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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 변호사>와 <미스 함무라비> 사이

타라 (진보교육연구소 문화연구분과)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가 호황이다. 얼마 전에 종영한 사기꾼과 검사 이야기 ‘스위치-세상을 바꿔라’(SBS)부터 미국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최고 로펌 변호사 이야기 ‘슈츠’(KBS), 법의학자와 검사를 내세운 '검법남녀‘(MBC), 판사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미스 함무라비’(JTBC), 법으로 싸우는 변호사의 활극 '무법 변호사’(tvN)까지 다양한 법조 드라마가 유행이다. 멜로와 환타지 사극이 주를 이루던 브라운관에 법조계를 정면으로 다루는 장르 드라마가 전면적으로 들어온 형국이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법정 드라마가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혹자의 말처럼 출생의 비밀과 불륜 등 뻔한 멜로에 식상한 시청자들이 미드류의 치밀한 서사에 끌리기 때문인가? 아니면 온갖 내밀한 공간을 훓고 있는 TV드라마의 관음증적 시선이 국가 통치 기구 내부에까지 도달한 것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연호하며 촛불혁명을 이룬 시민들은 그들의 권한을 법(정)에 의탁했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 심판과 국정농단 재판이 단행된 ‘법정’을 주시했다. 더 나아가 사법 부당 거래 등 법비와 법꾸라지의 오랜 비리와 적폐가 켜켜이 쌓여있는 법조계를 사법 정의로 일소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른다. 이 간절한 바램들이 법정 드라마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은유적으로 에둘러 말하기보다는 날 것 그대로 직선적인 발화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대사가 터질 때마다 시청자들은 속이 후련하다.

그 대표적인 드라마가 <무법 변호사>와 <미스 함무라비>이다. 이들이 법정을 다루는 방식은 대조적이다. 법조계 커넥션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차문숙 판사가 등장하는 <무법변호사>에서 법정은 선과 악이 맞붙는 심판장이다. 오랜 세월 악이 똬리를 틀고 있던 재판대는 억압적 권력 장치의 현현이다. 영화 <허스토리>에서 관부재판이 벌어지던 무겁고 어두운 일본 법정을 연상시킨다. 근엄한 표정의 판사들이 부조처럼 앉아있는 그곳은 냉혹한 국가 통치기구가 개인에게 법을 집행하는 곳이다.

이에 반해 <미스 함무라비>에 등장하는 법정은 온화하고 공동체적이다. 민사소송이라는 사안의 특성과 함께 민사합의 44부를 구성하는 세 판사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법정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여기서 법정은 심판의 장이라기보다는 문제 해결과 합의(단지 조정이 아니라)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판관 앞에 둘러서서 당사자들 간의 이야기를 듣고 시시비비를 가리던 마당이자 공론장이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공동체의 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라며 솔로몬의 현명한 판결을 고대한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대조적인 법정의 두 모습은 법, 법관, 법정에 대한 사람들의 양가적인 감정을 반영한다. 사안의 공/사적 특성과 경중에 따라 그리고 각자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 우리들은 양 극단의 법의 모습 중 하나를 호출한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법정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무법 변호사>에서 <미스 함무라비>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깊어짐을 의미한다.

법은 사람들의 일상을 옥죄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면, 법은 사람들이 공적체계를 형성, 보존하기 위해 약속하고 약속을 지키는 미덕을 통해 구성된 일종의 제도적 장치이다. 곧 법은 안정된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틀이다. 따라서 법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들의 합의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법은 정의를 그 준거로 삼지만 그렇다고 법이 곧 정의는 아니다. <무법 변호사>와 <미스 함무라비>는 법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전환과 확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으로 싸우다

<무법(武法)변호사>는 가상의 도시 '기성(綺城)'을 배경으로 한다. 기성은 말 그대로 비단으로 지어진 화려한 성이다. 번듯한 외형이 폐쇄적이고 부패한 내부를 은폐하고 있는 형국이다. 드라마는 법 대신 주먹을 쓰던 무법(無法) 변호사 봉상필이 인권변호사였던 어머니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18년의 절치부심 끝에 기성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거대한 권력 차문숙 판사에 맞서 싸우며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진정한 무법(武法) 변호사가 된다.

 

 

기성에는 판사(검사장), 검사, 언론(주필), 변호사(향변)들이 모두 결탁한 ‘7인회’라는 거대한 커넥션이 있고, 차문숙 판사는 그 정점에 위치한다. 기성시는 헬조선을, 차문숙은 박근혜를, 그리고 차문숙의 시종 역할을 하는 남순자는 최순실을 빗대고 있다. 차문숙이 대법원장으로 영전하려던 본인의 야망이 물거품이 되려던 찰나 소주병 테러를 방임함으로써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다든지 기성시의 향판이었던 아버지 뒤를 이어 봉건 영주 같은 대우를 받는 등의 서사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내가 곧 이 도시의 법이자 정의”라고 말하는 차문숙에 맞서 싸우는 봉상필은 그야말로 무협지 활극의 주인공이다. 그는 10여명의 조폭들과 싸워도 끄떡없는 대단한 무술의 소유자이다. 실제로 빈번하게 벌어지는 활극 속에서 그는 어느 곳 하나 크게 부러지거나 다치지 않는다. 일지매를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를 돕는 조력자들은 모두 무법자들이다. 어린 그를 오랜 세월 안전하게 보살피며 키워준 외삼촌은 서울 강북 조직폭력배 ‘대웅파’의 두목이고, 상필을 보좌하는 광수도 대웅파의 일원이다.

게다가 봉상필이 기성시에 내려오자마자 사무실(어머니가 운영하던 변호사 사무소)과 함께 접수하여 ‘무법로펌’ 직원으로 삼은 이들도 기성의 사채업자 양아치들이다. 그들은 봉상필을 ‘큰 형님’이라 부르며 받든다. 그의 동료이자 연인인 하재이 역시 부당한 판결을 한 판사를 주먹으로 후려친 탓에 변호사 6개월 정직 상태인 사무장이다. 이른바 B급들의 모임이다. 애초에 그들은 법 세계의 건너편에서 법을 무시하고 살던 이들이다. 활극이 난무하는 그곳은 이른바 무법천지이다.

무법 세계의 보호 아래 성장한 변호사가 법의 세계로 돌아와 거대한 악에 대항하여 법으로 싸운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웹툰의 영웅서사이기도 하다. 봉상필은 웹툰의 액션 히어로이다. 그는 엄숙하고 진지하기보다는 재기발랄하고 다소 껄렁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 그가 외삼촌의 살해 현장을 목격하고 그 누명을 쓰면서 잠시 넋을 놓아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느 히어로답게 협조자인 연인 하재이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금세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한편, 일상성과 오락성이라는 유행코드의 결합은 무법로펌의 희화화된 조연들이 활약하는 법정 내 난투극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납치된 연인을 구해낸 봉상필은 (법정 내 난투극으로) 지연된 재판 시작 시간에 맞추어 법정에 등장하고, 드라마는 그 중간의 빈 부분을 우스꽝스러운 법정 내 소란 장면으로 채운다. 서사적인 개연성으로 볼 때 얼토당토 않은 이 장면이 인상적인 까닭은 근엄하고 고압적인 차문숙의 법정을 법정의 진짜 주인들이 한바탕 난장을 치며 비로소 그들의 공간으로 전유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퇴장과 구속으로 엄포를 놓으며 휴정을 선포하는 차문숙 판사를 향해 진실을 밝히라고 호통치며 벌떡 일어서는 보통 사람들의 단호한 몸짓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리라.

 

 

<무법 변호사>에서 법정은 선과 악이 겨루는 진검 승부의 장이다. 그리고 재판대는 거악이 심판받는 단두대이다. 거대한 악이 판사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고, 피고측 변호사가 선이 되어 겨루는 일합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보인다. 적대관계의 두 축은 판사와 피고측 변호사이고, 오히려 원고인 검사가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될수록 살인 교사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거악의 수족 자르기가 시작되고, 무법 변호사는 이 틈을 파고든다. 결국 최고 권력자 차문숙 판사는 본인 주재의 마지막 법정에서 추악한 민낯이 까발려지고, 이를 목도한 사람들에게 심판받는다. 그 결정적 증거는 악행의 시작을 담고 있는 18년 전 사진 한 장과 그가 도구(드라마엔선 ‘Dog’로 호명됨)로 부리다가 해치워버리려던 두 사람의 증언이다. 액션 히어로 봉상필은 이처럼 선과 악이 맞부딪히는 법정에서 법으로 거대한 악을 쳐부순다. 법이라는 단검으로 사법적폐를 처단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법으로 정의를 짓다

<미스 함무라비>는 민사법정과 판사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원작은 현직 판사이자 작가인 문유석의『함무라비』(문학동네, 2016)이다. 이 책은 2015년 5월부터 10개월간 <한겨레> 토요판 연재 소설을 묶은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변호사와 검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법정 드라마에 익숙한 코드는 거대한 음모와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이다. <비밀의 숲>(2017)에서는 뇌성엽 수술로 공감력과 감정을 상실해버린 황시목 검사가 권력층의 음모와 사건들을 파헤쳐가는데, 그 과정이 드라마의 주요 서사를 이룬다. 시청자들은 정교하게 제시되는 복선과 암시를 쫓아가며 범인을 추리하고 사건의 얼개를 그려본다. 이 때 등장하는 많은 법조인들은 복잡한 현실의 권력망에서 선과 악으로 가르기 어려운 다양한 포지션을 취한다. <피고인>, <파수꾼>, <귓속말> 등의 법정 드라마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미스 함무라비>는 0.1%에 불과한 강력 범죄 대신 누구나 실제로 겪을 법한 소소한 일상의 진짜 사건들과 그에 연루된 사람들의 고민을 다룬다. 생활밀착형 법정 드라마인 것이다. 드라마의 주 배경이 되는 민사합의 44부는 정의감과 젠더적 감성이 남다른 열혈판사 ‘박차오름’과 냉소적이고 원칙주의자인 엘리트 판사 ‘임바른’, 그리고 출세를 포기한 덕에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부장판사 ‘한세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특이한 이름은 인물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기표다. ‘박차오름’은 정의감과 감성이 벅차오름을 혹은 ‘옳음’에 대한 끈질진 고집을, ‘임바른’은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한편 재판의 바른 논리와 과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한세상’은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을 읊조리며 현실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가 하면 세상에 대한 넓고 깊은 통찰을 표출한다.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플롯과 눈물샘을 자극하여 종국에는 통곡하게 만드는 법정의 마무리 씬은 고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 함무라비>가 계몽적인 공익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 까닭은 드라마가 직장 내 성희롱, 내부고발, 의료사고 등 생생한 법정 사례들을 통해 법과 정의에 관해 성찰하도록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인 법 조항과 절차의 매끈함 속에서 정작 미끄러지는 정의, 곧 법과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에 관한 통찰력 있는 시선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근엄한 가르침이나 엄숙한 훈계조가 아닌 점도 미덕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주체적인 젊은 여성 판사를 통해 미투운동 등 최근의 젠더 의식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스 함무라비>는 부당함으로 얼룩진 한국 사회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가슴 털 부장 성희롱 재판 당시 결정적 진술을 했던 증인이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찍혀 억울한 해고를 당하고, 정작 가해자는 교묘하게 법과 사회적 책임을 피해간다. 그것도 해당 부서의 해체와 자회사 설립 등 회사가 주도한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말이다. 드라마는 정의롭기 위해선 걸어야 할 것이 많은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누구도 선뜻 정의를 권하기 어려운 현실 말이다. "악당으로 살기 참 쉬운 세상이다. 공범자가 득실거리니까. (정의의) 여신이 왜 눈을 가리고 있는지 알겠다. 사람들의 더러운 꼴을 보고 있으면 저 칼로 다 쓸어버리고 싶으니까" 박차오름의 분노에 찬 절규는 법은 늘 가진 자들의 것이었다는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법은 최소한의 정의라고 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법은 사회가 보호할 수 있는 정의의 최대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정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전자가 협의의 정의만을 법에 담고 있다면, 후자는 법으로부터 시작해서 폭넓은 정의가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미스 함무라비>는 이러한 상반된 견해를 ‘임바른’과 ‘박차오름’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제시한다.

 

임바른에게 세상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의 책상 옆 고야의 <성 이시드로 순례행렬>은 그가 염세주의자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법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더도 덜도 아닌 딱 법관이 할 수 있는 그 만큼만 하는 것이 법관이 지켜야 할 세상의 정의이자 질서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박차오름에게 세상은 이중섭의 <춤추는 가족>처럼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다수인 곳이다. 다만 제각기의 사정과 사연들이 그들을 비겁하고 각박하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법정에서 법관은 그들의 사정을 경청하고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그녀는 법(관)이란 모름지기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에 대한 비관과 낙관의 양 극단에 있던 두 인물의 생각은 둘 사이의 관계가 친밀해질수록 서로 섞이면서 조금씩 변화해간다.

박차오름은 재판을 거치며 섣부른 공감과 약자를 위한다는 선의만으론 공정성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불의에 대해 용기있는 행동으로 현실의 진창에 발 담그지 않고 빗겨가려는 임바른과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려는 한세상의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촉매자이다. 임바른의 내면 변화는 드라마 말미의 나레이션을 통해 드러난다. “법목을 입으면 사람의 표정은 지워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지워선 안 되는 거였는데, 보지 못했다. 마음으로 보면 볼 수 있는 것을,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봐준 사람도 있는데…….” 결국 개인주의자인 임바른은 박차오름이 벌인 일들(판사회의 소집 등)의 전략을 짜며 현실에 개입하게 된다.

 

 

50대의 늦깎이 부장판사 한세상은 종종 가부장문화에 익숙한 이전 세대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일 줄 모르고 살아온 세대들이 있어. 이 사회가 변하는 걸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강고한 사법조직의 거성에 굴하지 않고 재판청탁이라는 내부고발을 감행하는 박차오름에게 울타리를 쳐주고 격려한다. 박차오름의 첫 재판에서 법복을 손수 입혀주는 장면에서 그가 선배로서 당부하는 말은 압권이다. “이 옷은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에 위임한 임무를 상징하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촛불시민이 촛불혁명으로 탄생시킨 현재의 문재인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세 판사들의 고민은 법으로 정의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에 모아진다. 이는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라는 헬조선 거주민들의 바램을 포착한 것이리라. 비록 법이 모든 것을 해주지는 못할지라도 법으로 가능한 정의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일,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도록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일은 거주민들의 참여 의지와 실천에 달렸다. 그리고 하나 더! 할 수 있는 딱 그만큼에 멈추지 말고 경계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2018년 여름 한국 사회의 법정은 어떠한가? 박근혜 국정농단과 사법적폐의 합작품인 전교조 법외노조 사안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법적 판단이란 미명하에 문서고에 수장되어 있다. 이를 꺼내어 “전교조 법외노조 원천무효”를 천명하는 일이 곧 정의로운 법정의 교두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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