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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9(2015.12.15. 발간)

 

[기획1] 교육혁명을 다시 생각한다

입시교육체제에서 발달과 해방의 교육체제로

 

이현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1. 들어가며

 

반동을 저지하기도 버거운데, 혁명의 실천은 물론 혁명을 생각하는 것조차도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닌가? 집권세력이 퇴행을 넘어 반동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저항 전선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상징적 의미라 할지라도 혁명운운 하는 것은 현정세의 국면에 조응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교육부문을 보더라도, 올 하반기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매우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공세를 막기 위해 교육운동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동을 저지하기 위한 수세적 투쟁이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역동적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수세적 투쟁은 공세적 측면을, 즉 무엇을 막기 위한 투쟁은 항상 그 내부에 새로운 그 무엇을 지향하는 경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런 경향성의 현실화는 일정한 실천적 개입과 조건을 필요로 한다. 현재 집권세력의 반동적 공세는 그들의 힘의 압도적 우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첨예화에 대한 그들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구조적 위기를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사회적 의제와 대중의 요구로 부각시킬 수 있는 (진보세력의) 주체역량의 부족으로 인하여 지배세력의 퇴행과 반동에 대한 대응 전선이 매우 피상적이고(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에 머무는), 수세적인(반동의 저지로부터 새로운 지향으로 역동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진보세력들은 우리 사회의 객관적 구조의 위기들을 사회적 공간에서 상징화할 수 있는, 즉 현안의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전개할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새로운 삶이 가능한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대안 세력으로서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는 대중에게 지양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필연적인 사회 환경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지배세력의 퇴행과 반동에 대한 대응투쟁은 반동의 기저에 놓인 한국 사회의 객관적-구조적 위기와 모순들에 대한 대응투쟁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표면적이고 퇴행적인 정념적 대립으로 후퇴한다. 지배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설치한 황당하고 근거 없는 정념적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개인에 대한 증오나 혐오와 박근혜와의 동일시를 통한 옹호의 과잉 대립,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지역 간의 적대감과 새롭게 부상되고 있는 세대 간의 갈등, 내용 있는 좌우의 이념 대립이 아니라 낡은 종북과 빨갱이 몰이식의 편가르기 등 가상과 정념의 갈등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혁명을 다시 사유하게끔 강제하는 것은 아닐까? 혁명의 즉각적인 도래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객관적-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응하는 투쟁을 대중투쟁과 정치운동에 도입하기 위해, 이를 통해 사회의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운동과 퇴행과 반동에 저항하는 대중의 흐름과의 접점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

 

이 글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위기와 연동되어 있는 한국 교육체제의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규명하고 현 한국교육체제의 변혁적 전화의 가능성을 탐색해볼 것이다. 현재 한국의 공교육 체제를 근대적인 자본주의 공교육체제의 보편적 속성을 지니면서도 입시교육체제라는 종별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분석하면서 새로운 교육체제의 수립의 경로와 전망을 모색해 볼 것이다.

 

 

2. 왜 입시교육체제인가?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도한 입시경쟁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교육과 입시를 외재적 관계로 생각한다. 즉 입시를 한국교육의 특성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보기보다는 교육 밖에서 교육을 왜곡하고 질식시키는 원인으로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의하면 입시경쟁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사교육비이다. 이에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입시경쟁을 완화하여 사교육비를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좀 더 한 발짝 더 나가면 과도한 입시노동에 의한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권 유린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시경쟁에 의한 불평등의 재생산의 문제가 제기된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조기화될수록 가정으로부터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는 학생이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대학까지 포함하는) 교육체제가 과도한 경쟁과 이에 기초한 극단적인 서열화의 기능을 수행할수록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기제로서 작동할 것이라는 점이 비판의 요점이다.

이들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고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하지만 입시경쟁은 단순히 교육의 외재적인 질곡의 요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입시경쟁에 의한 입시중심교육은 한국 교육의 특성을 내재적으로 규정한다. 즉 입시중심교육이 교육의 목적, 교육의 내용, 교육의 방법 등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동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근대교육체제의 목적과 특성을 규정하는 심급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첫 번째 층위는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요한 노동능력과 규율을 지닌 노동력의 양성(지식, 기술, 노하우, 생활습관, 태도 등), 현존하는 지배 질서에 순응하고 이를 수용하는 가치관의 형성 즉 지배이데올로기의 체계적인 주입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적인 불평등한 분업구조에 노동력을 배치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기능 등.

두 번째 층위는 근대사회의 보편적 이데올로기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부르주아지들은 중세의 특권 세력과 대결하면서 전체 인민들에게 봉건적 특권과 압제의 사슬에로부터 해방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약속하였다. 모든 개인들은 어떤 외적 제약 없이 자기 자신의 잠재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어떤 외적이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인민주권의 원리에 기초하여 평등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각인의 전면적 발달과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한 만인의 보편적 권리로 선포된다.

 

근대교육은 바로 모순적인 이 두 가지 심급의 역동적 관계의 의해 규정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세력은 두 번째 심급을 끊임없이 형식화시키고 첫 번째 심급만을 실제로 작동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하여 두 번째 심급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두 번째 심급의 수호자로 스스로를 내세우려 한다. 또한 공교육이 대중교육으로 확대되면서 현장에서 교육의 실제적 실행을 지식-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지닌 교사가 담당하면서 그들의 의도는 왜곡되고, 약화되고, 변형된다.

따라서 근대교육은 첫 번째 심급에 의해 전일적으로 지배되지 않는다. 항상 두 가지 심급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규정되고 결정되며, 이에 따라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데 한국교육에서 세 번째 심급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입시(경쟁)라는 심급이다. 한국의 교육주체들인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들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심급에서 제시되는 교육목적은 명분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목적은 입시경쟁에서의 승리이다. 물론 불평등한 분업구조 속에서 학력과 학벌을 매개로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학부모나 학생의 교육에 대한 실제적인 목적은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는 교육실행의 주체인 학교와 교사 또한 입시경쟁의 승리를 교육의 거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물론 교사마다 편차가 존재하며, 학교의 경우에도 급별에 따라 입시경쟁이 미치는 영향력은 편차가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해당학교의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받는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학교와 교사에게 입시경쟁에서 학생들의 승리에 복무하도록 강제한다. 입시성적이 좋은 학교가 최고의 학교이며, 사교육 기관과 입시경쟁력에서 비교 당하면서 학교와 교사는 계속 압박을 받는다. 일반 기업들의 존재의 근거가 시장에서 상품 경쟁력이듯, 학교와 교사는 입시경쟁에서의 경쟁력을 생명으로 삼는다. (, 유독 한국교육에서 입시가 중요한 심급으로 작동하는지는 다음 절에서 논의할 것이다.)

 

입시라는 세 번째 심급이 앞 선 두 가지 심급의 작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중요하다. 입시경쟁과 이로 인한 입시교육은 첫 번째 심급과는 상충하기보다는 잘 조응하는 관계이다.(최근에는 이런 조응 관계에 매우 중대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다음절에서 논의할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심급과는 매우 상충하는 관계에 있다. 결국 한국 교육체제는 입시라는 세 번째 심급에 의해 전면적 발달-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의 형성이라는 두 번째 심급의 규정력은 억압당하는 반면, 자본주의의 재생산이란 첫 번째 심급과 입시라는 세 번째 심급의 결합에 의해 매우 기형적이고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는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 질 것이다.

 

근대 학교에서 교육내용과 교육과정도 위에서 언급한 앞선 두 가지 층위가 모순적으로 작동한다.

자본주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분업 구조에 맞게 교육과정을 조기에 분화시키고 특정한 기능만을 숙달할 수 있는 편향적인 지식교육-기술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교육과정 구성이나 교육내용 편성은 저항에 부딪힌다. 인간 해방의 핵심적인 조건이 무지로부터 탈출이며(계몽주의), 이를 위해 (과학적) 지식의 습득과 이성의 힘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근대 교육이 바로 이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따라서 학교의 교육과정은 심지어 직업학교까지도 언어(모국어와 외국어), 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등 보편적 지식과 교양을 습득할 수 있는 과목군으로 편성된다. 또한 교과의 내용도 해당 과목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개념들과 이론들로 채워진다.

지배이데올로기의 주입도 결코 일방적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물론 반자본주의나 급진적 성격 을 띠는 특정한 지식과 이론의 배제, 왜곡, 주변화 등을 통해 지배이데올로기 중심의 교육내용을 구성하려 하지만 이때도 지배이데올로기는 날 것 그대로 교육내용에 유입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학문적 객관성이나 정치적 중립성의 형태(가면)를 취해야 한다.(최근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런 틀을 노골적으로 벗어나려는 시도이며, 이것이 근대사회의 기본적 룰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커다란 사회적 파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사회나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호해야 하며, 이를 위한 중심적인 수단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근대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을 노골적으로 삽입하기도 쉽지 않다. 적어도 교육부문에서만큼은 지배세력의 계급적 이해는 직접적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항상 보편성의 형태 아래 은폐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교육내용이나 교육과정을 또 다시 실제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입시이다. 공표된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기술된 교육내용은 보통은 현장에서의 교육실행자인 교사들에 의해 변형을 겪는다. 하지만 한국 교육에서 교사들에 의한 변형의 수준은 매우 미비하고 결국 입시에 의해 중대한 변형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인문 사회 과목의 경우 고등학교 교과서조차 다양한 탐구활동과 토론학습을 장려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수능에서 사탐이 객관식 선다형 문제로 출제되기 때문에 지식의 심층적 탐구나 다원적-다층적 의미에 대한 탐색 등은 필요 없어지게 된다. 가능하면 지식들과 개념들을 얕게, 하지만 빠짐없이 훑어가는 게 중요하다. 지식의 도식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개별적 지식과 개념들의 생생하고 복합적인 내적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암기의 편리성을 위해서이다. 입시에 의해 지식은 현실과 생생한 관계, 지식과 개념들 간의 복합적이면서 역동적인 관계를 상실하고 죽은 지식의 나열로 전락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외국어의 경우 회화 능력이 중요하다고 벌써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다. 이런 입장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한 번도 제대로 회화교육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말하기 시험을 전국단위의 객관적인 시험으로 만들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 말하기가 포함되지 않는 순간 회화 교육의 활성화는 불가능하다. 결국 교육과정과 교육 내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교육과정이나 정부의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입시이다. 말하기가 대입에 포함되는 순간 교육과정이나 정부의 정책과는 상관없이 회화교육은 빠르게 활성화될 것이다.

영어와 수학이 왜 그렇게 절대적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지 교육적으로 논의되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적이 없다. 단지 수능에서 영수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 시장에서도 영수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입시라는 심급이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의 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가(입시)에 따라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이 결정되는 전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당연히 교육과정과 내용의 수준에서도 입시의 심급은 두 번째 심급을 억압하는 역할을 한다. 입시체제가 전면화된 상황에서는 전면적 발달이나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 등을 위한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을 구성하기 위한 고민들이 들어설 틈이 없다. 설혹 그런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이 마련되어도 입시의 심급을 거치는 순간 그 생명력과 본질을 잃게 된다.

 

마지막으로 입시가 지니고 있는 교육방법에 대한 규정력을 살펴보기로 하자.

교육방법에 대한 입시의 영향력은 더욱 직접적이고 전면적이다. 대부분의 나라들도 입시(경쟁)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입시제도는 다른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독특하다.

입시 경쟁의 강도가 매우 강하고 대학 및 학과 서열 체계가 매우 촘촘하게 세분화되면서 입시제도에 대한 형식적 공정성 및 외형적 객관성에 대한 압력이 매우 높게 형성된다. 이에 입시의 공정한 관리 문제가 정권의 주요 정치적 현안으로 부각될 정도이다. 국가수준의 입학시험에서 형식적 공정성을 유지하고, 세분화된 서열을 산출하고, 시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객관식 선다형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대학입학 시험이 한국의 수능처럼 모든 문항이 객관식 선다형으로 구성된 경우는 없다. 대부분 논서술형이 중심이고(프랑스 빠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등) 객관식 선다형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보조적인 수준이다.(미국의 SAT ) 왜냐하면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 성취에 대한 평가와 대학 수학 능력에 대한 진단을 위해 객관식 시험은 매우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객관식 시험은 기본적 지식 습득 여부를 판별하는 데는 유용하겠지만 고등한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데는 부적합하다.

 

입시의 지배력이 매우 강한 상황에서 대학입학 시험의 특정한 형태는 교육(교수-학습) 방법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객관식 선다형 문제 풀이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업 방법은 지식의 암기나 단편적 이해에 편리하도록 지식을 분류하고 도식화하여(결코 지식의 현실과의 생생한 내적 연관이나 지식과 개념들의 복합적 연관을 위한 구조화가 아니다.)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주입식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학습 과정은 나열되거나 도식화된 지식들을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풀이를 되풀이하여 정답을 선택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고 다양한 문제 유형에 적응해야 한다. 암기와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수학까지 한국 교육에서는 암기과목이다. 공식이나 문제풀이 방법을 암기하고, 반복적 문제풀이를 통해 문제의 유형을 익힌 다음, 공식이나 문제풀이 방법을 문제의 유형에 맞게 대입하는 과정으로 수학 학습이 이루어진다. 정리나 공식의 원리를 깊숙이 이해하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는 창의력보다는 정리나 공식을 암기하고 이를 문제 유형에 맞추어 대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리하면, 객관식 선다형 중심의 한국의 독특한 대학입학시험 제도는 지식의 도식화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 강의식-주입식 수업 방법과 단순한 암기와 반복적 문제풀이 중심의 학습 방법을 일반화시킨다. (사실 일방적 강의식 수업은 한국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과밀학급에서 가장 효율적인 교수 방법은 강의식 수업이다. 따라서 강의식-주입식 교육은 입시교육과 과밀학급의 결합에 의해 일반화된 것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입시에 의해 강제되는 일방 강의식 수업 단순 암기 반복적 문제풀이로 연결되는 교수-학습 방법은 역시 근대 교육의 두 번째 심급을 억압한다. 입시가 강제하는 교수-학습 방법의 일반화는 전면적 인간 발달과 고등정신기능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매우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교수-학습 방법은 배움의 즐거움을 박탈하고 학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입시교육이 자본의 재생산에도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즉 입시에 의해 강제되는 교육방법이 현 단계의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에 양성에도 장애가 된다는 지배세력 내부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절에서 할 것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과는 거리가 더욱 멀다. 자유로운 주체라 함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타인의 지배나 환경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가 처해 있는 세계에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개입하는 주체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사회적 현실에 대한 적합한 인식과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필요하다. 평등한 주체란 부당한 특권과 지배 그리고 착취에 저항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함께 지켜나가는 연대와 공동체적 정신을 지닌 주체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신념과 연대 정신이 충만해야 한다. 주입식 교육 암기식 학습 반복적 문제풀이를 중심으로 하는 교수-학습 방법은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 형성보다는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주체 또는 부적응과 일탈의 주체만을 양성한다.

 

이렇듯 한국 교육에서 입시는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 등을 결정하는 핵심 심급이다. 그런데 한국교육에서 입시라는 제3의 심급은 근대공교육체제에 일반적인 두 개의 심급의 모순적 작동 방식에 개입하면서 자본의 지배와 재생산의 심급은 강화하는 반면 인간의 전면적 발달과 교육의 해방적 기능을 강화하는 심급은 억압한다. 따라서 입시교육체제 해체가 완전한 해방의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억압되었던 두 번째 심급을 해방함로써 한국 교육체제 내의 갈등과 모순을 활성화시키면서 새로운 교육체제로의 전면적 이행의 기반을 강화할 것이다.

 

 

3. 입시교육체제의 형성과정

 

왜 한국에서는 입시가 교육을 결정하는 제3 심급의 역할을 할 정도로 중대한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해방 이후 한국의 공교육이 형성되는 역사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한국교육의 역사적 특징을 좀 더 정확하게 알려면, 외국 특히 근대교육체제가 발생하였던 서구와 비교해보는 것이 유익하다.

보통 오해하기 쉬운 것이 근대적 교육체제가 초등-중등-대학 순으로 건설되었을 것이라는 예단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세계사에서 배웠듯이 가장 먼저 등장한 학교는 대학이다. 유럽에서는 초중등학교 없이 중세에 대학이 먼저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 기초 교육은 대부분 가정에서 소위 가정교사들에 의해 사적으로 이루어졌다. 중세에는 귀족 중심으로 그리고 근대로 넘어오면서 부르주아도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 근대 초기까지 대학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니지 못하였다. 20세기 초까지 대학은 주로 라틴어와 희랍어에 기초하여 신학, 법학, 의학, 철학 등을 가르치는 고전적-교양 중심의 교육기관이었다. 과학의 연구는 대학 밖에서 과학자들의 모임(이른바 아카데미 등)에서 이루어졌다.

19세기부터 본격화된 초등교육은 전혀 대학교육과의 연계성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초등교육의 역할은 주로 기초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 교육으로 제한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규율(특히 공장에서 노동할 수 있는)과 애국심(국가의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유럽에서 등장한 중등 교육기관은 초등 교육의 연장선이 아니라 대학교육의 준비 기관으로 등장하였다. 대학의 주요 언어인 라틴어와 희랍어 등을 사전에 배우는 기관으로 중등교육기관이 등장하였는데, 이전의 귀족과 부르주아 중심의 가정교육이 점차 중등학교로 대체되어 갔다. 따라서 초기 중등 교육기관은 대중교육기관이기보다는 특권적인 교육기관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영국의 퍼블릭과 그래머스쿨, 프랑스의 리세, 독일의 짐나지움 등은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노동계급 등 중하층 계층의 자녀들이 진학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고 주로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상류층의 자제들만이 진학할 수 있는 특권 교육기관이었다.

따라서 서구에서는 초중고등 교육이 연계하여 발전한 것이 아니라, 초등//중등-고등 교육이 분리된 채로 교육체제가 형성되었다. 즉 계급적으로 분리된 귀족-부르주아 중심의 중등-고등 교육 트랙과 노동자-서민 중심의 초등 트랙이 만들어졌고. 점차 노동자-서민 자녀를 위한 중등 교육이 확대되지만 그것은 주로 직업 교육 중심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런 서구의 교육체제에 대한 일대 혁신이 20세기 전반기에 미국에서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존 듀이 등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하여 진보주의적 교육개혁이 추진되었다. 20세기 진보주의 교육개혁이 중심적인 방향은 계급-계층적으로 분리된 교육을 통합하여 교육기회의 평등성을 높일 것, 고전-교양 교육이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주의적-경험중심의 교육을 실시할 것, 대학을 현대화하고 대학교육기회를 확대할 것 등이었다.

 

우선 대학현대화를 보면 19세기 후반 2차 산업혁명 이후 과학(Science)-공학(Technology)과 생산의 결합이 훨씬 긴밀해지고, 20세기 초 법인자본주의 출현 이후 대규모의 사무-관리-경영 인력이 필요해지면서 대학이 연구활동을 통해 과학과 공학과 관련된 지식을 생산하고(이전의 대학은 지식생산보다는 기존 문화의 전수가 중심임) 과학자와 공학자 그리고 사무직-관리직 인력을 양성할 것으로 요청받았다. 따라서 기존의 라틴어-희랍어를 베이스로 하는 신학-법학-철학 중심의 고전 교육이 아니라 과학과 공학 중심으로 재편되어 나갔으며, 이는 인문 분야에서도 경영-경제학, 심리학, 교육학 등 사회과학의 확대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등교육도 라틴어-희랍어 중심의 대학준비의 성격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고등 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특히 미국은 귀족 등 구 지배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등교육 개혁의 장애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듀이 등에 의해 교육기회 평등이라는 진보주의 이념이 확산되면서 통합 중등 교육이 일반화될 수 있었다. 또한 초-중등 교육의 내용도 추상적 이론보다는 실용적 지식을 강조하였으며, 생생한 삶의 경험에서 학생 스스로 실용적인 지식을 구성할 수 있는 경험주의적-구성주의 학습 이론이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은 초--고등 교육의 상향식 연계성을 확보하고, 교육의 계급적 트랙을 폐지 또는 약화시키고, 대학교육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이룬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유럽의 경우에는 대학의 현대화는 상당히 추진되지만 대학교육의 대중화는 지체되며(대학 진학률이 꾸준히 높아져 왔지만 급격하게 상승하지는 않음), 중등 교육 트랙의 폐지는 매우 제한적으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은 최근까지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면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의 트랙으로 분화되는 체계였다.(그렇다면 유럽의 노동계급은 어떻게 차별화된 교육기회를 감내해왔을까? 유럽의 노동계급은 교육체제의 개혁보다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을 통해 노동계급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대응을 해왔다.)

사실 이것이 유럽에서 치열한 입시경쟁이 발생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이다. 즉 유럽교육의 완화된 입시경쟁은 일정하게는 트랙화된 교육의 수용이라는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트랙화된 교육기회를 수용했으며, 그래머스쿨의 후기 과정(A-Level), 리세, 짐나지움 등은 대학 준비기관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중등 교육기관을 졸업하면 대학입학 자격이 당연히 있는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수준이 높은 것은 이런 전통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예비과정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럽의 대학교육도 대중화되면서 전반적인 교육체제의 변화기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에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핀란드의 경우 1960년대부터 교육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는데, 그 핵심은 유럽에서는 드물게 트랙화된 중등교육을 통합하는 것이었으며, 조기에 배움으로부터 이탈하는 학생을 최소화기 위한 지원과 협력을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근대 교육체제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한국의 근대적 교육의 기원은 개항기로 소급할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근대적 교육체제가 확산된 것은 해방 이후이다. 남한을 미군정이 통치하면서 한국의 공교육 체제는 미국식 교육체제(학제)를 이식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미국식 교육체제가 이식되면서 유럽과 다르게 초--고등 교육의 연계성이 확보되고, 계급에 따른 트랙화보다는 통합 중등 교육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존재를 지적하면서 트랙화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는 유럽의 직업교육 트랙화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한국의 인문계 고등학교의 비율이 실업계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으며(항상 70% 이상이었으며, 이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가 특권적 교육기관이었던 적이 없음), 평준화 이전에도 인문계와 실업계가 성적순으로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명문고 이외에 실업계보다 성적이 낮은 인문계고등학교가 즐비하게 존재하였다. 평준화 이후에는 더욱이 인문계와 실업계의 위계 자체를 설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한국과 중국 등 중세의 동아시아에는 문인(지식)에 의한 지배라는 유교와 과거제가 결합한 독특한 지배방식이 유지되어 왔다. 이런 문화적 풍토는 지식이 권력과 부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통로라는 뿌리 깊은 의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평등주의적 통합교육체제와 지식을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풍토가 맞물리는 가운데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에 따라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한 새로운 일자리의 획득이 학력 및 학업성취와 긴밀히 연계되면서 전국민적인 교육열이 폭발하게 된다. 자녀들의 상급학교 진학에 대한 학부모의 열망이 폭발하면서 한국에서는 세계 유례없는 교육의 양적 팽창 현상이 나타났다. 1950년대 초등교육, 60~70년대 중등교육, 80~90년대 대학교육의 폭발로 나타났다. 한국자본주의의 압축성장에 조응하는 노동력의 급속한 양성의 필요성과 대중적 교육열의 수용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맞물려서 현재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중등교육 이수율과 대학진학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산업화는 불평등한 분업의 확산을 통해 진행된다. 교육은 불평등한 일자리에 사람들을 배치하는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였는데, 이 때 배치의 중요한 기준은 학력과 학벌로 상징되는 학교 교육에서의 학업성취의 정도였다. 통합교육체제 속에서 적어도 형식적인 교육기회는 균등히 보장되었으며 상급학교 및 명문학교 진학이 학생 개개인의 입시성적에 의해 좌우되면서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입시경쟁에 사활을 걸게 되었다. 한국자본주의의 압축 성장에 의해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었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보상 체계는 원활하게 작동되었으며 대부분 투자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매우 성공확률이 높은 게임이었기 때문에,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과 관계없이 전국민이 적어도 자녀 전부가 힘들다면 일부를 선택하여 상급학교 진학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개발독재, 분단 등에 의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오랫동안 봉쇄되어 있는 상황은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 욕구를 더욱 부채질했다. 상당한 기간 동안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성 가능성은 매우 높았으며, 확률상 상류층 자체들에게 유리했겠지만 중하위층 자녀들의 계층 상승 기회도 폭넓게 열려 있었다.

이는 교육기회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균등하게 열려 있었으며, 학교 교육의 성취정도(입시성적)에 따라 상급학교 및 명문학교 진학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당시의 입시경쟁에 의해 지배를 당하던 한국 교육의 핵심 원리를 평등주의적 업적주의(meritocracy)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양적 팽창에 의한 대중의 교육기회 증대, 평등주의적 업적주의의 일반화,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기회의 폭넓은 개방 등은 한국교육의 커다란 강점이었다. 또한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는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강력한 인내심과 규율을 체화하고,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모방이 가능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한 양질의 노동력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입시교육은 자본주의적 성장에도 조응하는 것이었다.

이런 선순환의 체계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학교와 교사들까지 입시경쟁력 강화에 복무하는 것을 제일의 의무로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입시경쟁이 수사적 의미를 넘어 입시전쟁이 되면서 교육은 입시준비와 동의어가 되었으며 교육주체의 모든 행위와 모든 교육자원들은 입시경쟁에 투여될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입시가 교육 특성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심급이 된 것이다.

 

 

4. 입시교육체제의 구조적 위기의 심화

 

한국사회에서 직업의 선택은 물론 이후의 승진 등 사회적 지위의 결정이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됨으로써 학력-학벌 경쟁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의 화폐에 대한 물신화 못지않게 학력과 학벌에 대한 물신화가 나타났다. 입시경쟁에서 성적은 제한적인 특정한 능력(주로 지적 능력)의 표시가 아니라 인간의 총체적 능력과 인격의 탁월성을 표상하게 되었다. 상품 사회에서 화폐가 모든 상품(인간 즉 노동력을 포함한)을 구매할 수 있는 보편적 등가물이 되면서 화폐의 소유가 단순히 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넘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의미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학력과 특히 학벌은 단순히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을 넘어 상층의 사회적 지위와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보편적 등가물이 되었다. 즉 학벌은 경제 자본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상류층의 카르텔에 들어갈 수 있는 문화자본의 역할로까지 확대되었다.

 

경쟁의 초기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선택된 자녀만(공부에 싹수가 있고, 주로 아들 중심으로) 경쟁에 참여시켰지만, 자본주의 성장에 따라 소득이 증대함에 따라 점차 모든 자녀들을 경쟁의 게임에 밀어 넣기 시작하였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경쟁에 참여하면서 경쟁의 압력수위는 계속해서 상승하였다.(과잉경쟁, 미친경쟁) 공교육 전체가 입시 경쟁에 지배를 당한 것은 물론, 사교육 시장까지 급속하게 팽창하였다. 입시경쟁이 조기화되고 총력전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교육체제의 장점이었던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점점 봉쇄되어 갔다. 입시경쟁이 조기화되고 전면화되면서, 점차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보다는 경제자본과 문화자본 및 정보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가정적 배경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결정적인 변인이 되었다. 최근에 수능성적 분포나 대입결과 통계를 보면 이제 한국의 공교육은 계급-계층의 이동보다는 계급-계층 재생산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97IMF 사태를 계기로 한국자본주의가 저성장 체제로 전환하고 2008년 세계 금융공황 폭발로 인한 경제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교육의 보상체계가 전반적으로 붕괴하고 있다. 호황기 막바지 국면에서 대학교육이 비약적으로 팽창하여 80% 내외의 학생들이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지만 이제 대학졸업장은 안정적인 직장을 전혀 보장해주지 못하며, 이른바 명문대학의 졸업장도 점차 그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의 대학진학의 동력은 계층상승의 열망과 희망이 아니라 계층하락의 불안과 공포다. 점증하는 생존의 위기 속에서 불안과 공포의 회피 수단으로 하지만 보증 없는 수단으로 입시경쟁에 매달리고 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입시경쟁의 동아줄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희망이나 열망보다도 오히려 불안과 공포가 인간을 더욱 강하게 지배한다. 그러나 다른 대안의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 사람들은 무모하고 보상도 없는 입시경쟁의 사다리에서 탈출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함없이 입시교육체제가 유지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 토대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동으로 붕괴되지는 않는다. 대안의 확산과 결합되었을 때만 붕괴는 현실화한다. 이 때 대안이란 단순히 이론적-정책적 대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경쟁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대중적 운동과 정치적 실천을 포함하는 것이다. 오히려 후자가 더 핵심적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대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입시교육은 시대의 변화 즉 지적-기술적 환경과 소통 수단의 변화 등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부적응이 커지고 있다. 또한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에 조응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에도 점차 그 적합성 약화되고 있다. 지배세력 내에서도 입시교육의 비합리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속도는 엄청나다. 또한 전자기기의 발전에 의해 이런 지식과 정보의 흐름에 접속하는데 시공간적 제약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여 사람들이 현명해지거나 지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홍보 속에서 그리고 나날이 복잡해지는 삶의 양식과 사회 현상 속에서 개인들은 무기력감에 빠질 수도 있다. 주변 세계는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다가오고, 해독할 수 없는 여러 지식이나 정보에 노출되면서 이른바 전문가에 대한 의존성이 (전문가주의가) 커질 수도 있다. 즉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똑똑하다고 가정되는 타자에 대한 의존성이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수동화된 대중들 사이에는 지성의 유통보다는 정념의 유통이 더 활성화될 위험성도 존재한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맹목적으로 암기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주어진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방식의 교수-학습이 학생의 지적 성장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왜냐하면 아무리 컴퓨터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할지라도 인간의 뇌에 기본 지식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사고 자체의 원활한 작동이 불가능하다.) 투여하는 노력에 비하여 그 성과는 극히 보잘 것 없다. 즉 입시를 위한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능력은 전이의 폭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이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정보의 양적 축적이 아니다. 나날이 복잡해지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들을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과학적 이해 능력과 비판적 해석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교과별 또는 교과를 가로지르는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개념들과 개념들의 체계(즉 이론)에 대한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져 한다. 또한 개념들과 이론들을 활용하여 현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훈련들도 지속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런 개념과 이론들을 통해 넘쳐나는 지식이나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자기의 필요에 의해 그것들을 적합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역으로 이런 과정(현실의 분석과 종합, 지식과 정보의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자신이 습득한 개념과 이론들도 계속 수정되고 발전되어 나가야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의 구성이 변한다. 초기 산업화 시대에는 자연의 대상을 가공하는 공장의 육체노동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자본주의의 생산력과 기술이 성장할수록 지식과 정보와 관련된 노동이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정서 노동의 비율이 높아진다. 또한 상품의 현실적 유용성 이외에 심미적 욕구도 커지면서 상품의 생명주기가 짧아지고 상품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인 혁신 능력이 시장에 성공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1] OECD: DeSeCo Key Competences

핵심역량

하위역량

1. 도구를 상호작용적으로 활용 하는

능력

(Use tools interactively)

언어, 상징, 텍스트 등 다양한 소통 도구 활용 능력

지식과 정보를 상호작용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새로운 테크놀로지 활용 능력

2. 이질적인 집단 속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

(Interact in heterogeneous groups)

인간관계 능력

협업/협동능력

갈등 관리 및 해결 능력

3.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

(Act autonomously)

 

사회/경제적 규범 등 주변 큰 환경을 고려하면서 행동하고 판단하는 능력

자신의 인생계획, 프로젝트를 구상, 실행하는 능력

자신의 권리, 필요 등을 옹호, 주장하는 능력

(출처: http://www.oecd.org/pisa/35070367.pdf)

 

위의 표는 이미 2005년에 OECD에서 발표한 현대 교육이 지향해야할 핵심역량을 정리한 것인데, 후기 자본주의에 필요한 노동력 양성을 위한 교육 목표로 볼 수 있다. 위의 핵심역량은 전면적 발달이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인 주체역량를 키우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단지 새롭게 변화된 자본주의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역량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의 입시교육으로는 위에서 제시한 핵심역량을 기르는 것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식화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과 나열된 지식의 암기와 문제풀이 학습이 중심인 입시교육은 상징적-기술적 도구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 극히 제한한다. 또한 입시교육은 철저히 개별화된 개체들 사이의 극단적인 경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호작용의 과정은 철저히 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협력 및 협동의 경험 자체가 불가능하고 상호작용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입시교육은 지식을 자신의 삶이나 자기가 처한 현실로부터 분리하여 죽은 것으로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성장할 수 없다. 입시교육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삶의 관리 능력은 지루하고 고통스런 과정을 참을 수 있는 능력 정도일 것이다.

 

한국의 입시교육체제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 초기의 긍정적 측면들은 대부분 부정적 측면으로 전화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능보다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능이 훨씬 커졌으며, 그나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교육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보상체계는 붕괴하였지만 교육주체들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더 많은 사교육비, 더 강한 경쟁, 더 긴 입시노동 등을 강요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입시경쟁체제가 유지되는 기본 동력은 상승의 희망이 아니라 하락의 공포다. 하지만 대안의 희망이 보이는 순간 공포에 의한 지속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입시교육은 시대적 환경과 점점 더 크게 괴리되고 있다. 입시교육의 비합리성과 부적합성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진보적 변화와 개인의 삶의 향상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본의 요구에도 제대로 응답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장기간 한국교육을 지배하여 왔던 입시의 심급이 자동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구조와 체계는 그 자체로 상당한 지속의 관성을 지니게 된다. 또한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입시체제의 급속한 해체는 교육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실제로 입시 심급의 해체는 해방으로서 교육의 심급을 빠르게 활성활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배세력들은 입시체제의 유지나 부분적 변형을 선호할 것이다.

 

 

5. 입시교육체제 해체와 새로운 교육체제 건설을 위한 흐름들

 

1) 교육실천에 관한 이론들

기존의 교육체제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새로운 교육적 실천의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이론적 모색도 활성화되고 있다.

교육실천에 대한 이론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실천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육실천의 특성은 개체성과 지속성이다. 이 두 가지 핵심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정치적 실천과 비교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선 개체성을 논의해보자. 정치적 실천은 항상 어떤 정세적 국면에서 대중(집단)들의 이해(욕망), 정서들, 실천들의 흐름들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치적 실천의 대상은 집단(대중, 계급, 세대, 민족 등등)이지 개인이 아니다. 정치적 실천의 목표는 대중적 흐름의 창출이지 개인(개체)의 변화가 아니다. 반면에 교육은 우선 개인들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교육이 특정한 사회적 주체 형성을 목표로 한다할지라도 그것은 개인들의 변화를 통해서만 그러하다. 교육적 실천은 개인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며 교육적 실천의 성과는 항상 개개인들의 변화와 성취로 구체화된다.

두 번째 특성인 지속성을 논의해보자. 정치적 실천은 매 정세적 국면에 따라 실천의 내용이나 방법 등이 결정된다. 특정한 정세에 대한 정치적 실천의 개입은 다시 정세의 변화를 초래하고 이에 따라 정치적 실천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즉 정치적 실천은 정세 정치적 실천 정세의 변화 정치적 실천의 조정 등의 연속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정치적 실천도 중장기적 목표를 가질 수 있지만 이미 정해진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조직될 수는 없다.

반면에 교육적 실천은 중장기적인 프로그램(교육과정)에 기초한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교육적 실천이 개체를 대상으로 하고 인간 개체의 발달과 성장과정은 인간의 진화(계통발생)에 의한 유적 특성이 변화되기 전까지는 커다란 변화를 겪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의해서도 개체의 발달 과정이 변화할 수 있지만 이도 정치적 정세의 변화처럼 단기적이지 않다.

 

따라서 교육실천에 관한 이론은 우선 인간의 유적 특성과 인간 개체의 성장 및 발달과정에 대한 과학적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이 이론은 심리학, 인지학-인식론, 언어학, 생물학 등 과학적 인간학을 포괄해야 한다. 최근에 교육 실천에 관한 이론으로 비고츠키 교육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비고츠키의 교육이론은 교육에 있어서 협력과 발달의 중요성, 인간발달의 문화역사적 원천, 생각과 말의 발달단계와 상호관계, 고등정신기능의 형성과 발달과정 및 도구와 기호의 역할, 교수-학습의 특성과 근접발달영역,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의 관계, 위기와 신형성으로 구성되는 인간 발달의 역동적 과정과 선도적 활동 등 인간의 특성과 발달 과정에 대한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교육학이다.

 

이 글의 제목에서 새로운 교육체제의 명명을 발달 교육체제로 정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전면적 발달은 결코 모든 분야의 지식과 모든 영역의 기능을 숙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통 전인 교육의 속류화된 의미인 팔방미인을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전면적 발달은 우선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정신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초정신기능이 매우 생득적이고 본능에 가까운 반면 고등한 정신 능력은 각 개체에게는 잠재적으로만 주어져 있다. 이런 능력의 현실화여부는 주로 교육에 의해 좌우되며, 교육적 실천은 이런 각 개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고등정신기능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전면적 발달의 또 하나의 측면은 개개인들이 개인적인 삶이나 사회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주체성과 능동성을 최대한 고양시키는 것이다. 전면적 발달을 통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인간 내적으로는 본능이나 습관 그리고 정념 등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이성이나 자유의지의 힘을 확장시킨다. 또한 외부 세계에 대한 적합한 이해나 과학적 인식의 힘을 키워 외부 세계에 대한 통제력과 지배력을 강화시켜 준다. 따라서 전면적 발달은 인간의 지적-윤리적 자율성(지적 자율성은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며, 윤리적 자율성은 자신과 타인의 이해관계를 합리적 조절하고 타인과 우호적인 교통을 통해 공동의 선을 창출할 수 있는 이성적-정서적 능력임)을 신장시킨다.

이러한 전면적 발달은 필연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주체 형성의 문제와 연결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전면적 발달은 필연적으로 개개인들의 주체성과 능동성 그리고 자율성을 증대시킨다. 이런 인간의 특성이 고양될수록 인간을 억압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려는 지배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기본 특성은 노동력이 상품화되고 이를 통해 죽은 노동(사유화된 생산수단)이 산노동을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시장과 이윤의 맹목성에 지배된다. 인간이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경제 법칙이 인간을 지배한다. 이런 가운데 인간과 자연의 공존 관계도 파괴된다.

근대국가의 정치 시스템인 대의제도 여러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대의제 자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에도 간헐적인 투표권의 행사 이외에는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을 제한한다. 따라서 대의제는 고양되는 주체성과 능동성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틀이 아니다.

이렇듯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추구하는 발달의 교육체제는 필연적으로 해방의 교육체제로 확대된다. 고등정신 기능을 바탕으로 하는 자율적인 지적-윤리적 주체는 사회적 측면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주체로 나타난다. 이런 주체는 사회적 힘에 굴복하고 외적 환경에 적응하는 주체가 아니라 동료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부당한 억압과 착취를 제거하고 사회를 스스로 통치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교육 실천에 대한 이론의 두 번째 과제가 등장한다. 그것은 교육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근대교육의 주요한 과제 중에 하나는 지식과 기능의 습득을 통한 노동력의 양성 못지않게 현존하는 지배질서에 순응하고 이를 수용하는 주체의 형성이다. 교육내용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삶 자체를 통해 이런 과제를 수행한다. 교육내용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듯이 학문적 객관성의 외피를 써야하기 때문에 지배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전시보다는 오히려 지배적 질서에 반하는 이론, 개념, 가치 등을 배제하거나 주변화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예를 들어 역사에 있어서 지배계급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피지배자들의 삶과 활동의 역사는 배제하거나 주변화함으로써 역사는 소수의 능력 있는 지배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생산한다. 또한 지식들을 분절화하고 지식과 현실과의 생생한 연관을 파괴하는 것도 자주 사용한다. 역사책을 무미건조한 사실들의 나열로 가득 채움으로써 역사 학습을 통한 역사의식의 형성을 억제한다. 인간은 세상을 더 적합하고 생생하고 총체적으로 인식할수록 실천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당연히 지배세력은 이런 인식을 억제하려 한다. 당연히 입시교육은 이런 억제를 더 완벽하게 만든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삶이 조직되는 방식이다. 학교나 교사가 정한 일방적인 규칙에 순응하고, 동료들과 협력하기보다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취를 양적 지표로 서열화하는 학교에서의 삶의 방식은 학생들을 지배질서에 순응하는 주체로 만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교사나 학생들에게 쉽게 의식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이 몸에 밴 사람은 협력과 연대를 아주 낯설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바라보며, 항상 주어지는 규칙과 명령에 복종하도록 길들여진 사람은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며 저항적 주체가 되기 어렵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단순한 양적 지표에 의해 평가당해오고, 동료와 비교 속에서 서열화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인간 능력의 차별성을 쉽게 인정하고, 불평등한 사회 현실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교육실천에 대한 이론은 학교교육을 통해 지배이데올로기가 주입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실천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교육내용-교수학습 방법 등 명시적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학교운영과 학생의 일상 생활까지 즉 잠재적 교육과정까지 포괄해야 한다. 마이클 애플을 비롯한 비판교육학자들의 이론적 작업은 매우 훌륭한 참조점이다.

 

마지막 교육실천에 관한 이론은 생생한 교육실천 사례의 분석이다. 실천 사례는 이론 일반이 가지기 힘든 생생함과 구체성을 지니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매우 강력하며, 새로운 실천을 설계할 때도 매우 구체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핀란드 교육 사례는 수업, 교육과정, 학교운영, 교사양성, 지역사회와 관계 등 거의 교육실천의 전 분야에 걸쳐 생생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교육주체들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을 자극하였다. 최근에는 혁신학교라는 우리 자신의 실천 사례들이 계속 축적되고 있는 중이다.

(전면적) 발달의 교육학, 지배이데올로기와 단절을 위한 해방의 교육학이 내외의 다양한 실천 사례와 결합할 때 교육실천에 관한 이론은 훨씬 풍부해지고 구체성을 띨 수 있을 것이다.

 

2)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이다. 영미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은 표준화와 시장화를 중심으로 하는 초중등 교육 개혁과 대학의 기업화와 영리화를 기본으로 하는 고등교육의 개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초중등 부문만 다룰 것이다.)

1980년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불황이 본격화되자 이에 대한 다양한 대응책들이 마련되며(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 등) 교육부문에 대한 문제의 진단과 대안 마련도 활성화되었다. 당시 국제시험에서 영미의 학생 성적은 하락 추세였으며, OECD 국가중에 중하위권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통한 양질의 노동력 양성의 실패와 지식(과학과 공학) 생산의 한계가 자본주의 혁신의 중요 장애로 지적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영미는 사회 운영의 원리로서 자유주의 정신이 가장 팽배한 나라였고 초중등 교육도 이런 정신에 기초하여 운영해왔다.(반면에 프랑스, 독일, 일본 등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가중심의 교육체제가 발달하였다.) 학교운영과 교육과정에서 단위 학교와 개별 교사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렸으며, 이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지, 학교별 학업성취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나 자료를 확보하기 힘들었다. 이에 영국과 미국에서는 국가단위 또는 주단위로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 시험(즉 일제고사)를 대대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표준화 시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교사들의 성과급을 책정하거나, 학교의 예산 지원에 차등을 두었으며, 비영리 단체나 영리기업에게 성적 향상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학교 운영을 위탁하는 사례(차터 스쿨, 마그넷 스툴)가 증가하였다. 하지만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은 학력 신장이라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엄청난 부작용만 양산하였다. 영미의 자유주의 교육의 장점은 사라지고 교육과정의 획일화, 시험 준비를 위한 수업의 확대, 경계선 학생에만 과도한 집중, 교사들의 엄청난 이직과 사기저하 심지어는 시험성적 조작이라는 도덕적 해이까지 다양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영국은 현재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거의 대부분 폐기하였으며(영국은 국가수준 표준 시험의 전국적 결과를 일간지에 게재할 정도였음), 미국은 여전히 지원중심의 정책과 신자유주의적인 표준화-시장화 정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도입은 교육적 맥락보다는 정치적 의도와 식민성(미국 제도에 대한 관료와 학자들의 무조건적 추종)의 산물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대중의 열망의 대상이자 항상 큰 고통이었고 이런 가운데 정치세력들은 선거과정이나 정부정책 결정 과정에서 교육개혁을 핵심적인 이슈로 내세웠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 이후, 역대정권이 추진한 교육개혁의 성격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보수정권이든 자유주의 정권이든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한국의 교육정책은 주로 행시를 패스한 교육관료(대부분 그들은 교육경험이 전무함)들이 주도하고 교육학자들이 보조하는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교육관료들은 원래 교육의 문외한들이며 이들은 대개 1~2년씩 미국으로 연수를 갔다 오면서 미국의 몇몇 정책들을 벤치마킹하여 귀국한다. 교육학자들 또한 대부분 미국유학파들이며 이에 따라 교육정책결정권자들이 결정적으로 참조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교육정책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방과 이식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현실은 영미의 교육현실과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은 영미와 다르게 국가(중앙정부)가 세세한 교육과정과 교과서 구성까지 간섭하며, 대학입시를 독점함으로써 사실상 학교에서 가르쳐야할 세부적 지식까지 모두 규정하는 형태이다. 또한 한국교육은 시험 성적(학업성취)이 낮은 것이 문제였던 적이 없다. 한국은 국제 표준화시험인 PISA에서 계속 최상위권을 유지해왔다. 문제는 성적하락이 아니라 입시경쟁이 지나치고 시험을 위한 공부가 과잉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고사의 도입은 시험이 과잉인 교육에 추가로 시험을 덮어씌우는 것이었고, 결국 교육주체들의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입시교육의 직접적 압력으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기 시작한 초등의 교육주체(교사와 학부모)들의 저항이 거셌으며 결국 정부 스스로 초등 일제고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학교 시장화 정책은 특권적 입시 귀족학교의 확대로 귀결되었다. 미국의 차터스쿨이나 마그넷스쿨과도 다르게 높은 학비를 지불해야한 갈 수 있는 외고 등 특목고의 확대와 자사고 도입으로 교육의 계층 간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켰으며, 대입경쟁에 고입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입시경쟁교육이 더욱 심화되었다.

그나마 신자유주의 정책 중에서 가장 창의적인 부문이 교원정책 특히 교원평가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학생들의 성적 향상과 연계하여 교원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였다. 하지만 이는 대규모 교원들의 이직과 반발을 불러왔으며 교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면서 오히려 학교의 교육력을 약화시켰다. 한국에서는 애초부터 과잉입시경쟁 문제 때문에 성적향상과 교원평가를 연계하기 힘든 분위가 형성되었으며, 이에 정부당국에서는 학생과 학부모 만족도 평가라고 하는 초중등 교육단계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평가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런 교원평가에는 교육을 상품으로 바라는 시각이 깊게 각인되었다. 서비스 공급자인 교사가 서비스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만족도를 평가받고 이를 피드백하여 더 질 좋은 교육상품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사실 초중등 단계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매우 전면적이고 인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점수로 평가받고 동료교사와 비교 당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매우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유발한다. 또한 몇몇 조야한 항목을 가지고 5단계 평가를 받는다 해서 본인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자기 개선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실효성은 없으면서 교사의 자존감만 약화시키는 제도이다. 성과급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교원의 교육활동을 양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학생들의 성적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성적을 단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반드시 훌륭한 교육활동으로 볼 수 없으며, 특히 입시과잉의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부작용만 클 뿐이다. 그러다보니 현재 학교에서 시행되는 성과급 제도는 사실 성과 측정에 기반하고 있지 않는 매우 이상한 제도가 되어버렸다.

교육의 특성상, 외적 강제나 물질적 유인책으로 교사들의 교육적 열의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 예를 들어 일반 기업에서 소비자를 위해 물건을 잘 만드는데 헌신하자는 윤리적 제안은 현실성이 약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헌신하자는 윤리적 제안은 훨씬 호소력이 있다. 선진적 교육모델로 평가받는 핀란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교원 간의 협력 및 지원시스템의 확대, 교원의 참여와 자율성 증대를 통한 윤리적 책임감의 고양 등이 유의미한 결과를 산출해 왔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전반적으로 실패하였음이 분명하다. 표준화시험도, 학교다양화도, 교원정책도 기존의 입시체제의 병폐만 확대하고 학교의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본국인 영국과 미국에서는 서서히 이 정책을 포기하고 있음에 비하여 한국에서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지배세력들이 경쟁과 시장만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매우 강하게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며, 또한 학교와 교사에 대하여 불신하는 국민들의 정서를 활용하여 교육의 실패를 학교와 교사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강력한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 혁신학교 운동

신자유주의 교육개혁과 정반대 방향에서 한국교육의 문제 즉 입시교육체제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풀어보겠다는 것이 혁신학교 운동이다. 혁신학교는 교육주체들의 관계의 변화 특히 교사 사회의 성격 변화에서부터 출발한다. 한국의 학교에서 교육의 큰 목표는 입시경쟁에서의 승리라고 하는 외적 강제에 의해 결정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육활동의 세부적인 목표, 방향, 내용까지 학교 현장으로 하달하며,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장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외부로부터 주어진 과제를 실행한다.

 

혁신학교는 입시경쟁에서의 승리, 상급관청이 부과한 과제 등 외부에서 부과한 목표가 아니라 교사들 스스로 다시 교육의 목표를 사유하고 이런 목표를 가장 잘 실현하기 위한 교육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교사 공동체를 구성하여 학교운영에서부터 수업방법까지 서로 민주적 토론하고, 상호협력하고 함께 연구해 나간다. 한마디로 민주적이고 협력적 교사 학습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혁신학교의 기본적 토대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적 간섭을 최소화하고(특히 교장이 교사들의 공동체를 존중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함)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 핵심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최전선인 교실에서의 수업혁신이다. 혁신학교는 기존의 주입식-암기식-문제풀이식 교수-학습에 벗어나 학생들의 전면적 발달에 적합한 다양한 교수-학습 방식을 연구하고 도입하는데 적극적이다. 특히 교사-학생, 학생-학생 간의 협력과 상호교류를 최대화할 수 있는 교수-학습 방법의 개발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수업혁신은 교사 개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교사 간의 협력을 통해 활성화된다. 수업혁신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사또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교수-학습의 기본적인 특성이나 의미 등을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을 정립하는 데는 비고츠키의 교육이론이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로는 혁신학교는 학교문화의 전면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교장-교사-학생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문화를 해체하고 교육주체들의 참여와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적인 학교자치의 실현을 추구한다. 당연히 학부모도 교육주체의 일원으로 학교자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나아가 지역사회와의 협력도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혁신학교 운동은 기존의 참교육 운동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기존의 참교육 실천은 기본적으로 개별 교사들에 의해 교실단위로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혁신학교 운동은 학교 단위에서 상호 협력과 공동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교실에서의 실천을 넘어 학교운영 전반에 개입한다. 따라서 이전의 참교육 실천보다 더 근본적이고 다양한 수준의 새로운 교육실천을 실험하고 확대해나갈 수 있다.

혁신학교 운동은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가시적이고 실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입시교육체제에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입시교육체제가 근대적 교육체제 수립이후부터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입시교육체제로부터 고통 받고 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더라도 입시교육체제의 외부를 상상하는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혁신학교는 새로운 교육이 한국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입시교육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교육체제의 현실성을 높였다.

 

하지만 혁신학교가 해결해야할 과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혁신학교가 일부 교사들의 헌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솔직히 대다수의 성공적인 혁신학교는 전교조 교사들의 집중적 투입으로 가능했다. 혁신역량이 혁신학교 자체에서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외부적 투입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결국 외부 역량의 투입에 의존하는 혁신학교는 투입된 역량의 조건에 따라 혁신학교 내부에서도 많은 차이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전교조 조합원의 역량이 제약되어 있는 현실에서 현재의 혁신학교는 선도적 모델학교이지 일반화할 수 있는 유형의 학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교육감의 교체에 따라 극심한 부침을 겪을 수도 있다.

한국교육의 현실(또는 교육제도)은 그대로 둔 채, 단위학교만 바꾸는 것의 한계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대학입시와 멀수록(즉 초등학교) 혁신학교 운동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입시에 가까울수록 성공 확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기존의 과도한 입시교육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권위주의적 학교문화를 개선하여 교육주체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환호 받을 수 있지만, 결국 한국 교육의 총체적 현실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재확인되면서 혁신학교에 대한 지지나 동력이 약화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그래서 혁신학교가 새로운 교육체제로 전환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고립된 섬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4) 제도개혁으로서의 교육혁명

혁신학교 운동이 학교 현장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실천이라면, 제도개혁-교육혁명 운동은 교육제도의 거시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근대교육체제의 완전한 변혁은 사회구성체 수준에서의 이행을 동반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교육혁명은 2단계로 구성될 수 있으며, 우선 1단계 교육혁명은 과잉입시경쟁을 종식시켜 전면적 발달과 해방을 위한 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입시경쟁체제의 해소를 목표로 하는 1단계 교육혁명은 대학평준화를 통한 입시폐지를 추구해야 한다. 대학과 학과가 극단적으로 서열화되어 있고, 학력과 학벌의 막강한 위력을 오랫동안 경험한 역사를 지닌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급진적인 대학평준화만이 입시교육체제의 근본적 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완전환 대학평준화의 실현 이전에 입시경쟁 완화를 위한 과도기 방안도 존재할 수 있다. 수능 절대평가제 도입, 수능 논서술형 평가 도입, 영수비중 축소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관료들의 교육정책 결정권한 독점을 해소하고 교육주체들에 의한 통제를 확대하기 위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학교자치와 민주화를 위한 학교자치위원회와 교장선출보직제 도입, 보편적 무상교육확대 등도 1단계 교육혁명의 주과제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저지하고 1단계 교육혁명을 전개해나가기 위해서는 국민대중의 광범위한 요구와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지형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여당은 당연히 교육혁명을 결사반대할 것이다. 자유주의 야당은 선거 시기에 교육혁명의 주요 과제들을 공약으로 내걸긴 하지만 그것을 관철시킬만한 진정성이나 의지가 부족하다. 일상적 시기에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당의 정책으로 채택하지도 않는다. 진보정당은 교육혁명의 의제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있지만 대중의 역량을 모아낼 수 있는 정치적 존재감이 부재하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가장 유력한 수단은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교육혁명의 이론적 대안마련과 더불어 강력한 대중운동을 조직할 수 있을 때 1단계 교육혁명의 과제는 사회적 의제와 정치적 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혁명의 과제에 대해서 입시경쟁으로 직접 고통받는 초중등 교육주체들이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면 최근에는 학생수 감축에 의해 강제적인 구조조정에 위기에 빠진 대학주체들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13지역의 진보교육감의 진출도 교육혁명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초중등 교육주체와 대학주체들이 대학체제 개편(대학평준화)를 매개로 교육혁명의 전선에서 연대하고 진보교육감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강력한 대중운동이 폭발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보수적인 주류 언론들에서도 입시중심의 교육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교육부가 스스로 영어 수능 절대평가제를 도입하였다. 지배세력 내부에서도 현재의 입시교육체제가 우리사회의 현실과 점점 더 조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고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1단계 교육혁명의 흐름이 폭발하면 지배세력 내부에서 이에 대한 대응을 놓고 균열이 일어날 확률이 높으며 이는 1단계 교육혁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우선 2016-17 총대선이라는 선거 공간 속에서 1단계 교육혁명을 위한 대중의 저항을 촉발하고 대중 운동의 흐름을 확대해나갈 수 있는 치밀한 실천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6. 나아가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근대교육체제는 자본주의 재생산이라는 심급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지만 항상 전면적 발달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적 주체 형성을 지향하는 발달과 해방으로서의 교육이라는 두 번째 심급에 의해 동시적이고 모순적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한국교육체제에서는 독특하게 입시라는 세 번째 심급이 매우 강한 규정력을 가지고 작동하는데 입시 심급은 첫 번째 심급과는 잘 조응하는 반면, 두 번째 심급을 억압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한국교육체제는 자본주의 재생산 기능과 입시가 결합하여 결정적인 규정력을 발휘하는 반면에 발달과 해방의 교육은 철저히 억압당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교육혁명의 1차적 과제는 과잉입시경쟁으로 인한 입시중심의 교육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발달과 해방의 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지양은 변혁을 전후하여 지속적이고 거대한 대중적인 문화혁명을 필요로 한다.(그람시의 진지전) 왜냐면 자본주의의 지양은 이전의 혁명처럼 어떤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의 주도권의 이양이 아니라 만인에 의한 자기통치로의 이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의 지배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과 국가폭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능력의 위계를 바탕으로 하는 조직의 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국가기구는 물론이고 20세기초 법인혁명 이후 자본주의적 기업들도 그 내부에 사무관리직 직원들과 테크노크라트들로 구성된 대규모의 조직을 구성하고 생산부터 판매까지 일체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이런 조직(국가기구와 기업) 내에서 명령을 내리는 자의 권한은 단순히 소유권에만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우위에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

 

따라서 전면적 발달을 위한 교육은 지적 차이를 해소(또는 감축)하여 조직 내의 위계를 해체하고, 대중의 자기 통치 능력을 고양시키면서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한다. 교육혁명은 문화혁명의 중핵을 이루고, 정치-사회혁명의 주체적 토대를 형성한다. 교육혁명은 정치-사회 혁명 이후에 뒤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행해야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치-사회혁명의 전후를 관통하면서 장구한 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입시중심 교육을 해체하는 1단계 교육혁명과 자본주의 교육체제를 지양하는 2단계 교육혁명의 구체적인 관계는 전체 사회의 역동적 흐름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매우 압축적으로 전개될 수도, 매우 긴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최종적인 교육혁명의 과제를 명확히 하면서도 1단계 교육혁명의 성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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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권두언] 작다고 해서 하찮기까지 한 것은 아니다 file 미로 2016.01.12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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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겨울잠에서 꿈을 긷는 음악 file 미로 2016.01.11 626