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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의 밸런타인데이와 어린이들의 ‘검은 눈물’

여울 l 특수교사

문득 출근하자마자 교장수녀의 호출이 있었지만, 짐짓 호출의 원인으로 짚이는 것이 없었다. 교장실에 다녀온 나는 자못 놀랐다. 직접 만든 초콜릿이다. 초콜릿·포장·리본 모두를 직접 만들었으니, 최소 1주일 이상 이 자그마한 초콜릿 몇 알과 포장지와 리본에 열과 성을 다했으리라고 생각해 보라…… 어느 누가 과연 놀라움과 감동을 피할 수가 있겠는가? 교장수녀가 밸런타인데이를 기점으로 해서 몇몇 사람에게 포섭전술을 쓰는 것으로 보였다. 교장수녀와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는 사실을 감지했던 나는, 무한한 사랑과 애정의 뜻으로 화이트데이에도 직접 사탕을 만들어 주겠다는 교장수녀의 극진한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장수녀를 학생으로 삼아서 장황한 교양을 시작했다.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이렇다. 가난하고 병든 민초들에게 끝없는 희생과 헌신을 거듭했던 로마시대 가톨릭 신부 밸런타인이 민초들의 광범위하고 전폭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게 된다. 이에 정치적 위협감을 느낀 지배세력들에 의해서 누명을 쓰게 된 밸런타인은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감옥에 갇히게 되자 소외받고 억울한 이들을 위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지배세력의 정치적 손익계산과 위협감이 극에 달하는 시점에서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가 처형당한 날이 바로 서양력을 기준으로 2월 14일이었던 것이다.

밸런타인 신부를 신뢰하고 존중했던 광범위한 민중들은 로마 지배세력들의 탄압을 피하면서도 그를 추모할 수 있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생각해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기일인 2월 14일을 전후로 하여 그가 했던 휴머니즘적인 언행을 그대로 따라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받고 억울한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에 대응하여 지배세력들은 이러한 자생적인 ‘편지쓰기운동’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2월 14일 전후 관제행사 수준으로 남녀들의 연애이벤트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후일 영국의 지배세력도 이러한 밸런타인데이의 정신을 거세 소멸시키기 위해서 2월 14일을 전후해서 대대적인 연애관련의 이벤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편지쓰기‘운동정신’의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로마·영국 등 지배세력들의 이데올로기 조작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는 일본에서 상술(혹은 이윤추구)과 결합하기 시작해서 초콜릿으로 사탕으로 빼빼로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밸런타인 신부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휴머니즘과 참사랑이 참혹하게 완패하고, 로마·영국·일본의 지배세력들의 이데올로기 조작이 완승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적 교양이 일천한 대중들이 보여주는 사고와 행동은 분명 밸런타인에게 패배를 선언하고 있으며, 지배세력과 자본의 손을 높이 번쩍 들어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일견 완패한 듯이도 보이는 밸런타인 신부에게는 ‘인간의 모습을 한 새로운 대안의 교육과 사회’를 향해 희생과 헌신을 거듭하는 우리가 있다. 끝끝내 휴머니즘을 버리지 않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밸런타인 신부와 로마·영국·일본 지배질서와의 1000년을 넘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말하는 것이 역사의 공정한 심판이라고 하겠다.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전쟁의 끝을 내고야 말 것이다.

교장실을 나오는데 아침부터 어려운(?) 교양을 받은 교장수녀의 얼굴이 똥씹은 표정으로 굳어져 있었다. 명색이 평생을 수녀로 살아 온 사람인데, 가톨릭 사제의 이야기를 민간인으로부터 들었으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쩝~쩝~ 나란 놈은 왜 이렇게 땔나무꾼 장작 패듯이 사납고 우악스러운지 모르겠다. 그 엄청난 공력을 들인 초콜릿을 받으면서도 된통 염장질을 해주고 나왔으니 말이다. “저놈은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고 할 것이 99%가 아닌 100% 뻔하다. 아무튼 교장수녀가 밸런타인데이를 기점으로 해서 몇몇 사람에게 구사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전략적 포섭전술…… 나에게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그녀의 노고와 정성에 대해서는 심히 미안하니 내일이나 모래 쯤 고급제과점의 사탕을 몇 알 가져다주면서 적당히 구슬려줘야겠다. 선물이나 돈 등의 눈에 보이는 증표에 약한 것이 세상 인심이니 말이다.

카카오의 채취에서부터 초기가공까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유소년노동력을 심각하게 착취하여 만들어진다는 초콜릿! 그리하여 ‘검은 눈물’로 불리기도 한다는 초콜릿이, 그 어린이들의 아프디 아픈 눈물과는 무관하게도 내 입 안에서는 그리고 내 혀 위에서는 연예감정을 만들어주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만들어 주는 연예감정의 몽상만큼이나 달고 달게 ‘카카오’가 녹고 있다. 한 유전자와의 종족번식활동이 대충 완료되는 1~3년 동안만 ‘몽상의 달콤함’에 값하는 수준의 연예감정을 선사한다는 ‘도파민’이라는 신경계물질을 떠올리는 밸런타인데이가 엉뚱하기 이를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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