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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진보칼럼_경쟁, 그 무한질주를 끊어내야...

2007.04.11 16:39

진보교육 조회 수:1188

경쟁, 그 무한질주를 끊어내야...

장혜옥 l 2006년 전교조 위원장

민주화 운동 결실 20년, 민주정부 수립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는 이가 꽤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간의 민주정부들이, 경제 발전을 이룬다며 심취한 신자유주의 시장화정책들은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을 양산하면서 사회적 병폐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주도하여 폭력적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아니 시장만능주의 정책들은, 국민들의 의식까지 돌려놓아, 대다수가 자기 존재를 스스로 배반하는 지경에 까지 와 있다.

시장만능주의의 핵심어는 ‘경쟁’이다.
10여 년 전, ‘당신의 경쟁 대상은 누구입니까?’ ‘바이 더 코리아’ 따위의 광고 카피를 대대적으로 유포하면서 전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갔음을 기억한다. 우리 국민 모두가 ‘경쟁’에 뛰어들고 ‘경쟁력 강화’를 지상 과제로 여기며 시장의 상품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인간이든 국가든 활용하는 것이 ‘선의’임을 믿게 했다. 이 거대한 지배 담론은 각종 교육을 통해 사회화되었다. ‘경쟁력 갖춘 인간이 되자’는 교육 구호는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이란 청사진으로 시작하여, 참여정부의 ‘교원평가’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교육은 절망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수구세력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며 ‘교육혁명(?)’을 외친다. 사립학교는 영리 업체여야 하며, 평준화를 해체하고, 초중등학교 등급제와 교원 구조조정, 교육의 다국적 기업 개방, 영어 몰입교육 등을 전방위로 외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와 행복을 공정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자녀들의 교육에 매진하지만,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사교육비를 투자하느냐에 따라 입신양명의 길이 열리고, 그래서 정해진 사람만(가진 자)이 정해진 길(학벌 취득)로 갈 수 밖에 없기에 결국은 고착화된 불평등 앞에서 하릴없이 절망할 뿐이다. 일하는 자, 노동자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외치지만, 가진 것 없는 노동자는 노예 같은 절망을 품고 살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렇다. ‘경쟁’이 절대선(絶對善)인 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린 자는 결국 노예적 속성을 스스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구조가 된다. 경쟁은 개개인 또는 물적 존재에 대한 상대적 평가이기에 ‘내가 경쟁에서 졌으니 내가 당하는 건 당연’하다고 믿게 되고, 오히려 가진 자를 인정하고 흠모하면서 스스로 ‘구조’를 당연시 여기는 ‘보수’가 되어 자기 스스로 자기 존재를 배반하고 만다. 사회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일을 개인의 일로 환원하여 믿게 만드는 이 절망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교육을 통해 재생산된다. 태어나 20-30년간 이어지는, ‘몇 점 맞았어?’ ‘몇 등 했어?’로, 간단히 인간을 총정리 할 수 있는 ‘점수 경쟁’ ‘서열 경쟁’ ‘입시 경쟁’ ‘학벌 경쟁’ 등 성취 결과를 핵심으로 한 ‘교육’은 전일적인 경쟁 체제를 내면화 시키면서, 순간순간 승리자를 황제로 낙오자를 노예로 만들며 무한질주 한다.

이렇듯 각 단계에서 이긴 자만이 결과물을 싹쓸이해 나가는 피라미드 식 경쟁은 ‘벌거벗은 경쟁’이다. 교육 현장에서 자행되는 ‘벌거벗은 경쟁'은 ‘인간다운 품격’이 없다. 교육은 자연상태의 인간을 문화적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인간이 목표이지, 시장적 이익이 목표일 수 없다. 경쟁력이 목표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목표여야 한다. ‘이기라’로 가르치기보다 ‘나누라’고 가르치고, ‘혼자 앞서 가라’ 가르치기보다 ‘더불어 함께 가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다운 품격이 생긴다.
더구나 교육 현장에서 자행되는 ‘벌거벗은 경쟁'은 폭력으로 점철된다. 우리 학생들이 겪는, 하루 15시간의 학습 노동, 즉 20개에 이르는 교과목, 야간학습, 보충수업, 학원, 과외 수강이 이미 폭력이다. 집단 따돌림, 일진회, 게임 중독, ADHD, 자살 충동, 집단 가해, 약물 중독, 무기력과 적개심 등 학생들 삶에 일상적으로 드리운 폭력들은 이제 청소년기에 겪어야 할 특징쯤으로 여기면서 자행되고 있다. 교사들도 신체폭력, 언어폭력 등 체벌을 끊어내지 못하고 차별과 방임을 폭력적으로 행사하면서 경쟁의 가해자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 정부와 사회도 교육공공성을 외치는 교사들에게조차 연가 불허, 행정 징계, 사법테러, 언론테러 등을 법을 뛰어넘어 마구잡이로 벌인다.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을 방해하거나 경쟁에서 소외시키는 모든 요소들을 ‘악의 축’으로 여기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발상들이 개인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행사되어도 당연하게 여기는 구조가 교육의 절망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더구나 35만 교사를 피라미드 서열 경쟁으로 내몰 교원평가는 교육을 시장 만능의 결과물로 활용할 핵심 고리 역할을 할 것이어서, 교사 집단마저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절망스런 사태를 맞게 할 것이다.

교육은 인간(학생)과 인간(교사)이 만나, 아름다운 소통과 수평적 연대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인간적 관계여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아이의 능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인 조건 속에서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공공의 선(가치)’을 가르치고 배워 더 나은 개인과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개인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그 궁극적 결과물은 사회의 공공성으로 귀착되어야 한다.

이제 교사인 우리들이 새로운 각오를 하자.
지난 10여년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바꾸라고 정부와 투쟁했던 세월을 넘어서자. 교육의 공공성을 만들어 가는 일은 이제 정부에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교육을 통해 노예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될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일이다.
경쟁, 그 무한질주를 끊어내고, ‘인간다울 권리’ ‘민주주의 사회(국가)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교육권’을 되찾는 운동을 교사들, 바로 우리들이 먼저 나서서 실천하자. 신자유주의 폭력에 저항하고, 사회적 교육 담론을 생산하고, 우리들의 학교와 교실에서 작은 실천을 시작하자. 그것이 바로 ‘교육공공성 운동’이다. 전교조 내부에 안주하는 조직 활동이 아니라 교육 때문에, 죽은 삶을 사는 노동자 민중과 함께 사회적 실천 운동의 전사가 되자. 작은 실천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따뜻한 상담, 차별 없는 학급운영, 체벌 끊기, 아이들 기 살리는 생활 지도, 성적 중심 탈피, 모둠활동 모둠학습, 더불어 함께하는 교육과정 운영 등 우리 선생님이 변했다는 아이들의 탄성을 들어보자. 학부모들을 찾아가고 동료들과 소모임 활동을 하자. 책을 같이 읽고 세상을 토론하자.

더 다채로운 작은 실천들을 각자가 자신의 장에서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운동’이다. 이 작은 실천들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운동’이다. 아직도 부족하기만 한, 민주화 운동 20년을 평등과 평화, 공동체 문화를 일궈낼 사회(교육) 공공성 운동으로 키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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