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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 색 지각(知覺)

 

코난(진보교육연구소 회원)

 

 

들어가며

 

어렸을 적 미술을 못 했습니다. 조각, 찰흙 등 거의 다 못했지만 특히 기본이 되고 큰 부분을 차지했던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기는 물론이고 색칠도 엉망이었습니다. 언제가 한 번 잡지를 찢어 붙이는 모자이크 숙제를 하고 받은 칭찬이 미술 시간에 받은 유일한 칭찬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저는 보이는 데로 그린다기보다는 보았던 데로(즉 알던 데로) 그렸던 것 같습니다. 집과 나무를 보았던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관찰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저의 기억조차 세밀한 것은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는 벽, 문, 창문, 지붕 등이 있다는 지식을 이용해 전형적인 집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자연물인 나무는 더 어려웠습니다. 인공물인 집과 달리 구조의 경계가 덜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에는 뿌리와 줄기와 잎이 있는 데, 뿌리는 땅 속에 있어서 그릴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땅 표면에서 위로 두껍게 솟은 나무 기둥을 먼저 그린 후, 거기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작은 가지들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조그만 잎들이 많이, 그것도 아주 잔뜩 붙어 있는데, 그것을 다 그리는 것은 어렵고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얼기설기 잎들을 그리거나 아니면 전체 윤곽만 그리곤 했습니다(아래는 제가 그 시절 기억을 되살려 그린 그림입니다).

 

 

색칠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저는 보이는 데로 색을 칠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잎의 색은 보통 초록색이지만, 같은 초록색이라도 나무의 종류에 따라, 빛이 비추냐 아니냐에 따라, 앞면이냐 뒷면이냐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알았더라도 그 미묘한 색 변화를 물감으로 만들어 칠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크레파스나 물감에서 제가 알고 있는 색과 가장 비슷한 색을 하나 골라 나무 줄기와 잎을 몽땅 칠해버렸습니다. 줄기는 전부 고동색이고 잎은 전부 초록색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그나마 잎과 잎을 구별해 주던 연필 밑그림 자국이 없어져, 색을 칠한 나무는 더욱 나무 같지 않아 보이게 되곤 했습니다.

 

아는 데로 그리기

 

비고츠키는 『상상과 창조』에서 어린이들은 그림을 보이는 데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는 데로 그린다고 말합니다.

 

1-8-5] 이 단계의 본질적 특징은 어린이가 실물이 아닌 기억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한 심리학자는 어린이에게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그림을 그리도록 한 적이 있는데, 이 어린이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관찰 뿐 아니라 그러한 그림에 대한 분석도 어린이가 기억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즉각 드러낸다. 어린이는 자신이 본 것이나, 보고 나서 마음속에 나타낸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그린다. 어린이가 말과 기수의 옆모습을 그릴 때, 옆에서는 기수의 다리가 하나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두 다리를 모두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의 옆얼굴을 그릴 때 어린이는 두 눈을 모두 그린다. (비고츠키 『상상과 창조』)

 

이 단계의 어린이들은 이미 언어를 통해 세상을 범주적으로 지각합니다. 인간의 문화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시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생물학적 기능인 반응적 지각을 갖추고 태어난 어린이는 문화적 발달을 통해 고등정신기능인 범주적 지각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려면 어린이는 아는 데로 그리는 단계를 넘어 보이는 데로 그리는 단계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반응적 지각과 범주적 지각이 통일된 새로운 단계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눈으로 보지만, 그저 눈에 비친 그대로가 아니라, 개념(언어)을 통해 인식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I see”는 “알겠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본다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는 것이 본다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 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호메로스의 색깔 묘사)

 

어떻게 보면 자명해 보이는 이 사실이 처음부터 받아들여졌던 건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저는 인간의 색 지각 문제를 통해 자연과 문화 그리고 언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이며, ‘언어로 보는 문화(Through the language glass)’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서술의 편의를 위해 이하 내용은 별다른 언급 없이 이 책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이야기는 19세기 영국의 정치가로서 총리 자리까지 올랐던 글래드스턴으로 시작합니다. 글래드스턴은 정치가이자 학자로서 호메로스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1858년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자세히 연구하여 장장 1,700쪽에 달하는 연구서를 저술했습니다. 그 책의 마지막 권 맨 끝 장은 약간 신기하고 다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주제를 다루었는데, 그 장 제목은 ‘호메로스의 색깔에 대한 인식과 활용’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글래드스턴은 호메로스의 색깔묘사방식이 다소 기괴하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이 발견에서 매우 급진적이고 당황스러운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이는 오래지 않아 ‘언어를 자연이 지배하느냐 문화가 지배하느냐’는 기나긴 논쟁을 촉발합니다.

 

그가 내린 결론을 현대 용어로 풀어쓰면 호메로스 시대 사람들은 세상을 ‘총천연색’이 아니라 흑백에 가깝게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글래드스턴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에 대한 증거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다섯 가지 핵심명제로 정리된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 직관에 비추어볼 때 본질적으로 다른 여러 색깔을 같은 단어로 지칭한다.

2. 근본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여러 색깔형용사를 이용해 같은 대상을 묘사한다.

3. 우리가 색깔묘사에 등장할 것이라 기대하는 부분에서 색깔묘사가 거의 없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다.

4. 색깔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인 검정과 하양이 다른 색깔에 비해 과도하게 많이 나타난다.

5. 호메로스가 사용한 색깔묘사어휘는 지극히 적다.

 

예컨대 호메로스는 바다나 소의 색깔이 ‘와인처럼 보인다’고 묘사합니다. 또한 ‘가장 원시적인 색깔’인 검정과 하양은 많이 언급하지만, 빨강이나 노랑, 보라는 훨씬 적게 언급하며, 놀랍게도 기본적인 색깔 중의 하나이자 바다의 색깔인 ‘파랑’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바다가 적조로 인해 붉게 보였다는 둥, 당시 와인이 파란색이었다는 둥, ‘시적 허용’이라는 둥, 호메로스가 맹인이었다는 둥 여러 가지 주장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토록 유명하고 널린 알려진 문학 작품의 색깔 묘사가 별 거슬림 없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에서 위 주장들의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또한 이러한 색깔 묘사는 호메로스의 작품 뿐 아니라 몇 세기에 걸친 다른 고대 그리스인들의 작품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글래드스턴은 ‘색맹’이라는 용어나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색깔 체계와 그에 대한 인식은 그리스 영웅시대에는 일부만 계발되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색깔인지능력은 비교적 최근에 완전히 진화되었으며, 호메로스의 시대에는 아직 검정, 하양과 더불어 빨강 정도만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글래드스턴은 자신의 주장이 기괴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 주장을 진화론적 흐름으로 잘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색깔 개념은 대상과 분리해야만 인식 가능한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인공 염료를 사용한 염색 기술이 발달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색깔을 조금씩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능력이 단계적으로 유전되어 현대에 와서야 완전한 색깔인식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파란색은 자연에 드문 색이며, 파란 염료도 만들기가 어려워서 뒤늦게 인식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입니다. 그럴듯한 논리이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이 파랑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글래드스턴의 진화적 설명은 현대 진화론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용불용설에 기반한 주장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다윈의 자연 선택설에 기반한 종의 기원이 발표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글래드스턴은 문화의 힘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논쟁은 이어집니다.

 

색깔 언어의 진화

 

그 후 종의 기원이 발표되고 다윈주의가 집단 지성을 지배하던 무렵인 1867년, 겨우 30살 밖에 되지 않은 정통파유대교 신자 라자루스 가이거는 독일에서 열린 어떤 학술회의 폐회강연에서 ‘원시시대의 색깔인지와 그 진화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강연을 합니다. 가이거는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언어를 통해 원시상태에서 인간이 누려온 발달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언어의 발전과 인간의 이성의 진화에 관한 대담하고 독창적인 이론을 무수히 쏟아냈다고 합니다. 글래드스턴의 책을 보고 색깔언어에 관심을 갖게 된 가이거는, 더 나아가 다양한 고대문헌에 나타나는 색깔묘사를 검증하기 시작합니다. 가이거는 고대 인도의 베다시와 성경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호메로스뿐 아니라 고대 인도의 시인과 성경을 쓴 사람들도 파란색을 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구절로 시작하며, 그 후 하늘이라는 말이 수백 군데 등장하지만, ‘파랑’이라는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후 가이거는 색깔언어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어원론’이라는 새로운 학문영역을 새롭게 만들어 냅니다.

 

보다 심화된 연구를 통해 가이거는 글래드스턴보다 더 나아가 다양한 색깔에 대한 인식의 발생순서를 완벽히 재구성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색깔인식은 색깔스펙트럼(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순으로)에 따라 발생하며, 이러한 발생과정은 전 세계 어느 문화에서나 똑같은 순서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후 수십 년 동안 ‘자연과 문화’를 두고 벌이는 모든 논쟁에서 중심이 되는 근본적인 질문을 처음으로 제시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언어로 묘사할 수 있는 것 사이에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글래드스턴은 색깔인식 능력과 언어가 일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이거는 그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대 사람들은 색깔인식 능력이 현대인과 달랐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름 붙이는 능력만 달랐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이거는 강연에서 이에 대한 증명을 다른 사람들 몫으로 넘기고 요절했다고 합니다.

 

자연의 진격

 

이후 한동안 이 논쟁은 자연의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1877년 프로이센의 안과교수였던 휴고 마그너스는 “색깔인식의 역사적 진화”라는 소논문을 출간합니다. 그 당시는 기관사의 색깔인식에 문제가 있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열차 충돌 사고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색맹을 검사하는 수단과 검사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때였기 때문에, 이 논문에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고 합니다. 마그너스는 글래드스턴의 진화론적 모델과 가이거의 색깔인식 순서를 결합하여 과학적 용어로 설명합니다. 그는 색깔을 빨강부터 인식한 이유는 파장이 긴 빨강색이 ‘가장 강렬한 색깔’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가장 높아서, 망막을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파장이 긴 빨강색이 에너지가 가장 작고 파장이 짧은 파랑색이 에너지가 가장 큽니다).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을 발견한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와 태아가 종의 진화를 반복한다는 이론을 제안한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 등이 이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마그너스의 주장은 색 에너지 오류 이외에도 치명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획득형질은 유전되기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에도 거의 반세기 동안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으며 이는 마그너스의 잘못된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토대가 됩니다. 오죽하면 1887년 바이스만이라는 생물학자는 쥐 꼬리를 자르는 실험을 무려 5년 동안 8대에 걸쳐 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당연하게도 선대 부모의 꼬리를 아무리 잘라도 자손 중 어느 한 마리의 쥐 꼬리도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견고한 아성을 뚫고 의문이 솟아오릅니다. 이들은 “색깔을 인식할 수 있으면서도 언어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가이거의 의문을 다시 음미하며, 마그너스를 비판합니다. 1878년 프란츠 딜리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은 본질적으로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다. 우리 몸에 있는 두 눈과 그 뒤에 존재하는 마음의 눈이다. 바로 이 마음의 눈을 통해 색깔인식의 문화-역사적 발전이 일어난다.” 하지만 오늘날 ‘문화주의자’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들의 주장은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색깔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언어로 구분하여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문화의 반란

 

문화의 반란은 소위 ‘미개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에 대한 색깔 인식 조사에서 시작됩니다. 1869년 독일의 인류학자이자 여행 작가인 아돌프 바스티안은 「민속학회지(Ethnology)」에 짧은 글을 발표합니다. 거기서 바스티안은 색깔묘사의 기괴한 점은 고대 서사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변방의 소수민족들에게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글은 발표 당시 큰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마그너스 이론에 대한 논쟁이 불타오르면서 큰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 내용이 문화주의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이 명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에서 관련한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곧 글래드스턴과 가이거가 밝혀낸 색깔 어휘 결핍은 오늘날 살아 있는 언어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예컨대 수마트라의 나아스섬 원주민들은 기본 색깔 어휘로 검정, 하양, 빨강, 노랑 네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초록과 파랑과 보라는 모두 ‘검정’으로 통칭되었습니다. 또한 감정, 하양, 빨강, 노랑, 초록은 있으나 파랑이 없는 언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원주민들의 색깔인지능력을 검사한 결과, 어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색깔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색깔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어도, 여러 색깔의 실타래를 늘어놓고 같은 색깔의 실타래를 찾아내라는 검사를 대부분의 원주민이 쉽고 정확히 수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색깔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에 마그너스는 자신의 해부학적 설명을 수정하여 내놓는 등, 자연과 문화의 싸움은 계속 이어집니다.

 

문화의 승리

 

이후 문화주의의 승리를 안아온 결정적 조사는 1898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사이의 토레스해협에서 이루어진 캠브리지 대학교의 인류학탐험원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참여한 정신과의사이자 실험심리학자였던 리버스는 섬에 머무는 동안 인간사회의 제도에 흥미를 느끼고 친족관계와 사회구성에 대한 독창적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의 작업은 사회인류학의 토대가 되었고, 후에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킨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그를 ‘인류학의 갈릴레오’라 불렀다고 합니다. 리버스는 색깔인식능력을 둘러싼 논쟁을 해결하고자 정밀한 조사를 시작했고, 색깔어휘의 차이는 생물학적 요인과 상관이 없다는 많은 증거를 찾아냅니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리버스는 하늘과 바다의 청명한 파란색을 보고 자연스럽게 검정이라고 말하는 원주민을 보면서 마그너스의 가정이 타당하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하지만 증거는 스스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 리버스의 탐험보고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리버스와 정반대의 결론을 끌어냅니다. 결국 원주민들이 보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대인들도 우리처럼 색깔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으며 색깔어휘의 차이는 생물학적 진화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문화적 진화를 반영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자연과 문화의 논쟁이 끝이 나는 듯 보였습니다. 문화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수수께끼는 가이거의 색깔어휘 진화 가설뿐이었습니다.

 

<여기 까지 읽으신 많은 분들이 예상하듯 이 이야기는 문화의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연의 반격이 시작되고, 색깔 인식을 둘러싼 자연과 문화의 투쟁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색깔 인식의 문제를 보다 보편적인 언어와 문화의 문제로 확장시켜, ‘언어(모국어)가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새로운 주제를 탐구합니다. 추후의 논의는 다음 호에 이어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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