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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초점] 교육의 창으로 FTA 들여다보기

2012.01.26 17:09

진보교육 조회 수:670

 

[초점] 교육의 창으로 FTA 들여다보기

송원재/고척고

 

지난11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FTA 비준안에 서명함으로써 한·미 FTA를 둘러싼 법률적 절차가 완료됐다. 새 정부가 파기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한국과 미국 간에 이루어질 모든 무역과 투자는 이 협정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그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협정의 문제점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집권당이 날치기 통과라는 무리수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비판여론의 확산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FTA의 기본정신은 한 마디로 ‘자유무역의 세계화’다. 상품, 서비스의 수출·입은 물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투자를 완전히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 간에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는 모든 규제와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국의 시장보호를 위한 관세, 공공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 특정 산업에 대한 정책적 투자, 취약계층에 대한 공적 부조, 거대자본의 독점방지 정책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자유로운 시장질서에 반하는 모든 규제와 개입이 철거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밀림에서의 완전한 자유’는 호랑이에게는 무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토끼나 사슴에게는 무한대의 공포와 죽음을 의미한다. 헤비급 선수와 플라이급 선수가 심판도 없고 규칙도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링 위에서 격투기 시합을 벌인다면, 그걸 공정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제무역이라는 밀림에서 모든 규제와 제약이 사라지면, 결국 몇몇 거대자본 만이 살아남아 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한·미 FTA는 자본·기술·경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독점자본을 위해 국내의 모든 시장을 자진 헌납하는 것이고, 아직 ‘시장화’가 덜 된 공공부문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넘겨주는 꼴이다.

FTA 협정문에 워낙 메가톤 급 폭발력을 가진 독소조항이 많다 보니, 중요한 것인데도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FTA가 교육부문에 미칠 영향’이다. FTA 협정 자체는 교육부문에 대해 따로 조항을 두거나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국가가 운영하는 공교육은 수도·전기·의료·체신 같은 ‘공공부문’ 사업에 포함되고, 개별자본이 경영하는 사교육은 일반 투자대상 사업에 해당한다. 교육이 예뻐서 봐준 게 아니라, 별도로 규정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 뿐이다. 다시 말하면,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교육부문 역시 FTA로부터 자유로운 ‘치외법권 지역’이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ISD(투자자-국가 분쟁)가 공공부문은 원칙적으로 제소대상에서 예외로 한다고는 하지만, 공공복리를 목적으로 한 정부의 조치도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으로 미국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는 제소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다. 따라서 미국 기업이 한국의 특정 교육정책이나 교육관계 법령이 ‘불균형적으로 미국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느끼면 제소가 가능하고,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그 여부를 판정한다.

 

또 한국에서는 특정 분야가 공공부문으로 통용되지만 미국에서는 공공부문이 아닌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의료분야와 교육분야가 그렇다. 이럴 때는 먼저 이 분야가 공공부문인지 아닌지부터 판정을 받아야 한다. 결국 미국 기업이 한국의 공교육부문까지 ISD를 이용해서 제소할지는 전적으로 미국 투자자의 주관적인 ‘느낌’과 ‘판단’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일단 제소부터 해놓고 ‘승소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운 좋게도 한국 정부가 지레 겁을 먹고 협상을 제의해오면 실익을 챙기면 그만이다.

교육부문에 대한 외국 기업의 일차적 관심은 일반계 초·중·고등학교보다는 국제학교·외국인학교 같은 특수학교,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영어 사교육 쪽에 두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국내 교육관련법에 의해 그물망처럼 촘촘한 규제가 적용될 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푼돈 좀 벌어보겠다고 섣부르게 건드렸다가는 대중적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 반면, 국제학교·외국인학교는 대중적 관심사도 아니고, 소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영업이익을 실현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자. 최근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의 등록금과 수업료는 연간 천만원 대를 훌쩍 뛰어넘어 명문 사립대를 뺨치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도 이런 고수익 사업은 이제 찾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기업이 우리나라에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를 세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이므로, 영리 목적의 학교 설립을 금지하고 있는 국내의 교육관련법과 당장 충돌한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물러설 미국 기업이 아니다. ISD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업은 당연히 “한국의 국내법이 우리의 자유로운 투자와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를 중재기구에 제소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본국으로의 ‘과실 송금’이 합법화 되면, 영업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후속조치들이 뒤따를 것이다. 현행 교육관련법은 국내에 설립되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에 내국인이 입학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내국인 학생 비율’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아줄 한국인 입학생 수를 한국정부가 제한한다면 이것 역시 제소감이다.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소비자의 시장 접근권을 부당하게 제약함으로써 미국 기업의 영업이익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송이 제기될 때마다 막대한 액수의 배상금을 물어주기 싫으면 하루 빨리 국내법을 개정해서 면피를 하는 게 상책이다.

외국자본의 학교 설립이 자유로워지면 부유층을 중심으로 내국인 입학생이 늘 것이고, 그 학생들이 졸업 후 전원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는 한 국내 대학에 진학할 것이다. 이 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현행 법률은 외국인이나 외국유학 출신 학생들의 국내 대학 진학을 위해 ‘특례입학’ 제도를 마련해놓고 있다. 외국과 한국은 교육과정이 전혀 달라서 이들에게 수능시험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도 일반 학교와는 교육과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내국인 졸업생에게도 비슷한 규정이 적용된다.

 

그런데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 졸업생이 날로 늘어나면 특례입학 제도만으로는 이들의 대학 진학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특례입학 정원 비율을 대폭 늘리든가, 아니면 아예 대학의 자율에 맡겨서 ‘외국인학교·국제학교 졸업생 특별전형’ 같은 걸 마련해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걸 거부하면 ‘졸업생의 진학기회를 제한’하는 것이 되므로 학교법인의 ‘영업이익 침해’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것 역시 제소가 가능하고, 승소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 정부에게는 부담이 된다. 남미의 여러 나라처럼 최종 판결까지 가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요구를 들어주고 타협할 공산이 크다.

만약 이런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되는 날에는 한국의 교육제도는 일대 지각변동을 맞게 될 것이다. 위로부터 국제학교·외국인학교-특목고-자사고-강남 8학군-일반학교·실업학교로 이어지는 고교 서열체계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특히 국제학교·외국인학교·특목고는 세칭 명문대학을 사실상 독점함으로써 부유층의 돈과 권력을 대물림하는 요지부동의 지배계급 재생산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대는 한 낱 신화로만 남게 될 것이고, 일반계 고교는 용은커녕 이무기도 없이 지렁이만 들끓는 시궁창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아울러 교육관련법의 적용으로부터 벗어나는 ‘특별한 학교들’이 많아지면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대상에 따라 차별화 될 수도 있다. 국제학교·외국인학교의 교육과정을 자율화하고, 명문대학이 그에 맞춰 통상적인 고교 교육과정과 관련 없는 전형기준을 도입한다면, ‘특별한 학교들’에게는 교육과정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반면, 일반계 고교의 경우는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여전히 유지되는 가운데, 제한적인 자율화 조치를 통해 능력에 따른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정도에서 그칠 가능성이 많다. 하긴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데 국내에서나 통할 교육과정이 뭐가 그리 대수겠는가? 획일적 교육과정은 죽으나 사나 국내에서 살다 죽을 서민을 위한 것일지도… 최근 심층면접과 수시전형, 입학사정관 제도가 확대되면서 일반계 고교 출신들은 속수무책인 반면, 스펙을 충실히 쌓아 온 특목고 졸업생들이 명문대학을 사실상 점령하게 된 것을 보면, 이런 불길한 예측은 그저 기우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미국 기업은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조례나 정책에 대해서도 ISD를 걸 수 있다. 정부는 ISD의 당사자는 지자체가 아니라 중앙정부이므로 지자체를 제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자체는 소송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어도 간접적으로 ISD에 연루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학교에 무상급식을 실시하면서 조례를 만들어 국내산 농산물을 쓰도록 했다면, 미국 농업회사가 중앙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고, 중앙정부가 패소하면 미국 회사에 돈을 물어주고 대신 서울시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실제상황에서 구상권을 청구할지는 불분명하지만, 지자체의 정책과 조례도 충분히 ISD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FTA가 우리 교육에 가져올 영향은 적지 않다. 지금까지 주로 초·중·고교에 해당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지만, 대학 역시 미국 자본이 눈독을 들일만 한 ‘블루 오션’이다. 국내 대학의 ‘고비용 저효율’을 자타가 인정하는 마당에 미국 자본의 대학 설립, 또는 미국 명문대학의 분교 설립을 반대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게다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최근 대학 법인화가 강행되면서 대학도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 상태에서 미국 명문대학이 국내에 들어오면 현존하는 대학 서열체제에 상위서열이 몇 단계 더 추가될 것이고, 자체적으로 존립이 어려운 순서대로 하위권 지방대학부터 고사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외유학 비용의 절감을 들어 대학 개방을 환영하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는 제 발로 미국까지 가서 바치던 방식에서 국내에서 곧바로 바치는 방식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미국 체류비용이 절감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미국 대학의 직접투자 확대와 졸업생에 대한 유학기회 확대는 학문의 대미종속을 더욱 직접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 반값 등록금?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정부가 그런 일을 했다가는 “대학법인의 영업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제소당할 것이다. 이제 공교육의 상당부분이 정부의 손을 떠나 미국 거대자본에게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린 셈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문은 우리의 손으로 열었지만 닫을 때는 우리 마음대로 닫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고도 국가 주권을 말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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