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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초점] 4. 역사 교과서를 자유롭게 하라

2012.10.15 15:29

진보교육 조회 수:674

[초점]4
역사 교과서를 자유롭게 하라!

이성호 / 서울 배명중,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지난 9월 24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5.16 군사정변과 유신 쿠데타, 그리고 ‘인민혁명당’ 조작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해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얼마 전까지 일관되게 5.16을 ‘혁명’으로, 유신을 ‘구국의 결단’으로 강변하고, ‘인혁당’ 사법살인에 대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며 억지를 부리다가, 비난이 폭주하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나온 기자회견이었다. ‘연좌제’라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후보 검증에 속한다. 과거 역사에 대한 견해는 결국 미래에 대한 전망과 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사와 역사교육의 이런 중요성을 생각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입법예고안이 지난 8월 17일 발표되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용 도서에 관한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 입법예고안’을 내놓은 것이다. 법률(안)은 ‘현재 초ㆍ중등교육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학습교재인 교과용도서의 사용에 관한 대부분의 사항이 대통령령에 규정되어 있음.’에 주목하여, ‘대통령령에 규정된 사항 중 국민의 권리ㆍ의무와 관련된 중요 사항인 교과용도서의 검정ㆍ인정, 수수료, 수정, 공급, 제재처분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올려 규정함.’을 목적으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명분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중, 제37조의2(교과용도서의 수정) 항목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국정도서 또는 검정도서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국정도서의 경우에는 직접 수정하고, 검정도서의 경우에는 제37조제2항에 따라 검정합격을 받은 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포괄적인 수정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전문가의 엄격한 검정 절차를 거친 검정 교과서에 대해, 교과부 장관이 임의로 수정을 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는 자칫, 헌법상 보장된 학문의 자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기억하듯이, 지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대통령령에 규정된 수정 권한을 행사해,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수정을 명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검정 교과서에 대해 수정 명령을 내린 사례는 이것이 유일무이하며, 이 수정 명령이 적법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1심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수정 권한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수정은 단순한 오자, 탈자, 오식, 명백한 사실 관계 오류가 있을 경우 해당하는 것이며, 내용에 대한 수정은 수정이 아니라 검정에 준해야 한다고 판단해, 검정에 준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 명령이 절차상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바 있다.(2심에서는 이를 뒤집고 원고(=집필자) 패소 판결이 나와,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수정 권한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행사되도록 법률로 제한되어야 하며, 이번 입법 예고안처럼 포괄적으로 인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 이번 입법(안)은 ‘검정합격 도서에 대한 제재처분 강화’를 밝히고 있다. ‘발행자 간의 불법ㆍ과당경쟁’에 대해, ‘부정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검정합격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도록 하고, 검정합격 취소처분을 받은 자는 3년간 교과용도서의 검정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함.’은 타당한 항목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제재와 관련된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과부장관의 수정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경우 검정합격을 취소하고, 3년 간 검정을 신청할 수 없도록 제재 처분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숨겨져 있다. 이는 교과서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의심되며, 다양하고 질 높은 교과서 발행을 지원하려는 검정교과서 제도의 본질적 목적과도 상충된다. 특히 수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출판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것은 검정 합격한 교과서에 대해서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지속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독소 조항이 될 우려가 크다.

교과부와 정부 여당은 왜 이렇게 교과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싶어 할까?
이명박 정부는 거의 매년 교육과정을 바꾼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2008년 집권하면서 바로 ‘금성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리더니, 2009년에는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은 2007년 개정교육과정을 뒤엎고 2009년 개정교육과정을 그야말로 졸속적으로 고시해버렸다. 2010년에는 고등학교 역사를 한국사로 바꾸는 부분개정을 단행했고, 2011년에는 ‘2009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각 교과의 교육과정을 또 뜯어고쳤다. 불과 4개월 남짓 만에 새 교육과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자유민주주의’로 바뀐다는 소식이 알려져 엄청난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2년 6월에 검정을 통과해 내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바로 이 개정 고시 이후 불과 6개월 남짓 만에 다시 집필된 교과서이다. 올해는 ‘학교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일부 교과(국어, 사회, 도덕)의 교육과정이 또 다시 고쳐진다고 한다.

졸속 수시개정으로 인한 학교 현장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역사 교육과정의 개정의 방향이 일본의 극우세력, 즉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추구하는 방향과 너무나 똑같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역사 교육과정 개정을 주도한 세력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기세를 떨친 ‘뉴 라이트’ 세력들이다. 이들은 조·중·동의 지원을 받고 상공회의소, 국방부 등을 앞세워 역사 교과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에 의하면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민중사관’에 물들어있고, 그 영향을 받아 역사교과서도 지나치게 ‘민족적’, ‘민중적’이거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 국가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없도록 하는 내용, 반정부, 반기업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급기야 2008년 이들은 스스로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라는 책을 만들어 자신들의 역사관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내보였다. 역사학자가 거의 참여하지 않은 이 책은 ‘후소샤 교과서’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우적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후소샤 교과서’가 극우답게 ‘민족’을 강조하는데 비해, ‘대안교과서’는 ‘민족’을 버리고 ‘국가’를 주체로 강조한다는 점 정도이다. 이는 ‘뉴 라이트’ 세력의 원류가 ‘친일’의 전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위정척사세력이나 동학 농민군을 비하하고, 개화파를 선각자로 떠받든다. 개화파 상당수가 친일·반민족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이들이 신문명, 곧 자본주의 문명을 받아들인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이들에 순응한 친일 기업인들은 우리 경제의 선구자라고 재평가된다.
해방 이후 가장 중요한 역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은 분단조차도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된다. 당연히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중되며,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반공의 투사였음이 강조된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돕고 북한의 침략을 함께 물리친 미국은 우리 역사의 ‘은인’이 된다.
관련 단체의 항의와 거센 비난여론 때문에 ‘의거’를 ‘혁명’으로 수정하기는 했지만, 4.19는 일종의 해프닝일 뿐이었고, 차마 ‘혁명’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못했지만 5.16은 쿠데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역사적 사건으로 표현된다. 박정희의 리더십과 기업인들의 노력이 합쳐져 눈부신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노동자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계속 미국, 일본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야 하며,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결론으로 제시된다. 북한은 같은 민족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적이기 때문에 ‘보론’으로만 다뤄진다.
한 동안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건국절’ 논란이나, 지금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 복권 움직임은 이들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자유총연맹이 운영하는 남산 자유센터에 이승만 동상이 버젓이 복원된 것이나, 상암동에 ‘박정희 기념관’이 개관한 것은 이런 흐름에 의한 것이다. 특히 올해 말 개관 예정인 세종로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뉴 라이트’ 역사관을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시설의 정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개입 시도는 그들의 목표를 분명히 보여준다. 교육부가 수정명령을 내려 ‘금성 한국근현대사’ 내용을 고쳐버리고, 수많은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절차상 무리까지 감수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결국 교육과정에 반영한 것은, 교육과정 고시나 검정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관을 학교 교육에 도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역사관은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위험한 것이어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의 것은 결코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국가를 운영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한 역사관이 정부의 힘을 빌려 교육 현장까지 침투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헌법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짓이며, 우리 사회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저항과 뜻있는 시민들의 비판 덕분에, 아직은 저들의 주장이 부분적으로밖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교과서를 쓰는 연구자나 교사들 대부분도 검정 통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교육과정에 맞춰 내용을 집필하지만, 저들의 역사관에 동의하지는 않고 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살펴보더라도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대체했다거나, 친일파 문제가 거의 빠졌다거나, 통일이나 노동에 대한 서술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여러 문제점과 아쉬운 점이 발견되지만, 적어도 ‘뉴 라이트’ 역사관에 기울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렇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역사 서술을 바꾸기 어렵게 되자, 근현대사 교육을 아예 축소해버리도록 한 것이 2009년, 2010년, 2011년 교육과정 개정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5.16을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으로 주장하는 이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상황이라 만약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뉴 라이트’의 역사공세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역사는 과거를 성찰적으로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학문이다. ‘성찰’을 버리고 무분별한 ‘자부심’을 강조할 경우 역사는 자칫 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북한의 역사 교과서나 유신시대 국정 국사 교과서,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는 그런 해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이 존중되며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면, 역사를 통해 그런 가능성을 발굴할 수 있도록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뉴 라이트’가 손잡고 벌이고 있는 무분별한 역사공세에 결코 물러서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역사 교과서를 자유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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