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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현장르뽀] 진리는 없고 돈만 남은 대학

2007.09.22 17:24

진보교육 조회 수:1666

[현장르뽀] 진리는 없고 돈만 남은 대학

나지현 (고려대학교 사범대 학생회장)

대학의 기업화

“CEO형 총장”. 요즘 잘나간다는 대학의 총장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은 신자유주의에 편승하여 점점 기업화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학교의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고려대학교의 경우, 2002년 이후로 단 하루도 학내에서 공사가 멈춘 적이 없다. LG-포스코관과 백주년기념관을 비롯한 건물들이 신축되었고 지금은 동원 리더쉽센터가 시공 중에 있다. 그러나 신축 건물들의 대부분은 대기업의 후원금으로 지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백주년 기념관은 삼성관이라 하여, 삼성이 기부한 400억 원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리고 이런 대가로 학교 당국은 매년 2월마다 기업들과 “수요자 포럼”을 열어 교육 커리큘럼에 대한 기업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왔다. 기업(수요자)이 원하는 인재(상품)를 대학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취지다. 그 결과, 전공강의의 50%를 영어 강의로 진행하고 이수하는 것이 의무가 됐고 한자자격증, 이중전공 의무화가 졸업조건이 되었다. 또한 장사가 되지 않는 학과는 폐지되고, ‘LG 특론’, ‘삼성말레이시아 현지화 전략’ 같은 수업들이 개설되고 있다. 기업에 알맞은 인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삼성재단의 성균관대는 철저히 삼성의 이미지 홍보와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내 식당을 삼성 에버랜드가 운영하고, 삼성재단을 홍보하는 ‘삼성CEO강좌’와 같은 수업을 개설했다. 또한 산학협동이나 의학, 법학, 경제경영, 공학과 같은 학문에만 집중 투자를 하고 있어 학문간 불균등성도 계속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대학 통제가 강화되면서 점점 학문이 설자리를 좁게 만들고 있고, 학생들의 학문탐구의 자유를 짓밟고 있다. 기부금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학생들과 논의하여 공간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일방적으로 공간배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실제로 백주년 기념관과 LG-포스코관의 강의실은 학생들에게 대여가 되지 않는다. 또한 건물들이 새로 지어지면서 기존의 학생 자치 공간은 빼앗겼다. 풍물패의 연습공간을 빼앗기거나 과실이 없어지는 등의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또한 영어강의 의무화로 한국사나 동양철학 수업을 영어로 들어야 한다거나 토익 공부를 위해 휴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이중전공 의무화로 계절학기를 필수로 듣지 않으면 4년 졸업이 힘든 상황이 되었다.

대학의 상업화
대학의 기업화와 더불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상업화다. 고려대학교는 요 몇 년 사이 학내에 많은 상업시설들을 들여왔다. 패스트 푸드점, 술을 파는 음식점, 스타벅스, 던킨 도너츠, 피자집, 피씨방, 당구장까지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이 상업시설 이용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없다. 학내에서 판다고 해서 학교 밖보다 더 싼 것도 아니다. 가게의 임대료가 비싸서 오히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곳도 있다. 이 비싼 임대료가 학교의 주머니로 들어가지만, 등록금은 매년 10%가까이 인상된다. 그리고 1,600억 원에 달하는 이월적립금이 주식투자에 이용된다는 의혹도 있었다. 이월적립금의 사용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를 합법화하는 것이 바로 사립학교법이다. 새로이 통과된 사립학교법은 대학의 상업활동을 합법화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이 적기 때문에 학교의 시설유치 및 등록금의 높은 인상을 막기 위하여 인정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서강대는 국내 최초로 삼성 계열 대형할인점의 캠퍼스 입점을 검토 중이다. 기업이 새 건물을 지어주는 대가로 할인점 영업권을 주는 방식이 유력하다. 부산대도 체육관을 허물고 삼성중공업을 시공사로 쇼핑몰을 건설 중이다. 건국대는 4년 전부터 캠퍼스 내 야구장 부지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었다(경향신문 2007년 7월 1일자).
  그리고 대학들의 노골적인 장사치 기질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등록금에 관한 인식이다. 어윤대 전 총장은 등록금이 1,500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서울대 총장도 등록금을 1000만원까지 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확한 예산도 짜지 않고, 재단전입금은 쥐꼬리만한데, 등록금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 등록금은 모두 학생들에게 쓰이지 않고 재단의 배를 불리는 역할만 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들은 돈을 어떻게 벌까를 골몰하고, 교육환경 개선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학들의 상업 활동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은 매년 물가인상률의 2~3배씩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교수의 수가 부족해서 1~2백 명이 빽빽이 앉아 강의를 들어야 하는 대형 강의가 숱하다. 심지어는 교수연구실이 부족해서 수업준비가 제대로 안 되는 곳도 있다. 이렇게 점점 기업화 ․ 상업화되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설 자리는 없어지고 있다. 돈이 없는 학생은 더욱더 공부하기가 힘들어지고, 기초학문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더욱더 공부하기가 힘들어지는 대학이 되어가고 있다. “진리의 상아탑”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대학생들과 함께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대학의 상업 활동을 합법화하는 사립학교법에 반대하고, 학생들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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