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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현장 스케치] 따르릉 종주기

2008.10.06 20:29

진보교육 조회 수:1512

따르릉 종주기

박오철 ∥ 전남 화순중

사람은 왜 희망하는가? 현실의 힘듦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할 때, 더 나은 삶을 갈구할 때 사람은 희망한다. 희망은 아직 이뤄지지 않는 미래요,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내일을 향해 쏘아 올리는 꿈의 우주선이다.


1. 어디론가 길을 달려간다는 것은 희망을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희망의 페달을 밟았다. 8박 9일 동안 장장 850km의 거리를 입시폐지, 대학 평준화의 희망을 안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 땡볕 무더위 속에서 페달을 밟았다. 가끔 폭우를 뚫으며 페달을 밟았다. 목구멍까지 차올라 헉헉대는 숨을 견디며 바퀴를 굴린다. 팽팽해진 장딴지, 허벅지 근육의 터질듯 한 긴장을 느끼며 발판에 힘을 준다. 이렇게 한 고비씩 넘기고 또 한 언덕씩을 넘어 내달린 그 긴 여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수많은 마을과 도시들을 지나갔다.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수많은 도로 위를 달렸다. 그 굽이굽이 마다에 그 사람들 마음마다에 입시폐지-대학평균화의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여기선 집회로, 저기선 기자회견으로, 간담회로, 거리행진으로, 내달리며 흥얼거리는 노래로, 몸자보로,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로 입시폐지- 대학 평준화 희망의 홀씨를 온 대지에 뿌렸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희망을 만들기 위해 내달리며 거쳤던 도시마다, 지났던 마을마다, 멈추었던 쉼터마다, 들러서 밥 먹고 잠잤던 곳곳마다에 흘린 땀방울과 가쁜 숨소리, 힘찬 맥박소리로 남긴 A코스 종주단의 희망여정의 흔적이다.


2. 목포에서 탄생한 외인구단 A코스 종주단...
옛날 이런 만화가 있었지? 외인구단. 목포에서 만난 A코스 종주단은 만화속 외인구단 같다. 서울에서 오신 김태선 선생님, 촛불 부상병 김성준 선생님, 아수나로 회원인 정창호, 박고형준, 고1 김동원, 임준석, 나와 내 아들 중2 박찬얼, 나중에 화순에서 함께 종주를 시작한 내 직장동료 박철규 선생과 그의아들 고3 박종관, 그리고 박철규선생님의 친구 아들 중3 김송빈, 마지막으로 순천에서 합류한 신선식 선생님이 종주단의 멤버다. 4명의 교사, 두 명의 청년, 2명의 실업계 고등학생, 중학교 2년생, 이렇게 A코스 종주단은 꾸려졌다.
외인 구단의 멤버들이 외인구단에 오게 된 삶의 배경은 각양각색이지만 야구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A코스 종주단의 종주 참여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통점은 교육모순을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가장 크게 느끼며 고통받는 영혼들이란 점이다. 고3교사 김태선, 고3 아빠 촛불 다리 부상병 김성준 교사와 박철규 교사, 학교생활을 무척 힘들어하는 내 아들과 나, 힘든 입시지옥을 벗어나 실업계에 진학 두 고등학생, 입시지옥의 한 가운데를 잠시 비껴있는 고3 학생, 학생인권문제를 처절하게 체험한 아수나로 두 청년 활동가....급조된 환상의 팀 A코스 종주단은 이렇게 탄생했다. 자전거를 타기위해서, 부자간의 관계를 치유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으려고 참여한 사람, 고난의 행군을 통해 인내심과 공부 의욕을 고취하고자 참여한 사람, 입지 지옥 철폐와 학생 인권 신장을 외치려 참여한 사람, 운동에 대한 결단과 반성적 성찰을 위해 참여한 사람 등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실존적 현실은 달랐다. 이들의 실존적 현실이 각기 다르다는 뿐만 아니라 이들 대부분이 입시철폐 대학 평준화운동에서 주변적 존재들이라는 점이 외인구단의 모습이 흡사하지 않는가?


3. 목포에서 서울까지 희망을 일군 사람들


출발의 날, 전국 종주의 첫날 긴장감이 감돈다. 몸자보 입고 자전거에 깃발 달았다. 대학입시철폐, 대학평준화, 글씨가 씌인 몸자보를 입는 순간 긴 여정의 출발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보자. 나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운동에 대한 결단과 반성적 성찰을 해보겠다던 마음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미친 교육폐기, 2MB out이라는 문구에 온통 사로잡혀 버렸다. 책임감이 느껴졌다. 땡볕무더위에 이 기나긴 여정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기자 회견을 끝내고 우리는 드디어 먼 길을 출발했다.
목포를 출발해 광주, 순천, 남원, 전주, 대전, 홍성, 천안, 부천, 서울까지 달리는 동안 길 위에는, 광장에는, 쉼터에는, 또 숙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사람들, 간담회에 나온 사람들, 촛불문화제에 나온 사람들, 자전거를 함께 타러 나온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안전을 확보하기위해 차를 몰고 나선 사람들, 사진을 찍으려고 가케라들 들쳐 메고 나온 사람들, 이 사람들은 함께 입시철폐 대학평준화의 몸자보를 입고 깃발을 달고 하나 되어 지역과 지역을 잇고 도시와 도시를 잇고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입시철폐 대학평준화를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 사람들이 속한 단체도 각기 달랐다. 지역 민주단체 사람들, 민주노총사람들, 농민회사람들, 공무원노조사람들, 진보 연대 사람들, 민노당 사람들, 진보 신당사람들, 참교육학부모회사람들, 평등실현 학부모회사람들, 전교조 사람들, 아수나로 청소년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 노동자의 힘 사람들, 이들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단체와 단체를 잇고 지역과 도시를 이으며 운동의 흐름과 물결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운동의 집을 짓기 위해 기초를 닦아 나갔다. 특히나 경기도 의왕시 모락산 지역공부방 초등학생, 중학생, 선생님, 자전거 선생님의 참여는 이 운동의 지평을 한껏 높여주었고 이 운동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까지 나아가야 할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때 맞춰 물주고, 간식주고, 밥 주고, 잠재워주며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었던 사람들의 배려는 눈물겨웠다. 위험한 도로에서 교통을 정리하고 도로안전을 확보해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서울까지 무사한 종주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동지들의 피 같은 돈으로 먹고 자고 할 때마다 죄스런 마음이 가득했다. 너무 호강하고 다닌 건 아니었는지 혹시나 결례를 범하지 않았는지 옷깃이 여며진다. 모두 다 가슴 가득 고마운 사람들이다. 특히나 일제고사를 저지하기위해 단식투쟁을 벌이던 부천 중등지회 동지들을 만났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대접받고 있다는 죄스러움이 있었는데 방학을 반납하고 교육청에서 철야농성 투쟁을 하는 동지들 앞에서는 우리의 고생이 무색했다.
부천에서 서울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9일 동안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구나. 시원하고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한강 마포대교를 넘으며 시원한 강바람에 9일 동안의 피로와 힘들었던 기억들을 말끔히 날렸다. 한강 그 강바람에, 들판을 지날 때 우릴 맞아주던 들 바람에, 숲과 계곡을 타고 내리는 서늘한 산바람에, 가끔 더위를 말끔히 씻어 내려준 비바람에, 우리마음 속에 일어나는 희망의 산들바람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운동의 씨앗을 훨훨 날려 보냈다. 멀리 곳곳으로 퍼져나가 큰 바람으로 일어나길 염원하며.......


4. 9일간이 남긴 것
이번 두 번째 입시철폐 대학평준화 전국 자전거 대행진은 한 개인의 결단에서 시작한 첫 번째와 달리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한 첫 해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두 번째는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논의하면서 운동의 지평 확장되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직후라 준비할 시간이 중분치 않아 체계적으로 일이 추진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국본의 범위를 넘어서 많은 단체들로 외연이 확대되었다. 무엇보다도 교육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운동이 중심의제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참학 내에서도 미묘한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 운동이 주요 의제로 자리 잡고 중심과제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이 운동이 사회적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도 많았다. 국민운동본부에 아직 국민이 많지 않았다.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할 주체들도 이 운동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아직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이 운동을 교육 대안 운동으로 발전시킬 경로가 분명히 제시되지 못한 점, 이 운동을 일상적인 자기운동으로 전개할 주체들을 생산해 내는 문제, 운동내부의 좌파적 운동으로 고착될 위험을 넘어서 말 그대로 교육주체를 중심으로 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킬 전략의 구축, 운동방식에서 회원과 운동 주체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 방학 이벤트를 넘어서 일상운동, 지역운동, 연대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고상을 구체화하는 문제 들이 입시폐지 대학 평준화 운동이 직면한 문제 지점인 것 같다.
자전거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세워진 현 단계 자본주의 사회의의 주요 이동 수단인 자동차를 대체할 대안이다. 그래서 자전거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의 운동수단으로 등장했는지 모른다. 입시폐지 대학 평준화 운동은 교육노동운동의 자전거이다. 신자유주의 시장화가 정점을 향해 치달아 가는 현 시점에 역으로 우리는 신자유주의 가장 가파른 막바지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고갯길을 오르며 깨달음을 얻었다.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는 방법, 삶의 고갯길, 운동의 고갯길... 가파른 고갯길에서 동지들이여 명심할지어다.


1)멀리보지 마라.
오르막길을 오르거든 멀리보지 마라. 눈앞에 펼쳐진 긴 고통을 즐거워할 자 누가 있겠는가? 눈은 게으르고 발은 부지런하니 눈앞 고통을 조금씩 가다 보면 어느새 고갯마루에 닿는다. 인생도 운동도 그런 법……. 힘 안 드는 평탄한 길이 있으면 숨이 막혀 곧 쓰러질 것은 같은 고갯길도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내리막은 또 반드시 끝이니........


2. 단을 낮춰라
단을 낮추고 발을 부지런히 돌려라. 높은 단으로 욕심 사납게 고갯길을 빨리 통과하려했다간 먼 길을 갈 수 없다. 그러면 근육이 경직되고 체력이 빨리 소모되느니 욕심과 성급함을 버리고 겸손과 성찰을 배우거라.


3.경쟁심을 버려라.
고갯길 저 멀리 달려가는 동료를 보면 뒤쳐진 내가 또 보인다. 난 언제 저기까지 가지. 경쟁심을 가지면 마음이 불안하고 달리는 페이스를 잃어 몸에 힘이 빠지고 빨리 지친다. 나 홀로 내 길을 가라. 무리하지마라.


4.자주 쉬지 마라.
리듬을 잃게 된다. 또 감각을 잃게 된다. 또 적응력을 잃게 된다. 우리 몸의 각 기관은 자전거 달리는 속도에 맞춰 작동되고 있는데 자주 쉬게 되면 몸이 다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그럴 때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5. 곧 내리막길이라는 희망을 가져라.
희망이 없으면 누가 어려움을 극복하겠는가? 언덕을 오를 때 그 힘든 상황은 언덕 마루에 닿으면 끝이란 희망이 있기에 자전거 페달을 쉼 없이 밟을 수 있다. 이제 신자유주의 막바지 가파른 고갯길을 우린 오르고 있다. 힘차게 페달을 밟자. 바로 저기가 언덕마루다. 이제 시원한 내리막길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힘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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