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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담론과 문화] 봉선생 대 깡선생

2010.09.29 12:58

진보교육 조회 수:2070

[담론과 문화]     봉선생 대 깡선생
강수정/옥정중

“이 세상에 사람보다 중요한 건 어디에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들판에 핀 꽃과 같아서 지고나면 원래 있던 자리도 알지 못하거늘... 그래도 내 인생 끝자락에 너를 알게 되어 참으로 행복했다. 탁구야~”

팔봉선생(일명 봉선생)이 제자인 탁구와 함께 빵을 굽고 나서 생을 마감하는 이 장면은 구수한 빵 냄새가 TV 화면 밖으로 흘러나오는 듯 하다. 그리고 봉선생의 마지막 메시지는 그저 앞만 보며 가파른 인생의 오르막길을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평화로운 적막과 절제된 슬픔으로 편안한 휴식을 선사한다. 선우야~ 죽은 장면이 어쩜 이리 감동과 행복감을 주는 거니?
*사진40-드라마 김탁구의 팔봉선생
‘김탁구’하는 날만 기다리는 선우는 상영직전까지 마치 손님맞이하듯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 오늘도 영화관에 있는 것처럼 감정몰입을 해야 한다나 어쩐다 하면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올인中’ 이다. 근데, 선우가 코를 훌쩍이면서 휴지를 달란다. 뭐, 소똥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나이 아닌가? 나도 숙연해지는 판에... 그러다 말겠지 하다가 심상치 않아 둘러싸고 있는 이불 속을 들여다봤더니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다. 이제 아예 휴지통을 갖다놓고 큰 소리로 대성통곡을 한다. 세상에! 내가 죽어도 저렇게 섧게 울까?...

“선우아, 그만 좀 울어! 낼 개학인데 어쩌려고 그래?”
“그럼, 눈물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해!!”
“아니, 왜 그렇게 우는 거야 도대체!”
“봉선생이 죽었잖아~~~봉선생이~~흐흐흑....으앙~”

  ‘봉선생’ - 나이는 60-70대. 늘 두루마기 차림으로 빵을 통해 인생의 철학을 가르치는 제빵의 달인. 이 정도의 캐릭터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여자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긴 어려울텐데... 늘 바른말하는 고리타분한 노인네 하나 죽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4차원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우리 선우란 넘이 그렇게 섧게 울어? 물론, 밑바탕에 얽히고 설킨 막장드라마를 감쪽같이 포장하고, 살짝 품격까지 높인 그의 기막힌 언변은 아무도 당할 자가 없긴 하지. 하지만 ‘그까이꺼’ 가지고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듯이 울까? 그럼, 도대체 왜? 은근히 직업병이 발동해서 기어코 물어본다.  

‘봉선생은 고모하고 차원이 달라. 고모는 내가 잘못하면 큰소리를 치잖아? 봉선생은 제자가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한번 더 기회를 주거든. 하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짓을 하면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고 관계를 끊어버려. 그런데 고모는...’

헉~ 조준해서 날리는 건 아니라도 감으로 휘두르는 주먹에 정확하게 급소를 맞은 느낌이랄까... 가슴이 아리다. 아무래도 그냥 무너지기엔 억울해서 ‘너무 극단적으로 비교하는 거 아니야?’라고 응수하긴 했지만 궁색하기는 매한가지다. 사실, 봉선생이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사려 깊은 마음과 편견없는 포용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거든. 실력? 제빵계의 전설이라는데, 더 할 말 없지. 어디, 그뿐인가. 수시로 제자들에게 툭툭 던지는 언변은 또 어떻고. 빵을 만드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간결하고 절제된 시적 언어에 담아 가볍게 툭툭 던지는데... 그럴 때마다 뻔한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수업 활동 기술도 역시 감탄을 자아내는 수준! 선문답을 주고받듯이 질문을 던져 제자를 대화에 참여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수업의 주체가 되도록 이끌어 내는데, 특히 봉선생과 탁구가 함께하는 마지막 수업은 압권이었다.

죽음을 직전에 두고 봉선생과 탁구가 대화를 나눈다.
“너는 빵이 왜 좋으냐?”
“빵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가 좋습니다.”
“스승님은 왜 빵이 좋으십니까?”
“사람이 먹는 것이니 좋지”
“그럼 저도 그리 바꾸겠습니다.”
*사진41-드라마 김탁구와 팔봉선생
거의 철학 수업이라고 봐야 하나. 이러니, 그가 내는 과제 또한 고단한 육체적 노동과 창의력은 기본이고 그 안에 사람과 세상을 따뜻하게 담아야만 해결할 수 있는 고난도의 프로젝트이다. 전공과 수업 활동은 뭐 그런대로 시늉을 내 볼만하다고 쳐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미운 넘이든 고운 넘이든 편견없이  교육을 한다는 것일 거다.

못된 제자인 마준이 반의도적으로 착하고 이쁜 탁구의 미각과 후각을 잃게 했을 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봉선생이 말한다.  

"둘 다 내 제자다. 한 녀석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스스로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도 선생이 할 일이다. 또 다른 녀석이 곤경에 처해졌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하는 것도 선생의 몫이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교사로서 그저 답을 찾아서 해결해 주고, 잘못한 놈을 무조건 나무라는 식의 교육보다는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겠지. 평상시에 못된 짓을 골라하는 농땡이들한테 다른 교사에 비해 비교적 후한 나도 이 장면에서는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하고 나 자신을 점검했을 정도였으니...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대학을 담보로 학교가 정해준 프로크러스테스의 침대에 누워있다. 가끔 침대를 뛰쳐나오려고 용을 써보는 지존들도 가끔 있지만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불안 때문에 끝내는 다시 침대위로 돌아가 눕고 만다.  구조적으로 일방적인 생각을 강요당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번 더 기회를 주는 봉선생’이 꽃미남 탁구보다 더 간절했을지 모른다. 사진42-선우와 강샘 사진

선우야~
  오늘은 한번도 말하지 않은 고모의 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너는 고모 나이에 무슨 꿈이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뭔지 들어볼래?
고모의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란다. 이미 교사가 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묻겠지만 고모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계’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꿈을 꾸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거란다.
우리 사회는 영어교사가 수업시간에 영어외의 이야기를 하면 구시대유물인 ‘의식화 교사’라는 빨간 딱지를 붙여 언론몰이를 하면서 마녀사냥을 하곤 한다. 어떤 경우에는 학부모를 동원하여 압력을 넣고 기어코 꿈꾸지 못하는 기계로 고정시키려고 하지. 물론 고모는 그런 압력에 굴하지 않지만 가끔 철없는 아이들이 ‘선생님, 진도 나가욧’ 라는 소리를 할 때는 힘이 쏙 빠져버린단다. 봉선생이 빵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가르치듯이 영어교사인 고모는 영어를 통해 생태, 인권, 평화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천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것, 그것이 고모의 꿈이란다.

고모가 행복한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지금처럼 전국 어디서나 꼭 같이 생긴 재미없는 네모 건물이 아니라 팔봉 빵집처럼 아담한 곳일 거야. 교실에는 일렬로 빽빽이 들어선 책상과 걸상 따윈 없을걸. 한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지구 끝까지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면서 공부하고 있을 거야.
공부하면 시험이 생각나지? 하지만 이젠, 모든 아이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기 시험 따윈 없어 졌단다. 시험 때 마다 다른 학년 교실로 이동하는 거,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앞뒤에서 감시하는 거, 시험이 끝나면 일괄적으로 시험지를 걷는 거 - 이런 풍경은 모두 없어졌어! 대학이 모두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이젠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경쟁하게 되었거든. 언젠가 너랑 TV에서 본 ‘핀란드 학교’처럼 말이야.
두발과 실내화, 교복? 당연히 학생들 자신의 몫이란다. 왜냐하면 학생회의가 법제화되어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 되었거든. 그래서 아침마다 용의복장 검사를 하던 교문지도가 없어졌어. 그리고 시간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영어·수학 시간이 줄어들고 그 대신 삶과 노동을 담은 교육과정이 많이 편성되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현장프로그램이 많아졌단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교사들에게 지시하고 전달하는 교무회의라는 것이 소통과 대화의 자리가 되어 학교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한단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야. 이제까지 부모님이 학교 오시면 뒷치닥거리만 하셨잖니? 하지만 이제는 학부모회의도 법제화되어 부모님들도 학교에서 중요한 교육적 지원을 하게 되었단다.

어때! 생각만 해도 신나지?
고모의 꿈이 현실이 되는 학교 - 바로 선우와 선우 친구, 그리고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행복한 학교란다.  그런데 모두가 바라는데 왜 이런 학교를 우린 가질 수 없는 걸까? 그건 우리의 소망이 아직 작기 때문이란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사인 고모는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학생인 우리 선우는 뭘 하지? 그리고 엄마, 아빠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모이고 모여 소망을 만들고, 그 소망이 자라나 길을 내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걸어오게 된단다. 그러면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학교가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올 거야. 고모도 많이 노력할게. 우리 선우도 고모랑 함께 할꺼지?
                                                           봉선생을 꿈꾸는 고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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