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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3호 (2016.12.21. 발간)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순진한 바보’, 세상을 구하다

 

송재혁 - 전교조 대변인

 




중국집 탕수육은 돼지고기로 만들어졌다.

 

   지난 129, 혐오 대상인 박근혜에 대한 탄핵의 부결과 지지 대상인 위원장 후보의 낙선을 점쳤던 나는, 탄핵이 가결되고 조창익 동지가 당선됨에 따라 내기 벌금 10만원을 쾌척하게 되었다. 1월 법외노조 2심 판결에서 전교조가 승소할 것이라고 장담했다가 예측이 빗나가 해직의 길을 걸어야 했고, 사무실 근처 중국집 탕수육 재료가 쇠고기라고 우겼다가 내기 벌금 10만원을 잃었으니, 정세 판단력이 그렇게 부족해서 어떻게 대변인을 하느냐는 동지들의 쓴 소리가 달게 받아들여졌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기는커녕 낙관과 비관, 이성과 의지를 개콘스럽게다루는 바람에 스타일을 한껏 구겼지만, 그래도 좋기만 하다. 지난 129일은 기쁨이 온몸을 적시는 하루였다. 전주에서 살고 있었던 20121219일 예상을 뒤엎고 박근혜가 당선되자 그 날 회식 자리가 끝날 무렵 폭포처럼 뿜어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민주화 투쟁에 기여한 바도 없고 역사에 빚만 지고 사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리 슬피 울었는지 모르겠다. 갈지자로 비틀거리다가 동료 두 분의 부축으로 간신히 관사에 들어가 잘 수 있었던 4년 전 기억에 대해 보상이라고 받으려는 듯, 탄핵 가결의 날에는 커다랗게 웃고 또 웃었다. 1212, 위원장 당선인 기자회견 1부 사회자 자리에 서서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아버지 독재 18, 은둔생활 18, 정계입문으로부터 탄핵까지 18, 18대 대통령의 낡은 시대가 가고, 18대 전교조 위원장의 새 시대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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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 20161212, 조창익, 박옥주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당선인 기자회견



로엔그린 3, 서정미의 극치

 

   이 원고를 내어 놓으라고 요구한 황진우 동지는 탄핵이 가결되고 위원장 당선이 확정되자 온라인 소통 공간에서 축하곡이라며 음악 영상을 하나 올리셨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가극 로엔그린(Lohengrin)’에서 합창 연주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해 연주한 것으로, 201258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합창과 함께하는 바그너 갈라콘서트의 영상 기록이다. 로엔그린에서 3막 전주곡과 결혼식 합창, 3막 간주곡(사열식 나팔), 13(결투에서 승리한 로엔그린) 장면이 담겨 있다. 지휘는 구자범, 연주는 경기 필하모니였다. 이 연주회에서는 바그너의 탄호이저(Tannhäuser),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그리고 파르지팔(Parsifal)의 명장면도 함께 연주되었는데,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혼연일체가 되어 내뿜는 열기는 두 시간 동안 연주홀을 열광의 도가니로 달궜다. 유튜브에서 검색어로 바그너 로엔그린 구자범을 입력하면 감상할 수 있다. 영상의 화면비가 다소 왜곡되어 있기는 하지만 음질이 매우 좋아서 다행이다.

 

   이 오페라에서 특히 즐겨 듣는 부분은 3막 전주곡과 이후 30여 분 간이다. 오늘날 결혼식 신부 입장 시 흔히 연주되는 혼례의 합창은 차라리 식상할 수 있지만 현에 의한 다정하고 차분한 하강조에 이어 목관과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부분은 꿈결 같이 감미롭다. 게오르그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니의 1986년 연주가 이 장면을 특별히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백조의 기사 분장을 한 플라시도 도밍고가 유치찬란한 모습으로 등장한 음반 자켓이 흠이라면 흠이다. 스토리의 전반을 살피려면 영상 자료가 도움이 되는데,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 바이에른 주립 오케스트라의 2009년 뮌헨 공연 실황 영상이 좋을 것 같다. 오페라 공연의 최근 경향에 따라 현대적인 무대로 연출되어서 시대적 배경을 잊게 한다. 이러한 현대적인 무대 연출은 오페라의 스토리를 현재의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자유를 안겨준다. 인기 높은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의 절창을 들을 수 있으며, 한글 자막이 포함되었다.

 

   음악을 글로 이해하고 멈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음식을 코로 먹을 수 없듯이 음악을 눈으로 들을 수 없는 법, 혹시 여기 언급된 음악 중에 조금이라도 관심 가는 곡이 있다면 귀로 직접 확인해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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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 바그너, ‘로엔그린’ - 게오르그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니, 1986(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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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 바그너, ‘로엔그린’ - 켄트 나가노 지휘, 바이에른 주립 오케스트라, 2009(DVD)


 

지루한 베르디의 ‘맥베드’, 

시대의 맥락 속에 되살아나다

 

   오페라는 전설이나 신화 또는 옛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사실주의 경향을 가진 인기 있는 작품도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라 오페라의 무대와 의상은 일반적으로 고풍스럽게 여겨졌다. 고답적인 공연 양식은 현대인의 미감에 호소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 최근에는 무대, 의상, 연출을 현대적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로 인한 생소한 느낌은 작품을 새롭게 보게 하는 각성 효과를 가져 온다. 오페라가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최근 서울시오페라단에 의한 베르디의 ‘맥베드공연 역시 현대적인 연출로 이루어졌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민주묘총, 전교조, 전견련(전국견주연합회) 등 온갖 깃발들의 기운과 촛불의 열기가 식지 않고 남아있는 1127일 일요일 저녁 광화문 광장, 즐비한 음식점들을 가로막고 선 한국 대표 음식점을 떠올리게 하는 세종회관에서는 '맥베드의 마지막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지휘는 구자범이었다. 이 연주회는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2013년 기성 음악계를 떠난 이후 작년 말 아마추어 합창단이나 학생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연극 공연에서 마리아 칼라스를 반주하는 피아니스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올해 세월호 참사 2주년 광화문 문화제에서 비를 맞으며 합창 3곡을 지휘하기도 했지만, 직업적인 지휘자로서 본격적인 무대에 다시 선 것은 이 공연에서다. 명실상부한 복귀 무대였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음악을 대강 하는 법이 결코 없는 그의 공연에는 유일무이한 무엇이 있었다. 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오늘에 되살아나 한국 정치 현실에 완벽하게 조응하고 있었다. 총감독이 따로 있고 연출가가 따로 있었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구자범에 의해 기획되었음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맥베드는 스코틀랜드에서 발생한 쿠데타의 주역으로서 권력욕에 눈이 먼 자이고, 그의 아내는 주저하는 남편에게 욕망을 부추기는 배후 비선 실세이다. 쿠데타는 마녀들의 예언이 불러일으키는 우주적인 기운에 따라 수행된다. 그리고 쿠데타 세력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프로그램북에 실린 가사 번역은 첫 문장의 시제에서부터 문제가 있어서, 완벽주의자 구자범은 공연장에서 실시간으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가사를 직접 번역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군중의 외침은 이렇게 번역되었다. “이게 나라냐? 도적들의 소굴이지!” 구자범이 쓴 지휘자 노트라는 글도 프로그램북에 실려 있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쓴 음악에 관한 글을 모두 읽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 이번 글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선명하고, 가장 정치적으로 보였다. 등장인물 옆 괄호 안에는 한국 사람 이름이 박혀 있다. “마녀를 섬기는 헤카테(최태민 분)”, “별 생각이 없는 맥베드(박근혜 분)”, “마녀들과 내통하는 레이디(최순실 분)”, “마녀들은 숭배하는 유령(박정희 분)”……. 그리고 극에 등장하는 세 개의 마녀 집단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뇌에 주름이 조금이라도 잡힌 사람이라면, 비겁한 언론집단과 비열한 정치집단(··국정원까지도), 그리고 악덕 재벌집단이 각각 세 마녀로 분장한 것이라는 걸 곧 눈치 챌 수 있으리라. 그들은 노래 속 고백처럼 정말 떠도는자매들이다.”

 

   민중의 힘에 의해 맥베드가 최후를 맞고 옛 왕의 아들이 권력을 승계하게 되자 소름 끼치게도 헤카테의 유령은 멀리서 이 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다고 소름끼치게 썼다. 이 작품에는 합창단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처음에 마녀들이었던 출연진은 권력자의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되고, 압제자에게 죽임을 당한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다가 새 권력자를 찬양하는 속없는 민초가 된다.” “무대 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중인격체가 되어야 하는 공연 상의 현실적인 한계를, 그는 놀랍게도 죽 쒀서 개 줬던 한국 현대사의 형상화 장치로 다루었다. 그의 예술적인 글은 마지막에서 압권을 이룬다. “세종문화회관 밖 광장엔 매일 분노의 함성이 가득하다. 나는 그저 노란리본이나 달고 그 아픈 현실을 지나쳐 와 무대에서 덧없는 연습을 하다 돌아간다. 아마 공연하는 날에도 밖에선 이 무대보다 수십만 배 더 커다란 노랫소리가 날 것이다. 아직도 마녀들이 숭배하는 유령이 우리를 지배하는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결코 비겁하게 떠돌지 않는 그 누군가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꿋꿋하게 피눈물로 이어가고 있으리니, 그에 부끄러움으로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청중들은 구자범과 같은 예술가와 시대를 함께 호흡하고 있음에 깊이 감사했을 것이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이나 실력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악단도 일단 그와 함께 하면 놀랍게 변신하는 것을 이번 공연에서도 확인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상주 오케스트라가 없으므로 대학생 등이 다수 포함된 일종의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로 반주해야 했단다. 이들의 연주는 기성 악단의 수준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것이었고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없는 시선과 따뜻한 애정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결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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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 셰익스피어-베르디-구자범의 ‘맥베드공연 프로그램북 표지


    이 날 밤, 공연에 대한 간단한 소감과 함께 바쁘실 것 같아 집으로 간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자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시라는 회신을 받았다. 오붓한 술자리에서 공연 책자에 사인 해달라는 부탁은 대번에 거절당했다. 대신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고맙게도 사인을 해주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며!” 예술은 꿈꾸게 해주고 꿈을 현실로 만들도록 북돋는다. 김선정은 일찍이 구자범이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3번을 공연할 때 니체의 시의 의한 4악장 오 인간이여! 주의하라!”를 인상 깊게 노래했던 유명 성악가이다. ‘맥베드에서는 궁정 부인이란 단역을 맡게 되었지만 흔쾌히 출연했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어 정권의 예술 농단이 지탄을 받을 무렵, 어느 기사에 오른 음악인 명단에서 김선정이란 이름이 보였다. 구자범의 이름이 오르지 않는 것은 기성 음악계를 떠난 상황 탓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리스트의 첫 단에 올라야 할 지극히 위험한 인물임을 보증한다.

 

   술자리를 이어가던 중 얼떨결에 출연자들과 함께 하는 뒤풀이 자리에 섞이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공연에 출연한 분들과 출연하지 않은 분들이 함께 했는데, 지휘자에게 다가와 얼굴을 각인시키고 다음 출연을 기약하려는 듯한 일부 사람들의 언행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선생님, 제가 공연 후 뒤풀이를 싫어하는 이유를 아시겠죠?” 뒤풀이를 마칠 때까지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한 까닭이 이해되었다. 시대정신을 재현하는 예술에 시대정신과 무관한 사람들도 함께 기여할 수밖에 없음은 집단 예술이 지닌 운명일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 셋이 빠져나왔다. 공연 준비 기간 중 지휘자가 머물러 왔다는 숙소에 들어와 셋이 맥주를 땄다. MBC 해고 후 현재 한국PD연합회 정책실장으로 일하는 이채훈, 그리고 구자범과 송재혁, 이렇게 세 사람은 뒤풀이 세력들에게 또 다른 마녀 집단으로 지목되었을지 모르겠다. 베르디 음반이라고는 전주곡·간주곡 모음집과 레퀴엠이 전부인 나는 ‘맥베드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며 공연 전에 예습용으로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음악은 참 아름답게 다가왔고 쉽고 명료한 가사와 함께 폐부를 찔러댔다. 애초에 구자범에게 ‘맥베드선택한 작품이 아니라 주어진 과제였고, 그는 맥베드가 음악적으로 매우 지루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런데 공연 준비가 시작된 후 본격화된 국정농단파문과 격동하는 정치적 상황은 이 작품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구시대의 작품 ‘맥베드는 현재의 맥락 속에 살아 꿈틀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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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 ‘맥베드공연 후 받은 사인,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며


   구자범의 글 일부를 인용하면서 어쭙잖은 설명을 보태어도 그 때의 감동은 결코 되살려지지 않는다. 그의 글 전체를 직접 읽으면서 다른 공연 기록을 감상한다면 아쉬운 대로 간접 체험이 가능할 것이나 그래도 유일무이한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구자범의 글 마녀들의 나라는 블로그(http://blog.daum.net/koojahbom/16)에서 읽을 수 있다. 영상 자료로는 파비오 루이지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2014년 실황을 한글 자막 판 디브이디(DVD) 또는 블루레이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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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 베르디의 맥베드공연 영상 - 파비오 루이지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014(DVD)


 

노부스 사중주단

 

   제자 자랑은 푼수질이 아니라 믿고 자랑질 좀 하자면, 1990년대 말 모교인 신림중학교에 재직 중일 때 수업 들어가는 학급에 바이올린 공부하는 학생이 있었다. 중학교 재학 시절 이미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협연할 정도도 재능이 높았다. 클럽활동 사회와 음악반에서 진지하게 음악을 듣던 그는 감상실의 작은 무대에서 친구들에게 연주도 들려주었다. 당시 막스 부르흐(Max Bruch)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습하는 그에게 누구의 협주곡이 특히 좋으냐고 물으니, 브람스의 것을 좋아하지만 연주하기 매우 어렵다고 답했다. 비교적 연주하기 쉬울 것처럼 들리는 곡인데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는 작품이 심오해서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제 나이 서른을 넘긴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은 지난 128일 노부스 현악사중주단(Novus Quartet)의 일원으로서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연주했다. 공연 후 작은 꽃다발을 들고 출연진 대기실을 찾아갔다. 17년 만일 것이다. 그동안 전반적으로 팽창을 거듭해 온 나의 얼굴과 몸이지만 재영이는 바로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처음 듣는 곡이지만, 참 좋았다는 소감에 , 심오한곡인데요…….”하고 답했다. 브람스에 대해 17여 년 전 했던 말과 같고, 중학교 소년의 수줍고 겸손한 표정도 그대로다. 꽃다발 안 쪽지에 이렇게 썼다. “시대와 호흡하며 음악을 나누는 훌륭한 예술가로 남기를.”

 

   말 위에 올라탄 최순실의 딸에게는 말도 많지만,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린 그에게는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모든 수업에 최선을 다하며 보편교육을 충실히 받았고 지극히 겸손하여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그에게 반칙이란 없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독일 뮌헨국립음대에서 공부한 뒤 현재 솔리스트보다는 현악사중주단 멤버로서 음악을 하는 것은 내가 아는 그의 품성으로 미루어 볼 때 잘 어울리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자기 존재를 부각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협주는 무대에 홀로 선 독주보다 어떤 면에서 인간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 것도 아니지만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드는 저녁이었다. 김재영의 존재를 다시 알게 된 것은 전교조 서울지부 음악감상모임을 함께 하던 정혜원 선생님 덕분이다. 윤이상을 매우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해고 생활로 고생한다는 위로의 의미를 담아 음반을 주셨는데, 윤이상, 베토벤, 베베른의 작품이 담긴 노부스 사중주단의 데뷔 앨범이었다. 그 표지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후 내가 무척 좋아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사중주 연주회가 있어서 꼭 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일 때문에 가지 못했고, 하이든을 통해 그를 만났다. 나중에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면 사인해 달라는 주문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던 중학교 시절의 약속을 기억할 리 없지만, 약속은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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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 노부스 현악사중주단의 데뷔앨범 베베른, 베토벤, 윤이상’ (2016,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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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 제자에게 사인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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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 노부스 현악사중주단 하이든 연주 후

 


바보처럼 사는 사람들

 

   탄핵 전 날, 전교조에서 나름 이름 있다는 인물들이 전교조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교원노조를 만들었다. 창립할 때 100명이 넘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던 나는 손가락의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들은 난데없이 전교조를 비민주적이라고 낙인찍어 공격하면서도 전교조와 -(win-win)’하는 관계 속에서 공조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맥베드에서 어느 등장인물에 해당할까? 우리는 법외노조화 탄압에 악용된 악법 교원노조법을 개정하겠다고 만방으로 뛰어다니는데 그들은 악법에 의거해 새 노조를 만들어 신고했다. 헌법재판소에서 교원노조법 악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황당한 결정을 내자 다음 날인 2015529일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전교조, 이젠 법 지키라고 훈계질을 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 출범 다음 날인 2016129일 새 노조 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사는 공무원이고, 공무원은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악법도 법이니 지킬 것이라면 독약도 약이니 마실 것인가? ‘악법이란 그 자체가 형용 모순으로, ‘개정 또는 폐기의 대상임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살다 보면 실수 또는 고의로 길을 잘못 들어설 수 있다.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오라. , 반성문은 들고!

 

   전교조 조창익 위원장 당선, 구자범의 복귀 공연 ‘맥베드’, 현악사중주를 연주하는 제자의 무대를 보면서, ‘바보스러움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한다. 좌고우면 하며 꼼수 부리지 않고 아둔하게 보일 정도로 정직하게 정도를 걷는 자들은 반드시 역사의 보답을 받는 법, 바그너(Wagner)의 최후의 악극에서 '순진한 바보' 파르지팔(Parsifal)'이 세상을 구하듯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렀다!

  


바그너 최후의 악극, 파르지팔

 

   리하르트 바그너가 남긴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은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신비주의적인 아우라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나름대로 해석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넓다. ‘파르지팔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논쟁적인 주제를 던져왔고 해석도 다양한데, 연민을 깨달은 순수한 바보에 호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고 무념무상 속에 음악만 들어도 경건한 감동에 젖게 하는 작품이다.  박정희, 전두환 장군 시절 TBC(동양방송) 뉴스의 시그널 음악, “---- ~~ ~~ ~~”파르지팔전주곡의 중간에 등장하는 팡파르였다. 맥락 없이 이 부분만 떼어 내 들으면 전두환 정권이나 그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당시의 언론을 희화화하는 듯 좀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긴 전주곡이 끝나면 기상 나팔소리가 숲 속을 장엄하게 울리고, 구르네만츠가 시종들을 깨우며 여봐라! 너희들에게 숲을 지키라 했더니 잠을 지키는구나라고 말한다. ‘땡전 뉴스의 시그널 음악은 민중을 잠재우는 신호였지만,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아니었던 민중들은 곧 깨어나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

 

   실내악적인 울림으로 정제된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의 1980년 녹음은 오늘날에도 명연주로 손꼽힌다. 영상 기록은 중세기적인 분위기 속에 성배의 기사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내는 연출과 시대 배경을 현대로 옮겨놓은 연출로 양분된다. 우선 전반적인 스토리 이해가 필요하므로, 인기 있는 공연 실황을 한글 자막과 함께 담은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2013년 기록이 처음 접하기에 좋을 것 같다. 일단 파르지팔에 접신하면 한동안 여러 연주들 사이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방황하는 시련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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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 바그너의 파르지팔’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1980(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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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 바그너의 파르지팔영상 -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2013(DVD)


 




진보교육 원고-161212월-순진한 바보, 세상을 구하다-송재혁-그림 포함.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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