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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4호 (2017.04.10. 발간)


[담론과 문화]

한송의 미국생활 적응기

 

                            “Welcome to Philadelphia!”

 

한송_진보교육연구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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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 사진 pixabay>

 

  필라델피아에 도착하던 날 밤, 비행기 기장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내려다본 필라델피아의 밤거리 불빛은 찬란했다. 아주 오래 전에, 영화 필라델피아를 볼 적에는 내가 톰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이 거닐 던 이 도시에서 생활을 해 나가리라 상상도 못했다. “록키가 그 유명한 주제곡 빠밤 빠~ 빠밤 빠~”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아침태양을 맞으며 시장 골목에서부터 막 뛰어와 강을 따라 질주하며 웅장한 건물 계단을 박차고 올라가 도시를 바라보며 힘차게 두 손을 치켜들던 그 곳이, 바로 이 필라델피아. 미국 드라마 “It’s always sunny in Philadelphia”의 찌질한 군상들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 필라델피아다. 미국독립선언문과 헌법이 세워진 이 역사적인 도시는, 심지어 백달러 지폐 앞면(벤자민 프랭클린)과 뒷면(미국 독립기념관)도 장식한다.

 

  어찌됐든, 나는 휴직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휴식기를 갖게 되었고, 그 곳은 필라델피아인 것이다. 정확히 324일은 나와 필라델피아의 6개월 기념일이다. 이제 나도 이곳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라델피아라는 긴 이름 말고, 애칭인 필리(Philly)라 부르기로 한다.


  필리의 가을과 겨울을 지나 이제 봄이 오는 길목에 섰다. 이곳에 있는 동안, 소소하게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트롤리(trolley 유럽에서는 트램(tram)이라 일컫는)를 타면 밖을 보지 않고도 정류장이 어딘지 알고, 제법 나의 사회생활과 내 사람들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하면서, 가끔 여기가 다른 나라라는 사실을 잠시 잊기도 한다는.

 

  말이 거창한 사회생활이지, 실상은 이민자 나라인 미국에 걸맞게(!) 도처에 널린 무료영어교육 시스템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어가 좋았고 해외펜팔도 수년 했었고 런던에서 1년 살아도 보고 주변 외국친구들도 많고 심지어 남편도 미국인인 나는, 그래도 영어는 조금 한다고 생각했으나, 이곳에서 많은 미국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진짜 영어가 생소하기도 하고 불편했다. 어느 날은 함께 보드 게임을 하다 속상해서 눈물도 찔끔 흘리기도 했고, 미국 대선이 한창일 때는 대선 토론을 보면서 영어의 벽이 참 높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돌파구가 필요해!

 

  인터넷 폭풍검색. 필리에서만 여러 개의 무료 영어교육 기관들과 프로그램들이 검색됐다. 이 모든 과정들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들이라 일반화하기엔 무리일 수 있다는 말을 먼저 남겨둔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은 이메일과 전화통화로 예약날짜를 잡고, 예약 날짜에 가면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등록을 하고, 등록하면서 또 영어수준을 테스트하는 시험날짜를 잡는다. 심지어 예약날짜에 담당자가 아파서 못 나오면 다시 예약날짜를 잡아 또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날짜에 맞춰 시험을 보고나면 이번엔 시험결과를 보고 면담하는 날짜를 예약한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 후에 면담은 일대일로 진행이 되고 대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심도 깊게 이뤄진다. , 그 기관에 나에게 맞는 프로그램이 없다면 주변의 연계되는 기관에 연락하여 다른 프로그램을 소개시켜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절차가 비효율적이라 느껴졌으나,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친절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기관들은 비영리단체로 시나 주정부 지원을 받거나 민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이러한 단체들이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은 참으로 다양하다.

 

  단체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나 대부분 이민자들을 위한 다양한 수준의 영어교육(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은 기본이고, 시민권 취득을 위한 프로그램, 일반 시민들을 위한 문맹자 교육, GED(General Educational Development 고등학교 졸업장 취득교육), 직업교육, 청소년 프로그램, 어린이 방과 후 프로그램, 대학교육을 준비하는 과정, 개인사업자를 돕는 비즈니스 과정과 은행 대출 관련 도움까지 참으로 방대한 영역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특히, 공공 도서관(The Free Library)은 일반에게 무료로 개방되며, 필리에서만 54개 지점이 서로 연계되어 각종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이곳에서도 무료 영어교육과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교육, 홈리스 등 사회취약계층의 재교육, 노인 컴퓨터 교육과 체육교실, 요리교실, 어린이 대상 책읽기와 요가, 심지어 운전면허 시험 준비와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ACA(Affordable Care Act) 등록 교육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이며,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일대일로 진행이 되기도 한다.

 

 

일단, 우리 동네 이야기

 

  우리 동네는 필리에서도 서쪽에 위치한 웨스트 필리인데 여기가 좀 악명(?)이 높은 곳이다. 재미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다들 웨스트 필리는 우범지대이니 피하라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 도시는 UPenn(University of Pennsylvania)이라 불리는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이 있고, Drexel University, Temple University를 비롯하여 11개의 대학과 의과대학들이 있는 교육 도시다. 웨스트 필리에만 UPennDrexel University과 대학부설 병원들이 모여 있고, 이 동네 언저리가 다 University Housing으로 관리되는 곳이고 동네 이름 자체도 University City이다. 왜 이 동네가 위험하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필라델피아는 완벽하지는 않으나 바둑판식으로 도로가 이루어져 있어 주소를 보고도 집 찾기가 수월하다. 도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세로방향 도로들에 다 숫자를 붙여 놨다. 동쪽에서부터 First street, 2nd street 해서 Schuylkill River(라 쓰고 현지인은 스쿠쿨이라 발음한다)를 끼고, 서쪽까지 69th street까지이다. 웨스트 필리도 몇 년 전부터 진보적이고 예술과 환경을 생각하는 힙스터(hipster)들이 모이면서 나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 원래 살던 원주민(대개 흑인)들이 더욱 더 서쪽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50th street까지가 그 경계이다. 거기까지는 무정부주의자 책방, 정치적인 슬로건을 걸어놓은 카페들, 협동조합 마켓, 쿨한 펍들과 거리에 앉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청년들까지 거리 풍경이 참 좋다. 그리고 백인들도 많이 보인다. 그러다가 50번가를 지나 51번가로 진입하는 순간, 거리의 결이 달라진다. 눈에 띄게 많아진 쓰레기부터 허름한 식당들과 간간히 폐쇄된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중교통도 50번가를 지나면 차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대개 흑인들이나 히스패닉 사람들이다. 참 묘하고도 씁쓸한 느낌이었다. 법에 이러라는 경우는 없겠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인종 segregation(분리)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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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앞 거리>

 

  나는 50번가를 지나 무려 4블럭이나 서쪽으로 더 들어간 곳에 산다. 처음 집 근처 말콤 엑스 공원 - 이름이 얼마나 훌륭한가! -에 부푼 마음을 안고 갔을 때, 푸른 잔디위에 널브러진 쓰레기들과 부서진 벤치, 그리고 그 곳에 모여 있던 한 무리의 흑인 십대들이 힙합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나마 성한 벤치에 앉아서 영화에서나 봤던 Yo, Bro, what up?을 이야기하며 있는 동안,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바닥만 보고 집으로 성급한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너무 쫄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늘 내게 먼저 안부를 묻고, 날씨를 걱정하고, 웃고 화내기도, 가끔 거칠기도 하는 보통의 사람들이였다. 사회적인 편견에 거리를 두며 살았다 생각했으나 나 또한 그 편견 속에 있었다는 부끄러움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들의 따뜻한 웃음 뒤에 고단한 삶은 명확하게 보인다.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편견 속에 자라는 흑인 아이들은 과연 공평한 기회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은, 집 앞에서 공놀이를 하며 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든다. 그들의 부모들도 일하느라 바쁘다. 온통 할로윈 테마로 거리와 상점들이 북적거린 할로윈 데이 때 백인 동네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재미난 복장을 한 채 사탕을 받으러 다녔다면, 우리 동네 도로는 그저 깜깜했다. 그래서 더욱 현관에 불빛을 밝힌 채 기다렸던 우리 집으로 찾아온 아이들은, 어느 한 사람 복장을 하지도 않았고, 부모와 오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딱 두 팀만이 잠깐 들러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할로윈 복장을 하지 않았다는, 물어보지도 않은 대답을 먼저 하고 수줍게 사탕을 받아갔다.


  쉽게 일반화 할 수도 없겠고, 사회 양극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겠지만, 이 어려운 환경이 피부색깔 탓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 와중에 트럼프가 당선이 되고 반이민법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사전 경고조차 없이 갑자기 7개 나라 입국을 금지시킨 것이다. 사람들이 공항으로 모이고 시내로 모여, 이민법 반대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인종과 국적, 성별, 성적취향, 나이 등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시내 집회에 나갔다. 커피를 나눠주고, 각자 위트가 넘치는 피켓을 가지고 온 사람들과 웃으며, , 뭐랄까, 그래도 희망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만들어나간다는 훈훈함을 가득 안고 들어온 날이었다.

 

 

무료 영어교육을 향한 고단한 여정

 

  가장 먼저 찾은 곳은 Teaching House라는 CELTA (the Certificate in English Language Teaching)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관이었다. CELTA는 성인대상 영어교육 강사 자격증 코스인데, 우리는 자격증을 따려는 학생들의 실습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다. 2주간, 일주일에 15시간, 영어 언어기술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곳이다. 이곳은 온라인으로 신청과 동시에 레벨 테스트와 등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강생들은 대개 나처럼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들로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러시아, 인도, 브라질, 폴란드, 벨라루스, 튀니지 등 국적도 다양하고 대개 자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 강사, 음악가, 교사, 회사원, 학생, 의사, 음악가 등 경력도 다양하고, 미국에서 최대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일단 최대장벽인 영어실력부터 쌓는다는 의지도 강해, 간혹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좀 실수하고 미숙해도 수업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내게는 드디어 나의친구가 생겼다. 처음으로 나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구축이 되는 순간이었다. 2주간의 수업이 즐거웠지만, 가르치는 사람에 중점을 맞추다 보니, 배우는 입장에서는 체계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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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ching House, CELTA 수업>


  두 번째 기관은, Welcoming Center for New Pennsylvanians. 이곳은 대표적인 이민자 대상 교육단체이다. 먼저 등록양식을 온라인으로 보내면, 담당자가 확인 후 직접 전화를 준다. 교육받을 대상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 후, 일단 직접 와서 등록을 하라고 날짜를 잡아준다. 여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 기다림 끝에 등록을 하러 갔다. 담당자는 아주 친절하게 리셉션까지 나를 찾아와 환영의 악수를 해주며, 사무실로 안내한 후 개인 인적 사항을 아주 자세히 묻고 컴퓨터에 등록을 했다. 그러더니 지금 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가니, 한 달 후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라는 매정한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리셉션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잘 가라는 악수로 마무리했다.

 

  오리엔테이션을 기다리는 와중에 Community College of Philadelphia에서 $80에 세 달 코스로 영어교육을 체계적으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홈페이지를 뒤졌으나 별 정보가 없어 전화 시도. 어렵게 통화가 됐는데, 일단 무조건 사무실로 찾아오라는 소리만 들었다. 추운 겨울 바람을 가르며 학교로 찾아갔다. 사무실로 가면 뭔가 구체적인 정보가 있으려나 싶었는데, 등록 일정과 반 편성을 위한 시험 장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을 주고 끝났다. 뭔가 성의 없는 자세에 좀 화가 났다. 홈페이지나 전화통화에서 미리 알려주면 될 것을 말이다. 결국 여기는 먼저 배우던 친구의 별점이 낮아서 안 하는 것으로 미련 없이 정리했다.


  늘 운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방황의 시기에 또 다른 단체인 Christian Association at UPenn에서 운영하는 매주 화요일 Slanguage ESL 수업에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이 수업을 다니던 친구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 수업의 특별활동으로 홈리스와 알콜 중독자 대상 무료 급식 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게 지금까지 계속 인연을 맺게 됐다. 퇴임한 경제학 교수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아주 캐주얼하게 수업을 진행하는데, 기독교 단체임에도 종교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이 건물 벽에 “Black lives matter!”와 무지개 깃발을 걸어놓는 등, 소수자 인권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정치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라, 나는 너무나 신이 났다.

그 곳에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역신문에서 취재를 하러 오기도 하여, 벌써 두 번이나 신문에 우리의 이야기와 사진이 실리는 호사(!)를 누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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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nguage ESL>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1월 초가 되었다. 이제 드디어 기다리던 Welcoming Center 오리엔테이션. 자기소개도 하고, 각자 원하는 과정에 맞는 영어레벨 평가도 봤다. 온라인으로 치르는 100% 듣기 평가였다. 실생활에서 일어남직한 상황들을 들려주고 문제에 답하는 건데, 우리나라 영어교육 경험자들은 대개 듣기와 읽기 실력은 그나마 말하기와 쓰기에 비해 나은 편이지 않은가? 내심, 가장 높은 레벨 수업을 듣겠구나 기대하고 있었던 찰나, 담당자가 나를 불렀다. 시험결과가 나온 것이다. “너무 점수가 높아서, 우리 프로그램은 너에게 맞질 않는 것 같아.” 허걱, 난 영어가 부족하다구.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이 상실한 내게 그는 다른 기관 안내문을 주면서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새롭게 찾아간 곳이 Center for Literacy 라는 비영리단체이다. 꽤 규모가 크고, 연계되어있는 단체들도 많은 곳이다. 전화통화로 등록과 레벨평가 날짜를 잡고 기다리는 지리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평가 보는 날, 이곳은 CASAS(Comprehensive Adult Student Assessment System) ESL test 시험지로 평가를 봤다. 어휘와 독해를 다루는 이 평가는 1, 2 차로 나누어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1차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로 보고, 쉬는 시간 후에 보는 2차는 1차 시험결과에 따라 수준에 맞게 다른 평가지로 다시 평가를 한다.


  2주 후 면담. Learning Coach라는 담당자는 시험 결과를 알려주며, 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현재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지 자세하게 묻고 답을 해주는데, 이곳에서 처음에 들은 말. “You are a really smart girl!” 칭찬이라 기분은 좋은데, 본론이 뭐지? 그렇다. 이곳에서도 점수가 너무 높으니, 다른 단체를 알려줄까? 그랬다. 나는 거의 울상. 영어를 배우는 게 뭐가 이리 힘드냐, 나의 점수는 현실과 다르다, 나는 영어 학습이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고 토로를 하니, 그럼, ESL말고 다른 과정을 들어보라 한다.


  그 다른 과정이 바로, GED라는 미국 고등검정고시 준비프로그램. 대학졸업자인 나는 굳이 검정고시를 안 봐도 되지만, 영어로 미국인들과 함께 국(영어), , , 과를 배우니 많은 도움이 될 거라 한다. 귀가 솔깃했다. 또한 웨스트 필리에 산다니, 그 근처에 연계기관에서 아주 높은 단계의 ESL을 운영하는데 그곳도 한번 알아봐준단다. 뭔가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아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GED 등록을 위한 시험을 예약하고 돌아왔다. 물론, 그 담당자는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지 않았다. 그 전에 Introduction to Adult Learning and Careers Course라는 2주짜리 온라인 프로그램을 먼저 이수해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 프로그램은 가장 기본적인 자기관리에서부터, 인터넷, 이메일 쓰는 방법, 심지어 타자연습, 자신의 커리어를 찾는 과정과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 까지 성인 대상 가장 기본적인 직업(?)교육이었다. 과제도 여러 개 제출해야 하는 쉽지만, 쉽지만은 않은 프로그램이었고, 수강완료를 하면 나중에 이수증까지 수여했다.

 

  GED 등록을 위한 배치고사는 GED TABE(Tests of Adult Basic Education)라고 불리는데, 영어와 수학, 응용수학 세 과목에 걸쳐, 이것도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되었다. 진지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OMR 답지도 써보고, 일주일 후 일대일 면담. 또 담당자는 내게 “You are so smart!!”를 연발했다. 특히나 수학(나의 취약과목임)이 아주 훌륭하다며 특급칭찬. 어찌됐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 나도 아주 기쁘게 GED 상급반으로 배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 가장 기뻤던 소식은 따로 있었다. 웨스트 필리 쪽 연락했던 다른 기관에서 보조교사가 필요한데, 나더러 가장 낮은 수준의 ESL 수업에 자원봉사를 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두말없이 YES!

 

 

이제 한 발 담궈 보는 미국 사회

 

  이리하여 나는 GED 수업과, Slanguage Class, 보조교사 자원봉사 3가지를 현재 하고 있고, 이게 나의 사회생활이다. 다시 알람을 맞추고, 더 자고 싶다 투정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집에 돌아오면 뭔가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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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D 수업 시작하기 전>

 

  GED 수강자는 말 그대로 대부분 고등학교를 중도 탈락/포기한 사람들이고 대부분 흑인이다. 나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도 나 포함하여 3명이 있다. Language of Arts(영어 독해와 쓰기-에세이-), 수학, 사회, 과학 과목이고, 지금까지 나는 눈치껏 잘 하고 있다. 수학은 문제 자체는 쉽지만 수학용어를 영어로 다시 배우고, 사회는 미국 정치제도와 헌법, 미국역사, 지리 등이라 단어자체가 어려워 일단 난코스 예상. 과학도 단어가 어려운데다, 본문의 주제를 보고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을 써야한다. 이것도 난코스. 그래서 미국 친구들에게 내가 수학을, 그들은 내게 영어를 도와주는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기로. 미국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흑인 친구가 말했다. “학교에서는 그들의 역사를 가르치지, 우리의 역사는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자원봉사 하는 곳도 SWCDC(Southwest 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라는 비영리단체이다. 이 동네는 우리 동네보다 더 열악한 곳이다. 처음 여기 거리를 걸었을 때, 과연 미국이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심하게 들었다. 아무튼, 내가 돕는 영어수업 대상자는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온 성인 이민자이고, 예멘, 아이티 출신도 있다. 영어를 쓰는 자마이카에서 온 분은 처음에 왜 이 수업에 왔을까 했는데 알고 보니 문맹자이다. 각자 미국에 온 사정이 다르겠지만, 미국에서 새 출발을 해 나가려는 이들이기에 영어는 그냥 배움을 넘어 생존이다. 그럼에도 먹고 사는 삶이 너무 바빠 간혹 못 나오기도 하고, 중간 포기자도 벌써 3명이다. 이제 시작단계이지만 담당교사를 도와 그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이렇게 귀하게 쓰임에 감사하고, 늘 고맙다 말하는 그들을 만나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

 

  미국은 잘 알려졌다시피 세계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중에 유일하게 국가 의료보험도 없고, 육아휴직제도도 없다. 공교육을 비롯한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심각하며, 사회시설 자체도 상당히 낙후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 동네가 열악해서 체감온도가 높은 탓일 수도 있지만, 아스팔트 도로에 위험해 보이는 아주 큰 균열 여러 개가 그대로 아주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는 건 기본이고, 내가 다니는 단체들 건물들은 비가 줄줄 샌다. 우리나라 공공서비스에 익숙한 나에게는 이곳의 공공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여러 절차들이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다양한 무료교육 프로그램들을 만나는 것, 사회제도가 누군가에게 벽이라면 또 한편으론 그 벽을 낮추고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들의 노력, 과정은 번거로워도 개개인에게 일대일로 맞춰주는 눈높이는 감동이다. 신랄하게 대통령과 정치인들 풍자하는 언론들, 시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노동자들의 삶이 그래도 삶과 일의 균형을 잡을 만큼은 되는 것(이것도 좀 조심스러운 대목이다. 내가 아는 노동자 친구들이 대개 사무직 직종이라 이리 생각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8시간 근무 후 칼퇴근이다.), 노동조합 파업 때 우리나라 보다 관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몇 달 전 필리 시내 대중교통 노조 파업으로 시내교통이 일주일 정도 전면 중단되었다. 시민을 볼모로 어쩌구 하는 기사보다는, 파업상황에 대한 노사의 입장이 자세히 기사화되고, 어떤 기사에서는 기상천외한 출근 방법이러면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라는 둥 유머까지 여유 있게 등장하는 모습) , 트롤리 안에 붙은 “Dude, trolleys aren’t Diners! -이봐, 트롤리는 식당이 아니야위트가 있는 계몽(?) 안내문. 뒷사람을 위해 늘 문을 잡아주고, 동네든 가게든 어디든 먼저 인사해주는, 이들의 여유는 좀 매력적이다.

 

  미국 6개월째 살면서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I’m so excited!!







06-담론과 문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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