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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시간의 화살은 어디로 향하는가?_서평

2001.07.12 14:40

송권봉 조회 수:1371 추천:3

서평:사회과학의 개방

「사회과학의 개방」서평
이매뉴엘 월러스틴 외 지음 / 이수훈 옮김 / 당대
시간의 화살은 어디로 향하는가?

송권봉(대학교육분과원)

대학은 구조조정 중이다. 주되게는 1995년 발표된 5.31 교육개혁안으로부터 출발해 보면 현재 한국대학은 학부제, 학과 통폐합, 지방거점대학의 육성, BK21사업 등 기존 구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새로운 판짜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대학'의 구조적 변화가 실질에 있어 '지식생산'의 변화임에도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내희 교수는 "대학개혁은 경쟁논리를 앞세워 대학을 시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민주적인 공공영역의 성격을 더 많이 갖도록 기능과 조직을 전환하는 일로 이루어져야 하며 더 나아가서 대학과 지식생산의 개혁은 학문전략적 관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런 문제제기를 구체화하기 위해 대학교육분과 세미나에서 '지식생산-학문정책'을 주제로 「사회과학의 개방(괼벤키안 위원회 보고서)」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선택은 다소 자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읽기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난해한 구절들이 꽤 많았다는 걸 솔직히 고백한다. "책 내용 요약"과 "분과세미나 및 연구소 월례토론회에서 나온 몇몇 제기들"을 후기로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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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르면 고전적 과학관을 지탱하는 두 전제가 있다. '뉴턴적 모델'과 '데카르트적 이원주의'에 따라 과학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진실로 남는 보편적 자연법칙에 대한 모색이라 정의된다. 실험적·경험적 작업이 과학의 전망에서 점차 중심적이 되고, 철학은 검증이 불가능한 선험적 주장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신학의 단순한 대체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확실한 지식' 대 '상상된 혹은 가상의 지식'이란 인식이다. 19세기 초 마침내 과학의 승리가 언어학적으로 안착된다. 이렇게 되자 '문과학', '인문학', '문학', 철학, 정신과학 등의 여러 이름을 가진 분야가 생겨났다. 그런데 '과학'의 대안적 학문은 여러 얼굴과 강조점을 떠맡고 있어서 내적 응집력이 부족했고, 학문의 권위조차 없어 보였다. 특히 그것들은 '실제로 쓸모있는' 결과를 제공하는 능력도 부족해 보였다.

한편 대학은 이전 교회에 너무 밀착하였던 결과 16세기 이후 여러 측면에서 몰락해 가던 제도였다. 그러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근대국가가 자신의 정책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보다 정확한 지식을 요구하게 된 정황을 맞아 지식 창출의 주된 제도적 장소로서 부흥하게 되었다. 대학은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신학부는 소수가 되었거나 아예 소멸하거나 철학부 내 종교학을 연구하는 하나의 학과로 대체되어 버렸다. 의학부는 이제 전적으로 응용과학 지식으로 규정되어 하나의 구체적 전문영역 내 훈련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보존했다. 근대적 지식구조가 구축될 곳은 주로 철학부 내에서였다. 철학부 속에 문과학과 자연과학 종사자들이 소속하여 자신들의 여러 자율적인 분과학문 구조를 구축하였다.

[표1: 19세기 분과학문의 위치]

자연과학

사회과학(법칙정립)

인문학

수학

실험적 자연과학

역사학은 문학부의 일부이거나 그에 가까웠고,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에 더 가까웠다.

철학


물리학/화학/생물학

문학(역사학 포함)

예술사에근접

회화와 조각

음악학

뉴턴적 과학이 추론적 철학을 누르고 승리했던 맥락에서 [표1]과 같은 지식구조가 탄생하고, 사회적 위신을 체화하게 되었다. 과학은 철학자들이 단지 사고하고 그 사고를 기술하는 데 비해, 우리로 하여금 심리(mind)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주는 방법을 사용하여 객관적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공언되었다. 사회과학 내 분과학문의 분리에 대한 지지는 19세기 초반에 명백하게 결정화하고 있었지만, 사회과학의 분과학문 구조에 반영된 지적 다기화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로 주요 대학들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1850∼1914년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이 같은 제도화가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19세기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미국의 다섯곳의 거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동양학(orientalism)이라는 분과학문들이 확고해졌다.

19세기 역사학이라는 새 '학문'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점에 엄격한 강조점을 두었다. '철학'과의 투쟁에서 '과학'에 사용된 주제들은 ① 객관적이고 알 수 있는 현실세계의 존재에 대한 강조 ② 경험적 증거에 대한 강조 ③ 학자의 중립성에 대한 강조 등이다.

한편 1500년과 1800년 사이에 다양한 국가들이 이미 전문가들(대개 관리들)에게 정책 수립에 관한 자문을 구하곤 했다. 특히 중상주의 시대에 그러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수많은 항목하에 그들의 지식을 제공하였다. 19세기에 우세한 자유주의 경제이론들에 비추어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은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경제학'이라는 용어가 선호되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정치'라는 관형어를 떨쳐버림으로써 경제학자들은 경제행위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제도들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인 개인주의적 심리의 반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자유방임주의 원칙들의 자연스러움을 내세우는 데 이용될 수 있었다. 이 시기 독일지역에서는 국가학(국가의 과학)이 구축되고 있었는데 이 분야는 경제사,법제학,사회학, 그리고 경제학의 혼합을 포괄하였으며 상이한 '국가들'의 역사적 고유성을 고집할 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상화하고 있던 학문별 구분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학문은 이전의 '정치경제학'이 포괄하던 것과 동일한 지적 공간을 점하고 있었다. 20세기 들어와 막스 베버 등 '독일사회학회'에 의해 1920년대 이미 사회과학이라는 말이 국가학을 대신하게 되었다.

한편 사회학의 발전은 19세기 후반 사회개혁 단체들의 작업을 대학 내부에서 제도화하고 전환시킨 데서 주로 이뤄졌다. 당시 개혁단체들의 의제는 크게 증가한 도시노동계급 인구층의 불만과 무질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의 작업을 대학으로 옮김으로써 이들 사회개혁가들은 대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이고 시급한 입법 로비활동에 위임하게 된다. 그럼에도 사회학은 여전히 근대성의 사회적 결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은 아주 늦게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법학교수들이 그 독점권을 넘겨 주지 않아서였다. 분리된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은 경제학을 정당화하였다. 논리적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정치적 영역을 연구하는 과학적 학문의 설립이 실행된 것이다.

'부족(tribes)', '인종(races)' 등과 유럽이 만나게 되면서 '인류학'이 탄생했다. 점차 인류학자들은 특정 사람들에 대한 '기술민족학자'가 되었고, 그 방법론으로 '현지조사'를 사용했다. 이때 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학자들도 자신이 연구하는 사람들과 유럽의 정복자적 세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 유혹을 갖기에, 참여자 관찰은 과학적 중립성이라는 이상을 위배할 소지를 안았다. 이들이 대학구조 내에 안착하여 '과학의 규범적 전제'라는 테두리 내에서 '기술민족학' 공부로 자신들을 한계짓게 되었다. 한편 아랍 이슬람 세계와 중국과 같은 이른바 '고도문명'의 경우, 근대 이전에는 신비의 대상이기도 했으나, 특히 19세기에는 유럽의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동양학은 그 모태가 교회였고, 원래는 복음전파의 치장이었다. 그러다 종국에는 대학의 분과학문 구조 내에서 위상을 찾게 된다. 동양학 연구자들은 고도문명의 지혜를 구체화한 텍스트를 자세히 읽음으로써 그 문명을 태동시킨 일련의 가치와 관습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언어학적이고 문헌적인 기술을 사용했기에 동양학은 근대성에 통째로 저항하였고 자신들을 '인문학'의 일부로 간주하기를 선호하면서 사회과학 영역과의 연계를 엄격히 피했다.

그렇다면 왜 지리학, 심리학, 법학은 사회과학에 포함되지 않았는가? 책에 따르면 19세기 후기에 지리학은 주로 독일 대학들에서 하나의 새로운 학문으로 자신을 재구축했다. 지리학의 관심은 주로 사회과학의 관심이었지만 범주화를 거부하였다. 인간지리학을 통해 '인문학'과의 간극을 메우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물리지리학에 대한 관심을 통해 '자연과학'과의 간극을 메우고자 하였다. 게다가 지리학은 1945년 전까지 그 주제라는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진정 전세계적이고자 한 유일한 학문이었다. 진보에 대한 부각과 사회변동을 조직하는 정치가 사회적 존재의 시간적 차원을 핵심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공간적 차원은 불확실한 '망각'상태로 남겨두었다. 그 결과 공간과 위치에 대한 취급이 사회과학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되었다. 실제에 있어서 사회과학은 공간성에 대한 특정주의적 관점에 기반을 두었다. 물론 이 관점이 자인되지는 않았지만 일련의 공간구조로 가정한 것은 '주권적 영토들'이었다. 사회학자의 사회, 거시경제학자의 국민경제, 정치학자의 정체, 역사학자의 민족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각자는 기본적으로 공간적인 일치가 존재한다는 점을 가정했던 것이다. 심리학은 좀 다른 사례였다. 심리학 역시 철학으로부터 새로운 과학형태로 자신을 재구성하려고 모색하면서 분리되었다. 하지만 심리학은 주로 의료영역과 관련있다고 정의되었고 이는 심리학의 정당성이 자연과학과 얼마나 가까운가에 달려 있다는 의미를 띠었다. 심리학의 정박지는 종국에 가서는 사회과학부를 넘어 자연과학부로 옮겨지게 되었다. 법학의 경우, 이미 법학부가 존재하였고 그 교과과정은 법률가를 훈련시키는 일차적 기능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법률학의 법칙들은 과학적 법칙들이 아니었으며, 그 문맥마저도 너무 개성기술적인 것처럼 보였다.

[표2: 19세기말 사회과학의 학문구분]

근대·문명 세계의 연구

비근대세계의 연구

현재의 연구

과거의 연구

인류학·동양학

법칙정립적 사회과학 학문들

역사학

경제학
(시장연구)

정치학
(국가연구)

사회학
(시민사회연구)

이제 [표2]와 같은 사회과학 내 분과구조가 성립된다. 그런데 1945년 이후 전개된 세 가지 사태가 19세기 정착된 사회과학의 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첫째는 세계정치 구조의 변화였는데, 냉전체제가 형성되고 전세계 비유럽 민족들의 역사적 자기존재 재천명이 이뤄졌다. 또 1945년 이후 사반세기 동안 세계가 이전 어느 시대보다 생산력과 인구 면에서 대규모 팽창을 했다. 특히 전세계 모든 나라들에서 특기할만한 양적이고도 지리적인 대학체계의 팽창이 있었다. 전세계 대학체계의 급속한 팽창은 아주 독특한 조직상의 함축을 담고 있었다. '증대된 전문화에 대한 구조적 압력'이 생겨나서 사회과학자들이 서로간에 이웃 학문 영역을 침투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자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들을 무시하게 되었다. 주요 강대국들이 냉전에 자극받은 결과 '큰 과학'에 투자하기 시작하였고, 이 투자는 사회과학으로 확대되었다. 사회과학에 할당된 비율은 작았지만, 그 수치는 이전보다 훨씬 많아서, 경제적 투입은 사회과학의 과학화를 한층 더 부추겼다.

1945년 이후 가장 특기할 만한 학술적 혁신은 하나의 새로운 지적 작업의 제도적 범주로서 '지역연구'가 태동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2차대전 중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기본발상은, 지역이 어떤 전제된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언어적인 밀착성을 가진 커다란 지리적인 구역이라는 점이었다. 지역연구는 정의상 '다분과학문적'이었다. 이 시기 미국은 전세계적인 정치적 역할에 비추어 다양한 지역들이 당면한 현실에 대한 지식, 그리고 전문가들을 필요로 했다. 지역연구 프로그램들은 그런 전문가들을 길러내도록 고안되었다. 다분과학문성을 지닌 지역연구가 실행됨에 따라 사회과학 지식을 칼로 자르듯이 제도적으로 분리시킨 데에는 상당한 작위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역사학자들과 법칙정립적 사회과학자들 다수가 처음으로 비서구 지역들의 연구에 참여하자 이전에 '기술민족학'과 '동양학'으로 불렸던 영역을 정당화한 논리가 약화되었다. 인류학자들은 기술민족학을 단념하고, 대안적 정당화를 모색하였다. 동양학 연구자들은 학문 명칭을 내던지고, 새롭게 만들어진 지역 문화 학과들과 역사학·철학·고전학·종교학 등등의 학과들로 합류했다. 법칙정립적 사회과학들도 상당수 학자가 1960년대 이전에 비서구세계의 여러지역들에 대해 경험적 연구를 하는 데 몸바쳐 왔는데 그 비율은 역사학자-정치학자,사회학자-경제학자 순이었다. 이제 지리적 확장에다 학자들 충원의 기반이 지리적으로 확대된 것을 첨가한다면, 지식제도들 내부의 사회적 정황이 1945년 이후 시기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질문들이 등장한다. 서구와 비서구 지역이 존재론적으로 동일한가 아니면 다른가? 비서구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특별한 분석양식이 요구되는 등의 차이점은 없는가? 법칙정립적인 사회과학의 일반화는 비서구 세계에도 적용되는가? 아프리카도 역사를 갖고 있는가, 아니면 오직 '역사적 민족'만이 역사를 갖는가? 1960년대 말부터, 얼마나 사회과학 - 사실 모든 지식 -이 '유럽 중심적'이었고 따라서 사회과학의 유산이 얼마나 지역편파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생겨났다. 또한 근대사상이 '두개의 문화'로 외피를 쓰고 분리된 것이 지적 활동을 조직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 방식이었는가 하는 반성적 사고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사회과학 유산이 얼마나 지역편파적이었는가?

어떤 학문이건 혹은 보다 큰 학문집단이건 그 보편성이란 것은 지적 요구들과 사회적 실행들의 어떤 특징적이고 유동적인 혼합에 의존해 있다. 그런데 보편성이라는 기대치가 비록 아무리 진지하게 모색되었다고 하더라도 여태까지 사회과학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충족된 적이 없었다. 여러 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 법칙정립적 사회과학 학문들에 있었다. 그들은 자연과학을 모델로 삼으면서 보편주의적 형태로 서술된 대로는 도저히 충족할 수 없는 것으로 입증되어버린 세가지 종류의 기대를 키웠던 것이다. 즉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으며 결과는 정확하다는 것이다. 법칙정립적인 사회과학은 사회적 성취가 측정될 수 있다는 전제, 그리고 측정 자체가 보편적으로 합의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구축되었다. 그런데 법칙정립적 사회과학이 보편적 지식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판단은 사실상 아주 위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연구대상이 연구자들을 감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연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연구자들과의 다양한 유형의 대화나 논쟁에 끼어들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보편주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들은 "소수의 관점이 지식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소수가 대학 바깥 세계에서도 역시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말했다.

책에 따르면 지적 논쟁에 두가지 도전을 구별하고 비판들을 분석하고 있다. 먼저 정치적 도전은 대학구조 내에서 학생·교수와 같은 인원 충원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사회과학 내의 '잊혀진'집단들, 즉 여성, 비서구 전반, 서구국가들 내의 '소수' 집단들,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주변적이라고 역사적으로 규정된 여타 집단들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해결책은 "학문공동체의 충원범위를 넓히면, 십중팔구 공부의 대상범위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되었다. 그러나 지역편파성에 대한 도전은 연구자들의 사회적 배경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훨씬 깊은 성격을 지녔다. 사실상 아무런 이론적 정당화도 경험적 정당화도 없는 선험적 편견들 혹은 사유양식들 혹은 추론을 내포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선험적 요소들이 보다 정당화될 수 있는 전제들에 의해 규명되고 분석되고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그 자체가 탈식민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식민화의 요구란 우리가 여태까지 알아온 사회과학 제도화의 특정한 형태를 창출하였던 권력관계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사회과학이 보편적 지식을 모색하는 학습이라고 한다면, '타인들'(the others)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 '타인들'이 '우리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즉 연구의 대상인 우리, 연구하는 데 개입하는 우리 말이다.

또 다른 문제, 즉 '두 개의 문화'를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유효하고 현실적인가?

'뉴턴 물리학의 개념'이라는 전제가 전복된다. 이제 자연과학에서 새로운 발전은 선형이 아니라 비선형을, 단순화가 아니라 복잡성을, 측정과정에서 측정자를 제외할 수 없다는 점을, 그리고 심지어 몇몇 수학자들의 경우 정확도의 측면에서 보다 제한적인 양적 정밀성이 아니라 질적인 해석적 규모의 우위성을 강조하였다. 이들 과학자들은 시간의 화살을 강조한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법칙을 알고 애초의 조건들만 알면 그 미래의 상태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화살'은 "평형상태와 거리가 먼 체계"이다. "평형상태와 거리가 있는 체계" 속에서 미래는 불확실하고 조건들은 되돌려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공식화할 수 있는 법칙이란 단지 가능성들을 열거할 수 있을 뿐, 결코 확실성들을 나열해 주지 않는다. 비평형상태의 동학에 근거를 둔 과학적 분석은 다수의 미래들, 분기점과 선택, 역사적 의존성과 본질적인 내재적 불확실성 등을 강조하면서 사회과학의 중요한 전통들과 공명하고 있다.

지식을 세 개의 큰 영역으로 구분한 삼분법에 대한 두 번째의 도전은 두 개의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의 '인간주의적' 말미로부터 대두된다. 이 도전을 '문화학'이라 부를 수 있다. 문화학의 세가지 주제는 첫째 역사적 사회체계 연구에서 성(gender)연구와 온갖 종류의 '비유럽 중심적' 연구들의 핵심적 중요성, 둘째는 토착적이고 아주 구체적으로 상황지어진 역사적 분석의 중요성인데 이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해석적 선회'와 연결지어졌고, 셋째는 여타 다른 가치들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성취에 개입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1945년 이전에 사회과학은 두 개의 문화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목소리가 사회과학으로 하여금 각 학문이 선호하는 바에 따라 자연과학이나 인문학 속으로 합병함으로써 사라지기를 요구하였다. 자연과학자들은 시간의 화살을 말하고 있는데, 시간의 화살이란 사회과학의 보다 인문학적 갈래에 항상 핵심적이었던 문제였다. 동시에, 인문학자들은 '이론'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이론화가 아무리 해석적인 데 그친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주창하는 바가 거대 이야기와 아무리 적대적이더라도, 이론화는 인문학자들이 관행적으로 해온 바가 아니다. 더 이상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이라는 삼분법이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또한 이제는 사회과학이 더 이상 자연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일가 사이에서 찢겨진 가련한 친척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사회과학은 양가를 화해시켜줄 수 있는 위치로 되어버렸다.

근래에 "사회과학의 조직상의 구조"를 놓고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자원 배분을 놓고 벌어지는 항구적인 싸움의 결과, 오랜 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예산팽창 이후에 뒤따르는 예산 압박으로 인해 더욱 잔인한 양상을 띤다. 문제는 새로운 지적 범주들에 근거한 조직상의 재편이라는 이 압박이, 나라 따로 대학 따로 모색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주도권도 학자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대학행정가들에게 있다. 후자의 관심은 지적이라기보다는 예산상의 문제에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두 번째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이라는 삼등분의 흐려짐이 있다. 세 번째 수준에서 1945년 이후 기간에 전세계에 걸친 대학체계의 엄청난 팽창 - 기관들의 수, 교수인력의 수, 학생 수 등등의 측면에서 - 은 연구활동을 교육체계 내에서 더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쪽으로 연결되었다.

조직상의 문제들은, 물론 사회과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지적 해명이 이뤄질 문맥을 구성한다. 아마도 세 가지 중심적인 이론적·방법론적 쟁점들이 제기되는데, 지식의 풍성한 진전을 허용하기 위해 그 쟁점들을 위주로 새로운 발견적 합의들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첫째 쟁점은 연구자와 연구의 관련성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사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경계선을 부숴 버리자는 요구이자, 인간과 자연 양자가 시간의 화살에 의해 형성된 단일 우주의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요구이다. 두 번째 쟁점은, 어떻게 해서 시간과 공간을 단순히 사회적 우주가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물리적 현실들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분석을 구성하는 내적 변수들로 다시 삽입시킬까다. 세 번째 쟁점은 19세기에 정립된,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혹은 문화 혹은 사회문화적)라는 세 자율적인 영역들의 인위적 분리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만약 연구자가 '중립적'일 수 없고, 시간과 공간이 분석에서 내적 변수가 되지 않는다면, 논리적으로 사회과학을 재구조화하는 과제는 온갖 지적 풍토와 시각- 그리고 성, 인종, 계급, 그리고 언어적 문화 등을 감안한 -을 배경으로 한 학자들간의 교류로부터 유래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전세계적인 교류는 세계 과학자들 속에 일부의 관점을 부과하는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위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류여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히려 해결책이 발견될 수도 있는 길들에 관한 제안을 하고 집단적인 토론을 자극하는 것이다. (1) 적어도 데카르트 이후 근대사상에 삽입된 구분, 인간과 자연이라는 존재론적 구분을 거분하는 것이 갖는 함축들, (2) 사회행위가 발생하고 또 사회행위가 분석되어야 할 , 유일한 그리고 혹은 일차적 경계선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 갖는 함축들, (3) 단일과 다수, 보편과 특수 사이에 존재하는 끊임없는 긴장을 시대착오로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영속적인 특징의 하나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갖는 함축들, (4) 과학의 변화하는 전제들이라는 견지에서 적절한 유형의 객관성 등이다. 특히 '객관성'은 '누구의 객관성인가'로 질문된다. 중립적 의미의 학자란 있을 수 없다. 또 사회현실을 거의 사진과 같이 묘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선택의 근거는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세계가 변함에 따라 그 근거도 항상 불가피하게 변하게 될 것이다. 만약 객관성의 의미가 완벽하게 비개입적인 학자가 그들 바깥에 존재하는 사회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과학을 지식의 파편화와 싸우는 방향으로 밀고 가는 것은, "사회과학을 의미있는 정도의 객관성이라는 방향으로 밀고 가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보다 유효한 지식이 사회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의 사회적 기초를 인정하는 것은 객관성 개념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책의 저자들은 사회과학 내의 지적 분업이라는 구상 자체를 말소하는 것을 옹호하지는 않으며, 지적 분업이라는 구상은 계속해서 분과학문의 형태를 취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과학문들이 제대로 작용하려면 분리선의 유효성에 관한 일정한 수준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현재의 분과학문별 경계선에 개의치 않고 지적 활동조직을 확대해야 한다. 저자들은 지혜의 독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믿지 않는다. 더불어 대학의 특정학위를 가진 사람에게 유보된 지식영역이란 것도 믿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지금 시간상 기존의 분과학문 구조가 붕괴되어버린 지점에 있지는 않다. 우리는 그런 구조가 의문시되고 그에 경쟁적인 구조들이 생겨나려 하는 지점에 있다. 지적 해명과 궁극적으로 사회과학의 보다 완전한 재구조화를 향한 유용한 길들로서 사회과학 지식구조들을 담당하고 있는 행정가들이 권장할 수 있고 또 권장해야 할, 적어도 네가지의 구조적 사태진전이 있다고 보고서는 주장하고 있다. 첫째, 구체적이고도 시급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일년간 공동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학자를 초빙하는, 대학 내 혹은 대학과 연계된 제도들의 확대이다. 둘째, 전통적 학문선들을 교차하고, 구체적인 지적 목표를 가지며, 일정한 기간 -이를테면 약 5년 정도- 동안의 연구기금을 갖는 대학구조 내 통합연구 프로그램의 설치다. 셋째, 교수들의 공동임명(한 학과가 아니라 복수의 학과에 임명하는 것- 역자)의 의무화다. 넷째, 대학원생들과의 공동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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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는 「사회과학의 개방(사회과학 재구조화에 관한 괼벤키안 위원회 보고서)」(이하 '책')를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서평'을 작성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정과 달리 글이 늘어지게 된 것은 간략한 소개보다는,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서 연구소 회원들에게 읽을거리를 주자는 의도가 끼어들었고, 필자 역시 "함축적인 요약능력"이 부족한 터라 글이 무척 길어지게 되었다. '대학교육분과 세미나'와 '연구소 월례토론회'에서 제기된 내용도 소개한다.

대학별 구체 상황은 다를테지만, '학부제'로의 재편이라는 방향은 엇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책'은 마치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데, 실상 답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책'에서는 '개방'을 위한 제도개혁과 공동연구 등을 제안하는데 실제 이런 활동은 한국사회의 대학에서 학부과정이나 대학원 과정 등을 통틀어 진행되고 있지도 않거니와 진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비용의 문제가 남는다. 또한 현재 '학부제'로의 통합은, 행정적 통합이지 절대로 유기적, 학문적 통합이 아니다. 통합학문을 위한 실험에 따른 점차적인 변화가 아니라 행정적으로 통합해놓고 그 결과만 바라고 있는 실상이다. 중등교육에 있어서도 '통합교과과정으로의 재편'이 논란이 되고 있다. 7차교육과정이 실행되며 속도전 성격마저 띠고 있으나 통합의 논리에 터 잡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의도는 찾을 길 없다. '학문정책'과 '교육정책'을 분명히 하고, 지식생산의 혁신을 기도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강내희 교수의 말은 의미있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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