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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그 후 – 대자보에 못다한 이야기


개포고 안녕들 하십니까, 그 후 대자보에 못다한 이야기

박종하 / 개포고


사건 정황.
<첨부파일 : 12월 달력>

대자보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보자면.
한국 사람들은, 특히 학생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길 강요받는다. 서로 긍정을 강권하다 보니 건강한 비판을 하는 사람은 유난떠는 자로 치부되며,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으로 폄하되곤 한다. 나는 비판과 사유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럴수록 문제아, 부정적인 애로 지목받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금기의 결과는 뻔하다. 모든 비판이 침묵으로 바뀐다면 우리 사회는 발전 없이 영원히 정체되고 말 것이다.

대자보의 의미가 곡해되는 경우가 많아 첨언을 하자면 긍정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근거가 없는, 자기 인식이 결여된 비현실적인 긍정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긍정이 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능력, 주어진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되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한계, 부족함을 보완, 극복하지 못한 체 안주하거나 망상에 빠질 것이다. 철도민영화를 의료민영화를 국정원 사건을 근거없이 긍정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그 사안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거치게 된다면 긍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성장할 것이다.

왜 대자보를 썼나?
여러 매체와 학생주임한테 얘기했듯이 안녕하지 못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혹은 그들을 옥죄는 시선과 제도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다고 얘기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 대자보를 보고 대자보 행렬에 동참해주길 바래서 썼다. 학생, 나이 어린 사람들은 대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쉽게 무시당하고, 억압받는다. 학교는 그러지 않아야 할 공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보다 폐쇄적인 형태의 폭력들이 일어난다. 학교에 오는 순간부터 두발, 복장은 단정한지, 공부에 집중하는지, 전자기기를 가지고 다니는지, 인사는 하는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린 선택을 박탈당한다. 때문에 학교는 언제나 안녕하지 못하단 수군거림으로 요동친다. 성적, 가정, 알바, 성정체성, 사교, 학원 등등. 그리고 지금껏 학생들은 본인을 안녕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에 관해 수군거리는 형식으로 분을 삭혀왔다. 그래서 나는 이 대자보로 이 안녕하지 못한 개인들이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적으로 논하며 지적하고 바꿔내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 학교에서 안녕하지 못한 이유들에 관한 더 많은 목소리들을 만나고 싶었다.

개포고로부터 탄압받고 침해당한 것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고 인신공격에 학부모 면담 거짓진술까지 셀 수가 없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렇게 절차, 절차 따져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자보를 철거한 사람들이 개최 2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해야하는 절차를 지키지도 않고 대선도위원회를 열려고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선도위원회에 회부된 이유 중 하나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게시물 및 인쇄물’은 교칙에 나와 있지도 않은 항목이었다. 나를 징계하려고 했던 개포고 교사들은 다시 중학교 사회 수업을 들어야 될 것 같다. ‘죄형법정주의’도 모르니 말이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또 27일 기자회견 진행 중 쉬는 시간에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몰려나와서 응원해주고 있는데 교사들이 화내고 단속했다. 심지어 하교시간에는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학생들을 고의로 30분가량 늦게 하교시켰다. 사실 어쩌면 당연히 무시당하고 있던 것인지 모르겠다. 항상 밟혀있을 줄만 알았던 학생인 내가 꿈틀대자 새삼스레 그 노골적 무시들이 다시금 포악하게 다가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파리 앞 두꺼비, 송골매 앞 두꺼비
이 제목만큼 학교의 모든 특성을 정확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두꺼비는 파리 같은 약자 앞에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송골매 같은 강자 앞에선 몸을 숨기고 도망가느라 바쁘다. 학교가 딱 그 짝이다. 23일 원래 2주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해야 할 대선도위원회 개최 안내를 4일전 구두로 통보하고, 24일 학부모 면담할 때 대선도위원회는 불가피하다고 학교 측의 입장은 완강했다. 그리고 학생주임은 면담 시 심지어 거짓진술까지 했다.(내가 직접 학생부실로 쳐들어 왔다 교사에게 불손한 언행을 했다 등등) 그런데 학교 측에서 학부모 면담 때 부모님이 나를 지지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페이스 북의 27일 기자회견 광고를 본 후 26일 아침 면담에서는 학교 측의 그 단호하고 언성높은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고 사과만 하면 조용히 넘길 수 있다는 달콤한 감언이설로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고 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진행된 후에는 말을 완전히 바꿔서 애초에 대선도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만약 내가 한부모 가정이었다면 소년소녀 가장이었다면 장애인이었다면 부모님이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600장 항의문을 뿌린 바로 다음날 대선도위원회가 열렸을 것이다. 만약 내가 전교 1등이었다면 내 아빠가 교육청 장학사였다면 우리 집이 엄청난 부자였다면 학교는 오히려 대자보를 칭찬하고 장려했을지도 모른다. 여러 시민단체가 도와줘서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결과적으로 징계는 받지 않아서 다행스럽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역겹다는 생각도 든다. 나보다 더 심하게 탄압받은 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론화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학교가 온갖 협박을 다 하면서 학생들의 기를 꺾어놓고 마치 진성전자처럼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강요하고 사건을 종결시켰기 때문이다. 약자 앞에선 한없이 강하고 강자 앞에선 한없이 약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실리를 따져가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학교는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활성화’가 목표라던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비겁한 모습이 진정한 ‘민주시민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건가.

왜 교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26일 여러 시민 단체들이 도와주기 전까지 나는 혼자 외로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몇몇 친분이 있는 선생님들도 격려의 말과 들으나마나 한 조언을 해줄 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예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교내에서 학생인권운동을 해왔지만(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서명운동, 해병대 캠프 신입생OT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기자회견 이라는 외부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파장이 커질 수 있는 일은 처음이라서 매우 두려웠다. 대입에 악영향을 끼칠까 두렵기도 했고 학생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따돌림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고 정말 수백 가지의 근심 걱정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또 가장 학생의 편에 서서 학생을 도와주고 보호해주어야 할 담임교사는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될 대로 되라 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상황을 회피했다. 여기서 종결을 시킬지 기자회견을 진행할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이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반응도 매우 열광적이었고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서 다행이었지만 교사의 도움이 있었다면 그런 마음 고생도 덜하고 좀 더 수월하게 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학교에서도 공론화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교사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사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동료평가, 동료의 시선, 연구 평가, 교장과 이사장의 절대권력 등등 교사를 옥죄고 있는 사회제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 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시민단체와 연결을 시켜주거나 ‘잘 될거야’ 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다른 공론화되지 못했던 학교에서도 개포고처럼 충분히 이슈화되고 잘 해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학생회인가?
이번 사건을 통해 교사의 학생회의 기능, 역할에 대한 인식 결여, 학생회의 무능함, 무력함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20일 자보가 철거되고 학생주임을 만났더니 학생주임이 나한테 이렇게 얘기했다. “이런 걸 왜 너 독자적으로 하냔 말이야! 학생회에 의견을 제시하고 승인을 받은 다음에 했어야지! 학생회가 폼으로 있냐!!” 학생회는 개포고 학생 전체를 대변하는 기구이고 이 대자보는 나 하나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한데 왜 학생회를 거쳐서 내 개인적인 의견이 개포고 전체 학생의 대표성을 가져야 하는가?
학교도 학교지만 학생회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바로 옆 숙명여고에 재학 중인 학생이 쓴 개포고 대자보 탄압 규탄 대자보를 개포고에 붙였는데, 학생회의 장이란 학생이 뻔히 우리가 다 보고 있는 앞에서 곧바로 찢어서 떼어버렸다.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학생회. 어쩌다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손으로 뽑은 대표에게 보다 치열하고 열성적으로 유권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라고 요구하지 못하는 것인가? 대체 교장과 교사들의 말을 더 잘 듣고, 학생들을 보다 잘 규율하고, 또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적인 자리에 불과하다면 도대체 우리가 학생회를 뽑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복성 처벌에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개념도 없어
우리 학교는 지각을 하면 온갖 한자로 가득 찬 명심보감을 깜지(종이를 글씨로 빽빽히 채우는 것, 쓰는 내용이 교육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교육벌이라고는 하나 상당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른다)로 쓰게 한다. 개학하고 2월 6일, 8시 까지 등교해야 하는데 3분 늦었다. 한 20명 정도가 지각 단속에서 걸렸는데 학생주임이 나만 열외시키고 깜지 대신 앉았다 일어서기 5번을 시켰다. 이유를 물어보니 “너는 이거 인권침해라고 생각하잖아 근데 다른 애들은 이의제기 안하거든. 너는 이거 대신 깜지 써와.” 라고 대답했다. 인권침해인 것 아시는 분이 왜 시키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인권침해라고 인식하는지 안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과 관계없이 인권침해라 판단되는 것은 필경 고쳐져야 할 부분이다. 물론 나는 최종적으로는 간접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지각에 대해 굳이 처벌을 해야 한다면 3분 지각에 대해 앉았다 일어나기 5번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쓰는데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깜지를 쓰는 것이 형벌의 적정성에 어긋난 과잉처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일 행위에 대해선 동일 처벌을 해야 한다. 그래야 형평성에 맞기 때문이다. 학생주임은 쓰는데 2시간 걸리는 깜지와 10초 걸리지 않는 앉았다 일어서기 5번이 서로 등가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유치하고 치사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다. 인신공격 비판에 대해 글씨체 지적이라는 변명도 그렇고 학부모 면담 거짓 진술도 그렇고 이번 말도 안되는 보복성 처벌도 그렇고 학교는 내가 그렇게 바보로 보이는가?

투쟁은 현재 진행형.
이번 개포고 대자보 탄압에 대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작년 12월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개포고는 그렇게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도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것인가? 우리를 무시하는 것인가? 그래서 3월 말 경 학교장이 제안한 사과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고 빠른 결정을 촉구하는 글을 전달할 예정이다.
만약 개포고가 징계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실제 징계를 내린다면 법원까지 가서라도 바로 고칠 것이다.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대자보가 가져온 변화
안타깝게도 학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변화는커녕 치졸하게 보복성 처벌만 하고 있다. 그리고 징계를 내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대자보와 기자회견을 보고 ‘안녕들’ 모임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생겼다. 그 한 장의 대자보로 한 명이라도 내면화된 근거 없는 긍정을 의심하는 학생이 생겼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미약하나 하나하나 모여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계획
대자보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고 수능까지는 좀 조용히 지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결과가 잘 나왔다면 ‘학벌 없는 사회’에서 진행하는 대학교 합격자 현수막 걸기 반대 릴레이 1인 시위를 교문 앞에서 할 예정이다. 또 지금까지 개포고에서 일궈온 학생인권 신장을 위한 나의 노력, 결과물을 후배들이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청소년 인권에 관심 있는 학생을 찾기 위해 1, 2학년 학생들에게 편지를 쓸 예정이다.

그리고 나의 꿈인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삐딱하게 보며 끊임없이 폭로하고 바꿔나가는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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