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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3호 (2016.12.21. 발간)


[기획]

3. 구성주의 교육학과 신자유주의

  

김석현(전교조 대구지부 중등성서지회장)

 




1. 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구성주의는 우리나라 교육계에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사범대 학생들이 구성주의에 대해서 공부를 하며, 임용고사 시험에도 매번 출제되는 중요한 이론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구성주의를 가장 진보된 이론으로,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 바라본다. 기존에 존재하던 우리나라의 교육은 군사정권에 의한 파시즘적 교육이었다. 그러다보니 교육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었고 국가가 정해준 지식을 단순히 교사는 전달하고 학생들은 수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독재 정권은 무너졌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고 문민정부를 낳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더 이상 기존의 파시즘적 교육은 들어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민주적 가치를 가르쳐야 했고, ‘()’이 주인이라는 말처럼 교육에서도 교사가 아닌 학습자가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꼭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하나의 대안과 같이 보였고 문민정부라는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교육체제의 변화는 이러한 시각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그런데 구성주의로 대표되는 열린 교육이 들어오면서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진통이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구성주의 교육에 의해 다양한 학습자의 배움을 그저 기다려주어야 하는 교사들은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교사의 권위와 힘도 약화되었다. 교사는 단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촉진자’, ‘중재자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순수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학습자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학습자 중심의 수업을 준비하고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교육론이 제대로 된 교육론일까?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교육이론일까? 약자가 더욱 고통 받고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이기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교육이론일까?

 


2. 구성주의가 나오게 된 배경

 

   우리나라에서 구성주의는 95년 김영삼 정부의 5.31교육개혁, 7차 교육과정에서 이후 교육과정에까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인지이론이자 학습방법론이다. 학계에서 주장하는 구성주의가 나오게 된 배경은 세계화,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으로 기존의 교육관으로는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거나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확실성, 비예측성, 복잡성 등으로 표현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교육은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과 고차적 사고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에 대한 관점, 교사와 학생의 역할, 교육환경 등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데, 그 대안 중의 하나가 학습자 중심의 구성주의라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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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게 된 시기를 의미하며,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거대한 흐름은 바로 후기산업시대, 즉 신자유주의가 널리 퍼진 세계를 의미한다. 신자유주의가 세상의 질서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나타내는 언어로서 3의 물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현재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 질서가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아프리카나 남미의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정치적 민주화, 신자유주의 그리고 교육에서는 교육과정 개혁을 통한 구성주의가 함께 들어오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나라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97년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급작스럽게 IMF 체제로 돌입하게 되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구성주의에 대한 유입도 일어나게 되었다.

 


3. 객관주의를 부정하는 상대주의로서의 구성주의

 

 구성주의는 기존의 교육관을 부정하는 이론이라고 앞에서 언급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존의 교육적 패러다임이란 주로 객관주의를 의미한다. , 구성주의는 객관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주의는 지식을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세계에 대한 표상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객관주의에서는 지식은 외부 세계의 반영이며 인간은 그러한 지식을 외부로부터 발견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구성주의가 주로 부정하는 객관주의는 지식을 고정적이고 확인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초역사적, 범우주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객관주의는 정보처리이론, 표상주의, 모사설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후에 비고츠키(Vygotsky)에 영향을 미치는 맑스-엥겔스의 이론도 객관주의로 분류할 수 있지만 구성주의가 묘사하듯이 세상을 고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맑스-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운동하며 변화한다. 그렇기에 영원불멸하거나 고정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맑스의 변혁 이론을 뒷받침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맑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레닌의 저서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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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은 마하주의(Machism)자 보그다노프와의 논쟁에서 만일 진리가 인간 경험의 한 형식이라면 인간에 의존하지 않는 진리, 즉 객관적 진리는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자연과학은 지구가 인간의 출현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자신의 주장이 진리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물론적 인식론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하며 그 당시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통해 이를 증명한다. 즉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맑스-엥겔스는 객관주의자인 것이다. 그리고 현대 유물론, 즉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객관적, 절대적 진리에 대한 우리 인식의 근사적 한계는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의 현존은 무조건적이며, 우리가 그것에 점점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무조건적이다.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향한 전진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이다고 하며 계속해서 세계는 운동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식의 성장에 따라서 우리는 점점 근삿값으로 다가간다고 말한다. ,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영원히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구성주의는 객관주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뒤에 나올 이야기지만 객관주의 인식론에 영향을 받은 비고츠키를 이와 반대되는 구성주의자로 둔갑시켜 놓은 것은 대단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객관주의를 부정하는 구성주의는 지식을 어떻게 바라볼까? 구성주의는 한 마디로 지식을 상대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구성주의는 대문자 Knowledge 혹은 Truth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지식이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구성주의에서 구하고자 하는 최종목표는 객관주의에서의 절대적 진리나 지식이 아니다. 대신 구성주의에서는 개인이 이 현실을 살아가고 이해하는데 본인에게 의미있고 적합하고 타당한 것이면 그것을 진리요 지식이라고 보며, 이런 지식과 진리를 구성해 나가는 것과 그 과정이 구성주의의 최종목표가 된다. 따라서 실재와 일치하는지를 따지는 측면에서 진리를 생각하기보다 적합성(Viability)’이라는 생각에 초점을 둔다. 구성주의자가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은 과연 우리의 행위와 사고가 적합한가, ‘유용한가, 그리고 잘 들어맞는가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프래그머티즘과의 연관성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급진적 구성주의(Radical Constructivism)의 창시자 글라저스펠트(Von Glasersfeld)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구성주의의 생물학적 근거로 거론되는 칠레의 생물학자 마투라나(Maturana)의 관점을 빌어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지식을 구성하는 이유를 인간이 생명체계로서 현실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나아가 삶을 좀 더 안락하고 재미있고,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글라저스펠트 본인 또한 여러 경험 중에서 어떤 특정한 것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하고 좋아하는 경향을 갖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피아제(J. Piaget)의 이론에서 동화와 조절을 차용하며 인지구조의 성공은 현실과 얼마나 일치하느냐가 아니라 그것들이 삶의 맥락 속에서 인간 자신에게, 그리고 그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유용한가(Viable)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에게 유용한, 그리고 개인의 행복과 쾌락을 위해서 지식이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에 가깝다. 이는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와의 연관성도 엿보이는데, 공리주의가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의 핵심 개념인 효용을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후에 설명할 신자유주의적 인간관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4. 구성주의의 종류


   이러한 구성주의는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구성주의 심리학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유형의 구성주의로 나뉘고 있으며 이들을 급진적(radical) 구성주의, 사회적(social) 구성주의, 인지적(cognitive) 구성주의, 물리적(physical) 구성주의, 진화적(evolutionary) 구성주의, 사회-문화적(socialcultural) 구성주의, 포스트모던(postmodern) 구성주의, 심리적(psychological) 구성주의, 정보처리(information processing) 구성주의, 그리고 두뇌공학(cybernetics) 체제 등으로 이름 붙이고 있다.

   그런데 구성주의적 인식론에 따르면, 지식의 구성과 습득은 개인의 의지적 작용이란 측면과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이란 측면의 상호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런데 이 두 측면 가운데에 어느 측면에 더 중요성을 두느냐에 따라서 개인적(인지적) 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로 구분된다. 보통 구성주의라고 하면 이러한 두 개의 큰 구분을 따르는 편이다. 피아제(J. Piaget)의 인지적 발달 이론을 근거로 하는 개인적(인지적) 구성주의는 두 측면 중에서 개인의 인지적 작용에 중점을 두고 있고, 사회적 측면은 객관적인 타당성을 위한 단계로 본다. 반면에 사회적 구성주의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상호작용적 관계의 맥락에서 강조점을 개인에서 사회로 옮긴다. 사회적 구성주의의 지식은 각 인식자의 사회, 문화, 언어 집단에 따라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주관성(subjectivity)은 바로 개인간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지식을 판단하는 궁극적 준거로써 서로 다른 주체 사이의 동의를 보는 것으로 설명한다. , “진리 혹은 실체는 한 사회집단의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하는 구성과 일치한다.” 사회적 구성주의 견해에서는 학습을 사회적 협상으로 학습자를 사회적 협상자로 본다. 이러한 사회적 구성주의가 비고츠키(Vygotsky)의 인지적 발달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은 후술에 나오겠지만 큰 오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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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지적) 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가 대단히 다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지식의 구성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사회적 구성주의에서도 협의를 하는 과정이 있지만 결국 지식의 구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적(인지적) 구성주의는 개인에 초점이 상당히 많이 가 있어 지식의 객관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사회적 구성주의는 간주관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이 개념을 통해 개인적(인지적) 구성주의가 가지는 지식의 상대성, 주관성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 그 지식이 아무리 개인적으로 구성되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개인들에게, 사회적으로 동의를 얻을 경우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5. 실제 수업에서의 구성주의

 

   구성주의 교육이 우리 교실에 들어오게 된 것은 열린교육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의 방향은 이후로 학습자 중심수업이라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교육공학적인 지식과 훈련을 더 많이 요구하게 되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 심리학으로서 구성주의가 교육과정을 지배하면 교육 내용이나 교육의 목적보다는 교육의 방식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구성주의가 추구하는 교육은 일단 맥락적 이해이다. 지식은 탈상황적으로 발견된다기보다 맥락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구성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이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은 그 당시 아테네 사회의 맥락에서 형성되었고, 데카르트적 근대주의 이성도 종교적 갈등의 해소라는 당시의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나왔다. 이처럼 과학적 이론도 맥락적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 바로 이 패러다임 이론인 것이다. 토마스 쿤의 이론이 이후 신과학 운동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의 과학 운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구성주의가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대화이다. 사회적 구성주의의 영향으로 인해서 최적의 교육적 환경을 대화적 환경으로 설정한다. 자신의 맥락에 서서 의견을 내고, 자신의 맥락에 서서 남의 의견을 조명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사회환경은, 대화적 환경이다. 학생을 맥락적 구성주체로 존중해 주는 교사가 대화적 교사이다. 교사도 여기서는 한 사람의 맥락적 구성주체가 된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촉진자로서의 교사의 자세이다. 구성주의에서 교사는 단순히 인지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실수, 오답에 대하여 기다리고 인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평가를 할 때에도 맥락을 고려한 과정 중심의 평가를 하여야 한다.

   이러한 특성과 관련해서 만들어진 구성주의 교수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서 요즘 대구시교육청에서 강제하는 교실수업개선에서 제시하는 것들이 다 여기에 해당한다. 기존에 구성주의 교육법으로 소개되던 것들은 현재에 한국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변형되고 각색되었다. 먼저 기존에 구성주의 교육법으로 소개되던 것들을 나열해보면, 인지적 도제이론, 인지유연성 이론, 상황학습 이론, 관련정착 수업 이론, 문제 중심 학습 모형(PBL)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형들이 현재는 서로 섞이기도 하고 다른 것과 융합되기도 하면서 존재한다. 요즘 대구시교육청에서 밀고 있는 것으로는 크게 4가지가 있는데, 하브루타, 배움의 공동체, 거꾸로 교실, PBL이다. 이들 네 가지 수업 방식은 모두 구성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배움의 공동체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자면, 배움의 공동체는 전형적인 학습자 중심의 구성주의적 교수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구성주의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는데, 학생들이 4명의 모둠으로 서로 문제를 풀기 위해서 협의를 한다. 협의를 더 잘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문제의 수준은 교과서보다 높으며, 점프 과제 또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 및 정답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협의를 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교사의 역할 또한 구성주의적 면모를 보인다.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계속해서 교사가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교사는 배움이 잘 일어나는 지 관찰만 할 뿐이다. 실제 배움의 공동체 형식으로 공개 수업을 하면 참관을 하러 온 사람들도 교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봐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더군다나 교사는 어떻게 보면 학습지라는 환경과 모둠이라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촉진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당히 무기력하며, 학생들이 실제로 제대로 된 개념을 익혔는지 확인할 길이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배움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물음은 항상 존재해도 이것을 왜 배우는가?’에 대한 물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꾸로 교실 또한 구성주의적 수업의 한 방식이다. 거꾸로 교실도 학습자 중심의 교육인데, 사실 배움의 공동체와 많이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다른 지점은 디딤 영상이라고 불리는 컴퓨터 인터넷 혹은 모바일을 이용한 영상 제작에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미리 집에서 보고 올 영상을 10분 정도의 짧은 단위로 제작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수업에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이 담겨있다. 이 핵심 개념을 보고 온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사가 제시한 학습지를 풀면서 응용력을 높인다. 그런데 이러한 수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구성주의 교육이 등장할 때부터 나오던 재택수업이라는 개념과 흡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가상대학(방송통신대)도 구성주의에 기반한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교사가 제시하는 영상은 학생이 지식을 구성하는 데 하나의 환경과 맥락으로 작용하며, 게시판의 형식은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고 협의하는 장으로서 사회적 구성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서도 교사는 촉진자의 역할만 하게 된다. 실제 수업 현장에서는 교사는 배움의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학습지를 제공하는 역할만 할 뿐이며, 미니 강의의 형태로 디딤 영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 영상은 이미 수업 공간에서는 밀려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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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요즘에 각광받고 있는 PBL 수업은 팀별로 구체적 맥락 속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학습자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는 수업 방식을 말한다. 실제 PBL에서 문제는 구체적인 상황이 주어진다. 이 수업도 학습자 중심 수업에 기반하고 있기에 교사는 문제 상황을 잘 구성해서 던져줄 뿐이며 그 뒤에는 그림자 속에 숨게 된다. 학습자 스스로가 성찰과 반성을 하면서 피아제가 말한 동화와 조절의 과정을 겪는다. 그런 개인적으로 인지를 조작하는 과정을 겪으며 팀원들과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PBL은 구성주의적 교수학습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 방식과 함께 교사는 또한 교실에서 구성주의적으로 만들어진 교과서, 평가 방법 등과 만나게 된다. 교과서의 내용은 주로 학습자의 활동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학습자가 직접 글이나 본문의 내용에서 단서를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수업의 방식에서 교사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교과서에서 교사가 할 일은 학생들에게 얼른 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들이 학습자 중심의 구성주의 수업에 대해서 옹호하는 것은 일견 모순적이다.

   그리고 평가 방식 또한 수행평가와 같은 맥락 중심적인 평가 방법을 강요받는다. 실제 객관식 5지 선다의 표준화된 시험보다는 수행평가가 학생들의 발달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맥락 하나하나를 모두 파악하며 평가하기에는 교사가 바라보아야 할 학생의 수가 많다. 어떻게 본다면 이러한 평가 방식은 사실 어느 정도는 불가능하다. 결국 교사들은 결과물을 놓고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으며, 과정을 평가한다고 해도 체크리스트식으로 평가를 누적하는 방식으로밖에 운영할 수가 없다.

 


6. 포스트모더니즘과 구성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구성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상대주의적 특징으로 인해서, 그리고 객관주의 인식론으로 대표되는 모더니티(Modernity)의 부정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으로 분류된다. 상대주의적 인식론의 전제하에 모든 역사, 문화, 사회현상에서의 중심과 주변, 혹은 주체와 객체의 자리바꿈을 시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거의 유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각 분야에 따라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교육에서는 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다만, 구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구성주의는 실천적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 그 자체에 좀더 가치를 둔다는 점이다.

   상대주의는 회의론자들의 의식에 그 기원을 둔 것으로 세상을 알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또한 1960년대 이후 변화한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이다. 모더니즘과는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우연적이고, 근거가 없으며, 다양하고, 불안정하고, 불명확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서사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거대서사는 칸트주의, 헤겔주의,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세계 전체를 하나의 통일적, 보편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보편적 이론을 말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거대서사를 하나의 파시즘,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 이런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대주의이다. 포스트모던주의자인 리오타르와 데리다의 추종자들은 한결같이 검증할 수 있는 이론보다는 다양한 작은 이야기들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거대 서사는 작은 이야기로 흩어지며 진리라는 것은 단순히 그 이야기들이 유통되는 공동체에 대한 호소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앞에서 말한 사회적 구성주의와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거대서사를 부정하게 되면서 우리를 억압하는 조건을 설명하는 본질, 토대를 함께 버려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지는 총체성의 부정을 비판하는 맑스주의의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구성주의자의 한 명인 슈미트는 우리의 일상언어는 물론 학문언어도 이미 객관주의적 인식론에 영향을 받고 있어서 우리 삶의 다원성과 복잡성을 나타내기가 어렵다고 하며 구성주의가 가지는 상대주의적 성격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성과 연결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통일성보다는 다원성, 중심보다는 주변부, 자아보다는 타자에 관심을 기울인다. 기존의 권력관계에 의해 주변부로 내몰린 타자들은 이제 정치적 행위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대한 여성의 저항, 이성애 중심주의에 대한 동성애자들의 반기는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또는 그 어떤 중심적 개념도 공격함으로써 소위 말하는 차이의 정치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차이는 분산적이고 다원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절대화함으로써 공동체의 유대성을 평가 절하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 결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탈정치화된다. 차이만 인정하고 자신의 중심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주체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면 누가 권력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을지를 되묻는, 그리하여 현대인들에게 소비자로서의 사적인 자유만을 보장하고 공적으로는 저항의 주체를 해체한다는 비판은 구성주의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왜냐하면 구성주의 또한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지식의 상대성을 절대화하여 개인주의를 확산하고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더 이상 저항의 주체로서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고 체제 속의 수동적인 존재로서 소비자의 정체성을 기르게 한다. 이 점이 95년 교육체제가 학습자에게 부여한 교육 수요자로서의 정체성과 맞물린다. 그리하여 구성주의의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은 기존 질서를 지속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며 이미 맥락으로서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보수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7. 구성주의와 친시장주의 그리고 하이에크

 

   그렇다면 구성주의가 가지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에 의해, 정치적 주체와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서사를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적인 역할 말고 다른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역할은 없을까? 구성주의가 가지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역할 중의 하나는 바로 친시장주의이다. 이러한 친시장주의는 구성주의가 가지는 상대주의적이고 불가지론적인 인식론과 관련된다.

   시장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에 근거해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계획 경제를 불신한다. 케인즈주의로 대표되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그리고 그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한 서구사회는 계획이라는 것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시장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불가지론에 근거한 이론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축소한다. 이 점은 고전적 자유주의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구성주의가 가지는 불가지론적 성격은 이 체제를 능동적으로 옹호하는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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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아버지인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고 1992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장 경제를 하나의 자생적 질서로 개념화하고 인류에게 유익한 사회제도의 대부분은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개별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 자생적 질서는 인간의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특히 시장에 주목했다. 하이에크는 그 어떤 엘리트라고 해도 질서를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전지전능하지 못하다고 하며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질서를 잡는 주체가 없어도 저절로 질서가 생성되고 유지된다는 생각을 펼쳐나갔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인간은 구조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는 인간 유기체는 외부세계를 인식할 수 없으며 오로지 자극으로서만 외부세계가 들어오는데, 이를 신경섬유에 충격이 가해지고 두뇌에서 감각적 인상들을 형성한다고 이야기한다. , 외부세계와 인간의 정신 사이에는 감각이라는 하나의 폐쇄적인 장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 유기체가 어떻게 외부환경의 사건들을 인지하느냐하는 문제는 현실의 정확한 반영으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감각적 질서와 관련된 국면을 추려내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 하이에크에 있어서 지식의 성격은 인지하는 주체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고 주관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파악된다. 따라서 개개인들의 인지를 어느 한 관찰자가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인지행위에 관한 하이에크의 주제는 시장 시스템의 기능원리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8. 신자유주의적 인간관 : 신지식인

 

   앞에서 언급한 구성주의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과 친시장주의적 성격은 살아 움직이는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유령은 하늘을 떠다니며 실제 우리의 삶에서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격들은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물리적으로 작동을 할까? 그것은 교육이나 문화를 통해 침투해 들어온 이러한 구성주의의 성격이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할 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위에서 언급한 성격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인간이 탄생할 때 우리 사회는 질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는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비강권적 이데올로기적 권력체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 이데올로기가 실제의 강권적이고 폭력적인 권력을 은폐하고 그 사회 구성원 스스로가 지배체제를 옹호하고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과 유사하다.

   푸코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특별한 정치 이론이나 통치 방법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누가 통치하는지, 누가 통치 받는지, 통치가 무엇인지와 같은 통치 행위의 성질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규정한다. 만약에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그들 스스로를 권력의 대리인으로 만드는 개인들의 자발성을 끌어낸다면 강권적으로 통치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에 개인들이 모두 사업을 하게 된다면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을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예를 들자면 마이크로파이낸스라는 형태의 NGO로부터 돈을 빌려 개인 사업을 하게 된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스스로를 개인 사업자로 규정함에 따라 이들은 국제원조단체와 다국적기업 간의 사유화와 이윤 극대화라는 신자유주의적 개념 안에 포섭되어 버렸다. 이는 방글라데시의 복지를 이런 식의 마이크로파이낸스로 NGO들이 운영하면서 어떻게 방글라데시 국가를 사유화하고 세계화에 어울리는 시장 주체를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구성주의 교육은 신자유주의적 인간상을 창조하는데 복무한다. 새로운 노동력의 형성에 교육이 직접적으로 복무할 것을 신자유주의 질서는 요청하기 때문이다.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과정은 본질적으로 학습자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모두 거세한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자가 학습하는 과정을 앞에서 마투라나와 글라저스펠트의 말에서도 보았듯이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학습자가 역사적 주체, 사회적 주체로 분석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수업 자체도 권력과 저항이라는 사회적 맥락으로 분석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단지 학습자를 학교가 제공하는 학습 과정으로부터 이익을 선택하는 개인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전인으로 파악하게 한다. , 학교는 학습 자체를 자신의 이익에 복무하는 하나의 사업과 같은 것으로 보게 하고 학습자를 역사적 주체가 아닌 하나의 기업적 자아로 보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을 기른다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업적 자아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어울리는 하나의 교육적 인간상이 된다. 이들 인간상은 위에서 말한 비강권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스스로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옹호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전락한다.

   기업적 자아가 널리 퍼진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유럽 시장에 편입되면서 나타나는 온갖 사회적 모순에서 이 기업적 자아가 어떤 식으로 작동되었는지가 잘 드러난다. EU의 구성원이 되는 데 요구되는 신자유주의적 요구 조건들을 받아들이면서 대량 실직 사태와 같은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국가의 책임 바깥에 위치시켰다. 그러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렸는데 1990년대에 스페인 대량 실직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기업적 자아를 가짐으로 인해서 자신이 항상 고용되어 있다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노조와 여러 조직들이 저항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업적 자아로 대표되는 인간상은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지식인이라는 지식근로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유달리 창의성이 강조된다. 신지식인과 신자유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인간상이 신지식인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하이에크의 개념 속에 바로 신지식에 대한 단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경험 속에서 가지는 지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지식의 분업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명시적 지식보다는 암묵적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관찰자가 이 모든 지식을 이해하거나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에서 말한 불가지론이다. 그런데 하이에크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이런 지식을 터득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자신의 일에서 혁신하면 국가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신지식인을 도입한 사람이 피터 드러커 교수이다.

   왜 신자유주의는 신지식인과 같은 이러한 인간상을 요구하는가?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해서 가상의 부를 축적한다. 그래서 제조업 중심의 자본보다는 대부분 금융자본이 우위를 떨친다. 제조업으로 자본을 축적하기에는 그것이 너무 낡아 보인다. 파업과 같은 위험 요소를 감수해야하고 사실 단가에서 나오는 이윤도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차라리 제조업을 제3세계로 넘겨버리고 금융자본으로 변신한다. 그러기에 가상의 부라는 거품은 항상 생기기 마련이고 경제가 한 순간에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미국의 IT 거품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이 이를 잘 반영한다. 그러다보니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물질적 생산에 기반한 부가 등한시 된다.

   또한 제조업이 쇠퇴하고 금융업으로 전환되면서 서비스업이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스티브잡스로 대표되는 아이디어혹은 지식이 부를 만들어낸다는 사고가 지배적이게 되고, 더 이상 인간은 예전과 같은 육체노동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강단의 학자들은 이를 그대로 반영하여 탈노동 이데올로기라는 것에 봉사하게 된다. 더 이상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육체노동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애플사의 이윤이 중국의 팍스콘의 착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육체노동은 존재하고 실제 부는 이러한 제3세계를 착취하고 수탈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자유주의 교육은 아이디어 자체가 를 만들어낸다고 착각에 빠져 이러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에 주목하게 되고 이는 곧 창조경제로 나타나게 된다. , 포스트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구성주의도 후기산업시대, 즉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다. 구성주의가 등장한 배경을 볼 때에도 이는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신지식인은 특정분야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지식적으로 계발하며 전문성을 키우는 파편화된 인간상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아이디어가 부를 창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의 지식과 아이디어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뿐이며 오히려 파편화된 지식만을 익히고 기능적인 것만을 지식으로 인정하면서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실제 모순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비판하지 못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흐름은 노동자 의식으로 대표되는 노동계급을 형성하지 못하게 막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며, 기업가 정신을 기르게 해서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의 질서에 맞게 예속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뒤집을 주체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9. 대안으로서의 비고츠키, 그리고 오해

 

   비고츠키가 이러한 구성주의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는 것은 대단한 오해이다. 비고츠키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객관주의 인식론에 영향을 받은 학자로서 인간을 주관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또한 개인이 지식을 자기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교육 현상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객관주의는 앞에서 말했듯이 진리는 인간 외부에 존재한다고 했다. 비고츠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1+1=2이라는 지식을 아동이 익히기 위해서는 이미 1+1=2라는 수학적 공식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아동의 외부에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비고츠키가 구성주의라고 둔갑하게 되었을까?

  글라저스펠트에 의해서 만들어진 급진적 구성주의 이론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월취(James V. Wertsch), 토마(Toma), (Cobb) 등에 의해서 비판을 받았다. 구성주의에 대한 사회문화주의적 비판이 등장하게 되었고 급진적 구성주의와 사회문화적인 면을 수용하여 새로운 구성주의의 모습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구성주의이다.

   사회문화주의란 인간을 사회의 산물로 보는 견해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사상이 그 사람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시대 사상가 개인의 독창적 사고를 충분히 고려하고 보더라도, 사상가의 사고는 그 시대의 가치 이념이나 그 시대의 주도적인 사고 방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피아제와 글라저스펠트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창조물이라는 인식을 가져오게 한다. 월취는 이러한 구성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지 심리학적 차원을 견지하면서도 개인보다 사회적(개인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인 사회문화적 동화 과정(사회적 내면화)을 중시하는 근거를 비고츠키의 사회문화(우월)주의에서 찾게 되었다.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비고츠키의 이론은 당시 러시아 사회사상의 주 흐름인 맑스와 엥겔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 인간의 의식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사회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라는 유명한 명제가 이를 대신 나타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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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비고츠키는 그가 죽을 때까지 스스로 구성주의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를 그렇게 본 사람도 없었다. 단지 월취가 사회적 구성주의의 근거를 찾는 가운데, 비고츠키의 이론이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구성주의의 맥과 닿았기 때문에 차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비고츠키가 구성주의자가 될 수 없음에도 구성주의자들이 사회적 구성주의의 원조로 삼은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일단 사회적 인식발달이라는 측면에서 과학적 설명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비고츠키의 내면화라는 개념이 인식의 능동적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중시되는데, 이를 구성주의의 주관성과 같은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인식주체의 능동성과 주관적 구성은 완전히 다른 용어이다.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철저하지 못했고 당시 소련의 심리학자였던 비고츠키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구성주의가 만들려고 했던 체제 속에 속박된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나 기업적 자아정도의 성격은 비고츠키가 생각하는 인간과는 전혀 다르다. 비고츠키는 당시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의식화되고 변화해가는 지 관찰하게 된다. 인간이 가진 의식은 사회문화적인 것이라고 말했듯이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이고 사회적인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역사적 주체이며, 문화적 주체이다. 다시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이 거부했던 역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인간이 조건 지어진다. 하지만 그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고 마르크스와 비고츠키는 보았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외부와의 변증법적인 상호작용,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세계를 변화시키면서 그 변화로 인해 자신도 변화해 간다. 비고츠키에 의해서 주장된 도구의 사용이 인간을 변화시켰다는 이러한 사고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적 모순은 그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의해서 타파될 것이고, 변화된 사회 속에서 새로운 인간(New Man)이 탄생할 것이다. 변혁적 인간 주체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뒷받침 하는 이론이 바로 비고츠키 이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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