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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하얀 거탑’의 이데올로기 호명

ㅣ 진보교육연구소 교육문화분과


장준혁에 대한 동병상련

MBC 드라마 하얀거탑이 남성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우선 주말저녁이라 시청이 가능한 시간대라는 점과 멜로와 혼외정사가 필수인 한국형 드라마에서 소외된 남성독자들에게 전문직 드라마라는 신선한 소재가 상승작용을 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주인공 장준혁의 비열하고도 처절한 노력이 현대 경쟁사회의 주역이요 희생자인 직장인 세대에게 동병상련을 겪게 만든 요소일 것이다.


선출은 지저분하다?

드라마 전반부,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과정을 보고 교장선출보직제와 연결지어 설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스토리가 점입가경있다. 과장선출을 둘러싼 비리와 인간적 갈등이 심각한 상태였고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가 오히려 인격적으로 성숙했고 내부 인사가 더 문제가 많은 것으로 결말 지워지면서 돈과 높은 지위가 엮이면 형식적 민주주의도 무너지게 마련이라고 역설당했다. 괜히 어설프게 교장선출보직제와 연결하여 전교조 정책을 소개하려다가 뒤통수 맞을 뻔했다.  

일본판과 차이 그러나 결정적 차이

아는 사람은 알테지만, 하얀거탑은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리메이크하다보니 비현실적인 측면도 있다. 국립대학 병원 과장 직책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이나 의대중퇴여성이 고급술집마담이 되는 설정 등은 우리나라 현실과 다르다. 대부분 줄거리와 배우 캐릭터가 유사하지만 그래도 미묘하게 다른 점도 많다. 딱지붙이기 뭐하지만 도덕과 양심보다는 성공과 경쟁, 효율성으로 장준혁을 우파로 신화화시켰고 성공과 경쟁, 효율성보다는 도덕과 양심으로 최도영은 좌파로 신화화시켰다고 거칠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일본판 드라마에는 두 의사간 캐릭터 차이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일본판

그림 1 유태인 수용소 둘려보며 설명을 듣는 자이젠일본판의 자이젠과 한국판의 장준혁은 둘 다 빈농출신으로 고학으로 의대에 입학한다.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고 돈으로, 지위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쉽게 행한다. 자리에 오르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도 마다한다. 한국판에서는 제주도에서 세계외과학회 회의가 있었지만 일본판에서는 폴란드였다. 폴란드에 간 자이젠은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유태인수용소를 돌아보게 된다. 난데없이 학살수용소라니 그것도 드라마에서. 우리 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는 생경스런 모습이다. 나치스가 유태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한 사실 등이 화면에 펼쳐진다. 어떻게 인간을 상대로 이처럼 극악한 짓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의사가... 자이젠은 분노를 느낀다. 참으로 미묘한 장면이었다. 일본드라마에서 유태인 학살에 대한 장면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는 한국인의 심정은 참으로 미묘하다. 평화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 감정일 것이다. 731부대 등 중국인/한국인들에게 생체실험을 자행했고, 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준 제국주의에 대해 작가는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단순히 민족간 갈등이 아닌 인간성에 대한 성찰과 회복을 메시지로 던진다.

비열한 장준혁에게 더 많은 애정을 보내는 한국 사회

장준혁에게 이와 같은 성찰적 태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장준혁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장준혁이 담도암에 걸리자 시청자 게시판에서 외쳤다. “장준혁을 살려내라”고. 왜 사람들은 비열하고 지독한 장준혁에게 애정을 느끼는가? 그 바탕에는 극한경쟁을 견디며 살아내는 현대인의 동병상련과 대리만족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눈에 투영된 병원이란 조직사회는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과 다르지 않다. 자신도 성공을 위해 순수했던 대학시절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태연히 하고 있다. 나도 장준혁도 성공을 위해 나쁜 짓도 했지만 불가피했던 것이고,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올랐느냐 못 올랐느냐이다. 장준혁은 성공했다. 그러니까 살아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장준혁은 드라마를 보고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를 주체로서 호명한 것이다.

착하기만 한 최도영(이선균), 제도개선 대안제시 사토미
연구를 중시하고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부분은 일본판과 같다. 하지만 한국판의 최도영은 착하기만 한 양심적 의사로서 부각될 뿐이다. 시민운동적 수준의 개량파 의사이다. 이에 반해 일본판의 사토미는 좌파스럽다. 국립병원에서도 마지막 영면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호스피스제도를 주장한다. 또한 증언 때문에 나니와 국립대 병원에서 사실상 짤려 옮긴 병원은 과 합동 진찰을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호스피스제도를 함께 운영한다. 한 환자를 두고 내과의사와 외과의사가 동시에 협력 속에서 진찰을 하고 의견을 종합하여 진단을 내린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축을 벌이고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병원과 달리 서로 협력하고 함께 나누는 일터다. 그러나 대학병원에서는 환자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즉시 퇴원해야한다. 이에 사토미는 강하게 문제제기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일본판의 사토미는 의료의 공공성를 주장하지만 한국판의 최도영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양심적이고 착한 의사일 뿐이다. 또한 large善은 이기는 자가 누리는 덕목이다. 최도영의 선은 small善에 불과하다.


교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교장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손비비고, 점수따기 위해 수업을 등한히 해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대를 졸업하고 누구나 그렇듯 장학사가 되고 국가의 충직한 대리자가 되었어도 면죄부를 받는다. 아니면 교장자리 신경 안 쓰는 교사라면 착하고 양심적인 교사가 되라. 촌지받지 말고, 내부비리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만 제도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에는 관여하지 말라는 의미다. 교실에서 착한 교사가 되는 것도 얼마나 눈물겹게 어려운 일인가? 교실을 벗어나 아스팔트에 있어서는 안 된다. 제도를 바꾸는 몫은 감히 교사가 할 일이 아니다. 착한 최도영도 그렇지 않은가? 짝퉁진보가, 자본이, 국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착한 교사가 되어라, 하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는 메시지이다.

동시에 최도영은 비현실적 캐릭터라고 비난받는다.

세상에 최도영처럼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며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있다하더라도 인생을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혼자 깨끗하고 잘났다. 하얀거탑은 최도영으로 상징되는 착한 의사, 양심적 의사가 경쟁적 조직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고난을 자초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87체제와의 숭고한 작별을 고할 때는 한참 지났다는 암시를 준다. ‘얻는 것도 없이 더 이상 불편하게 살지 마라.’ 게다가 최도영은 늘 연구비에 목말라하면서 연구에 몰두하지만 어쩌다 생긴 기회는 포기해버린다. 그놈의 양심 때문에. (일본판에서 사토미는 연구결과를 인정받아 엄청난 연구비 지원을 받게 된다. 미묘한 이미지 차이다.)

국립대 법인화가 등장하는 일본판
나니와 국립대학 부속병원은 일본 최대의 암센터를 세운다. 외과과장 자이젠은 신임 암센터장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장면에서 일본판은 국립대 법인화의 결과로 암센터를 짓게 된다고 설명한다. 왜냐 하면 부속병원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더 큰 병원,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병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인화가 되면 국가에서 직접 교부되는 돈이 사라진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병원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의료의 공공성을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의 환자들도 걱정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립대 병원도 법인화되면 안 되는데 하고 말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법인화가 되어 있다고 한다. 참 빠른 놈들이다. 드라마는 일본판이 빠른데 국립대부속병원 법인화는 우리가 더 빠르다니.....

한국은행의 `2003년 산업연관표(실측표)'에 따르면 민간소비지출에서 교육 및 보건 부문 지출비중은 1995년 10.8%에서 2000년 12.3%에 이어 2003년에는 14.9%로 높아졌다. 이는 일본(2000년 기준)의 7.5%에 비해 거의 배 수준이다.-2007. 3. 8.연합뉴스
교육비와 병원비 지출비중이 일본의 2배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공공성은 극악한 수준이다. 드라마처럼 말이다. 게다가 민중진영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립대법인화가 추진 중이다.
국립대 법인화는 국립대학을 사립학교 아류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국가에서 보조는 계속하겠지만(사립도 보조받는다) 재정은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수익사업도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국립대도 사립학교와 같은 기업이 되어가는 것이다. 기업의 최대목표는 최대이윤 확보, 사립학교로 보자면 이월금 최대화이다. 500만원이 넘은 등록금이 등장하고 있다. 안 그래도 등록금문제로 대학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대학생 학부모 자살은 우리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 자식의 처절한 심정에는 못 미치겠지만.......
국립대 특별법은 국립대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총ㆍ학장 선출은 총ㆍ학장선출위원회를 통한 간선제로 바뀐다. 선출위원회에서 2~3인의 후보자를 뽑아 이사회에 제출하면 이사회가 1인을 선임한다. 총ㆍ학장의 임기는 4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 교무회의와 교수회 중심이었던 의사결정 구조도 학내외 인사가 참여하는 이사회 중심으로 바뀐다. 이사회는 정부 추천 2인(교육부, 기획예산처)을 비롯해 법인 소재 광역자치단체장 또는 단체장 추천 1인, 총동창회장 또는 동창회장 추천 1인, 산업계ㆍ경제계 인사 등 학내외 인사 15인 이내로 구성된다. 전환 이후 교직원연금은 공무원연금이 아닌 사학연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소관의 국유재산, 공유재산 및 물품은 대학법인에 무상으로 양여하기로 했으며 대학법인은 교육ㆍ연구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는 특별법을 9일부터 29일까지 20일간 입법예고한 뒤 다음달 말께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2009년 3월 개교하는 울산과학기술대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서울대, 인천시립대 등 5개 대학을 법인화한다는 계획이다.(연합뉴스 발췌 2007. 3. 8)

우리는 장준혁vs 최도영 구도를 넘어서야

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짝퉁민주주의가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이제 마지막 남은 이미지는 ‘무능’이다. 87체제 20년의 마지막 대미를 ‘무능’으로 정리한 그들은 최도영같다. 문제는 진보진영을 노무현 그룹과 민중진영을 항꾼에 묶어서 무능과 비현실로 고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장준혁이기를 거부할 바에는 최도영에 머물라고 호명하지만

진정한 좌파의사라면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조직을 만들고 구조를 바꾸기 위해 부단한 실천을 행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불러오는 의료의 사유화에 거침없이 맞장을 뜰 진정한 좌파의사가 드라마에 등장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장준혁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성실한 당신 열심히 살았다고 면죄부와 동병상련을 보내는 이때에 한국드라마에서 묘사하기를 포기한 진짜 좌파, 진짜 진보의 분발이 요구되는 것이 어쩌면 불리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얀거탑 효과에 대해 조합원들과 심층적으로 대화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소주 한잔 마시며 술자리 구석에 있던 평소 말없던 조합원이 한마디 할 거 같다.

‘장준혁을 인간적으로만 용서한거예요. 인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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