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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폐지-교육 공공성 확대를 위한 진보교육운동의 당면과제

심광현 │ 문화연대 정책위원장



평면적·단계적 전략에서 입체적·중층적 전략으로

  한국의 교육은 97년 외환위기를 매개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휩쓸려 방향키가 뒤집힌 채 이리저리 표류해 왔다. 여기에 한미FTA라는 초대형 쓰나미가 덮쳐 그간 거덜 나다시피한 사회공공성의 기반 전체가 무너지며 교육 공공성의 근간이 뒤흔들리고 있다. 최근 노골화된 “3불정책 폐지”라는 뻔뻔스러운 요구는 향후 거대한 본체를 드러낼 반민중적 포스트-FTA 정책의 작은 일각일 따름이다. 외형적으로는 FTA의 직접 타격이 교육이 아니라 농수산, 보건의료와 문화, 지적재산권 등에 집약되는 듯하지만 FTA로 사회 공공성의 기반 자체가 해체되면 교육 공공성의 최후 기반도 동반 해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 때 교육을 통한 양극화된 계급재생산은 물론 지식사회의 혼돈의 바다를 헤쳐 나갈 구명선에서 사회구성원의 80% 이상이 배제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이런 총체적 파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000년 이래 교육부의 ‘교육인적자원부’(사회문화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급)로의 격상 이후 교육정책은 공업경제에서 지식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반영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구조에서 3대 핵심 고리(경제-교육-과학기술)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이에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본질이 장기적 이윤율 저하 추세에 대처하려는 자본(금융)의 자유화와 노동의 유연화, 기술혁신과 사회적 양극화를 핵심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장기 추세’의 강력한 재생산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체적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간 교육운동은 양적 팽창과 집중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정책이 30여년 이상에 걸쳐 누적적으로 증폭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장기추세’의 핵심 고리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현실 변화의 의미를 충분히 숙고하지 못했기에 이에 올바로 대처할 수 없었다. 입체적·비선형적인 장기 파도를 평면적·선형적 단기 방책으로 막으려 했으니 성과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입체적·중장기적 대응전략의 구축 하에서 교육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는 일이 시급하다. 입체적·비선형적 중장기적 대응전략이란 단기-중기-장기로 이어지는 일직선을 따라 진행되는 단계론적 전략이 아니라 단기와 중기와 장기 전략이 목표 기한을 달리 설정하되 동시다발로 가동되는 중층적 대응전략이다.

교육과정과 교육 공공성의 패러다임 혁신    

  우선 신자유주의의 핵심 엔진인 “지식경제”와 “지식사회”가 야기하는 새로운 지식의 성격에 대한 논쟁을 새롭게 전개해야 한다. 대체 어떤 지식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악화시킬 것이며,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지식을 교육하려 하는가의 문제, “지식의 사회화”와 “지식의 공공성”의 방향과 성격에 관한 논쟁이 필요하다. 중등교육운동과 대학교육운동 및 사회운동 간의 긴밀한 공동연구와 공동행동이 시급한 것이 이 때문이다.
  사회적 생산-유통-소비 과정 전반에 대한 과학기술의 전면적 이용, 인지과학-생명공학-정보공학의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인해 지식은 점점 더 학제적, 통섭적인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또 과거의 정보 가공 및 분류 차원의 지식과는 다른 “지식에 대한 지식”이라는 “메타지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의 분과학문적 지식은 이제 디지털 아카이빙에 의해 자동처리되고, 인터넷-DMB-휴대전화 등을 통해 유비쿼터스 방식으로 접속이 가능하게 되어 과거의 특권적 성격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정보의 가공-분류-편집은 자동기술화되고, 지식생산과정에서는 창의성과 상상력, 반성적 판단력과 협동적 토론의 중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2002년 문화연대가 전교조와 공동으로 <21세기 문화교육 선언>을 제안하고, 이후 “문화교육운동”을 전개해 온 것은 이렇게 21세기가 새로운 역능의 교육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상상력-감수성-판단력-협동력과 같은 다양한 문화적 역능의 복합체를 키우는 통합적 성격의 <문화교육>이 그것이다. 기존 지식교육의 이념-교육과정-교과목의 편성과 내용 전반의 문화적 리모델링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사회구성원 다수에게 복합적인 지적-문화적 역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직 소수에게만 그런 역능을 부여하고, 자동기술화 체제에서 배제되는 다수에게는 그런 역능을 박탈하여(일종의 문맹화를 통해 지식의 사회화의 성과를 차등배분 받고, 그 핵심 메카니즘에는 접근하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사유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위계체계에 종속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운동진영 역시 이런 지식생산의 성격변화에 대응하는 정부정책의 모순적 성격을 파헤치고 약한 고리를 포착하는 데 성공하지 못해 왔다. 교육운동 종사자들 자신이 과거의 분과학문적 지식의 틀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새로운 점은 자동기술화의 과정이 안정적 직장개념을 해체하고 있어 학교교육 이외에 평생교육의 문제가 전면화되고,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따라 노인교육이라는 문제 역시 전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바로 이런 과제에 대해서도 오직 자본의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다. 과거에는 교육문제가 학교교육 당사자들의 문제였다면, 이제 교육문제는 전체 사회구성원의 생존 및 삶의 질과 관련된 현안 문제로 새롭게 재편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제 교육의 개념을 지식교육에서 문화교육으로, 학교교육에서 평생교육으로 그 내포와 외연을 시급히 확장해야 한다.  
  그동안 교육 공공성 개념은 학교교육에 한정되어 왔고, 공공성 개념도 국가주의적인 대의적 공공성 개념으로 한정되어 왔다. 그러나 공공성 개념은 그 사전적 의미에서처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원칙에 따라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는 공통재의 개념을 포함함과 아울러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직접민주주의의 원리 하에서 아래로부터 자율적 참여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구성될 자율적 공론성의 의미를 함께 포함해야 한다. 이런 문맥에서 보면 교육 공공성의 개념은 학교교육만이 아니라 평생교육 기회의 평등한 제공(공적 교육보험)과 아울러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는 권리(교사)와 교육받을 시기와 교육과정을 필요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학생)를 동시에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입시폐지와 교육공공성 확대를 위한 상설적 범국민교육운동본부 결성이 시급

  그러나 현재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초등교육(절대평가)->중등교육(상대평가)->대학입시(극단적 상대평가)->대학교육(절충적 절대평가)->취업(대학서열에 의한 상대평가)->업무평가(절대평가)라는 반복되는 딜레마로 전인구를 새끼 꼬듯 죄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의 새끼줄 꼬기로 옥죄여진 강도가 높아질수록 피교육자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대학입시제도를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절대평가를 모든 교육과정에 적용하는 근본적 대수술 없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교육예산이 증가할수록 사교육비가 더욱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범국민교육연대는 “대학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대선공약의 제1과제로 부각시키기 시작했고(민중교육개혁특별위원회, 2007년 5월 중순), 필자 역시 이 과제의 전면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제기한 바 있다. 물론 교육운동진영 내부에서는 이런 주장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내용의 급진성이 대중적 공감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상당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현실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우에 불과하다. 대다수 학생들은 이미 학교에서의 낡은 지식교육의 내용을 외면한지 오래고, 학부모들 역시 입시지옥에서 탈출하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다. 교육운동이 당면한 대중적 고통과 열망을 차후로도 계속 중장기 과제로 미룬다면 자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하루속히 이를 전면화하고, 운동형태 자체도 혁신해야 한다. 간헐적이고 느슨한 연대체가 아니라 중등교육운동-대학교육운동-사회운동이 입체적으로 결합한 상설기구로서 <입시폐지와 교육 공공성 확대를 위한 범국민교육운동본부>의 결성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학입시폐지”와 “평생교육권의 확장”을 핵심 슬로건으로 삼는 상설적 국민캠페인과 광범위한 사회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 주요 실천과제를 요약하면, (1) 학교교육의 차원에서 대학입시 폐지와 국공립대학네트워크 실현을 골간으로 하는 낡은 지식교육과정의 새로운 문화교육과정으로의 전면 개편 및 주체적 학문정책의 수립과 학교 운영의 민주화, (2) 평생교육 차원에서 전국적인 학습지원 네트워크 확충과 전 국민 대상의 ‘교육보험’ 도입을 골간으로 하는 교육재정의 확대와 교육과정의 자율적 편성 및 선택권 확장 등이 될 것이다.(후자의 문제에 향후 노동운동의 사활이 걸려 있다)
  교육문제는 이제 부동산 문제와 더불어 국민적 2대 불안의 핵으로 부각되어 있다. 대학입시폐지는 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천만 청소년-학부모들을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하고, 국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는 수도권 집중 억제와 대학 특성화 및 대학 본연의 연구교육기능의 활성화를 촉진할 것이고, 평생교육권의 확대는 전 국민에게 지적-문화적 역능의 향상을 촉진할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들이 이런 대안을 모른 채 현재의 고통을 대세로 감수하고 있다는 데에, 그리고 교육운동이 이 문제를 전면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채, 정부의 “조삼모사” 전술에 휘둘려 소극적-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런 한계를 넘어 일관된 중장기 전략(입시폐지와 평생교육권 요구)을 전면화하여 신자유주의의 일관된 전략에 맞불을 놓고, 범정부적인 조사모사 전술에 대응하여 범사회운동적인 입체적 전술을 적극적으로 구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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