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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전교조 운동의 재도약

2. 법외노조 공방 중간평가와 향후 전교조 운동의 과제

진보교육연구소 정세분석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법외노조 탄압’을 둘러싼 공방에서 전교조는 일단 잠정적 승리를 거뒀다. 결격사유 시정명령이 전달된 9/23일부터 ‘노조아님 통보’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이 인용된 11/13일까지의 약 50일 동안 숨가쁜 공방이 벌어졌고 조합원 총투표와 가처분 인용의 주요 고비를 성과적으로 넘기면서 전교조는 다시 ‘법내 노조’ 지위를 회복했다.
이번 법외노조 공방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전교조문제가 지니고 있는 특성뿐 아니라, 현 정권의 지배구도와 정세적 특질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먼저 법외노조 문제를 둘러싼 공방과정과 전교조 중간 승리의 동인 및 조건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간략하게 서술한다.

1. 50일간의 공방드라마

* 9/23일 결격사유 시정명령
지난 9월23일 오전 노동부 실무관계자들이 느닷없이 전교조본부 사무실에 들러서 노동법 제9조 2항에 의거한 ‘결격사유 시정명령’을 적시한 공문을 전달했다. ‘설립 취소’라는, 노동조합으로서는 조직의 운명을 가름할 중대한 문제가 곧바로 현안으로 떠올랐다.  

* 전교조의 전방위적 대응
  전교조는 충격에 휩싸여 공문을 받은 날, 곧바로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했고 다음 날[ 9/24일] 총력대응 방침을 안팎에 천명했다. 지난 2월 한 차례 ‘시정명령’을 둘러싼 공방이 있었을 때 전교조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설립취소 탄압이 있을 경우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혹스럽기는 해도 신속하게 대응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뒤 전교조는 사력을 다해 전방위적 대응에 나섰다. 9/26일 시청앞 위원장 단식농성을 필두로 국가위원위 제소, 동화면세점앞 수도권조합원 긴급집회, 시민사회단체 연대요청 그리고 전국적 촛불집회 등이 이어졌다. 10/11-12일 전국에서 모인 1000여명의 선봉대는 1박2일간 도심지 삼보일배, 서울역촛불집회, 시청앞 노숙농성을 이어나가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다. 한편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에 힘을 쏟아 10/8일 10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민주교육수호와 전교조탄압저지 긴급행동’이 구성됐고 교수, 학부모 등 교육단체는 물론이고 예비교사(10/16), 청소년(10/16) 기자회견, 퇴직교사 기자회견(10/17)이 줄을 이었으며 각계 사회단체와 민변, 종교계 등에서 탄압 중단 요구가 쏟아졌다. 진보정당은 물론 민주당 등 여러 야당의 반대 입장이 나왔고 전남, 광주, 경기 등 시도의회에서도 취소 결의안이 채택됐다.
또한 국제여론전을 활발하게 벌여 OECD 노조자문위, EI가 한국대통령에게 설립취소 중단 촉구 서한을 발송했고 국제노동권리기금(ILRF)에서도 주미대사에게 긴급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주요 현안의 하나로 떠올랐고 정권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리서치플러스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국민여론조사’에서 60%의 국민이 전교조를 법외로 모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일정한 여론 지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총투표 70%의 압도적 반대 결의와 10/19일 1만 조합원 상경투쟁
이 시기 초미의 관심사는 정권의 시정명령 수용여부를 묻는 조합원총투표였다. 전교조는 9/29일 대의원대회에서 정부의 시정명령 수용여부를 묻는 조합원총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는데 탄압의 위세, 그동안의 전교조 활동의 침체 등으로 인해 쉽게 결과를 예단할 수 없었다. 실제 조직 내부에서도 거부론과 수용론이 치열하게 다퉜고 당사자인 전교조는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와 정권 모두가 촉각을 세우고 지켜봤다.
결국 10/16-18일의 3일간 진행된 조합원총투표는 80% 참여에 69.7%의 압도적 비율로 시정명령 거부를 결정했다. 조합원총투표 결과는 전교조에 대한 조합원의 자긍심과 단결을 확인하는 것이었고 ‘9명과 함께 가는 6만명’이라는 감동을 낳기도 했다. 그러한 감동과 함성 속에서 1만여명의 조합원과 시민사회단체가 운집한 가운데 10/19일 독립문공원에서 전조합원 상경투쟁이 벌어졌다.
총투표 결의는 반신반의하던 일부 정치권과 사회세력에게 ‘전교조가 부당한 탄압에 굴복하는 일은 없다!’는 확신을 심어줘 투쟁의 지평을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됐다. 야당들의 태도가 더욱 분명해졌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10/22일 ‘전교조 법외 처분이 부당하고, 근거 법을 고쳐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장 성명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 10/24 노동부 ‘노조로 보지 아니함’ 통보
  그런데도 노동부는 한 시도 늦추지 않고, 예고된 10/24일 달랑 한 장의 공문으로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해 왔다. 교육부는 대뜸 이를 받아 전임자 현장 복귀, 사무실 지원 회수, 체크오프 중단, 교섭 효력 상실 등을 선언하고 각 교육청에 지침을 내려 전면탄압의 뜻을 드러냈다.  

* 법적, 정치적 대응의 상승
법외노조 통보 당일날 전교조는 곧바로 취소소송과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내고 헌법소원을 제기해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정치적 차원에서도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소속 야당의원 성명서, 심상정 의원 교원노조법 개정안 제출이 이뤄졌고 조계종 성명서 발표, 박대통령에게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항의서한 발송, 노동기본권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 PISA 이사회 선전전, 여러 토론회 및 외신기자회견 등 다방면의 대중투쟁과 정치적 대응이 있었다.

* 11/13일 가처분신청 인용과 법적 지위 재확보
11/13일 행정법원은 전교조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전교조는 잠정적이나마 다시 법적 지위를 확보해서 본안 판결 때까지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뒤로도 EI 회장, 사무총장 방한(11/16-18일), 교원노조법 개정 국회토론회(11/20) 등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끝내려는 국내외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50일간의 숨가쁜 공방 속에서 적어도 지금, 전교조는 총투표와 가처분 인용의 주요 고비에서 승리해 ‘조직적 결속을 다지면서도 법내 지위를 유지’하는 최상(?)의 경로를 걸어온 셈이다. 그러나 아직 승패는 판가름나지 않았고, 법적 지위에 대한 최종 결과는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다만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법적 명분과 우위가 확인된 점. 법외노조 탄압이 무리한 것이라는 여론이 확산된 조건으로 비추어 볼 때, 앞으로 법적 공방도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앞으로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할 조건들을 창출하는 한편, 법외노조 공방을 뛰어넘어 전교조운동이 한 단계 상승, 발전할 방향과 방침을 시급히 설정해 나갈 때다.


2. 법외노조 공세의 성격과 전망

* 막무가내 과잉공세
이미 이명박정권 말기인 지난 2월에 ‘규약 시정명령’ 공방이 있긴 했으나 하반기 법외노조 공세는 전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은 상황을 안이하게 바라본 탓도 있지만 법외노조 공세가 그 이전의 흐름과 사뭇 다른 차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박근혜정권의 설립취소 공세는 지난 2월말에 있었던 ‘시정명령’ 공세와는 여러 지점에서 그 양상과 성격이 달랐다. 2월 공세가 ‘순치 전략’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하반기 공세는 ‘말살 전략’으로 진행됐고 2월에는 시정명령 공방 가운데 노동부 나름의 정치적, 법률적 판단 속에서 일정하게 물러섰다면 하반기에는 이미 전교조 죽이기 방침이 이미 설정된 가운데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 유신회귀 세력의 민주주의 압살 일환
이런 막무가내 공세는 언제 시작됐는가? 출범 초 다소 타협적인 지배방식을 구사하던 박근혜정권이 하반기 들어서면서 진용을 바꿔 박근혜-김기춘 라인의 유신회귀 체제가 전면화하면서부터다.
  유신회귀 세력의 전면화는 수구세력의 권력 강화 욕구와 부정선거 규탄 정국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정치적 귀결이다. 유신회귀를 꿈꾸던 수구세력은 국정원, 경찰청 선거개입에 대한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대통령사과, 국정원개혁 요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그를 핑계로 권력의 전면에 나섰다. 그들은 예전에 써먹은 지배방식을 답습해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 국면을 바꾸고 권력 기반을 정비하려고 했다.
우선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려 대대적 공안정세를 전면 조성하고 채동욱 검찰총장과 윤석열 검사 찍어내기 등을 통해 권력 독점체제를 전일화해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부정사태를 덮으려 했다. 내친 김에 복지 정책을 통한 국민포섭 정책을 포기하고 자본과 부자 중심의 경제-사회 정책을 노골화할 뜻도 드러냈다.
전교조 죽이기 공작은 오래된 수구세력의 염원(?)의 하나로, 유신회귀의 민주주의 압살과 공안통치로 모처럼 빛을 봤다.  

* 실패가 예정된 ‘헛발질’ 공세
하지만 수구세력의 법외노조 공세는 실패가 예정된 역사퇴행적 공세다. 우선 총투표에서 드러났듯 전교조를 굴복시킬 수도 없고, 내용적 명분과 국내외 여론, 법리적 측면 모두 취약하다. 또한 법외노조 공세의 배경이 되고 있는 수구세력의 공안 통치는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취약성을 안고 있다.  
첫째,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전방위적 선거개입을 통한 민주주의 유린의 문제가 여전히 전선을 형성하고 있고, 국정원 개혁 및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둘째, 채동욱 사퇴공작, 전교조 법외노조화 기도, 통진당 해산요구 등 선거부정 문제를 덮으려는 공안통치와 공작정치에 대해 국민들의 불안과 반감이 광범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셋째,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복지 공약과 원칙-안정 등의 이미지 전략이 먹혀들어간 결과였다. 그런데 복지 공약을 무원칙하게 후퇴시키는 과정은 민심 이반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수구적 통치방식은 민심 이반을 불러오고 있을 뿐 아니라 정권 내부가 분열될 위험마저 있다. 권은희 폭로, 진영 사퇴, 채동욱, 윤석렬 파동에 이어 정보유출 관련 서초구청 담당자의 항변 등이 이어졌다. 유신회귀 통치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를 필두로 ‘박근혜 퇴진’ 요구가 전면화돼 각 종교계로 파급된 것은 그들의 유신회귀 기도가 파산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드높았던 정권 지지율도 차츰 떨어지고 있다.

* 정세의 가변성
  앞으로의 정세는 매우 유동적이고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정권측의 공세가 너무 앞질러 나간 반면, 부정선거 규탄 국면도 더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정권으로서는 상황은 진압되지 않고 더 커졌는데, 그렇다고 후퇴하기도 어렵다. 결국 상호 간의 대립이 확대, 격화되는 국면이다.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혹은 전환될지 전망하기 어렵다. 다만 2014년 지방선거가 하나의 분수령이 될 듯하다.
전교조의 법적 지위도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행정소송, 헌법소원, 법개정의 여러 계기 속에서 법내와 법외의 냉온탕을 오갈 수도 있고, 긴장된 가운데 법내 지위를 유지할 수도 있다. 다만 길게 본다면 승리를 향한 전교조의 기본 토대는 어느 정도 확보되고 있는 셈이다.


3.승리의 동인과 조건
아직 최종 결과는 남아있지만 전교조는 일단 잠정적 승리를 거뒀다. 무엇보다 총투표를 통한 대중적 결의의 표출은 법적 다툼과 상관없이 이미 절반 이상 승리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 전교조 정체성에 대한 대중적 자긍심
시정명령 수용여부가 조합원총투표에 붙여졌을 때 전교조 안팎에 적지 않은 불안감이 표출됐고 조직의 운명을 사실상 도박에 내맡겼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더욱이 조직 내에서도 거부론/수용론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수용으로 가결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기도 했다.
  수많은 우려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전교조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70%에 달하는 압도적 거부를 결의했다. 거부 결의를 내다본 사람들도 그 정도의 압도적 결의를 예측했던 경우는 많지 않았다. 총투표에 대한 그 모든 불안감과 수세적 예측을 일거에 넘어선 동력과 조건은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무엇보다 전교조의 정체성에 대한 조합원들의 확고한 자긍심이었다. 법외노조 협박 이후 전교조조합원들 사이에 가장 많이 그리고 빠르게 퍼져 나간 행동 중의 하나가 SNS 등의 매체를 통해 “나는 전교조 조합원이다!!”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교조결성 당시의 ‘전교조교사 식별법’이나 결성 이후 ‘전교조가 해온 일’ 등 전교조 정체성과 관련된 상징적 선전과 패러디가 유행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그 동안 보수세력의 이미지 왜곡, 전교조활동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전교조의 활동방향과 정체성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품고 있음을 보여줬고, 정권의 법외노조 공세를 전교조 정체성에 대한 정면 부정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했다. 그에 대해 물러서지 않을 뜻을 밝히는 행위였다.

* 내용적 정당성
노동조합이 투쟁과정에서 해고된 조합원을 내칠 수 없다는 명분도 중요한 승인이었다. ‘조합 활동을 하다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을 어찌 내칠 수 있는가‘하는 분노는 노동조합의 기본 정체성일 뿐 아니라 국민 정서에도 부합했다. 또한 전교조의 법적 지위는 한국사회에서 그나마의 절차적 민주주의라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결실을 이룬 민주주의의 상징인데 전교조결성 이래 해고자가 없었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고 그를 이유로 지금 설립취소를 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트집잡기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광범한 국내외 여론과 압력이 일어났고 국민여론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두 차례의 여론조사 결과 모두 다수 국민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 법률적 우위
법외노조화와 관련된 법적 공방에서도 전교조는 분명한 우위에 있었다. 노동부의 법외노조통보는 첫째, ‘법률적 위임’ 사항이 없다는 것. 둘째, ‘피해 최소성 원칙’ 위반(행위 정도에 따른 조치를 넘어선다는 것. 즉 설사 위법이라 하더라도 9명 해고조합원의 존재로 6만명의 노동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는 위헌성을 지닌다. 두 가지 사항 모두 중대한 것이며 헌법 아닌 법률 차원에서도 다툼의 소지가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노동부조차 ‘위헌적 요소로 인해 법외노조 통보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며 인권위원회의 입장, 가처분 인용 등도 법률적 우위를 보여준다. 앞으로 법적 승부는 행정소송, 헌법소원, 법률개정의 여러 경로 속에서 다루어진다. 3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으며 어떠한 형태로든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 광범한 연대전선
중요한 승인의 하나는 역시 광범한 연대의 힘이었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1000여개에 이르는 시민사회단체가 ‘전교조탄압저지 긴급행동’에 참여했고, 다양한 단체, 세력의 지지, 지원이 있었다. 이는 결성 당시의 연대에 버금가는 것이었으며 합법화 이후로는 ‘네이스투쟁’(네이스투쟁 때는 1100여개 연대단체참여) 이후 최대의 연대체 형성이었다.


4. 전교조 ‘참호’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이번 투쟁과정은 여러 조건들이 얽혀 있지만 무엇보다 전교조가 웬만한 탄압과 공세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만큼 운동의 대중적 토대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줬다. 그람시의 개념으로 치자면 일종의 ‘참호’가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총투표 결과는 참호를 더욱 든든히 다지는 것으로 다시 작용했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대중적 참호가 형성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가치, 신념 등 이념적 공유이다. 전교조의 이념과 정체성, 활동방향과 내용에 대한 조합원들의 공유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 둘째, 이념적 공유가 유지되려면 조합원들의 동의를 꾸준히 재생산하고 새롭게 채우는 투쟁전선과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셋째, 그러한 네트워크를 매개하고 투쟁전선을 견인할 활동가층, 투쟁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조건들을 갖춘 전교조 참호는 어떻게 형성되었던가? 이에 대한 검토는 앞으로의 전망과 대응방향 설정에 주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 대중투쟁의 역사
전교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자긍심은 대량 해직을 낳은 결성투쟁의 추억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 이후에도 전교조는 ‘교육민주화와 참교육’의 방향 아래 7차, 성과급 여의도 대중연가투쟁, 네이스, 사립학교법, 교원평가, 일제고사 등의 규모있는 대중투쟁과 0교시, 야자폐지에서부터 최근의 역사교과서 투쟁에 이르기까지, 교육현안에 대해 다양한 투쟁을 벌여 왔다. 굴하지 않는 대중투쟁의 역사, 투쟁전선의 견인 속에서 대중적 진지가 형성되어 온 것이다. 정체성은 문서로 된 규약이나 옛날에 있었던 투쟁의 기억만으로 유지될 수 없으며 정세 속의 구체적 투쟁을 통해 항상 새롭게 재구성된다. 만약 합법화 이후 권력에 의해 강요되는 틀에 안주해 왔다면 조합원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 참교육실천과 학내민주화 투쟁을 통한 일상투쟁과 활동
치열하고 혹은 광범한 대중투쟁은 때때로 일어날 뿐이다. 또한 대대적인 싸움이라 하더라도 실제 참여는 제한적이다. 일상적인 실천과 투쟁이 있어야 대중적 정체성이 유지, 확대될 수 있다. 전교조는 교과모임과 학습소모임, 생태, 문화 그리고 최근의 혁신학교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임과 활동 그리고 분회를 중심으로 한 학내민주화운동을 꾸준히 벌여 왔다. 참교육실천과 학내 일상투쟁 및 활동은 가장 기초적인 조직의 토대이자 주체 형성의 기제로 작용한다. 그 속에서 학습하고, 토론하고, 다양한 실천을 모색하고 조직해 나간다.
여타 대중운동에 비해 전교조의 가장 큰 강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아마도 대중운동 영역 중 조직의 정체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일상활동이 가장 활발한 쪽일 것이다. 물론 2000년대 대중운동의 전반적 침체 속에서 전교조의 일상활동도 하강의 흐름을 겪어 왔다. 그렇지만 ‘참교육’과 ‘교육민주화’라고 하는 일상활동과 연결될 지향점을 바탕으로 밑으로부터 혹은 상층에서도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고 어느 정도 그 힘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 대중투쟁과 일상활동을 연결하는 조직적 네트워크
전교조는 본부-지부-지회-분회에 이르는 체계 속에서 8000개가 넘는 전국의 학교현장을 연결하고 있다. 군대나 관료조직처럼 결코 일사분란할 수도 없고, 어떤 사업이 실현되는 데도 많은 시간과 과정을 필요로 하고, 누수도 많지만 이렇게 많은 현장 단위가 연결되고 작동하는 것은 사뭇 대단한 것이다. 이 네트워크가 작동하기 때문에 대중투쟁과 일상활동 그리고 그를 통한 주체형성 모두가 가능하다. 네트워크의 작동에는 본부-지부-지회-분회를 채우는 많은 활동적 조합원들이 복무한다. 그들의 활동은 거의 전적으로 자발적 의지에 의해 추동되는 바 그 힘은 다시 전교조 정체성에 대한 신념과 자긍심으로 재귀결된다.

* 참호의 역동성
전교조가 참호가 될 수 있었던 토대는 참교육과 교육민주화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과 그에 기초한 자발적 활동력이며 그것은 대중투쟁과 일상사업의 지속적 결합을 통해 유지, 재구성될 수 있었다. 일상활동이라는 진지전과 대중투쟁이라는 기동전 중 어느 하나가 결여돼서 결합할 수 없었다면 이번과 같은 수위의 공세를 넘어서기 힘들었을 것이고 이미 그 이전에 신자유주의의 거센 공세에 적지않이 허물어졌을 것이다.
전교조 참호는 역동성을 지닌다. 진지전과 기동전의 상호결합이라는 관계 자체가 기본적으로 역동적이기도 하거니와, 시기와 국면에 따라 대립물과 상황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한편의 드라마처럼 벌어진 이번 공방과정은 대중운동 참호의 역동성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참호’라는 전쟁개념으로 비유하기는 했지만 물론 대중운동 참호는 실제 전쟁에서의 참호와는 매우 다르다. 대중조직과 군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조직이고 실제 전투 상황과 대중운동의 투쟁 상황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대중운동의 전술을 논할 때 일부 논자들이 병법의 문구를 들여와 적용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러한 설명들이 오히려 적절치 않을 때가 많다. 예컨대 기본적으로 실제 전쟁에서는 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패배로 연결되지만 대중운동은 전술적 패배 속에서도 승리의 토대를 쌓아 나갈 수 있다.)
시정명령에 대한 거부론/수용론 논쟁에서 ‘수용론’은 대중운동 참호의 핵심 조건을 ‘정체성’이 아니라 ‘제도적 공간’으로 잘못 이해했으며 진지전과 기동전을 대립적인 것으로 바라보면서 역동성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실리적, 정태적 관점은 당장의 물리적 역관계만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5. 위기를 기회로

* 조직의 활력과 단결을 끌어올릴 기회
공방은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또다시 법외 상태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미 수년 간 법외 상태에 있는 공무원노조를 보거나, 이미 비합 상황을 겪은 전교조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거나 극복하지 못할 일은 결코 아니다. 막연한 불안감만 넘어선다면 현 정권의 무리한 설립취소 공격은 오히려 그 동안 다소간 가라앉은 조직의 활력과 단결을 끌어 올리고 사회적 이미지도 재강화할 기회이기도 하다.
기회의 양상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법외노조 통보 이후 신규가입이 줄을 이어 1000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 연대가 광범하게 형성되면서 큰 힘을 주고 있다. 총투표를 통해 조직적 결속도 단단해지고 있고, ‘탄압받는 민주교육’으로 다시금 ‘재이미지화’되고 있다. 정권의 탄압이 의도치 않게 전교조의 대중적 힘과 결속력, 사회적 이미지를 키워준 셈이다.

* 참호를 더 튼튼히
전교조는 이번 법외노조 공세를 주체적으로 극복하고 있지만 기반을 더 튼튼히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만 해도 수년간 전교조투쟁과 운동은 하강의 흐름에 놓여 있었고, 그만큼 참호가 약해져 온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수구세력은 강력한 탄압을 가할 경우 전교조가 굴복하거나 최소한 내부 분열로 치달을 것으로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참호를 더 튼튼히 하기 위해 전교조는 대중투쟁과 참교육실천활동을 함께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를 통해 전교조 정체성의 더욱 굳건한 강화, 역량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번 과정은 연대의 의의를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전교조는 때로는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와 민중 권리를 위한 연대에 더욱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참여해 나가야 한다.

* 전교조의 또 다른 근접발달영역 창출을 위하여
이미 전교조는 조합원들의 주체적인 거부 결의라는 하나의 근접발달영역을 집단적 협력 속에서 창출한 바 있다. 새롭게 창출되어야 할 근접발달영역은 CMS 정비 이후 그 동안의 조합원 감소세를 확대로 반전시키는 것, 대중투쟁력을 복원, 고양시키는 것, 자신의 문제를 넘어 반독재민주전선에 나서는 것 등이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근접발달영역 창출은 맹목적 과제 설정이 아니라 구체적 정세, 구체적 실천의 문제이다. 전교조의 집단적, 조직적 발달 창출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 판단된다. 주체적 극복의 내적 맹아(정체성 공유와 조직적 결의 및 준비 등)도 분명하며 외적 연대와 정세적 역동성의 조건도 주어지고 있다. 자신감과 당당함을 갖고 나아간다면 ‘탄압이라는 위기’를 ‘한 단계 전진하는 새로운 진출의 기회’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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