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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읽을 때의 상쾌함을 비고츠키강좌에서 다시 맛보다

 

박동익 / 선사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비고츠키 교육학에 대한 기획 강좌가 있으니 와서 들어보라는 권유를 받고서 (그렇지 않아도 진보교육 회보를 통해서 간간이 비고츠키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는 것을 먼발치서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서 적당한 기회에 나도 공부 좀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잘 되었구나 싶었다.) 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날 첫 시간부터 약간 지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강수정 샘이 반겨 준다. 강좌 수강 등록하는 일을 안내하고 계셨다. 아니 강수정 샘보다 더 먼저 수강생을 맞이해 준 것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담배냄새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쉬는 시간마다 엘리베이터앞 계단 주변에 빼곡하게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담배 연기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인데 듣자니 그 건물에 들어 있는 단체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에 담배냄새가 배는 것이라 한다.

다행하게도 아직 강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마침 앞쪽에 빈자리가 보이길래 가서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늦게 갔더니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겨우 뒤에 앉아 있던 연구소 선생님들 중에서 자리를 양보해 주어 겨우 자리를 얻게 되었다. 강좌가 인기가 참 좋다. 멀리 충주에서 유승준 선생님께서도 오셨고 최인섭 선생님도 계셨다. 그 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최인섭 샘과 함께 오신 학부모님들의 열의는 정말 대단했다.

틈틈이 ‘생각과 말’을 혼자서 읽기는 하면서도 잘 정리가 안 되고, 진도도 잘 안 나가고, 그래서 답답했었기에 좋은 기회다 싶었다. 생각과 말을 아직 다 읽어 보지도 못했고, 그러니 전체적인 맥락도 잘 안 잡히고 조바심은 나고. 그런데 강좌를 듣고 나서 생각하니 참 듣기를 잘했다. 이제 윤곽이 잡히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비고츠키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교단에 서서 교육에 대해서 생각을 해 왔지만 이렇게 시원스럽게 교육에 대해 관점을 잘 정리해 주는 것을 아직까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비고츠키에 대해서는 전에도 이름은 들은 바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자라고. 비고츠키를 제대로 공부한 것은 아니고. 그래도 ‘사회적’ 어쩌구 하니까 호감이 갔고 그 어떤 교육학도 시원스런 답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속에서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회’를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친근하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과거에 비고츠키를 언급하면서 우리 전교조수학교사회의 교육과정 모임이 그의 주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천명했던 적이 있었다. 비고츠키가 하는 말이 맘에 들어 그 주장을 인용하여 우리의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고츠키의 주장을 우리가 생각했던 수학교육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교수학습 방법론 차원에서만 고려했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비고츠키를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이기는 했지만 강좌를 듣고 나서 느끼는 것은 비고츠키의 교육학은 방법론을 넘어 교육목표까지 포함하는 매우 폭넓은 사상이다. 실제로 우리가 수학교육의 목표로서 추구했던 ‘주체적 인간의 양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서술할 수밖에 없었는데 비고츠키 교육학은 고등정신기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 같아서 이것을 잘 연구하면 수학과의 교육목표 논의와 교수학습 방법론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선사고등학교다. 선사고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전체 교직원회의에서 논의를 하고 그 결과 모아진 의견에 의해 학교가 돌아간다. 아마도 이것이 혁신학교 선사고의 혁신적인 운영 사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선사고에서는 교육에 대한 원론적인 논의는 그리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일례로 최근에 학교에서 수업혁신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제출된 문건에는 ‘가르침에서 배움으로’라는 문구가 등장했었다. 교육에서 가르침과 배움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표현이다. 우리의 교육에 대한 생각에서 정리할 것이 많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마침 비고츠키교육학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현실에 단비가 아닐 수 없다. 비고츠키 교육학과의 만남은 나도 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나도 전도사가 되어 비고츠키 공부를 하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 하지만 다른 샘들도 어디서 많이 들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많이들 공감을 하시고 학교 차원에서 강사를 초빙해서 같이 공부하자는 분위기다.

 

‘비고츠키는 구성주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구성주의는 틀렸다!’, ‘구성주의가 문제다!’라는 이야기는 회보를 읽으면서 ‘그런가?’ ‘그런가 보네.’ 그 정도의 생각으로 ‘구성주의가 문제인가보다. 구성주의를 조심해야겠군...’ 하고 구성주의에 대하여 경계와 의혹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아니 그런데 비고츠키는 구성주의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자라고?

정말이지 그의 이론에 대해서 개괄해 주는 강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니 진짜 이론의 구조가 ‘딱’ 이다. 변증법적 유물론... 맞아... 바로 저거야! 아니 비고츠키 이론은 단순히 심리학, 교육학 이런 걸로 끝나는 주제가 아니었다. 세상을 진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상을 바꾸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느낌이 절정에 달한 것은 제5강이었다. 강사의 정말 ‘열정적인’ 강의 자체도 감동 그 자체였지만 마르크스와 레닌, 그람시를 넘나들며 비고츠키 교육학의 의미를 짚어주는 데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천보선 선생님이 맡은 강의에서 들은 ‘아프리카 들개’ 이야기와 ‘술 취하면 개’가 되는 이야기는 머리에 쥐가 나는 상황에서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청량제였다. 삑소리도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었지 아마도. ㅋ

사회적 구성주의자라고 알려져 있었던 비고츠키가 변증법적 유물론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해서 이토록 왜곡되어 알려졌는지 밝혀주신 배희철 선생님의 강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강좌 교재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 가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지 않으면 잘 생각이 안 날 만큼 시간이 이미 많이 흘러 버렸다. 강좌를 들으면서도 최근에 정말 드물게 있는 사건이지만 새벽까지 교재를 읽어보게 되었고, 원고 부탁을 받고 또 읽어 보게 되었는데 보면 볼수록 정말 보배가 아닐 수 없다. 먼저 공부하고 강의를 통해서 비고츠키 교육학을 만나게 해준 연구소 동지들에게 지면을 통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책꽂이 한 구석에 쳐 박아 놓았던 사적유물론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4월부터 시작한다는 비고츠키 공부모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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