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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4호 (2017.04.10. 발간)


[담론과 문화]

타라의 문화비평

태극기가 바람에 부대낍니다

 

타라 (진보교육연구소 문화연구분과)

 

 

 


 

  대한문 앞 태극기, 혹은 탑골공원 앞 태극기 집회 사진은 언뜻 보면 일제강점기 만세 장면과 겹친다. 게다가 털모자로 중무장한 할배들이 눈발 날리는 하늘을 향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은 미국을 형제의 나라로 연호하며 빨갱이 타도를 외쳤다던 그리 멀지않은 역사 속 일단의 무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 당시에 정말 이 장소에서 그러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내게 그런 장면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불편하고 불쾌하면서도 동시에 서글픈 장면이다.

 

  작금의 사태를 한국전쟁 당시의 위기 상황에 빗대어 미국을 구원자로 들먹이는 게 불편하고, 걸핏하면 적이라 규정한 이들을 빨갱이라고 상스럽게 욕하는 말들이 불쾌하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희끗한 머리와 주름살이 내 부모에게서 늘 보던 것들이라 짜안하기도 하다. 며칠 전 출장길에 보았던 박근혜씨 집 담장에 붙어있던 검붉은 장미와 포스트잇들, 구국결사대라는 글귀와 태극기도 그러했다. 두건 같은 모자를 쓰고 큰 태극기 깃대를 X자로 흔들어대던 아주머니는 주민센터며 시장에서 마주칠 법한 인상이었다. 가슴에는 검정색 태극 뺏지를 달고 태극기 봉이 튀어나온 까만 가방을 매고 앉아서 애국을 설교하던 지하철 속 할배도 익숙한 동네 어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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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무엇보다도 강남역과 군자역 참사 현장을 본뜬 장미와 포스트잇들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세월호의 절규가 진실은 승리한다는 어구로 가볍게 변주되어 있는 가하면 각하와 국모의 딸 힘내세요라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애끓는 자들의 애도 형식에다 정반대의 내용을 덮어쓰기한 꼴이다. 국가가 초래한 희생자들을 위로하느라 만들어낸 제의 형식을 빌어다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는 모양새라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 찍은 채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착잡했다. 그리고 나의 태극기 단상은 여기서 시작된다.



역사 속 태극기

 

  국기가 국가를 상징하게 된 것은 근대국가 성립 이후의 일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으로 하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필두로 하여 서구에서는 18세기 후반,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 중후반부터 국기가 등장한다. 태극기가 국기로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개항 이후 외국과 통상을 시작하며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직접적으로는 1882(고종 19) 522일 미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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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측 제독으로부터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에 대한 요청이 있었고, 당시 조선 대표였던 김홍집이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 만들기를 명했다는 것이다. 선상에서 만들어진 이 국기는 제물포에서 열린 조인식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 이 때 사용된 태극기 모양이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제작한해상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1882.7)‘Ensign’이란 이름으로 실려 있다.

 

  한편 기존의 역사서들은 주역에 근거한 태극과 팔괘의 도상은 당시 조선 내정에 관여했던 청나라 사절인 마젠충이 청 황룡기를 응용한 도안과 함께 제안한 태극 도안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18829월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배 위에서 국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국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태극기가 외교상의 목적으로 선상에서 급히 만들어진 것은 공통적이다.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의 4괘를 그려 넣은 태극기가 공식적인 국기로 제정 · 공포된 것은 고종20년인 1883년이었다. 이후 태극기는 1883년 외교사절단의 미국 숙소와 1888년 미국 주재 조선공사관에, 그리고 시카고 만국박람회(1893)와 파리 만국박람회(1900) 등에서 국가의 국기로 게양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제정 당시 이 깃발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95년 무렵 제정된 기념일인 경절에 운종가에 내걸도록 독려된 태극기와 독립협회의 독립문 기공식과 준공식, 외국어학교들이 모여 벌인 운동회 행사에 게양된 태극기를 통해서였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행차에 대한제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앞세웠다.

 

  태극기가 국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부터였다. 의병장 고광순은 태극기에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글자를 새겨 국권 수복의 열망을 표현했고,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가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태극기에 무명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고 쓰며 항전을 다짐하기도 했다. 한편 각국으로 흩어진 이민자들은 국기를 국가 대신 민족의 상징으로 삼았다. 만주에서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던 광복군들에게도 태극기는 독립국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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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의 의미가 독립운동사에서 폭발적으로 등장한 것은 19193·1운동 때이다. 독립선언서, 시위 격문과 같이 태극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직물에 손바느질한 것이며 목판으로 찍은 것들이 몰래 만들어져 만세운동과 함께 곳곳으로 퍼져갔다. 태극기가 국권 회복과 독립 의지를 다지는 상징이 된 것이다. 1942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태극기 형태를 일치시키기 위해 국기제작법을 제정하였고, 광복 직후 민중들은 일장기에 먹으로 덧칠해 급조한 태극기를 내걸며 해방의 기쁨을 분출하기도 했다.

 

  해방공간에서 태극기는 적기와 함께 좌우를 막론하고 독립된 민족을 통합하는 상징으로 공유되었다. 기록들에 의하면 반탁을 외친 우익이나 찬탁을 외친 좌파 집회에서, 그리고 북한정권의 행사에서도 1948년 인공기 확정 전까지 태극기가 등장했다고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태극기는 제각기의 이념과 이상을 표상하는 공유된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1949년 국가제정위원회에서 태극기가 대한민국의 국기로 제정된 이후 남과 북은 태극기와 인공기를 서로 철저히 금기시하는 정책을 근 반세기 동안 펼쳤다. 광복 직후 개최된 3·1운동 기념식장 가장 높은 곳에 전면으로 배치되었던 태극기가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의 국기로서 애국심 고취의 숭배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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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태극기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시절 교문을 들어서며 정면의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만 했던 기억이 있다. 한 일 년여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나는 그 행위가 싫어서 아예 일찍 등교하거나 우루루 무리지어 지날 수 있는 시간에 교문에 들어서려고 애썼다.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했고, 태극기를 정확히 그려야 했으며, 그것으로 시험도 보았던 시대였다. 1946년에 이미 태극기 그리기가 중학교 입시문제로 출제되었고, 1949년에는 국기배례를 거부한 초등학생 42명이 퇴학 처분되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 유신정권에서도 이런 태극기 예식은 여전히 이어졌던 것 같다.

  

 ‘625 동란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던 담임교사는 철모를 쓴 두 병사가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리는 흑백사진(교과서 사진)을 무척 비장하게 설명했다. 정확한 내용은 잊었지만 당시의 엄숙했던 분위기는 남아있다. 국립현충원에 인접했던 학교라 이런 저런 행사로 현충원에 자주 갔고, 그곳에서 보았던 태극기를 총에 매단 채 돌격하전 군인 부조상이 함께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경례를 하더라로 유명해진 국기 하강식 의례는 학창시절 내내 오래도록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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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작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연도에 서서 흔들어댔다. 1983년 이웅평 귀순 환영대회 때는 여의도까지 걸어가 태극기를 흔들었고, KAL기 피격이며 아웅산 폭발 사건에도 어김없이 태극기 행렬에 동원되었다. 학교 대신 길거리에서 출석 체크를 하고 받아든 태극기를 열심히 흔들다 태극기를 반납하면 끝나는 그 날은 친구들과 마냥 즐거운 나들이였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그 많은 인파가 지나간 자리에 태극기들이 나뒹구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최근에 친박집회 뒤 무참하게 버려지는 태극기들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어쨌든 그 당시 태극기는 내게 애국의 표지로 경외해야 할 것이면서 다소 식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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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의 기억 속 태극기는 주검을 덮은 태극기이다. 까맣게 탄 맨발이 삐죽이 나와 있는 주검을 채 다 못 덮은 태극기, 운구를 실은 손수레를 덮은 태극기, 피로 얼룩진 태극기들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들이었고 충격이었다. 사람들을 무참하게 짓밟는 계엄군들을 보며 경악했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므로 518 광주항쟁과 시민군은 내게 피 묻은 태극기이다. 당시 생존자들의 구술 기록에서 계엄군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뒤 태극기만 보면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몽둥이나 기다란 막대만 있으며 그걸로 집안을 다 부수는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국가가 자기에게 저지른 폭력 속에서 태극기라는 상징이 처참하게 찢기는 것을 목도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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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민주항쟁 속에서 태극기는 민주주의 쟁취와 투쟁의 깃발로 등장한다. 이는 광주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이자, 1985년 민정당 연수원 옥상에서 구호를 외치던 대학생들이 난간에 펼친 태극기였다. 이한열 열사의 운구를 덮고 만장행렬의 선두에 섰던 태극기는 비장했다. 부산에서는 경찰의 다탄두 최루탄 발사에 맞서 웃통을 벗어던진 채 맨몸으로 아스팔트를 내달리며 절규하던 청년의 뒤로 대형 태극기가 큰 산처럼 펼쳐져 있었다. 학생들은 구국의 열사가 되어 태극기를 온 몸에 두르고 혹은 목에 두르고 민주주의 사수에 나섰고, 태극기는 이제 민주주의 투쟁의 깃발로 나부꼈다.

 

  1990년대 초 학생들과 5학년 실과시간에 국기함 만들기를 했다. 목공 만들기로 제시된 것이 왜 하필 국기함 이었을까? 문구점에서 팔던 국기함 만들기 세트는 조잡했고, 싸구려 합판 조각으로 학생들 손에는 나무가시가 박히곤 했다. 사포질과 작은 못 박기, 손잡이 부분을 본드로 붙이기, 뚜껑에 국기를 그리고 색칠하기, 니스칠 등이 주어진 활동이었다. 연필꽂이 등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작은 목공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국기에 대한 교육을 노작교육에서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극기가 엄숙한 국가주의와 비장한 저항에서 발랄한 축제의 상징으로 변화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광장으로 나온 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붉은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연호했고, 태극기에 대한 사회적 금기는 깨졌다. 태극기는 두건이 되는가 하면 탱크 탑이 되었고, 태극 문양은 페이스 페인팅을 넘어 바디 페인팅으로 퍼져갔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기점이 1997IMF 외환 위기였던 것 같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국내의 기업들은 애국심을 자극할만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현대증권의 BUY KOREA와 국산품 애용운동, 그리고 청소년들의 태극기 패션이 유행했다. 그 결과 태극기가 새겨진 가방, 양말, 모자, 연필, 열쇠고리 등 태극기 상품들이 대한민국을 한바탕 휩쓸었고, 태극기는 일상문화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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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흐름 속에서 2002년 시민들의 자발적인 태극기 열정(?)은 태극기에 담긴 역사적 무게마저 가볍게 날려 버리고, 상업적 마케팅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각종 패션쇼와 퍼포먼스에서 태극기는 당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선이 효순이의 장갑차 참사 집회에서 태극기는 촛불과 함께 민족 자주의 상징으로 작동했다. 사람들 머리 위로 펼쳐진 성조기들이 갈가리 찢긴 자리에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아리랑과 소파 전면 개정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당시의 태극기 퍼포먼스는 이전의 진혼제에서와는 달리 문화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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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집회로 이어진 촛불집회는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구호를 외치는 촛불소녀들을 탄생시키며 범국민적 집회로 진화한다. 몇몇 젊은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행진을 벌였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1조를 발랄하게 노래하고 연주하며 춤을 추었다. 관변단체나 보수진영이 애국심 고취를 위해 즐겨 쓰던 태극기를 보수 집회에서 단체로 들고 나오는 것에 마뜩찮아 하는 이들도 있었고, 논자들 중에는 이를 공격적 애국주의나 민족적 내셔널리즘의 징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태극기는 이제 집회 도구들 중의 하나로 시민들의 난장놀음에 재미나게 쓰여졌다. 그런 와중에 태극기는 시위대를 저지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공업용 기름을 잔뜩 들이부은 명박산성의 컨테이너와 경찰호송차에 태극기가 부착된 것이다. 대형 태극기를 밟고 넘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이명박 정부 나름의 장치였다.

 


신화 속 태극기

 

  2013년 고압 송전탑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밀양농민들은 산꼭대기에 지은 움막에 작은 태극기를 꽂았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지만 자신들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집단 분향소에는 태극기가 없다. 대신 시민들이 애도의 심정으로 만들어낸 노란리본과 종이배, 흰 국화들이 가득했다. 학생들의 시신을 덮은 건 태극과 4괘가 없는 무명의 하얀 천이었다. 무능한 정부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에게 국기를 덮을 수는 없는 까닭이다. 태극기는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들을 조롱하며 피자파티를 벌인 일베들의 손에서 휘저어졌다.

 

  20173월은 태극기 수난시대이다. 삼일절 태극기가 탄핵 반대의사로 비칠까 어떤 자치단체에서는 태극기 표지를 바꾸고 태극기 나누어주기와 태극기 행진 등을 생략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국경일인데도 태극기를 내걸기가 꺼려졌다든지 광복회가 태극기의 뜻을 훼손 말라는 성명까지 발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3·1절 시청과 광화문 집회에선 한쪽은 태극기, 또 한쪽은 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가 등장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지난 가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폭로를 계기로 촛불집회의 대장정이 시작되었고, 사상 유래 없는 촛불시민들의 항쟁 물결은 12월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그즈음 맞불집회가 본격화되고 헌재의 탄핵 심리가 진행되면서 세를 불려갔다. 친박 5070 혹은 아스팔트 할배라고 불리는 이들은 태극기를 성조기와 함께 휘두르며 빨갱이와 종북세력을 처단하라고 외쳐댔다. 취재진들과 반대 집회자들을 깃봉으로 때리는가 하면, 집회 뒤에 태극기는 마구 버려지기도 한다. 민족의 수난사를 담고 있고 국가공동체의 상징이었던 태극기가 이제는 극우 보수와 혐오의 아이콘으로 인식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스스로를 애국국민, 애국세력이라고 칭하는 탄핵반대 혹은 탄핵무효 집회 참여자들은 태극기 바람으로 촛불을 끄러 나왔다고 말한다. 촛불 좌파들에게 온 나라가 전복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들의 애국심을 조장하며 가짜 뉴스들은 분노의 정동을 만들어낸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여러분에게 달려있다는 말에 결의를 다지고, 조작된 시나리오에 의해 대통령 하나를 끌어내렸다고 울분을 토한다. 군함 사진을 배경으로 무대에 걸린 대형 태극기는 애국의 깃발이며, 손에 든 성조기와 태극기는 반미 좌파세력들과 자신들을 구별짓는 선명한 표징인 것이다.

 

  국가는 의례와 다양한 상징, 즉 동상이나 박물관, 도상 등을 통해 신성화 작업을 벌인다. 대한민국 역시 그러했고,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이러한 작업의 전형적인 예이기도 하다. 신화란 애초에 자의적으로 연결된 것들을 마치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요컨대 역사를 자연화하는 것이다. 친박들에게 태극기는 곧 대한민국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촛불시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절규하며 나 개인과 국가가 동일하지 않음을 깨달아갔다면, 친박 어르신들에게 국가는 곧 나이고,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 앞에서는 촛불도 세월호도 모두 그 아래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태극기=국가=박근혜라는 신성한 삼위일체를 지금 촛불을 앞세운 종북세력들이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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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국가=박근혜라는 구도는 태극기=조국=라는 오랜 생각 습성과 등치되며, 박근혜에 대한 모독은 국가, 태극기에 대한 모독이자 현재의 대한민국을 일구어 낸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무시이다. 자기 존재감의 상실인 것이다. 80%가 대통령을 구속하라고 외치더라도 그들은 좌파들에 의해 세뇌당한 것이므로 애국국민인 내가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뜨거운 신념은 이런 신화적 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극우 매체들에 의해 생산된 가짜뉴스들을 SNS와 유튜브를 통해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사실로 믿고 이를 토대로 행동한다. “**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200억씩 뿌렸다더라는 식의 ~카더라 루머는 집회 참여자들을 통해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정치판이 늘상 그러했던 5070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실은 200억은 2012**후보가 선거자금으로 펀드를 만들어 사흘 만에 달성했던 금액이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사실의 조각들을 떼어내어 악의적인 것에 재접합하는 방식으로 무수하게 만들어진다. 빨갱이와 종북을 연결시키고, 전쟁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그렇다면, 신화적 의식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을 뒤흔들 충격적 체험이 필요한 것일까? 얼핏 감지되는 바이지만 비민주적인 극우세력이 민주적으로 행동하는 양상, 이를테면 광장에 나와 주장을 외치고 유인물과 신문을 돌리고 피켓을 드는 방식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던 방식이다. 그들은 현재 형식만 차용하고 있고, 상식을 벗어난 거친 말들이 여전하지만 말이다. 난 광장에서의 민주주의 학습 효과를 믿어보고 싶다. 배낭 위에 태극기를 망토처럼 걸친 할배가 지나가는 모 방송사 취재 차량을 보며 말했다. “또 왔네. 저것들 와도 방송 하나 안 해. 언론은 다 거짓말이야.”

 

  2015년 박근혜정부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대대적으로 나라사랑운동을 펼쳤다. 박정희 기념관에 36m 초대형 조국 근대화 국기게양대를 설치했고, 학교에는 보훈청에서 주관하는 온각 문예행사 공문들이 넘쳐났다. 기업들은 건물 외벽에 대형 태극기를 설치했고, 태극기 배부와 함께 보훈의 달 나라사랑 마케팅을 펼쳤다. 60억을 들여 모든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게 한 것도 이 시기였다. 게다가 문화 부문에서는 태극기 관련 예술 행사들을 개최했고, 20163월에는 막대한 돈을 들여 정부 각 부서의 로고를 태극 문양으로 일제히 통일시켰으니 어쩌면 2017년 친박 집회의 태극기 사랑은 여기서도 생명력을 얻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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