것이 붕괴된 환자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각에 완벽히 의존하는 상태가 된다. 예컨대, 어떤 환자는 갈증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는 컵에 물을 붓지 못했다. 오른손을 쓸수 없게 된 어떤 환자는 "나는 오른쪽 손으로 글씨를 아주 잘 쓸 수 있다."는 문장을 그대로 따라하지 못했다. 번번히 "오른쪽" 대신에 "왼쪽"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따라했다. 이 모든 경우는 구체적 상황에 행위, 사고, 지각, 행동이 완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러한 구체적 상황에의 종속은 고차적 정신기능들이 붕괴되었을 때 나타나는 퇴행적 결과이며 개념으로 생각하는 메커니즘이 붕괴되어 발생적으로 초기의 형태인 구체적 사고가 그것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청소년의 상상과 창조, 비고츠키 선집5, 151)

  상상과 창조는 경험한 것들을 자유롭게 처리하고 자유롭게 결합하는 것이다. 상상과 창조는 "구체적 상황과 직접적 지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고와 행동, 인식의 내적 자유가 상상과 창조가 가능한 전제조건이다. 이러한 구체적 상황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생각 내적 자유는 개념형성을 숙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획득된다.

  기존의 견해에서는 상상과 창조를 청소년 정신발달을 중심, 선도 기능으로 간주했으며 상상을 정서하고만 연결시키고 지적 영역과 연결을 배제했지만, 푸쉬킨은 "상상은 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하학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비고츠키에게 있어서 상상은 특별한 상황과 활동에서만 필요하고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적, 지적 활동 모두에서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누구나가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당대의 학자들이 상상과 개념적 사고를 독립적이고 심지어 대립적이라고 본 것과 반대로, 비고츠키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상상 역시 기억, 주의, 지각, 의지와 마찬가지로 개념적 생각과 연결된다. 아동기 기억영역에서 작동하던 직관적 심상은 청소년기에 기억영역으로부터 상상과 창조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아동기의 놀이는 청소년기의 상상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아직 청소년기의 상상은 구체적 표상의 형태로서 구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는 청소년의 지적 삶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다만 상상의 영역으로 이동하여 다른 기능들이 그러하듯이 고차적인 수준으로 상승한다.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는 개념의 영향 하에 상상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청소년기에는 기초적 형태의 창조가 발생하는데, 청소년의 상상은 어른의 상상보다 덜 창조적이지만 어린이의 상상에 비하면 창조적이다. 다만 상상이 창조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첫 시기가 청소년기라는데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청소년의 지성과 상상의 관계는 명백하다. 병리적 현상에서 보았듯이 구체적 상황으로의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 한 상상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자유는 오직 개념으로 사고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청소년기 창조적 상상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개념적 사고이다.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개념적 사고형성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또 있다.

 

(1) "주체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을 위해서는 개념적 사고의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2) 계급의식의 형성은 공동체 집단 활동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경험적이고 맥락의존적이며 지각의존적인 사고로는 고차적인 상호교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 개념적 사고의 형성은 이후 변증법적 사유를 위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개념적 사고발달을 전제로 이후 성인기 변증법적 사고 형성의 가능성이 생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인지자동화 시대 진정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청소년기 교육단계에서 개념적 사고를 형성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교육목표임을 알 수 있다. 개념적 사고는 문제해결, 창조, 융합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문제해결, 창조, 융합은 별도로 길러질 기능이 아니라 고등정신기능들이 함께 작동할 때 나타나는 실천들이다. 지각, 주의, 기억, 생각이 총체적으로 엮인 정신기능들 간의 역동적 관계의 체계가 작동한 결과가 문제해결, 창조이라고 보아야 한다.

 

제기되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새롭게 창조되고 자극을 제공하는 필요가 있다는 현실, 그리고 청소년 앞에 제시되는 목표들 때문에 사회적 환경이 청소년의 생각 발달에서 이 결정적인 일보 전진을 이루도록 자극하고 독려하게 된다. 본능이나 선천적 경향의 성숙과는 대조적으로, 이 과정의 시작을 결정하고 행동의 성숙기제를 촉발하여 추후 발달의 경로에 맞추어 앞으로 추진시키는 것은 청소년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환경에 의해 성숙의 단계에 있는 청소년에게 주어진 과업들, 즉 성인세계의 문화적·직업적·사회적 입문과 연관된 과업들은 개념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기능적 요인들이다. ... 과도적 시기에 지적인 발달의 전체 과정을 기르고 지도하는 진정으로 강력한 요인으로 실생활 과업의 중요성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능적 측면 속에서 역동적-인과적 설명을 감지하여 이를 발달의 기제를 드러내주는 것으로 보거나, 또는 이 문제 해결의 발생적 열쇠로 간주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잘못이다. ... 기표로서의 말의 새로운 용법, 즉 개념형성의 수단으로서의 용법은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일어나는 이 지적 혁명의 심리학적 원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생각과 말 [5-3-15~19], 261~263)

 

  발달단계에 따라, 언어의 기능적 사용, 생각, 기억, 주의 등의 주요 정신기능들의 상태에 따라 달리 발현되며, 관심과 흥미, 직면하는 문제와 집단에서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통해 그때그때 실현되어 간다. 별도의 교수-학습이 사실은 무의미하고 구성도 불가능하다. 물건을 옮기는 문제, 사물을 분류하는 문제 등의 사태에서 각 연령대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서로 다른 양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때로는 놀이를 매개로 때로는 학습을 매개로, 때로는 동료와의 작업을 통해 이런 기능들은 작동하게 되고 발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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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64호_기획_3. 인지자동화시대,_비고츠키교육학으로_본_역량의_문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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