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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논단_무상교육운동은 안녕하신가?

2006.07.04 19:07

진보교육 조회 수:2314

김태정 | 회원, 범국민교육연대 정책국장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가 등장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한 시점이 바로 2006년이다. 그런데 상황은 어떠한가? 작년 말에는 농민들이 경찰에 의해 살해되고, 올해는 군부대까지 동원되어 평택주민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는 형국, 그야말로 ‘개혁’을 기치로 내걸은 노무현 정권의 그 계급적 본질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노동법개악안 투쟁과정이 그러한 것처럼 여전히 국회일정 따라가기 식의 투쟁방식은 극복되고 있지 못하여 이제 조합원들에게 지도부의 ‘총파업 선언’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여겨지고 있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무상교육·무상의료’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무상교육·무상의료’는 비정규권리보장입법쟁취 등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중요한 의제였다. 그러나 몇 차례의 기자회견과 집회이외에 실천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장과 대중들의 반응 또한 냉담하기 그지없다. 이는 이수호 집행부를 뒤이은 현 집행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민주노총이 제기하는 무상교육운동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의제설정

민주노총은 무상의료·무상교육,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 노사관계로드맵 등 3대 의제를 내결었다.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당면 노동자계급의 현안인 비정규법문제, 노사관계로드맵문제를 내건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민주노총은 무상의료·무상교육을 이들 과제와 함께 그리고 동시에 전면에 내걸었다. 그 근거로 ‘사회양극화의 심화로 교육비용 등 노동자 민중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자본가계급을 제외하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자본주의사회가 태동한 이후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국가에 의해 제공된 경우는 단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사회주의혁명으로 국가의 성격이 바뀐 경우, 다른 하나는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달래기 위해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교육, 의료 영역에서 양보를 한 경우이다. 때문에 무상교육·무상의료를 내건다는 것은 세상을 확 엎어버릴 정도의 격렬한 계급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빛 좋은 개살구마냥 대중을 호도하기 위한 술수를 부릴 때일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무상교육·무상의료 등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요구, 즉 강령적 수준의 의제이다. 이에 비해 비정규법, 노사관계로드맵 등은 현안쟁점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개악에 대한 반대에 기초하는 투쟁과제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의제를 뒤섞는 것은 완전한 바보이거나 고도의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이미 위계서열화된 학벌사회에서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도 자신의 자식들이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중들에게 무상교육은 황당한 좌익적 언사에 불과하거나,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비현실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런 해프닝 속에서 지난해 비정규개악안 저지투쟁전선은 실종되었고, 정권은 이제 노사관계로드맵 국회상정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을 비껴나간 개량주의의 함정

현안문제와 무상교육을 뒤섞어 꿀꿀이죽을 만든 것은 문제이나, 그렇다고 노동자 민중이 무상교육·무상의료를 자신의 요구로 내걸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것의 실현을 위한 상과 경로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5월 17일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열은 후, ‘무상의료·무상교육 실현 토론회’, ‘암 환자 가계파탄 사례발표회’(25일 예정) 등의 기획사업을 전개하였다. 민주노총의 경우 작년에 정책토론회와 교양 소책자를 발간하였고, 올해는 3월 30일 한총련 등과 등록금문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민주노총은 4월6일부터 무상교육 무상의료 쟁취, 비정규직권리보장 입법쟁취, 로드맵 폐기 등을 위한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총파업은 또 한 번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4월 17일 기자회견에서 비정규개악안에 대한 정부안 재논의, 민주적 노사관계 방안 마련이라는 투쟁기조의 변경과 함께….
노동법개악안 투쟁과 관련하여 재논의, 민주적 노사관계 방안마련이라는 식으로 투쟁기조가 변경되는 것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사회적합의, 노사정위참여를 주장해 온 이수호 집행부의 후신인 현 집행부로는 너무나 당연하며, 이는 KT 노조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는 ‘무상교육’과 관련하여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지난 5월 4일 민주노총은 전교조,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취약계층부터 무상의료 실시 및 GDP 대비 5% 교육재정 확보(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무상의료·무상교육은 사회적 대화 의제”라며 “노사정위원회라는 불분명한 틀이 아닌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포괄적인 의제를 다룬다면 언제든지 사회적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무상교육은 노동자 민중이 쟁취해야 할 투쟁과제가 아니라 자본가들과 대화를 통해 구걸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내용에 있어서도 취약계층에 대한 시혜적인 베풂이 되어버렸고, 특히 무상교육은 교육재정을 확보하는 법개정 촉구운동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비정규개악안저지가 아닌 비정규보호법안 제정운동으로 만든 전력과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무상교육·무상의료 제시방안이라는 것도 결국 의료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돈을 더 내거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하는 것인데, 무상교육·무상의료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과연 최초 무상교육·무상의료라는 의제 설정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한총련 등과 등록금 기자회견을 하였지만, 기자회견 이상의 그 어떤 대중적 행동을 조직하지 못하였고, 이는 한총련 또한 마찬가지이다. 범국민교육연대 등에서 등록금문제로 협소화하지 말고 교육비 민중전가 반대 교육주체 총투쟁을 제안하였을 때는 미동도 않다가 실제로 3월말 4월 초에야 기자회견 정도로 그치는 그야말로 투쟁하는 시늉만 한 것이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6.15 공동선언의 일주체인 노무현정권에 대한 그 어떤 반대나 타격도 조국통일에 방해가 되는 행위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로써는 당연한 실천적 귀결이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거다. “대통령 아저씨 GDP 6% 교육재정 확보 공약 지키세요, 네?!”
정말로 무상교육을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노동자 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내모는 노무현정권, 신자유주의 정권과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왜곡된 형태이긴 하지만 투철한 계급의식으로 무장되지 않는 대중들도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이 정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말이다.
또한 교육재정확보라는 청원운동을 무상교육투쟁이라고 사기치지 말아야 한다. 실상 자본가들은 그 정도 떡고물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겠지만, 그 조차도 격렬한 계급투쟁을 통하지 않고는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서 한미 FTA 노사관계로드맵 등 노동유연화의 제도적 완성과 공공영역에 대한 완전한 시장화 사유화를 강행하는 이 정권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교육재정을 확보를 얻어내겠다니. 사회적합의 대화에 대한 그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집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무상교육!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라고? 그럼 교육시장화를 완성하는 한미 FTA 저지투쟁, 교육노동자를 구조조정하는 교원평가저지 투쟁, 국립대 법인화, 사학청산법 등 대학구조조정저지 투쟁이라는 현안 투쟁부터 제대로 하자! 종파적 이해에 찌든 패거리 운동이 아니라 교육주체의 단결을 출발점으로 하는 교육비민중전가 반대, 교육시장화 반대 교육주체 총파업부터 조직해 나가자. 그래야 교육재정확보든 뭐든 개량적인 성과라도 그 과정에서 얻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투쟁하면서 대중들이 무상교육의 필요성과 현실가능성을 자신의 실천으로 획득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무상교육운동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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