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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진단] 2011년 전교조 운동을 생각한다

2012.01.26 17:30

진보교육 조회 수:650

 

[진단] 2011년 전교조 운동을 생각한다

 

조용식 / 전교조 울산지부장

 

1. 들어가며

 

‘힘센’ 집단이 사회적 의제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본과 기득권 세력은 언론 미디어 및 각종 사회적 기구와 장치를 동원하여 이러한 의제를 장악해 나간다. 이러한 동원 장치가 없는 저항 세력은 운동을 통해 사회적 담론과 의제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특히 온전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진보진영은 더욱 그러하다. 노동3권은커녕 제대로 된 교섭권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전교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시기 전교조가 만들어 낸, 촌지 거부 정보인권 그리고 교원평가 등의 사회적 의제는 소중한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그 논쟁의 귀착점을 떠나 전교조가 사회 문제 특히 교육문제에 개입하는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 시기마다 어떤 세력이 사회적 아젠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주체의 노력과 객관적 여건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었을 경우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SNS 등 이른바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각계각층의 사회적 진출이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겨우(?) 6만의 교사 조직이 교육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밀어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들어 가중되고 있는 진보 진영에 대한 탄압, 특히 전교조를 향한 집중적인 공세는 아이러니하게도 전교조가 사회적 논쟁에 중심이 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즉 MB 정권의 공세에 대한 전교조의 대응 여부에 따라 사회적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2009년 일제고사 대응 투쟁을 돌아보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명박 정권 들어 표집에서 전집평가로 바뀐 일제고사는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이에 맞서 교사들의 투쟁은 힘겹고 외로웠지만 의연하게 진행되었다. 이에 정권이 교사들을 중징계하여 학교에서 내쫓자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생긴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일제고사는 단연 교육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전교조의 NEIS 투쟁 이후 이처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투쟁은 없었다. 전교조 결성 이후 단순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교사들을 무려 11명이나 파면 해임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 국가수준 일제고사가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광역수준 일제고사가 11개 시도에서 없어진 것을 보면 당시 투쟁의 상징성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와 같은 일제고사 투쟁은 진보진영의 반MB 반경쟁 교육의 아이콘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쟁 교육’ 반대 투쟁이 진보 교육 진영 ‘결집’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0년 6.2 선거에서 이른바 6개 지역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형성된 시민들의 반MB교육 정서가 조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일제고사로 촉발된 반MB, 반경쟁 교육 정서는 교원평가에 대한 시민 사회 진영의 ‘재검토’ 내지 반대 의견 제출로까지 발전해 나가고 있다. 희생을 감수한 헌신적인 투쟁이 시민 대중의 여론을 바꾸고 근본적인 성찰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올 한 해 전교조 운동을 돌아보는 가장 큰 기준의 하나는 ‘전교조가 만들어 낸 위력적인 ‘사회적 담론’이 존재 하는가‘이다. 그런 담론을 만들기 위해 ’전교조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집단적인 실천을 행동에 옮겼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2. 10만 조합원 시대 원년, 담론은 ‘없다’

 

2010년이 선거를 통해 이른바 진보진영이 교육 제도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시기라면 2011년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학교 현장을 바꿔내는 기초 논의를 풍성하게 시작하고 ‘진보교육감 시대는 이렇게 달라지겠구나’라는 혁신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이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불가역적(不可逆的) 교육 혁신은 교육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의 동의와 지지를 조직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당장 혁신 실패를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보교육감 당선으로 표출된 국민들의 교육 개혁에 대한 기대와 교육 주체의 활력있는 참여를 확장시키기 위한 전교조 운동의 목표와 책임성은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진보교육 진영의 중심세력으로써 제도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또한 MB정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등등.

 

요즘 학교 현장을 방문해보면 조합원은 물론 대부분의 교사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것이 ‘전교조가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단위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의 영향력이 없다는 말이다. 학교 관리자들이 전교조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1년, 성과급 교원평가 교육과정 주5일제 수업 학생인권조례 등 제기되고 있는 각종 교육 현안에 대한 전교조의 목소리는 없다. 쏟아내고는 있지만 사실상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소위 활동가 조합원들조차 전교조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마디로 중앙전선이 없는 것이다. 만들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중앙전선이 없으니 당연하게도 교육 문제를 사회 담론으로 만들어낼 재간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3. 전선은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길로

 

그러면 이처럼 중앙전선이 실종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교조는 올 해 10만 조합원 시대를 선포했다. 계획대로라면 현재의 두 배 이상 조직을 ‘불리겠다’는 것이니 아주 매력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매 년 1회씩 조합비 원천 징수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실상 단결권조차 억압당하는 전교조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밥값’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조직 가입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전망과 기대’를 교사 대중에게 주었을까?

 

전교조는 지난 해 진보교육감 당선으로 확장된 제도권 개입 기회를 극대화하여 학교 현장을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 확대를 꾀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른바 혁신 학교의 참여와 성공을 통해 조직 기본 이념인 참교육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 특히 교실 교육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배치되었다. 곳곳에 혁신 학교 연수가 넘쳐나고 40-50 프로젝트를 통해 개혁적인 ‘전교조 공모 교장’을 만들어 내려는 계획도 실행되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전교조 투쟁의 상징인 5월 교사대회는 하반기로 미루어졌고 그나마 차이는 있지만 ‘노래자랑’ 대회라는 조롱섞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지방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경쟁교육’ 반대였다. 일제고사 성과급 학교 다양화 정책 등에 대한 분명한 투쟁 목표와 방도를 세우고 5월 교사대회를 정점으로 총력 대응했어야 했다. 2월 대의원대회에서 이런 방안을 확정하고 상반기 조직 선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5,6월 집중 투쟁으로 전진했어야 했다. 진보교육감 취임 1주년을 맞아 교육 의제에 대한 대대적인 여론전을 실시하여 ‘달라진 1년’의 성과와 달라진 미래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이끌어어야 했다.

 

그러나 전교조는 ‘이미지 변신’을 목표로 현장 투쟁을 방기한 채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 몸조심’에 들어갔다. 투쟁보다는 혁신 학교에 역량을 집중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민들에게 ‘예쁘게 보여’ 더 많은 ‘표’를 얻겠다는 전략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스스로 이런 과정에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교육 주체인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았고 학교를 혁신하기 위한 ‘추가노동’을 고매한 전교조 교사의 인격으로 여겼다.

 

혁신 학교 성공을 위한 개별 교사의 ‘고군분투’가 참교육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겠지만, 그렇게 제도권 안에서 ‘차분하게’ 교실 수업에 매진하는 동안 전교조는 사회적 의제 설정 능력을 잃어간 것이다. 6개 지역이 아닌 그리고 혁신 학교가 아닌 곳의 교사들은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정당 후원과 관련한 정부의 정치 탄압에 대응하여 ‘교사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 찾기’ 운동을 전개한 것은 2010년의 방어적인 투쟁에서 벗어나 공세적 방향으로 나간 것으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2010년의 선거라는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호기를 놓쳤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정권의 공세에 눌려 쉽게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조직적 진출을 개인적 정취 취향으로 치환하고 단지 무죄를 받기 위한 법정 싸움에만 매몰되었던 것이다.

 

4.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교조는 10만 조합원 시대라는 허상을 폐기해야 한다.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으니 조합원이 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는 즐거운 상상이긴 하지만 과학적인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현장 투쟁을 포기하고 청원과 캠페인으로 성과물을 내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진보교육감 입에서 ‘전교조가 교원평가 투쟁을 좀 힘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러 과연 이러한 전교조가 진보와 보수 구도 속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교육감이라도 엄호할 수 있을까?

 

진보교육감이 집권한 서울과 경기에서조차 조직 확대가 아니라 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진보교육감 집권이라는 조건은 조직 확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조직 확대가 조직 활동의 물적 토대를 안정적으로 구축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진정한 ‘10만 조직’은 전교조가 전체 교사의 의사를 어떻게 조직하고 대변하며 나아가 정책 개입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조합원 숫자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단호한 투쟁’을 ‘대안’에서 배제한 채 노사갈등을 회피하는 전략으로 조직 대상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 그들을 조직하겠다는 발상을 버리지 않는 한 ‘10만 조합원 시대’라는 슬로건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민주 진보 진영의 총단결이라는 구호를 폐기해야 한다. 현실 선거에서 반한나라당 내지 반MB전선의 필요성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11년 전교조는 민주 진보 단결이라는 구호 아래 사실상 ‘민주당 바라기’를 해왔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선거 연대의 달콤함에 빠져 교원평가 성과급 개정 교육과정 등을 오로지 민주당 의원실에 기댄 법적 제도적 대응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 투쟁을 방기한 채 의원실에 목 맨 ‘투정’이 투쟁이 될 수 없으며 당연하게 의미있는 성과물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시행령으로 뒤틀어진 교장 공모제에 대한 뒷북 투쟁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다.

 

5. 나가며

 

무너지는 현장을 복원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난 20년 전교조의 저력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 또한 아니다. 대중은 전망을 원한다. 또한 지도부의 헌신을 기대한다. 2012년 총선 대선 국면을 맞아 조합원 및 교사 대중에게 전망을 열어주는 대안 의제를 만들고 위력적인 대중 투쟁을 조직한다면 전교조 운동 또한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갈 수 있다.

 

최근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4대강식 ‘MB교육’ 정책에 대응하여 교사 학생 학부모 단일 전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가 나서 부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일제고사, 반값 등록금으로 터져 나온 사교육 부담, 학부모 학생조차 동의하지 않는 교원평가 등을 한꺼번에 날릴 공교육 개편 담론을 구체화하고 이를 제 정치 세력이 수용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런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전교조 조직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사업 작풍을 쇄신해야 한다. 각 단위별로 종파적이고 패권적인 조직 운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종파적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 내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반노조적 반민주적 조직 운영 행태는 즉각 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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